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고지능자 담론의 의의와 오늘날

by 반골

변호사시험 끝난 친구랑 몇 년만에 만났다. 회포를 한참 푼 후에 친구가 "나는 왜 공부 외적인 영역들에 크게 고민하는 시간을 안 가졌을까?"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참여하는 모임의 모임장님께 어제 똑같은 말씀 드렸다. 본업에 대부분의 시간을 투여해야 하는 진로니까 그럴 거다. 반면에 나처럼 메타고찰도 거듭하지 않으면 곤란한 입장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을 하며 사는 부류가 있다."라고 대꾸했다. 그러자 친구가 "아아, 로스쿨 다니는 동안을 말한 게 아니고 나는 어릴 때 무슨 요인에 의해서 공부로 승부를 보는 진로를 거듭 택해서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을까 라는 의미였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처럼 지방 출신이면 입신양명을 통해 어깨 으쓱하려는 사람들이 많으니 가족을 위해서라도 일단 하방을 막아놓고 출발하려는 압박감이 심할 거고, 그나마 수도권 중심지에는 신흥산업에 눈이 트인 기성세대가 많기 때문에 사정이 나으리라고 말했다. 스타트업처럼 시험공부 자체로 인한 리턴이 보장되지 않는 진로로 간 사람들이 부모랑 사이가 안좋은 경우가 많다고.


친구가 학부 칼졸업하고 바로 사회 진출한 동년배들에 비해 3년 늦게 사회초년생을 시작해야 하니 부동산이며 결혼이며 재테크며 새로운 과제로 막 출발해야 하는 막막함에 저 말을 꺼낸 것도 있었겠지만, 내가 늘어놓는 얕고 넓은 얘기들이 꽤 쓸모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러면 전문가형 인간과 제너럴리스트형 인간이 과거에 무슨 요인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각자의 현 모습에 도달했을까 새삼 궁금했던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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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으로 넘어가면, 세상은 어떻고 그 세상 속 개인들은 또 어떻고 분석적으로 읊는 사람 자체가 특히 한국에서 드물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대개 특정 직군이나 직종, 그러니까 사람을 많이 대하거나 스타트업에 가까운 직종에 쏠려 있으리라 짐작한다. 자기PR이 눈총거리가 되지 않고 오히려 사람을 끌어당기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으며, 과거에도 그런 긍정적 경험이 많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이유로 '얀테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 북유럽에선 그런 사람이 더 드물 거라 짐작하고 미국에서는 아예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읊는 게 출세를 위한 기본소양이 아닐까 싶다.


저번주에 '쇼펜하우어: 지성의 저주'라는 12분짜리 영상을 봤다. 완곡하게 요약하면 사람은 타인이 자기보다 똑똑한 것 같으면 신체의 고통을 느끼는 동시에 그 타인에게 큰 증오심을 느낀다는 연구가 있고, 그런 고지능자가 주변으로부터 배척되는 건 물론 본인 사회성이 떨어지는 탓도 크겠지만 그 반감의 본질이 보다 인간 본성 깊숙한 곳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과학분석이 나오기 150년 전부터 쇼펜하우어는 이를 직관적으로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본인의 모든 걸 드러내지 말고 전략적으로 처신하되, 본인을 이해해줄 동류들을 찾아내서 써클을 형성해라" 등등의 조언을 했다고 한다.


내가 쇼펜하우어만큼 지능의 아웃라이어에 속하진 않기 때문에 하는 생각일 수도 있는데, 저게 큰 틀에서 타당한 휴리스틱이지만 설명의 편의를 위해 일부러 다루지 않은 팩터가 하나 더 있다고 느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현대의 평범한 물리학 박사생 중에 누가 더 세상을 타당하게 바라볼까? 남들이 못보는 이면을 짚는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나은 점도 있겠지만 '거인의 어깨' 위에 편승할 수 있는 물리학 박사생 쪽이 분명 유리하다. 본인이 가진 한정적인 단서들에서 빠른 결론을 내는 건 똑똑함을 어필할 수는 있을지언정 기본적으로 탐구심이 낮으면 많은 정보를 파악하기를 게을리하고 곧 본인이 가진 생각의 유효성이 낮아질 거라는 얘기이다. 흔히들 정치병자가 되는 데 아무런 자격이 필요없지만 주식과 경제에 대한 인사이트는 수익률로 증명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후자의 경우 '그럴싸함' 정도로는 충분치 않고 '유효한 생각'을 해야만 돈을 벌 수 있다.


