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톡스 회고 조 4주차]
이번 달에 선배, 동기를 각각 만나서 "첨단기업 구글, 페이스북이 결국 하는 일이 엔터테이먼트성 광고 서비스 - 즉 없어져도 문제 없는 사치재에 가깝다"라는 주제로 대화를 했다. 그래서 농업, 주거 정도를 제외하고 이 첨단문명이 하는 일 중에 정말 필수불가결한 섹터가 뭐가 더 있는지를 짧게 생각해봤으나 결국 뚜렷하게 나오는 게 별로 없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대뜸 "기후변화가 '식량난' 때문에 인류를 멸망시킨다는 근거없는 공포조성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단지 그로 인한 새로운 패턴의 자연재해나 전쟁이 두려울 뿐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그럼에도 빌게이츠는 위대하다) 뜬금없이 기후변화 얘기를 한 이유 중 하나는, 산업혁명 이후로 문명 역사가 '농업 인구의 비율을 극소화하고도 잘 돌아가는' 방향으로 발전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식료품이 비싸게 느껴지는 이유는 딱 2가지다. 농민 시위나 식량안보 공포여론 선동을 방지하려고 고관세/규제/정부의 쌀 매수를 하고 있거나(한국은 농민 인구가 감소하면 감소할수록 농업이 윤택하게 돌아가는 요상한 구조다), 페트로달러를 벌 능력이 안되는 후진국이거나. 기후변화나 러시아-우크라 전쟁은 앞선 2개에 비하면 영향이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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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하버가 비료 합성 기술을 얻어낸 이래로 컴퓨터, 스마트폰, 영상 엔터테인먼트같이 고성장하는 섹터는 대개 군비경쟁 아니면 사치재가 본질이었다. 그러다 보니 인류가 일사불란하게 뭔가를 창출해서 얻고자 하는 게 탐욕 충족 외에 뭐가 있냐는 실존주의적인 시각을 갖는 사람이 늘어나게 마련이고, 각종 담론을 선도하는 미국은 그 증세가 더 심할 수도 있겠다는 얘기도 지인끼리 가끔 한다.
레이 커즈와일, 머스크처럼 획기적인 항노화-수명 증진 기술이 가능해질 거라고 화두를 던지거나 화성에 가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는 데 이목이 쏠리는 이유 중 하나도, '나아갈 방향'을 미리 제시해줘야 로마제국처럼 향락에 젖는 일을 방지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한편 AI도 지금은 RAG같은 rule-base를 섞어야 간신히 '과거까지 쌓인 데이터가 아닌 신유형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해볼만한 수준임에도 괜히 앞서나가서 종말론과 디스토피아를 논하는 것도 인류 문명의 향방을 논하는 거대담론이 몇개쯤 있어야 단순 사치재 개발이 아니라 '신실한 가치 창출' 메타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제 유현준 유투브 영상을 오랜만에 봤는데 "케네디가 달 착륙의 기치를 내건 덕에 미국과 소련은 시각 차를 좁힐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은 극명한 시각 차가 있는 것 같아도 결국 인류 발전이라는 미래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음을 자각한 덕에 싸움을 덜했을 것이다."라는 관점이 흥미로웠다. 유현준 생각에는 알트먼의 AI와 머스크의 화성 정착 담론이 비슷한 역할을 한다, 영역 팽창이 가능해지면 내부적인 소모적 논쟁을 덜할 거라는 것이다.
진격의 거인에서 케니는 "누구나 추구하는 가치가 있지 않으면 삶의 무료함을 견디기 어렵다"라고 말했고 지크는 "단순히 개체수를 늘리는 굴레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따금 회의감이 들지만 그럼에도 삶은 아름답다" 대강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그럼에도 지평이 넓어지는 구간에는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는 데 있어 덜 어려워하는 것 같다.
디톡스 역시도 디지털 기기에 주의를 뺏기는 삶에서 벗어나서 궁극적으로 뭘 할지에 대한 철학을 잘 세워야 저항감이 적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고 싶은 게 없다면 중독에서 벗어나야 할 이유도 덜 마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