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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골 Jan 28. 2024

페이스북 생태계가 쇠락한 메커니즘

타임라인 중심의 구조가 만든 에코체임버

 한참 전부터 생각하던 주제이지만 이제야 풀어놓는 이유는 나 역시 떳떳하지 않은 부분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발화자의 자격이 문제시되는 사회에서는 모두가 자유롭지 못한 문제에 그 누구도 지적하기 어렵다는 게 이처럼 무서운 일이다. 페이스북에 직접 쓰기 껄끄러워서 다른 사이트에만 쓸 생각이다.
 그럼에도 나서서 쓰는 이유는, 후술하건대 내가 그들과 달리 페북에서 인정 욕구를 채우려는 목적은 0에 수렴하니까 타자의 관점에서 그들을 바라볼 수 있어서다.


 일단 한국 기준으로 페이스북 생태계는 크게 1기와 2기로 나뉜다. 1기는 지인들끼리 가벼운 주제로 친목을 하던 시기였고, 2기가 본격적으로 serious해진 시기이다. 연도로 치면 2017년~2019년이 과도기이다. 나는 1기 시절부터 남이 이상하게 보는 걸 감수하고 진지하게 살았는데 언젠가부터 남아 있는 모든 사람과 모든 주제가 진지하거나 표독스러워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2기 페이스북이 공론장으로서 독보적인 역할을 하는 점에 매우 만족하고 이용했다. 오프라인에서는 평판이 신경 쓰이기도 하고 대화 상대가 나만큼 serious할 준비가 된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피곤하기 때문에 진지한 논의를 결벽적으로 기피하는 경향이 큰데, 사람들이 페이스북에서는 깜빡이 안 키고 무거운 주제를 자유롭게 쓸 수가 있다. 그런만큼 생각이 깊은 사람들이 밀집한 드문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이 빠르게 변하니만큼 신세대가 기존 IT 플랫폼을 잘 이용하지 않고, 페이스북같은 긴글 위주 sns가 순식간에 뒷방 포지션이 되어서 주 이용층은 고이고 고여 나이만 먹어간다. 그리고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대체로 자기가 정해 놓은 세계관을 잘 바꾸려 들지 않고 완고해진다. 요즘엔 세상이 빠르게 변하니까 예전처럼 50대 60대가 아니라 30대 후반 정도만 되어도 대화다운 대화가 아니라 자기 하고 싶은 말만 내뱉고 기분을 챙기기 급급해지는 것 같다. 스누라이프에도 그런 놈들이 즐비하다.


 여기에 페이스북 특유의 폐쇄적인 뉴스피드 구조가 맞물려서 에코 체임버 현상이 심해졌다. 페이스북 뉴스피드에 뜨는 글은 광고를 제외하면 딱 2가지다. 내가 팔로우 하는 사람이 쓴 글, 아니면 내가 팔로우하는 사람이 댓글을 쓴 글. 즉, 커뮤니티 사이트와 다르게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 쓴 글이 피드에 뜨지 않는다. 때문에 각 유저들의 타임라인에는 비슷한 관점을 가진 이웃들만 주로 방문하게 짜여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차단 버튼을 누르면 내가 허락하기 전까지 상대가 내 존재를 아예 못보게 만드는 강력한 기능이 에코 체임버를 더욱 부추긴다. 페북에서 차단은 직접적으로 부대끼기도 전에 선제 방어수단으로 남용된다. 마음에 안 드는 관점, 불편하게 만드는 과격한 표현 등이 이미 내 기분을 상하게 한 이상 '가리기'나 '친구삭제' 정도로는 기분을 회복하지 못하니 '차단'이라는 찰진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게다가 차단은 먼저 쏘는 쪽이 이기는 죄수의 딜레마에 놓여 있고, '나도 저놈을 싫어하는데 저놈이라고 나를 호의적으로 생각할까?' 하는 생각에 더더욱 차단을 박게 된다.

 나는 알량한 기분이나 차리는 행위을 역겨워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차단을 하지 않는다. 내 쪽에서 무장 해제를 하고 점잖게 굴었으나 상대가 비아냥대는 태도로 나오지 않는 이상에야. 가입한 지 10년 됐지만 스팸을 제외하고 갈등 때문에 차단한 사람은 손에 꼽는다.

