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TT LIFE

500일의 썸머. 디즈니+. 2009.

썸머, 깨달은 자.

by 망고푸딩

500일의 썸머. 디즈니+. 2009. (스포일러 포함)


보면서 이 명성엔 이유가 있다 싶었고 보편 연애 이야기라 끝까지 감성, 논리, 기억을 강하게 자극한다. 톰의 시각으로 흐름을 따라가도 결국 썸머 몫까지 곱빼기로 가슴 저민다. 팝과 건축, 책과 작가 등 관련 문화 정보를 알고 있다면 풍성하게 감상했을 텐데, 무식이 아쉬웠다.


열정의 무오류, 지각 노이즈.


‘남자’라는 말을 아끼고 싶고 나는 남자가 아니라는 전제 아래, 보통 수컷들은 열렬함에 대한 무오류를 맹신한다. 특정한 여자에 몰두한 자신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긴다. 한 여자에게 동요한 강도, 그 동요에 반응한 격렬함이나 지속성 및 투입한 유무형의 자원 등 자신이 보인 열정과 경험을 과장하며 동기와 결과, 과정과 영향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이견과 다른 입장을 헤아리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태도를 오류 없는 최선으로 확신한다.


미숙한 자의식을 성취감 및 인정욕구와 연결해 전생애에 걸쳐 유지한다. 이는 여자관계에서만 드러나는 고유한 것이 아니라, 수컷 삶 전반에 걸친 양식으로 그 객체는 생애주기나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데, 자동차, 각종 취미 장비, 심지어 게임아이템까지 폭넓다. 다시 여자 영역에 국한해 보면, 수컷들은 첫사랑으로 규정한 환영과 나머지로 구별하고 전자는 순정을 후자는 수컷 기능을 과시하기 위해 타자에게 소비한다. 사실을 자신이 편하거나 뿌듯한 방향으로 지각하며 그 과정에 감정 및 콤플렉스가 노이즈로 발생해 항상 사실과 간극 큰 해석에 이른다. 그리고 그걸 예외 없이 떠든다.

사람아, 사람아.

경험상 수컷대비 약 200:1 비율로 존재하는 남자는 여자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 역시 남자의 양식에 파생하는 부분으로 남자들은 관심영역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자신에 대한 책임논리가 투철하며 승부근성이 강하기 때문에 내재한 높은 기준에 충족하면 다른 피드백은 큰 의미 없고 긍정적인 피드백은 오히려 성가시거나 쑥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남자에게 여자에 대한 좋은 이야기는 둘만 알거나 자기만 알면 족하다. 제 과오를 성찰하고 인정하며 개선하는 데에 기민한 반면 여자의 허물은 아무도 모르게 덮는데 그러지 못해 사람들 비난에 직면하면 어리석은 방패가 된다. 여자는 처음부터 그러한 대로 있고 남자에게 여자는 다른 해석 없이 그러하게 있어도 된다. 유능하게 제 여자를 그러하게 지켜내는 것까지가 남자고 여기 이르지 못하면 양식과 과정이 남자의 것이라 해도 결국 수컷이다.


관찰한 바, 남자는 타고나는 것으로 후천 노력으로 수컷을 극복한 사례는 본 적 없다. 톰은, 수컷의 윤회를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여자의 성(城), 미로.


조숙했고 고집 강한 썸머는 묘한 페르소나와 견고한 방어기제를 갖추고 있다. 동시에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운 주관에 기반한 호기심과 개방성이 공존하는 자기 세계를 구축했다.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고 책임질 수 있는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통제하며 자신에게 따듯한 거리를 잘 조절하는 사람이다. 그 거리는 보통사람보다 멀다. 자신의 온기로 홀로 버틸 수 있는 썸머는 외로움에 강한 드문 여자다.


