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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골 Jan 21. 2024

모임 어플의 퇴조, 모임-슬랙 분업 체제의 약진


 저금리 버블 시기에는 신흥 IT기업이 온라인 서비스와 각종 DX(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주도했다. 그러나 22년 초 인플레 이후로 IT기업의 적자성장 모델이 지속가능성을 잃으면서 레거시 기업들이 독자적으로 만든 웹/앱 서비스가 약진했다. 나이키, 무신사 등등이 그 예시이다.


 이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는 업종이 모임 서비스이다. 모임 주최자들이 굳이 어플에 의존하지 않고 간단한 웹사이트를 만든 후, 교류 창구로 슬랙이나 팀즈 등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모임 어플은 메신저 역할에서 슬랙보다 한참 떨어지고 모임 주최자가 직접 웹사이트를 파는 것에 비해 폐쇄적이기까지 하다.


 특히 '본받을 점이 있는 사람'들만 모아야 할수록 모임 어플에 의존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모임 어플은 좋은 사람이 별로 없다는 스테레오타입이 너무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새삼스런 일이 아니고, 애초에 인터넷 자체가 소외된 사람까지도 포용하는 열린 공간인 동시에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해우소로 작용하고 있다. 고급 브랜드를 내세우는 모임 입장에서는 굳이 어플 중 하나에 들어가서 one of them이 될 유인이 작다.


 나는 특정 학교 졸업자이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는 모임들도 경험해 보았고, 오픈 카카오톡 모임에도 몇 번 나가봤다. 독자적인 웹사이트를 통해 회원을 모으는 모임에도 나가고 있다. 직접 경험해 보고 체감한 불편한 진실이, 허들이 낮은 모임일수록 회원들은 은연중에 서로를 낮잡아보고 있으며 기대치가 낮게 마련이라는 점이다. 특히 오픈카톡 모임은 오프라인에서 인기가 없거나 어딘가 문제가 있는 여자들이 여왕벌 대우를 바라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으며, 그녀들은 그런 기대심리를 가졌으면서도 내심 그 모임에 들어가는 남자들이 굶주린 여미새일 거라고 예단하는 티가 났다. 물론 그 예단이 일정부분 타당하다.

얼마 전에 활동한 680명짜리 Slack 기반 모임


 어쨌든 사람들은 인성/통찰력 등등에 있어 자기와 대등 이상인 사람들만 필터링하여 만나길 원하고, 시장은 그에 맞춰서 고도화하고 있다. 그리고 모임 서비스가 자기 브랜드를 고급화하는 또다른 수단이 '실제로는 A, B, C가 목적이지만 표면적으로 Z만 내세우는' 것이다. 그 A, B, C가 인사이트 공유이든 연애이든.


 가령 스타트업 하는 사람끼리 교류하길 원할 때 '스타트업 네트워킹 채널'을 직접 표방한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학벌이나 여타 이중 허들을 걸지 않는 한 양질의 채널을 결성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바쁜 창업가들에게 새로운 채널을 추가하고 가끔 새로운 대화를 확인하는 것 자체가 정신력을 소모하기 때문이다.

 반면 특정 취미나 자기계발/자기개발을 주제로 모였더니 '우연히' 창업가들의 비율이 높은 모임이라면 마음 편하게 활동할 수 있다. 왜냐하면 거기는 창업 얘기를 위해 모인 게 아니라 다른 필요에 따라 모였으면서 창업 얘기도 겸하기 때문이다.


 한편, 진지한 연애를 할 때 틴더를 쓰는 사람은 드물다. 대신에 여타 취미나 자기개발 모임을 통해 정상적일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 중에서 애인 감을 고르고 싶어한다.


 학부 시절 동아리 활동을 할 때에도 친목을 위한 친목 동아리에 가까울수록 막상 장기적인 교류로 이어질 확률이 낮음을 기억할 것이다.

틴더

 내가 네트워크 창업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 중 하나는, 정보를 얻는 건 그냥 혼자 구글링으로 가능하지만 '정론'을 파악하는 방법은 누군가의 경험담이나 조언을 듣는 것과 유투브/TED에서 세계 최정상인 사람(보통 말 잘하고 솔직한 미국인이다)의 강연/인터뷰를 보는 것 2가지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정답이 없는 문제도 많지만, 최소한 터무니없는 선택들만큼은 사전에 방지해야 하는 문제도 많다. 정론을 얻는 데 소홀한 사람은 창업가이든 개발자이든 몇 마디 말만 섞어봐도 '어딘가 쉰내가' 난다. 비효율의 늪에 빠져서 길을 빙 돌아가기 십상이다.


 나는 스누라이프라는 사이트의 글을 종종 읽는데, '혼자 자기 아이템에 묵묵히 몰두하면서 언젠가 포텐 터뜨리는 창업가' vs '번지르르하게 차려입고 네트워킹에서 허세만 부리는 속 빈 강정' 이분법이 과하다. 물론 실제로 저 유형에 해당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과거시험 사법고시 공부 겸손하게 하다가 조용히 결과로 보여주는 유교식 근면함을 심하게 강요한다고 생각한다. 지각변동과 경쟁에 부치는 자유시장에서 업계의 흐름을 파악하는 건 차후 업계를 앞지르는 발상을 하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아이디어도 아이디어지만 사람을 채용하고 관리하는 일 역시 정보력이 일정 수준 이상 좋아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제너럴리스트적 역량이 다소 천시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놓고 리더급 위치에 있는 사람이 어딘가 나사 빠진 결정을 하면 그게 제너럴한 소양이 부족해서일 거라는 생각은 못하고 덮어놓고 욕만 한다.


 또한 한국에는 페이팔 마피아처럼 zero to one을 우수수 해내는 높은 인재밀도의 집단까지는 아직 나오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채용사이트에 구인공고 올려서 뽑거나 지인을 통한 채용으로 타협해버릇 하기 때문이다. 나는 '레브잇'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들이 '인재밀도'라는 기치를 내걸고 Problem Solver 체제로 과로를 감수하는 팀 형태가 정말 인상 깊다.

 요새 다양한 네트워킹 서비스가 알려지고 있는데, 몇 년 안에 국내에서도 소수정예의 글로벌기업이 나올 것 같다. 원하는 사람을 찾는 게 쉬워지면 채용에 있어 타협을 덜해도 될테니까.

 얼마 전에 참석한 비대면 세미나에서 스타트업 구인 컨설턴트가 자신은 채용사이트를 통한 구인을 지양하고 '개발자 블로그'들을 찾아서 직접 컨택하거나, 네트워킹 행사를 개최한 후 거기에 방문한 타 직장 개발자들에게 정기적으로 메일을 보내어 몇 달 후에 데려오는 방법을 쓴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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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가지 창업 아이디어를 생각 중인데 기존 서비스들이 이미 잘해내고 있는 부분도 많기 때문에 정말 고객들의 니즈를 날카롭게 찔러야 할 것 같다.


* 디지털 전환: 원래 고객이 오프라인에서만 할 수 있던 일을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처리할 창구를 마련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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