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그 나는 나, 나의 게임을 하기. 정연복 '나를 위한 서시'
나 어릴 때만 해도 글쓰는 사람들의 최고 애장품은 파카 만년필이었다. 애연가들의 듀퐁 라이타라고나 할까? 그러다가 크로스 펜으로 옮겨가고 그 뒤에는 몽블랑 펜이 시장을 장악했다. 그런 물건을 가진 사람들이 부러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대신 '저런 펜은 내게도 어울리겠다, 내게 필요한 것이네?' 이렇게는 생각을 했다. 이런 사고방식이 새삼 지금 내게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최근 얻었다. 귀한 소득이다.
'그런 물건들'은 사실 뭐 크게 어렵지 않게 손에 넣을 수 있다. 소위 명품이라는 것들도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저런 이유로 쉽게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인 경우다. 가지고는 싶은데 거의 갖지 못할 확률이 더 높은 그런 것들, 그런 세계, 그런 상황과 상태에의 도달. 그것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면 차라리 그게 낫겠다. 지고 이기고가 지금의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지면 어떻고 또 이기면 어떠랴? 문제는 그것이 아니고 부러워하면 그때부터 내가 많이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그게 나는 무섭다. 다양한 형태로 나를 괴롭게 할 것이다.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교묘하게, 아주 파괴적인 방식으로 그렇게. 그래서 아예 부러워하는 마음을 갖지 말아야 한다. 몇 가지 그 논리적 근거를 기억하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나도 여러분도.
하나, 나는 내가 부러워하는 그를 잘 모른다. 그의 실상이 무엇인지 내가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인가? 그저 내 눈에 지금 당장 보이는 그가, 그야말로 나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아 좋겠다 뭐 이런 것이다. 그런데 혹시 그의 속으로 들어가 보면 정작 그렇지 않다면? 내가 모르는 많고 많은 사연들이 그를 힘들게 하고 있다면? 그래서 지금 그는 기뻐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누가 알겠나 그의 속 사정을? 그러니 그저 마냥 부러워할 일은 아니다. 속단인 경우가 많다.
둘, 지금 내 눈에 좋게만 보이는 그것이 과연 앞으로 그의 미래에 도움이 될까? 끝까지? 혹시 또 다른 그 무언가를 불러오는 것은 아닐까? '차라리 그때 그에게 그런 좋은 듯 보이는 일이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런 경우를 우리는 가까이에서 많이 본다, 아니 이미 많이 보았다. 특히 우리네 정치의 세계에서. 그러니 너무 부러워하지 말라. 끝까지 가보아야 안다.
셋, 나는 아예 그 게임에 참가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상위 등수는 고사하고 완주 메달조차도 받을 수 없다. 나는 그 게임에 참가할 자격이나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 관심 자체가 없었다. 그는? 준비했고 요건을 구비했고 참가했고, 그래서 상을 받은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그냥 요건불비인데 뭘 부러워하나?
넷, 그가 잘 되었기에 내가 잘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자, 그도 나도 같은 게임에서 겨룬다. 그와 내가 최종 2인까지 갔다. 마지막 결승에서 그가 나를 이겼다. 그가 이겼기에 나는 진 것이다. 이 경우에는 말이 좀 된다, 그래도. 분하고 아쉽고 조금은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가 잘 된 것은 그의 것이고 내가 잘 되고 있지 않은 것은 나의 것이다. 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등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 그를 미워할 이유는 더욱 없다. 그가 내게 뭘 잘못했나? 없다.
혹자는 그런다. 부러워하는 것은 발전을 위한 좋은 동기가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을 달리한다. 종교에서 말하는 일곱 가지 큰 죄 중의 하나가 시기와 질투다. 나는 이것이 결국은 부러워하는 마음에서 생겨나 발전한다고 본다. 가진 그, 부러워하는 나, 그러나 갖지 못하는 나, 그 다음은 그 부러움과 아쉬움을 다른 형태로 표출한다. 내가 할 수 있는 형태로, 가시적이고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만 보이는 것이고 자기만 아는 것인데?) 파괴적인 방식으로 돌출된다. 그것이 시기요 질투다. 그것은 결국 다시 미움과 증오로 발전한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더욱 노력한다. 애 쓴다. 부러워하는 마음을 멀리 하자고. 오불관언, '그게 그래서 나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나?' 이런 마음을 갖자고 그리 내게 말한다. 효과가 있다. 그것은 그저 그의 것,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일!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 아니다. 부러워하면 내가 힘들어진다. 큰 손해를 입는다. 소위 '이중의 재해 (더블 제퍼디 double jeopardy)'가 된다. 내가 부러워하는 대상과의 현실적 격차는 당연 더욱 벌어진다. 그런 짓을 왜 하나? 나는 나의 게임을 해야 한다. 그게 언젠가는 그 누군가가 나를 보고 부러워하는 상황을 가져올 보다 확실한 길이다. 적어도 이중의 위험 혹은 재난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다.
이제 시를 본다.
나는 결코 너가 아니라고 시인은 시작부터 명확하게 말한다. 이 세상 그 많은 사람 중에 '나'는 유일한 존재이고 독특한 존재라고 힘주어 말한다.
애초부터 그와 나는 다른 존재인데 내가 그를 아니면 그가 나를 부러워할 이유가 뭐 있느냐는 일갈이다. 통쾌하다. 그는 그의 삶을 나는 나의 삶을 그저 그렇게 열심히, 아름답게 살다가 가면 되는 것을. 그도 나름의 승자가 되고 나 또한 내 나름의 승자가 될 수 있는 것을.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절대적인 개념으로 그리 살아가면 될 일을.
'나'를 위한 서시
- 정연복
'나'는
'너'가 아니다
끝없이 넓은 세상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는
유일하고 독특한 존재다.
밤하늘의 별같이
빛나는 자존심을 가지고
'나'는
나답게 살아야 한다
이것은 나의
신성한 권리요 의무이다.
이 땅에 한번 왔다 가는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나만의 빛깔과 모양과 향기의
꽃 한 송이 피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