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 그럴 것까지야? 조병화 '작은 보따리'
아들 녀석이 지금보다 젊었을 때 포뮬러 원 (F1 - 국제 자동차 프로 레이싱 대회) 보는 것을 그리 즐겼다.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는 것이니 시간대가 다른 것은 당연한 일. 새벽같이 일어나 그리고 밤늦게 그 자동차 경주를 즐겼다. 가끔은 나도 같이 보았다. 그 굉음, 긴장감 가득한 스피드의 세계, 그들의 부와 명예.
여기서 중요한 것이 본게임 하루 전에 진행되는 퀄리파잉 게임이다. 그 결과에 따라 그 다음 날 본게임에서의 출발 순서와 위치가 결정된다. 총 1시간 동안 Q1, Q2, Q3가 진행되는데 우선 Q1에서 전체 20명 중 15위 안에 들어야 Q2에 진출한다. 여기서 다시 10위 안에 드는 선수만이 최종 Q3에 진출하고 거기서의 빠른 순서대로 스타팅 그리드가 배정된다.
사실 근소한 차이로 우승자가 결정되는 이 레이싱의 특성상, 이 출발 그리드는 결과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예전에 학교 운동회때 그 마지막은 항상 계주 (이어달리기)가 장식했다. 여러 명이 이어서 달리다 보니 한 두 선수의 발군의 실력은 게임의 승부를 뒤집기에도 충분했다. 그때는 그랬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장면을 보기가 쉽지 않다. 실력의 수준이 그저 그만그만하다 보니 실수로 일단 앞 선수와의 차이가 벌어지면 그 간극을 따라잡기는 결코 쉽지 않다. 이어달리기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그럴 것이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말도 된다. 뒤집을 기회가 많지 않다는 얘기다. 힘든 세상이다.
뜬금없이 오늘 글을 포뮬러 원으로 시작한 이유다. '개천에서(도) 용이 난다'는 말은 그야말로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지나간 얘기다. 지금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나는 그렇게 본다. 출발점이 중요하다. 개천에서는 애당초 용의 작은 새끼가 살 수도 없을 것이다. '도움닫기의 힘' 또는 필요성을 지금 말하려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의 룰에 '부모가 자식을 도와주는 것은 규정에 어긋난다, 파울 플레이다' 이런 항목은 없다. 죽기 전 재산이 수백 억원 수천 억원 아니 수조 원인 미국의 억만장자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일에 있어서도 근본적으로 다른 그림 혹은 전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재산의 규모 자체가 워낙 어마무시 크니까!
그런데 뭐 수 억 혹은 수십 억 원 정도의 규모라면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순리 아닐까? 그게 예쁜 모양 아닐까? 그렇다고 물려주기 위해 쓰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사는 동안 '상식적 수준'에서 쓰다가 그래도 남은 돈이 있으면 물려주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부의 대물림, 한 번 형성된 사회 계층의 고착화, 뭐 이런 얘기로 어깃장을 놓은 들 별 설득력이 없다. 자식 아닌가? 이쁘고도 이쁜 내 새끼 아닌가? 부모가 뜻도 물어보지 않고 태어나게 한 그 존재, 어떤 면에서는 고해의 이 세상에 사느라 그들도 많이 힘들지 않았겠나?
재산을 물려줘야만 제대로 된 부모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는 것이 자신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뭐라고 표현하고 뭐라고 설명하든 자식에게도 그런 '은근한 바람'은 있지 않을까? 그게 상식적 아닌가? 미국의 어느 통계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돈 가지고 자식을 겁박하고 자식을 통제하려는 것은 참으로 치사한 일이다. 아직도 왕왕 그런 부모들을 본다. 부모 자식간의 치사한 일의 존재, 슬픈 일이다. 자식에게는 크게 상처되는 일이다. 돈 가지고 치사하게 굴면 안 된다, 자식에게는!
생각이야 사람마다 다 다르다. 내가 지금 '다 쓰고 죽겠다, 다 쓰고 가겠다'는 사람들을 뭐라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돈 자기가 알아서 하면 될 일이다. 그저 그런 사회 일각의 움직임에 대한 나의 개인적 견해를 우리 브런치 독자님들과 살짝 공유하는 것 뿐이다. 오해 마시기를!
밀레니얼 세대 (Millenials - 1981년부터 1996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에 해당하는 미국의 젊은이들은 68%가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기를 원하거나 물려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미국의 한 조사 결과가 있다. 반면 그들의 부모들은 40%만이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줄 생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은퇴를 앞둔 부모 세대의 57%는 아마도 자녀에게 물려줄 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35%는 자녀에게 물려주는 대신 자신이 돈을 모두 쓰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미국의 자식들의 기대감 68%는 기존의 나의 생각과는 괴리가 있었다. 조금 놀랍기도 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는 그들은 독립심이 강해서 부모의 재산을 바라거나 뭐 그렇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긴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돈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더구나 사랑하는 부모의 돈인데?
부모가 물려줄 돈이 없어서 자신들에게 한 푼도 물려주지 않았다고 서운해하는 자식들은 없을 것이다. 열심히 사셨다고, 최선을 다하셨다고,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들을 이렇게 잘 키워주셨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나름 평생 열심히 사느라고 살았는데 정작 물려줄 돈이 없다고 부모들 또한 달리 생각할 이유가 없다. 당신들 열심히 살았고 자식들 열심히 키웠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다.
그런데 굳이 '다 쓰고 가겠다고' 저리 애를 쓰다가 간 부모의 경우라면 좀 얘기가 달라질 듯하다. '왜? 내게 돈 주는 것이 그리 싫으셨나? 그렇다면 그건 또 왜?' 자식들에게 두고두고 많은 의문을 남길 것이다. 그들의 마음에 살짝 씁쓸함과 아쉬움을 남길 것이다. 말년에 '열심히, 애써서' 좋은 곳 여행가고 좋은 것들 먹고, 그렇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한 것에 대한 만족감보다는, 웬지 아니 많이 찝찝한 느낌이 남지 않을까? 다른 세상에 가서도 오랫동안! 왜 그런 일을 해야 할까, 나는 여전히 납득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오불관언, 그들의 돈이고 그들의 자식이고 그들의 삶이니까!
이제 시를 본다. 아주 작은 보따리, 단칸방에서 시작해서 지금껏 여기까지 잘도 살아냈다. 시인은 그리 칭찬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칭찬이기도 하고 아내에 대한 고마움의 말이기도 할 것이다. 얼마 되지 않는 지식/지혜/상식/경험/창작 활동/그리고 정말 얼마 되지 않는 돈! 이렇게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용하다, 장하다! 그러니 새삼 후회는 없다. 미련도 없다, 아쉬움도 없다. 그저 모든 것이 고맙고 고마울 뿐!
역시 구력의 시인이다. 시어 하나하나가 가벼운 것이 없다. 묵직하게 나의 마음에 들어선다. 따뜻하다! 나도 이 시인의 이런 마음으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 되려나? 덕이 부족하고 여전히 수양이 부족한 존재이니? 그래도 계속 애는 쓸 것이다. 시인의 이 마음 조금이라도 더 닮아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