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좋아한다고 굳이 소문 내진 말고, 혼자 힙합의 소울을 내재화하자
발라드 계통을 그럴싸하게 부르면 곧 여자들한테 선톡이 오는 경우가 분명히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 남자에게 원래부터 어느 정도 호감이 있었을 여자들, 그럼에도 남자가 먼저 적절히 접근해야만 반응했을 여자들이 먼저 접근하게 하는 촉매로 작용한다.
힙합 얘기를 하기에 앞서서 이 발라드 내에서도 장르가 꽤 다양하게 나뉜다는 점을 짚을 가치가 있다. 편의상 좋아하는 가수들로 3분류를 해보면 최민수식 마초 류(임재범/환희), 나약한 남자 류(휘성), 현대 드라마 호리호리하고 깔끔한 남주인공 류(케이윌 등)으로 나눠본다.
전자의 두 부류를 웬만큼 부르면 동년배 남자들은 감탄하는 반면에 여자에게 소구력이 없다. 왕년에 어떤 여자 선배가 휘성은 여자랑 있을 때 삼가되, 그와 목소리가 비슷한 케이윌은 어떠냐는 충고를 했다. 케이윌이나 멜로망스 이런 가요들이 거부감이 적은 이유를 추측해 보면, 다른 부류에 비해 막 매달리거나 지나치게 비장하지 않고 감정을 담담하게 표현하는 느낌이어서가 아닐까? 나는 케이윌 하면 송중기가 떠오른다, 외모는 다르지만.
하지만 소몰이나 절규하는 식의 발라드 말고 케이윌/멜로망스 등 두성을 많이 요하는 노래를 직접 불러보면 오히려 목을 꽤 상하게 한다. 같은 음일 때에도 후자의 부담이 더 크다.
유투브 보컬 강사들이 으레 하는 말이 "원조가수의 간드러짐/기교를 흉내내려 하지 말고 그냥 본연의 목소리로 불러야 목이 안 상한다"이다. 그러면서 모범 수강생의 사례를 직접 공개하는 걸 들어보니 물론 발성이 훌륭하기야 하지만, 저런 식으로 불러서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보컬학원 수강생 90% 이상이 남자라는 말 들어본 적 있는가? 가요는 학문이 아니고 애초에 그 목적이 세속적인 경우가 많은데, 저러면 본말전도 아니냐는 말을 하고 싶다. 물론 나는 보컬학원에 안 다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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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현대 감성에 맞는 발라드는 따라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관점을 바꿔서 힙합을 향유하는 건 괜찮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나는 힙합을 좀처럼 즐기지 못하지만 내가 멀리서 관찰하고 느낀 바들을 써본다.
일단 힙합을 좋아하는 남자들은 다른 팬들과 다르게 유독 자기 취향을 과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뜬금없는 자랑 자체는 안좋아하는 여자가 많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힙합이 남자의 내면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요소가 큼을 알 수 있다.
먼저 자랑과 과시를 한다는 것은 남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기 주관을 표출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팬들이 적당한 안하무인함을 내재화하게 되는 이유는 첫째로 힙합 가수들부터가 평소에 안하무인한 컨셉으로 언행을 하기 때문이요, 둘째로 그 가사에도 "세상아 덤벼라" "내가 이 동네 최고 인기남인데 너 나랑 재밌게 놀래?" 식의 적당히 거만한 정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You are what you eat. 자기가 최근에 접하는 매체가 알게모르게 자기 머릿속 가치관과 잠재의식에 영향을 준다.
얼마 전에 한 래퍼가 "남자들은 좀처럼 지갑을 안 여는데 나는 비합리적 소비를 하는 여자팬이 많아서 쏠쏠하다"라는 말을 했다. 누가 과소비를 하는지 여부와 도덕성을 떠나서, 연예계 타 분야였으면 매장을 우려해야 할 안하무인한 말을 래퍼가 하면 비교적 용인이 된다.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여자의 반언어적/비언어적 행동 하나하나에 영향을 받고 전전긍긍하면 정말 죽도 밥도 안된다. 그래서 적당한 자기 확신을 내재화하고 자기 페이스를 밀고나가는 덕목이 필요한 사람이 많다. 물론 능력이나 사회적 지능이 너무 떨어지는데 확신만 가득차 있으면 기안84같은 소위 '시그마 메일'처럼 된다.
관찰한 바에 따르면 자기표현을 적절히 잘하거나 특히 모임의 장을 맡는 남자들은 그 외 나머지에 비해 인기가 많은 경향이 있었다. 외모가 수려하지 않아도 그랬다. 이렇게 말하면 꼭 미팅에서 조용히 있던 남자가 이득을 본다느니 하는 반론이 있던데, 다수의 조용한 남자 중에 연애 잘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건 분모가 크니까 당연하다. 비율적으로 아싸는 조용히 묻히는 경우가 많고 인싸이더가 될 역량을 가진 남자가 대체로 연애를 잘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원리를 경시한 채 유효하지 않은 방식으로 나대니까 인기가 없는 것임에도 "사회자 하다가 여자 다 놓쳤다"라며 변명하는 경우도 숱하다.
요컨대 발라드 같은 거 듣고 있으면 "나는 너 없으면 안돼" 현대 멜로식 순애보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반면 힙합은 자존감과 명랑함을 불어넣어준다고 본다. 다만 힙합으로 얻은 긍정적 동력을 오로지 힙합 향유 과시에만 쓰는 건 본인에게 유리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