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에 오키나와 할양을 제안한 적이 역사상 3회 있었다. 1번째는 1879년 일본제국이 오키나와를 자국 영토에 편입하자, 이를 우려한 미국 그랜트 대통령이 청나라 이홍장에게 오키나와를 함께 분할통치하며 일본제국을 견제하자고 제안했을 때이다. 그러나 이홍장은 일본이 겨우 작은 섬들을 얻은 것으로 지역 패권을 청나라에게서 뺏어오지는 못할 거라고 말하며 거절했다.
나머지 두 번은 루즈벨트가 2차대전에서 승전한다면 류큐를 할양하겠다고 장제스에게 제안한 것이다. 장제스는 루즈벨트의 의도를 의심하기도 했고, 공산당을 견제하느라 여유가 없어서 섬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만약 장제스가 오키나와를 받았다면 한반도는 동아시아의 멕시코, 베네수엘라로 전락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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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역사적으로 바다의 중요성을 깨우치기 어려운 구조였다. 교통과 통신 기술이 발달한 지금이야 전세계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크게 받지만, 오랜 기간 동아시아의 천하天下 개념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한자문화권에 국한해 있었다. 천하의 중심에 중국이 있고 기껏해야 몽골, 베트남, 한반도, 만주 정도만 정벌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에 해군과 섬의 전략적 중요성이 대두되지 않았다.
서구 열강과 일본제국의 압도적인 힘이 알려진 후에는 청나라-중화민국이 외세의 압력을 막아내고 1, 2차 국공내전을 치르느라 근대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으로 체제 개편을 완수하기 힘들었으리라 짐작한다.
장제스
또한 "오키나와를 받겠다"라는 결정을 하려면 첫째로 바다의 중요성을 아는 인재들이 있어야 하고, 둘째로 그 인재들이 정책 집행력을 가질 강력한 부처(가령 해양부, 해군)가 있어야 하고, 셋째로 최고지도자도 바다의 중요성을 납득해야 하고, 넷째로 시민과 지지기반의 반발을 무마해야 한다. 그러나 신해혁명, 국공내전 등 20세기 중국을 선도한 위안스카이, 쑨원, 장제스, 마오쩌둥 등 지도자들은 대개 내전과 혁명과 중일전쟁으로 활약한 사람들-즉 육군 기반에 가까웠다.
중국인 한두 명이 해양패권의 힘을 예견하는 건 쉬운 일이지만 그게 국가의 대전략을 수정하는 단계까지 가려면 많은 중간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이 미국에 비해 주변국과 마찰이 잦은 건 좁은 바다에서 필리핀-대만-일본-한국-미국에 포위되어 있기 때문이다. 좁은 홍해에서 이스라엘, 이집트와 각종 해적들이 싸우는 이유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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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를 읽는 일을 raw data만 가지고는 할 수 없고 특정한 맥락으로 해석을 거쳐야 한다. 이를 돕는 것이 오랜 기간 누적된 문화자산, 문화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국가가 아닌 개인의 관점에도 대입할 수 있는 문제의식이다. 농노제나 19세기 노예노동이 종식한 후에도 노예의 후손들이 상당기간 자립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가 부모로부터 자연스럽게 전수받는 자유인으로서의 소양- 사람을 대하는 방식, 노력해서 성과와 자산을 얻는 grit- 등등의 대가 끊긴 채로 홀로 서야 했기 때문이리라 본다. 서구 선교사들이 본 조선후기 민중들의 무기력하고 나태한 모습도 유인보상구조가 망가진 채 사회가 지속했기 때문이다.
러스트벨트와 부산
한편 내가 나고자란 부산과 서울은 확연한 격차가 난다. 한국에서 고부가가치 생산을 선도하는 기업과 일자리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 반면에, 부산에서 상급지 부동산을 보유하는 계층은 대부분 의사, 공기업, 은행원, 약사나 일부 소비산업 종사자에 쏠려 있으며 공업이 몰락했다. 주변에 정말 챌린징한 일을 하는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서울과 그렇지 못한 부산은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의사소통 방식에서도 차이가 난다.
가령 서울은 '일이 되게 하는 것'이나 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다른 미덕들은 저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셋팅하는 사람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던 반면에, 부산은 "겸손해야 한다"라거나 "남에게 치부를 밝히거나 들켜서 얕보이면 안된다"라거나 "굳센 남자로 보여야 한다" 등등 곁가지에 불과한 소사회 내 피어 프레져에 전전긍긍하는 게 심하다. 인구 300만 대도시이지만 문화 자체는 한 다리 걸치면 다 아는 닫힌 사회적 특성을 띤다. 그러다 보니 부산은 자기PR이나 자신의 강/약점을 드러내놓고 상담과 피드백을 받는 교류를 죄악시하는 분위기도, 특히 윗세대에서 만연하다.
또한, 앞서 말한 것처럼 사회를 선도하는 일은 대부분 서울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부산에 살면 '어떤 일이 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고민해볼 기회가 적은 편이라고 느낀다. 애초에 그런 고민을 하는 이해관계에 놓인 사람 자체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가치 창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드물고 배금주의 아니면 안분지족이 지배적인 정서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