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vs사랑. 이 질문은 밸런스게임으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아주 가벼운 질문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나의 경우, 이 질문 자체가 성립하는지에 대해 가끔 의구심을 가질 때가 있었다. 우정 vs 사랑이라 쓰려면 우정과 사랑이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이여야하는데, 그렇지 않을수도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에 다다랐을때, 우선 우정과 사랑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사적인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우정
우정을 이야기할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친구들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순간에서 나는 우리가 ‘우정’을 하고 있구나 자각했을까? 나는 크게 ‘웃음’과 ‘신뢰’를 공유하던 순간들이라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보일지, 지금 이 경험이 미래에 쓰임이 있을지와 같은 짜증나고 불가피한 고민들을 할 필요 없는 그런 순도높은 웃음. 그리고 혼자서 가지고 있기엔 너무 무겁고, 남과 나누기엔 무서운 감정덩어리들이 수용받는 신뢰의 경험.
그러나 단순히 이 두 가지 키워드로만 우정을 설명하기엔 스스로 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난 이 두 가지 경험들의 ‘빈도’가 우정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지속이라는 단어를 쓰기엔 우정은 그보단 밀도가 낮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반드시 오래 갔던 우정이 더 견고한 우정을 의미하진 않는구나 느꼈던 경험도 있기에, 나에게 우정은 ‘웃음’과 ‘신뢰’의 수많은 축적으로 구성된다 말하는 편이 가장 적절해보인다.
사랑
사랑은 이보단 더 많은 복잡성을 지닌다. 사랑의 대상에 따라 조금씩 양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든 사랑에서 빠지지 않고 사랑을 결정짓는다 여기는건 ‘밑져도 된다는 마음‘인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겐 사랑이 다른 무엇보다 특별한 것 같다. ‘밑져도 된다’고 여기는건 나의 사회적 태도에 있어 거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사회인으로서 살면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그것이 어떤 주제이든 간에, ‘평등’이다. 좋게 쓰이면 보통 내 주위에 부정의한 일이 잘 안 일어나게끔 할 수 있지만, 그만큼 사회적 관계에서 서로 퍼주고 나누는 것보다, 덜 주고 덜 받는 관계를 깔끔하거나 편하게 여길 때가 많다. 그러나 이상하게 사랑이라는 울타리 안에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그게 거의 통하지 않는다. 평소 사람들한테 큰 관심도 없으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 생각이 나서 무언가를 충동적으로 사서주거나, 내 일도 바빠죽겠는데 그 사람의 일을 대신 고민해줄 때도 부지기수이다. 가장 중요한건 이 모든 과정이 내가 아주 진실로 원한 행동이며, 이 모든게 보상받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우정=사랑?
이제 처음의 의문으로 다시 돌아가보자면, 우정과 사랑은 비슷해보이지만 같다고는 아직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정확하게는 우정이 사랑의 부분집합이라 느낀다. 우정에 해당하는 웃음과 신뢰, 그 축적은 사랑이 되기 전 필연적으로 거치는 것들이자, 사랑을 더 단단히 만드는 보조제와도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우정은 사랑에 비해 훨씬 더 나와 붙어 있다. 빈도가 아니라, 실질적인 거리감을 말하는 것. 사랑은 소유욕을 기반으로 한다. 사랑하는 대상들을 생각해보자. 부모, 자식, 형제, 동반자, 반려동물. 여기까지만 생각해도 개인에게 독점적으로 제공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부모가 남의 부모이기도 할 일은 거의 없고, 내 자식이 남의 자식이기도 할 일 또한 없으니까. 결국 이 ’독점‘과 ’소유‘는 ’유일무이함’을 만든다. ‘나’만의 것이라 내 것처럼 느끼기 되기 때문이다. 우정이 타인과 나 사이의 것 정도의 거리감이라면, 사랑은 ‘나’에게 흡수되는 것이라 착각하게 되는 거리감이라는 것이다. 이 거리감을 우정이 이길 수 있을까? 우정이 사랑으로 변할 수는 있어도, 결코 사랑을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사람은 스스로를 제일 사랑하기에.
친구와 연인
그러나 이렇게만 끝난다면 밸런스게임에서의 ‘우정vs사랑’이라는 질문을 명료하게 답했다고 볼 수는 없다. 이 질문은 사실 통상적인 의미로는 친구와 연인을 저울에 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해석은 친구와는 우정을, 연인과는 사랑을 나눈다는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이게 그렇게 정확한 합의 같지는 않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부터 처음 나의 의문이 생겨났다. 왜 친구와는 우정만 하고, 연인과는 사랑만 하는지. 연인이라 더 ‘사랑’에 가까워야 할 것 같고, 친구라 사랑보단 ‘우정’에 가까이 머물고자 했던 경험들이 그런 생각을 갖게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이 그동안 내가 언제나 순도 100%의 욕망으로 인해 연인에게 사랑을, 친구에게 우정을 하려했다는 말을 확신할 수 없게 했다. 사회적인 그 틀이 관계 속에서의 나의 의무감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나는 연인이 친구보다 더 무겁게 나에게 자리잡은 듯하나, 그게 내가 연인을 정말 나의 욕망에 솔직하게 ‘사랑’해서일 뿐이라곤 답할 수 없다.
여기까지 길게 써냈음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는 좀 허무하게도 질문에 명료하게 답하지 못했다. “우정 vs 사랑”이라는 표면적 질문에는 사랑을, “친구 vs 연인”이라는 본질적 질문에는 연인을 답했지만, 결국 이 모든게 내 욕망에 솔직한 결과는 아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는 아주 명료한 답이 나온 듯하다. 이 발제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충실한 답은, 언젠가 확신을 가진 답을 하기 위해 사회적인 틀보다 내 욕망에 더 솔직할 것이라는 것. 더 열심히 솔직해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