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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쉐르 Nov 06. 2024

생존을 위한 여행

베트남에서 찾은 쉼의 자유

예전엔 여행이란 다양한 곳을 다니며 견문을 넓히고 새로운 경험을 쌓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름난 관광지를 돌아다니고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가능한 많은 걸 보려고 했다.
하지만 몇 년째 우리 가족은 같은 곳만 여행하고 있다. 한 해에 한 번은 꼭 가는 곳 바로 베트남이다. 이번에도 1월에 한 달 정도 머물다 올 계획이다. 베트남에서도 특별히 새로운 곳을 가지 않고 늘 같은 동네에 머문다.

누군가에겐 이런 긴 여행이 참 부러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곳에 가는 이유는 단순히 휴가나 여유를 즐기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편안함을 찾아가는 일종의 피난처 같은 의미다.


아이들은 종종 "다음엔 제주도에 가면 안 돼요?"라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편이 찔린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이 베트남을 찾는 이유는 단지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다. 베트남에서 우리는 그저 바닷가에 앉아 바람을 맞거나 길거리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현지인들이 가는 소박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골목을 누비며 옷도 대충 입고 다닌다. 이곳에 자주 오다 보니 이제는 나를 알아보는 현지인도 생겼고, 친구가 된 사람들도 있다. 시장에 가도 특별히 흥정할 필요 없이 현지 사람처럼 자연스레 맞는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왜 베트남은 나에게 편할까?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곳에도 빈부격차와 사회적 차이는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머무는 곳은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 그런 차이가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더불어, 이곳에서는 누구와도 비교될 필요가 없다. 허름한 티셔츠에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니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소박한 식당에 가더라도 아무도 나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 나는 진정한 자유를 느낀다. 가끔 한국인을 만나도 그들조차도 낯설게 느껴질 뿐이다. 한국에서는 남들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던 내가 여기서는 그 부담을 내려놓고 편안함을 되찾는다.


한국에서는 나도 모르게 주위와 자신을 비교하고 다양한 자극이 계속 주의를 산만하게 만들어 쉽게 지쳐버린다. ADHD가 있는 사람에게 이런 비교와 자극은 더 크게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이런 압박이 없다. 누구도 나에게 기대하지 않고 평가하지도 않는다.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말도 그냥 소음처럼 흘러가며 의미 없이 지나갈 뿐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야 비로소 나는 비교와 과도한 자극에서 벗어나 온전히 편안함을 느낀다.


두 번째 이유는 언어의 장벽이 주는 평안 때문이다. 어느 날 첫째에게 "왜 베트남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라고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사람들이 무슨 말하는지 몰라서요.” 아내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바로 알아들었다. 한국에서는 듣고 싶지 않아도 수많은 말과 소음이 귀에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말을 해도, 내가 알아듣지 못하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첫째 역시 내가 가진 예민함을 물려받아 한국에서는 말소리에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던 것이다. 베트남에서 그 소음들이 의미 없는 배경음으로 변할 때 우리는 비로소 편안함을 느낀다.


세 번째 이유는 삶의 자극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선 연락을 기다릴 필요도 뉴스나 사회의 소식에 신경 쓸 필요도 없다. 휴대폰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사진을 찍을 때나 잠깐 사용할 뿐이다. 내가 머무는 곳은 네온사인도 거의 없고, 자연의 색과 소리만이 조용히 다가온다. 이곳에서는 내 생각이 너무 복잡하지 않다. 나의 일상도 단순해진다. 즉 자극이 적은 베트남의 환경이 ADHD로 감각적 민감함이 완화되는 것 같다. 


네 번째 이유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자유함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일상이 과도하게 구조화되어 있다.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출근하고 퇴근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갖고, 하루를 정리하며 잠을 청하는 일상. 아이들은 학교 다녀와서 학원 가고 집에서 숙제하고 잠자는 일상. 쳇바퀴 돌아가는 듯한 구조화된 그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는 점이 adhd를 가진 나를 평온하게 만든다.


한때는 이곳에서 몇 년간 살고 싶은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경제적인 준비가 충분하지 않아 그 꿈은 잠시 접어 두었다. 그래도 올해 1월에 떠날 여행이 다가오니 기대된다. 아마 그곳에 가면 나는 또 한 번 편안함을 찾고 한국에서 놓치고 있던 나의 평온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여행이 내게 다시 한번 마음의 여유를 찾게 하고 돌아와서도 더 단단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한국에서의 삶을 이어가게 하는 힘이 되어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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