썸머가 접점 없는 여러 관계경험 막바지, 안정에 주목할 즈음 일상영역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수컷, 정서와 유희 역치를 자극하는 톰이 벌거벗고 뛰어든다. 조심스럽게 물들어 가다 톰의 미숙하고 이기적인 모습까지 받아들이지만 끝내 이해받지 못한 자신이 톰과 다르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제 감정과 입장밖에 모르는 상대에게 정교한 자신의 논리를 이해시킬 수 없었기에 결국 친구조차 될 수 없는 이별을 택한다.


유년기 부모의 관계 파탄으로 인해 애착관계에 대한 자기만의 순수와 원칙을 추구했고 이 애착관계는 자신과의 관계도 포함한다. 표면상 소수 취향과 갈등 문제로 드러나는 링고스타 에피소드들은 사실, 썸머의 정체성과 자아 관계논리에 대한 톰의 몰이해, 무성의, 존중과 공감 결여가 문제 핵심이다. 그래서 톰이 링고스타를 가볍게 여긴 건 매우 치명적인 잘못이다. 썸머가 링고스타를 좋아하는 이유를 판단할 게 아니라 그에 비롯한 메시지를 교류해야 했다. 이는 비슷한 수준 이상의 소양과 노련함이 필요하다.

오우... 만정 떨어져.

썸머의 비밀을 공유했다 들떴던 톰이 결혼 피로연에서 극적으로 소외된 것을 달리 보면, 그가 몰랐던 썸머의 영역이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다. ‘행복의 건축’을 들고 가고 썸머의 지인들과 섞일 수 없었던 것은 그녀의 인맥과 많은 정보가 그때까지 미지였고 톰은 수법조차 썸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오직 톰만이 썸머의 타임라인에서 지체된, 썸머가 뜻대로 통제할 수 없는 이질적 관계였다.


‘여자의 문이 열린다.’ 이는 몸과 마음, 자의와 타의, 개방과 폐쇄, 고수와 전환, 효용과 명분 등 대척 개념들을 유기적으로 구축한 선택 알고리즘을 통해 상대를 일부 혹은 전부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자의 성과 미로는 상대와 선택, 무드에 따라 생명체처럼 계속 변한다. 있던 문이 사라지거나 없던 자리에 벽이 생길 수 있고 길은 꼬일 수도 지름길이 열릴 수도 있다. 성문을 연 것은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톰이 성에 들어선 정복감과 지름길 몇 번에 취해 초대받은 미로 속을 헤매는 반면, 운명적 사랑은 봄바람처럼 흘러들어 썸머의 미로를 함께 걷는다. 그리고 둘만의 미로를 만들어 간다.


졸업생, 운명


영화 ‘졸업’ 또한 인물과 주제의식에 리얼리티가 강하다. ‘500일의 썸머’에서 특별한 단서가 없어 썸머가 감동한 지점이 어딘지 알 수 없다. 극을 관통하는 주제, 운명적 사랑에 더 가까운 커플은 일레인이므로 아마 썸머는 매번 연애에 최선을 다하고 뒤따른 공허와 표류, 어느 지점에서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

사인을 안 줬더니 명작이 나왔다.

‘500일의 썸머’는, 이기적이고 지엽적인 톰의 시점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유추하거나 반대해석해야 한다. 톰은 ‘졸업’을 잘못 이해한 탓이라 했지만 그 조차 성찰 부족한 변명으로, 썸머가 감동한 ‘졸업’을 같이 보며 의아해하는 무지와 맥락이 닿는다.


가문이 부여한 역할에 억눌린 벤자민의 욕구는 첫 번째 일탈로 새어 나와, 일레인을 제외한 모든 관계와 보편 윤리를 등 질만큼 파괴적으로 폭발한다. 나의 선택에 충실하며 모든 것에 저항해 허들을 넘는다. 벤자민은 졸업생이 되어 비로소 굴레를 벗어나 그의 회로가 주체적으로 바뀐다.


