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인들이 월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아졌고, 월가가 이에 어떻게 대응했을지를 살펴볼 가치가 있다. 본디 이 세상에서 금융과 중간거래상의 존재가치는 돈 가진 사람으로부터 능력 있는 사업가에게 돈이 이전될 통로를 구축하는 데 있다. 금융의 발달은 상업 거래에서의 '신뢰'를 담보해주고 유통업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금융업에 첨예해지고 첨예해져서 투기 놀음이 되는 수준에 다다르면 '도대체 이게 이 세상에 무슨 가치를 창출하지?'하는 의문을 제기하게 마련이고, 클린턴 은산분리 완화를 기점으로 월가가 폰지식 돈장난을 과도하게 저지르다가 리먼 브러더스 사태라는 참사를 일으켰다.
월가는 자신들이 미국에 군림할 명분을 되살리기 위해 실리콘밸리에 전폭적 투자를 하며 헤게모니를 상당히 넘겼다는 해석이 있다. 그 부작용으로 러스트벨트가 몰락했을지언정 실리콘밸리가 미국경제를 성공적으로 견인해왔다.
한편 미국에서 '하버드 부모' '스탠퍼드 부모'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반면에 '서울대'가 유독 많은 한국인들의 역린을 건드리는 건 2가지 주된 이유가 있다. 첫째로 미국은 학벌사회이긴 하지만 어느 top1 대학을 나오면 인생 티어가 결판난다는 인식이 없는 다극화 구조인 반면 한국은 최강 대학이 어딘지를 물으면 100에 99는 서울대라고 대답하고, 최강 지역이 어딘지를 물으면 누구나 서울특별시라 대답한다는 차이가 있다. 오구라 기조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 '한국인들은 단일한 리(理)를 좇는 레이스를 벌인다'라는 의미의 구절이 있다. 이 부분에서는 너가 최강, 저 부분에서는 내가 최강 하는 최소한의 다원성조차 보장되지 않고 어느 한쪽의 우위가 확고하기 때문에 더더욱 사람들이 민감하게 만든다.
둘째로 하버드, 스탠퍼드 나온 아웃라이어들은 빅테크나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등등에 들어가서 2티어 인재들이 감히 범접하지 못할 퍼포먼스를 내는 반면 서울대 나온 아웃라이어들 상당수는 그저 '대잡' 들어가거나 금융권 컨 전문직 들어간다. 글로벌 수출을 담당하고 영끌 1억 가뿐히 찍는 삼전 하닉이 도대체 왜 '대잡' 자조를 들을까? 지거국을 나오든 서울대를 나오든 한계효용의 격차가 극명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입사하는 엘리트들은 내적 보상과 동기부여가 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좋은 대학 나온 엘리트가 고부가가치 산업을 발굴하는 인재로 보이지 않고, 그저 취업시장에서 지방대 나온 나, 내 아들딸을 경쟁으로 짓밟는 거슬리는 존재일 뿐이라는 인식이 강하지 않을까?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건 미국은 우월한 소수의 창의성, 진취성, 리더십으로 신산업을 개념부터 설계해나가며 파이를 증대하는 반면에 한국은 적당한 지식 역량과 저임금으로 제품 양산을 한 덕에 성공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스타트업이 실질적으로 그 사회를 견인하는지, 그저 카카오마냥 정부자금과 내수나 빨아먹는 게 아직은 주류인지에 따른 차이이기도 하다.
스타트업 업계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지능 수준이 얼마나 크리티컬 변인인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공연하게 말하기 거북한 소재이기 때문에 노력, 끈기, 실행력, 비판적사고 등등만 강조될 뿐이다. 사족이지만 스타트업에서 진짜 유니콘 만들어보려는 사람 치고 함부로 'MZ스럽다' 운운하는 저능아는 없을 거라 자신한다.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고 시류를 잘 읽는 젊은 엘리트일수록 늘상 격류에 노출되는 스타트업에서 얼마나 강점을 발휘하는지 통감하기 때문이다. 가치 창출보다 시스템 내에서 주변 사람 거북하게 안 하고 위계질서에 순응 잘하는 게 중요한 대잡에서나 MZ 운운이 설득력이 있는 거다. 여하튼 고위험 창업에서는 지능이 우월한 아웃라이어들의 정말 많은 창조를 할 수 있는 반면에 이미 성숙한 제조업 대기업에서는 1인분을 벗어나기 정말 어렵고, 그런다고 한들 특히 한국에선 합당한 유인보상이 되지 않는다.
서울대가 20년 전부터 폐지론이 나오는 것도, 사법시험과 서울법대를 박살낸 것도, 고도성장 시기와 달리 고급인력의 풀이 협소하지도 않고 그 고급인력들이 미국 엘리트들처럼 아웃퍼폼을 하는 티도 덜 나는 상황인데 사회적 위화감만 잔존하기 때문이다.
그런 취지에서 나는 한국이 평등주의로 경도되지 않으려면 고급인력들이 분투하여 지식기반 고부가가치 산업을 많이 발굴해내야 한다고 전부터 생각해 왔는데, 당장 나부터가 갈 길이 한참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