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밤, 글쎄요 달콤한 꿈을 꿀 수는 있을까요?

- 그래도 꿈이 희망이다, 아름다움이다. 빅토르 위고 '유월의 밤들'

by 가을에 내리는 눈

한여름밤에는 유난히 좋은 꿈을 많이 꾸나? 왜 '한여름밤의 꿈'이라는 말이 이렇게 내 입에 착 달라붙어 있는 것이지? 어디가 그 시작인가? 그러다가 알았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이 그 출발점이었다는 것을. 학창 시절 처음 내 머릿속에 들어왔던 것이 여지껏 이리 강한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기억의 무서움, 연상 작용, 그 연쇄적 전파의 효과 - 'A Midsummer Night's Dream' (여름이 한창이던 그 어느 날 밤의 꿈)


근거는 있는 것일까 여름철에 꿈을 더 많이 꾼다는 것이? 그렇단다, 더위로 인해 수면의 질이 저하되고 그래서 얕은 잠인 '렘수면 단계'가 길어질 수 있단다. 렘수면 중에는 꿈을 꾸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꿈을 더 자주 꾸는 것으로 느껴질 수가 있다고.


여름철의 높은 습도 또한 우리 몸의 땀의 배출을 방해하고 그래서 숙면을 어렵게 만들고, 그렇게 되면 꿈을 더 자주 꾸게 될 수 있다고. 에어컨의 사용에 따른 온도의 변화, 소음 등으로 평소와는 다른 환경이 만들어지면 역시 수면의 질이 저하되는 렘수면이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렘수면 (REM - Rapid Eye Movement Sleep)' 또는 급속 안구 운동 수면이란 수면 중에 우리의 안구가 빠르게 움직이는 특징을 가지는 단계를 말한다. 눈을 감고는 있지만 안구는 여전히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이때 우리의 뇌파는 깨어있을 때와 유사하게 활발하다고 한다. 이 상태에서는 우리의 신체근육은 일시적으로 마비되어 있는 상태에 있는데, 혹여 꿈속의 행동이 현실에서 그대로 실행되는 것을 막기 위한 우리 몸의 배려라고 한다. 대단한 우리 인간의 몸, 우리들의 정신 세계!


내 어린 시절의 한여름은 지금 같지는 않았다. 단지 기억 속의 것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도 그랬다. 한낮에는 땡볕 더위여도 해가 지고 밤이 오면 시원한 바람도 불고 기온도 많이 내려갔다. 무엇보다 습도 자체가 낮았던 것 같다. 마당의 평상 (앉거나 누워서 쉴 수 있도록 네 개의 다리 위에 널찍하고 평평한 나무 판을 올려서 만든 가구)에 모기장을 치고 얇은 홑이불을 덮고 그렇게 별을 보며 누워있으면 금새 잠이 왔다. 새벽녘에는 오히려 추웠다. 지금과는 많이 달랐던 옛 시절 우리나라의 한여름이었다. 지금으로서는 꿈같은 얘기다.


감자를 삶아 먹고 닭백숙을 해 먹고, 육개장을 끓이고, 어떤 면에서는 여름에만 누리는 특별한 이벤트였다. 지금처럼 여름날의 하루하루가 무서운 생존의 과정, 그렇지는 않았다. 여름날의 저녁, 강둑을 걸으면서 느끼는 그 미풍의 달콤함은 지금도 기억 속에 아련하다. 여전히 달콤한 기억이다, 아름다운 추억이다.


더위를 정말 싫어하는 나로서는 수년 전부터의 한국의 여름은 두려움 그 자체다. 에어컨 바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더욱 그렇다. 나의 신체도 여러 형태로 즉각 반응한다. 내게 한국의 여름은 치열한 생존의 현장 바로 그것이었다. 여름 더위를 피해 다른 나라로 옮겨가는 해결책을 찾은 것도 그때 그 무렵이다.