톰은 여전히 벤자민이 무빙워크를 이동하기 이전의 무사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썸머는 도전을 거듭하며 역동적 경험과 기억을 가지고 있었기에 ‘졸업’에 감응할 수 있었다. 둘은 같은 시공에 있어도 졸업생을 경계로 서로 지평이 달랐다. 톰은 요란하지만 찻잔 속 소용돌이고 썸머는 가끔 돌풍으로 변하는 산들바람이다. 썸머가 제 길을 갈 때 톰이 휩쓸려 나부끼는 건 당연하다. 썸머는 톰에게 큰 균열을 일으켜 로빈슨 부인 같은 역할을 한다.


톰은 평범한 수컷으로, 혼자 진리에 이르기 힘들며 운명이나 사랑에 관한 의미 있는 경험이나 고민이 없어 자기정의도 없다. 우연히 시작해 거창하게 완성되는 언제 드러날지 모를 정해진 ‘운명’을 우상으로 받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왔다.


반면, 썸머는 내재론자로 통상 외적귀인으로 평가하는 ‘운명’을 부정했다. 썸머가 어느 날 깨달은 ‘운명적 사랑’은 우연과 필연의 연속, 즉 지각과 통제밖에서 생겨난 기회와 지각하고 통제할 수 있는 선택 및 의지로 만들어가는 관계다. 선택과 결과의 과정 어디서든 우연이 개입해 의미있는 우연의 교차점을 만들고 이 모든 요소들이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정렬한 것처럼 느껴질 때 ‘운명’이라 말한다.


톰이 말한 ‘운명적 사랑’과 썸머가 깨달은 ‘운명적 사랑’은 다르다. 후자는 인연의 의미에 가깝다. 인연(因緣)은 하늘이 준 계기를 사람의 의지로 맺는 관계로 인과 연 모두 갖추어야 한다. 썸머와 톰은 계기는 있었으되 의지가 없었다. ‘그것이 톰이 아니었다’는 말은 톰이 선택한 모든 미숙한 행위의 상태를 썸머가 ‘거기에 머물 수밖에 없는’ 관계로 매듭지었단 뜻이다.


썸머는 자신을 사랑했고 자신이 있었다. 인생과 일상에 건전한 균형을 유지할 줄 알고 뚜렷한 주관으로 사랑을 구했다. 그 여정에서 운명적 사랑이란 인연을 만들어 결혼이란 다른 지평으로 건너간다. 그래도 돌아보니 허접하지 않은, 한때 내가 진심을 다했던 사람을 내가 가꾼 다른 관계처럼 곱게 남겨두고.

톰이, 마이 컷네.

톰의 꿈


톰은 썸머를 통해 세상의 중심을 경험했는데 그 부재와 상실로 세상의 주변, 소외된 자신으로 지각한다. 할 수 있는 최선과 기대가 완전히 무너지고 세상도 자아도 지워져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썸머 이전부터 공허했던 자신을 그제야 안다.


파인아트 빌딩 디자이너 듀오 워커와 아이렌을 소개하면서도, 엔젤스 놀 벤치에 앉아 보는 전경을 좋아한다 할 때도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평소 표면에 이는 기분과 그 강도에 집중하는 것에 익숙한 톰은, 썸머가 설명을 이끌어 낼 때부터 몰랐던 자신을 찾아간다.


톰은 도피처 혹은 탈출구로서 꿈을 간직하기 때문에 시도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 영역으로 남겨두고 있었다. 하지만 썸머는 톰의 드로잉을 팔에 그리라 하는 것에서 보듯 톰의 꿈과 잠재력을 실현해 자신의 인생과 동화시키고 싶어 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여자의 애정 어린 바람은 외면하다 열패감과 애증이 요동친 감정을 복수심으로 이름 짓고 청개구리처럼 뒤늦게 썸머의 기대에 답한다.


이 흐름에서 내 콤플렉스를 확인했고 톰에게 유일하게 공감 가고 부러웠다.

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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