그래서 기본 지능에 이어 GRIT함이 지성의 한 근간을 이루며 한국에서 이 GRIT함이 자라나기 좋은 환경에 있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 생각한다. 또한 똑같이 똑똑하더라도 본인이 가진 지식을 어떤 방식으로 표출하는지, '누구한테' 표출하는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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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방광역시 출신인데, 자식이 공부를 잘하면 주변에 자랑할 수 있으니까 좋은 일이며 나중에 고소득 일자리를 얻어서 입신양명한다 -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 절대다수였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 환경에서 20년을 살다가 바다 건너 나라에서 부가가치 창출 자체를 골몰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듣고 울림이 컸던 게 진로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경험상 가치 창출을 골몰하는 사람들은 소위 MBTI 대문자 N스러운 대화 -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돈이 되지 않는 추상적인 얘기나 지적 탐구도 종종 할 가치가 있다는 데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그런 것과 거리가 먼 사람들은 대개 "도대체 그렇게 피곤하게 따져서 뭐할 거냐"라고 반응하거나 "아는 척 하는 거 재수 없다" 류의 반응을 보이는 비율이 유의미하게 높았다. 그리고 나는 이게 쇼펜하우어가 살던 시대의 정적인 세계와 유사한 환경이라고 본다. 어차피 하는 업무는 거기서 거기이고 세상이 그다지 빠르게 변하지도 않는데 괜히 똑똑한 척 하는 사람은 재수만 없을 뿐 별 쓸모가 없어 보이는 것이다.

반면 삼성전자, 하이닉스, 현대차 등등 한국을 선도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거대도시에선 애초에 지성을 숭상하는 사람이 많거니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타인의 지혜를 이용할 유인이 크고, 그 이전에 서로를 이해하는 동류들끼리 네트워킹을 형성한다.


친구와 했던 얘기로 돌아오면, 서울은 어떨지 모르지만 비학군지 지역의 모범생들은 어려서부터 "과시하지 마라"라는 사회적 압력을 일종의 도덕 교리처럼 내재화하며 자란다. 싸움/운동을 잘하거나 기가 세거나 춤을 잘추거나 예술을 잘하거나 여타 다른 특기를 과시하는 건 일종의 숭상의 대상이었는데 왜 똑똑함에는 잣대가 다를까 하는 비판적 의문을 품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렇게 자란 사람이 성인이 된 후 무난무난하게 전문직종으로 가면 어려서부터 탑재된 가스라이팅을 굳이 깰 유인이 별로 없다. 그러니 높은 지적 탐구심으로 뭔가를 알아냈을 때 그걸 주변 지인들과 공유하는 성향이 증폭되지는 않은 게 아닐까 싶다. 반면에 생존을 위해 탐구심과 지적 교류를 해야만 하는 직업을 택한다면 알을 깨는 게 아닐까?


5년 전에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외고/자사고 폐지에 반대하는 사람 중 일부가 "학폭으로부터 자유로운 모범생만의 성지를 지켜야 한다"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걸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어찌 보면 아름다운 대의명분을 통해 기만적인 얘기들을 늘어놓는 것보단 그냥 대놓고 그렇게 본능적인 욕망과 현실적인 지점을 인정하는 게 나은 면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 폐쇄적인 네트워킹이라는 점에서 '학벌'도 자유롭진 않다, 다만 학벌은 모든 선진국에 있으니까 어찌하지 못하는 반면 고등학교는 천차만별인 차이가 있을 뿐)


고등학교 동창과 이런 류의 논의를 많이 했는데, 소위 x반고라고 비하되는 학군에 다니면 굳이 축구를 자주 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친교문화에 응하는 등 처세를 위해 대학입시에는 방해가 되는 소모적인 활동을 많이 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는 데 중론이 모였다. 대학입시에만 방해가 되면 괜찮은데 사회에 나오고 나서도 지적 교류, 자기PR, 분석을 통한 상황 개선이 아니라 여전히 허울뿐인 겸손, 겸양처럼 outdated된 덕목에 본능적으로 집착하는 게 무서운 일이다.


안 어울리는 환경에 오래 지내서 그런지 난 내 얘기를 안 하고 입을 닫는 순간이 여전히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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