저커버그


 저렇다 보니 동질적인 사람끼리 자폐적인 부족을 이루고, 그 군집 내에서 음성 피드백은 당연히 나오기 어렵다. 누가 안좋은 반응을 보이면 그 그룹에서 의리를 많이 쌓은 주동자가 아니면 바로 찍혀나가게 마련이다. 그리고 누구나 자기 타임라인 내에서는 철권통치 독자재가 된다. 그렇지 않고 자기 담벼락에서 어설픈 똘레랑스를 베푸는 사람은 바보 취급이나 당한다.

 어설픈 똘레랑스가 아니라 중용을 잘 지키는 극소수 인플루언서가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전문지식을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오피니언을 다루는 리더라면 비판의 창구를 열어놓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와 내 지인들이 존경하던 인물이 대표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단순히 나이만 먹는 게 아니고, 매번 낯선 이방인들의 공격을 쳐내면서 사람의 마음도 깎여나가고 초심을 잃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담벼락에 이제는 단순히 온라인 친구라고 볼 수 없는 실제 절친들이 서식하면 그들이 신경 쓰여서라도 더더욱 여론 관리를 하고 싶을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인간이어도 결국 사람이다. 게다가 애초부터 웬만한 사람보다 우월했기 때문에 지혜를 전파해온 사람이, 자기가 모르는 새로운 걸 알려고 노력까지 거듭한다는 보장은 없고 그럴 의무가 있지도 않다. 대단했지만 노력은 덜 하던 사람이 밑천이 드러나면 더 이상 본연의 신비감을 유지하긴 어렵다. 물론 지금도 비범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기대가 컸기 때문에 실망도 쉽게 일어난다.


 그래서 내 지인들은 이제 내가 페북 등지에서 보이는 논설문 쓰는 사람 중에 제일 낫다고 말한다. 그 지인들도 물론 최고학력에다가, 평소 내가 감탄하는 순간들도 많은 똑똑한 사람들이다. 솔직히 그런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기 1년도 더 전부터 내심 내가 제일 잘났다고 여기고 살았다. 나 잘났다는 생각을 대놓고 표출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내뱉는 로직이 대부분 남들에게 전수받은 걸 적당히 조합한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요, 내가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할 때가 많음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요, 내가 어느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로서 아직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너럴리스트가 꼭 뛰어난 스페셜리스트여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제너럴리스트의 역량은 공정하게 혹은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게 불가능하다. 결국 내 말을 이해할 수준이 되는 똑똑한 사람들의 추대를 받아 왕좌에 오르는 게 제너럴리스트이니, 남이 "너 별 거 없지 않냐"라며 깎아내리면 순식간에 에토스가 무너진다.

 앞서서 나는 페북의 명사(名士)들과 다르게 인정욕구가 0에 가깝다고 했는데, 내가 인품이 독보적인 건 전혀 아니고 단지 페북이 내 일상과 철저히 괴리되어 있을 뿐이다. 반면에 지금까지 페북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페북은 마음 맞는 사람들과 너무 얽혀버린 아지트이자 경연 장소이다. 그러니 글이 정론에 다가가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가급적 많은 사람에게 과시할 수단이고, 더 심하면 이제는 식상한 돌림노래가 되는 경우가 많다. 개헤엄처럼 어설픈 불량품들이 양산되기 십상이다.

 반면에 나는 그저 나에게 흥미를 가지는 극소수 사람들에게 의견을 개진하고 피드백을 받고, 나 스스로 내 로직에 납득할 정도가 되면 그만이다. 나를 고평가한 지인들에게 나는 자기부정이 심하기 때문에 자신의 통찰에 도취하여 뇌절하는 글은 덜쓰는 것 같다고 대꾸하자, 그들은 머릿속으로 유명한 인플루언서들을 반면교사로서 떠올리며 자기부정이 적절히 있는 것이 강점이겠다고 반응했다. 자기부정이 이토록 심한 이유는 똑똑함을 돈으로 환산하지 못하는 이상 헛똑똑이와 차별화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이고, 돈으로 환산하려면 페북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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