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네트워킹에서 팀을 결성하는 순간부터 이 팀은 캘리포니아 드라마에나 보일 법 한 심상찮은 구성이라고 직감했다. 저 학교는 나 때도 그랬듯이 얀테의 룰&착한아이 컴플렉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 때문에 실제로 역량이 우수한 사람과 함께한들 그 사람의 배울 점을 다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모르는 사이에 만나서 활발히 토론해야 하는 자리에서 디메릿이 되는 성격이다.
그래서 나 포함 10명이 앉아서 대화하고 있을 때 스윽 와서 "안녕하세요 제가 예창패 2회 합격해봤고 경찰청과 협업한 경험 있습니다. 1박2일 같이 재밌는 시간 보내보실 분 저희 2명과 함께해요"라며 팀원을 모집하는 걸 보고 내가 원하는 Z세대의 상이라고 판단했다. 몇 초 시간을 끌다가 다른 사람들이 아무 반응을 안 보이자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아무도 안 하면 민망하니까 제가 하겠다"라며 악수를 하고 첫번째 확정팀이 되었다. 나 외에 3명은 2분짜리 자기소개 스피치 때 fit이 맞겠다는 느낌이 들아서 팀을 맺은 것 같았다.
저 2명은 SNUSV 소속인데, 사후적으로 보건대 실행이 요구되지 않는 아이디어톤에서 특히 유리한 출신성분이 아니었나 한다. 다른 팀에는 exit한 대표출신겸 '루티너리' 초기 멤버와 스타트업 대표였던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 시중에 출시를 한다면 사고하는 역량만큼이나 실행력, 과거 경험이 중요할 수도 있지만 아이디어톤에서는 pain point 파악->분석->해결책 모색의 단계를 충실히 따르며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역량이 결과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SNUSV session에서 그런 공부를 한 듯했다. 아이템은 pain point으로부터 도출하는 '결과'여야 하는데 우리가 보통은 끌리는 아이템으로 창업을 하게 마련이고, pain point가 아닌 아이템에서 출발하면 금요일 저녁 쯤에 pivot을 해야 해서 힘들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학부생과 외견상 위화감이 안 드는 마지노선을 지나기 전에 어린 풀에 많이 있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 팀원이 금요일에 내 나이를 미리 알고 있었다면 건방진 소개와 SNUSV 홍보를 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고, 우승한 후 간단하게 저녁을 먹으러 가면서 다른 팀원이 "왜 이 오빠한테는 존댓말 해?"라고 하니 "벤처에 있다 보면 형님들이랑 협업할 때가 많은데 형님 형님 하는 게 입에 붙었다"라고 했다. 내가 "아이디어 잘내는 게 형님이지. 너가 형님 해라"라고 대꾸했다.
저 친구는 잘된 창업가 중에 서울과학영재학교 출신이 많은 걸 의식하며 "창업은 운보다 제너럴한 사고 역량으로 갈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단지 또래보다 먼저 창업에 관심을 가져서 초기값이 높을 뿐이지 기울기가 큰 지 확신이 안 서는 게 불안하다."라고 했다. 솔직히 내가 이번에 같은 팀을 한 학부생들을 보면서 유사한 감정을 느꼈다. 프로그램 참여 전에 기대한 것보다 훨씬 똑똑했다. 과학고 출신 중에 의사소통 능력이 좋은 동시에 과시적인 사람이 거의 없으니까 그들의 깊이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데, 얘가 이런 우려를 할 정도면 내가 모르는 영역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를 보면 제시 아이젠버그가 저커버그의 속사포같은 스타일을 따라하기도 하고, 레브잇 강재윤도 EO 인터뷰한 걸 보면 원래 머리회전 속도만큼 매우 빠른 말하기 스타일이 있을 것 같은데 템포 조절을 상당히 의식한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NAACst STEP에 지원해서 붙으면 지분희석 없이 3천만원이 나온다. 다음주쯤에 회식할 때 나는 본업이 있어서 지분 많이 달라고 안 할테니 진짜 이걸로 창업해볼 사람 있으면 회의나 같이 하자고 말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