사실 요즘은 세계 어느 나라든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지금처럼 심각한 상황이 되기 전에는 에어컨이 굳이 필요 없는 나라와 도시도 많았다. 런던이 그랬고 캐나다 밴쿠버가 그랬다. 그래서 오래 전에 지어진 그곳의 대부분의 주택들은 뜻밖에 만나게 된 요즘의 여름 더위 해결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궁여지책 등장한 이동식 에어컨, 창문을 통해 공기를 배출시킨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당연 요즘 새로 짓는 집들은 두 도시 모두에서 에어컨 설치가 필수다. 실내 공간의 구성과 장식 자체가 달라졌다.


여름 얘기를 하고 있다. 이제 오늘 말하고 싶은 주제 부분으로 매끄럽게 옮겨 타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머리가 여름 더위에 굳었나? 지금 이곳은 덥지 않은데?


28년 전 영국에서 공부할 때 그곳에서의 여름을 기억한다. 좋았다. 한낮 살짝 그늘이 진 푸른 잔디밭 한 곳에 얇은 무릎 담요를 펴고 그 위에 앉아 책을 읽던 그때의 그 시원함과 상쾌함. 서구의 사람들이 잔디밭에서 여름을 즐기는 이유를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 적당하게 따뜻한 햇살, 눈부시게 푸른 하늘, 맑은 공기, 잔디밭과 숲의 이곳저곳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토끼들, 연못의 오리와 거위들, 자연 그 자체였다. 바닥층의 공기와 머리 위쪽의 공기는 온도도 향기도, 살을 스쳐가는 그 감촉도 달랐다. 한 자리에서 다름을 즐기는 맛이 있었다.


사계절 중 밤이 가장 짧은 여름. 어쩌면 그래서 한여름밤이 우리들에게 더욱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릇 흔하지 않은 것은 그래서 그 자체로 귀한 것이 되니까. 길고 긴 겨울밤과는 또 다르다. 깊어지는 이상 기후 변화가 아니라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그 이상해진 우리의 기후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면 좋겠다. 그런 날이 없으리라고 쉽게 단정하지는 않겠다. 모든 것은 가능한 것이니까.


그래서 충분히 즐길 만했던 예전의 그 여름을 다시 만나면 좋겠다. 마당에 평상을 펴고 잘 수 있었던 그 시절이 다시 오면 참으로 좋겠다. 하지 감자를 삶아 먹고 매시 포테이토처럼 짓이겨서도 먹고, 큰 솥에 푹 끓여낸 닭백숙도 즐기고 육개장이며 닭개장이며 어머니의 전매특허 고등어로 끓인 생선 육개장도 다시 먹어보고. 그런 날을 꿈꾼다.


꿈은 꼭 밤에만 꾸는 것은 아니리라. 현실과 다른 꿈의 세계, 그런 꿈일수도 있지만 우리들의 바람과 소망, 기대 그 또한 꿈이다. 자면서 꾸는 꿈속의 꿈보다 어쩌면 더욱 아름다운 꿈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여름날을 기다린다. 현세에서 다시 맞을지 아니면 다른 세계에서 맞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 한국에서, 달콤한 한여름밤의 꿈들을 다시 많이 꾸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런 날을 소망한다, 간구한다!


이제 오늘의 시를 본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추억하는 유월의 여름밤이다. 별과 달콤한 새벽, 그 속의 향기로운 여름, 아름다운 시간의 기억들이다. 우리의 여름도 다시 이렇게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시를 쓰고 위대한 소설작품들을 쓰고 그림도 많이 그리고,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유월의 밤들 (June Nights)

-빅토르 위고

여름, 낮은 이미 사라진 그때에, 꽃들로 덮인 단순함이

취할 듯한 향기를 멀리까지 뿜어낸다 ;

눈을 감고, 귀는 소음에 반쯤 열어놓은 채,

우리는 얕은 잠에 그저 반쯤 잠들어있다.


별들은 더 맑게 빛나고, 어스름 밤의 장막은

더욱 기분 좋아 보인다 ;

몽롱한 하루의 또 다른 반은 영원의 둥근 천장을 물들인다 ;

그리고 자신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어슴푸레 달콤한 새벽은

하늘의 가장 아랫부분에서 온밤을 서성거리는 듯하다.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 영어 번역본을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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