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간과 영원, 삶과 죽음, 아름다움. 빅토르 위고 '무덤과 장미'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키고 못난 자식이 부모를 모신다' 옛말에 이런 얘기가 있지요. 반듯하게 곧은 소나무는 정원수나 관상수로 벌써 어디로 팔려갔거나 이미 베어서 팔아먹었고, 잘난 자식은 나랏님의 사람이 되어 도회지에서 바삐 살거나 돈 많은 처가의 사람이 되거나. 가끔 어머니가 웃으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조금 굽은 나무면 어때요? 그래도 든든하게 시골 산을 지키고 있는 것이 그저 고맙지요? 못난 자식이요? 뭐가요 배움이, 지위가 아니면 가진 것이? 부모에게 있어 못난 자식은 없답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애뜻하고 사랑이 갈지도 모르지요. 얼마나 고마워요, 노부모와 함께 살아내는 그 자식이?
가끔은, 아니 요즘은 자주 옛날 농경시대 혹은 유목민들의 대가족, 철저하게 가장 중심의 권력구조가 많이 부러워요. 자식이 여럿이니 그만큼 듬직할 것이고 어느 자식이 내 옆에 남아있을 것인가 걱정할 이유도 없고. 딱히 일을 찾아 도회지로 타지로 떠나갈 일도 그때는 없었으니, 결국 혼기가 차고 아버지가 밭 한 귀퉁이 또는 양 몇 마리 떼어서 가까운 곳에서 따로 가정을 꾸려 살게 해줄 때까지 주야장천 아버지 옆에 있을 수 밖에요. 아버지로서는 참으로 좋았을 것 같아요. 무소불위의 그런 권력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그 정도면 만족할 만한 권력 아닌가요?
시대를 거슬러 좀 더 올라가면, 남자들에게 유리한 상황이 더 있었지요? 여러 아내를 가질 수 있었던 고대사회, 뭐 어느 한 아내가 툴툴 거리고 그만 살겠다고 한들 별 걱정 있겠어요? 여전히 남은 아내가 여럿 있으니? 철저한 가부장제였던 목축 유목의 사회, 모든 권력과 재산의 처분권이 아버지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었던 그때의 그 사회구조, 좋았겠어요 가장들은! 삶에 필요한 모든 기술은 어려서부터 이미 다 보고 배워서 그야말로 달인의 수준에 있고. 한 가정의 구조적 측면에서나 재산의 형성과 처분에 있어서나,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의 숙련도와 완벽성의 면에서나, 뭐 하나 흠결되거나 불비된 부분이 없었던 것이지요. 무엇을 더 바랐겠어요?
어쩌면 성경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정말 100년을 훌쩍 넘겨 살았을 수도 있겠다 그런 싱거운 생각도 들어요. 우선 속이 편하잖아요? 모든 것이 가장의 것이고 가장의 권력 아래 있는 것이었잖아요? 공기 좋고 물 좋고 단백질 풍부한 고기와 우유 늘 먹고,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이나 환경은 아예 없었던 것이니! 스트레스-프리가 제일 좋았겠지요?
무덤 옆을 지키는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와 함께 할미꽃이나 예쁜 장미가 동무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해요. 실제로 선친 산소에 전에 못 보던 큰 할미꽃이 있었어요. 신비한 느낌과 엄숙함까지 배어 나와서 벌초를 하면서도 그냥 곱게 두었던 기억이 있어요. 고맙잖아요 저 없는 그 많은 시간 내내 아버지와 함께 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큰 절이라도 하고 싶은 그런 심정이었지요.
할미꽃에 얽힌 조금은 슬픈 얘기가 있어요. 할머니가 두 손녀를 키우고 있었어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애지중지 잘 키워서 둘 다 시집을 보냈어요. 큰 손녀는 얼굴이 예뻐서 부잣집으로 시집을 갔고 작은 손녀는 가난하지만 자기처럼 마음 착한 남자를 만나 혼인을 했지요. 둘째 손녀는 이제 혼자 살게된 할머니가 걱정되어 언니에게 할머니를 번갈아가며 모시자고 했어요. 큰 손녀는 얼굴은 이쁜데 마음은 많이 미웠나 봐요. 어려서도 그랬대요. 할머니 모시는 것이 귀찮고 짜증이 나서 할머니를 홀대했나 봐요.
할머니도 괜히 눈치가 보이고 슬픈 마음도 들고, 그래서 어느 한겨울 눈 내리는 날 큰 손녀 집을 떠나서 둘째 손녀집으로 향했어요. 그날따라 눈이 너무도 많이 내리고 날도 심하게 추워서 할머니는 그만 둘째 손녀 집에 가는 도중에 죽고 말았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그 자리에는 이듬해 봄 꽃이 한송이 피었어요. 그 꽃이 바로 허리가 구부정하게 휜 할머니의 모습을 닮았다는 할미꽃이랍니다. 한자어로는 '백두옹' (백발의 노인이 그 머리칼을 풀어헤친 모양을 따서)이라고 합니다.
그냥 하는 얘기겠지만 그래도 괜히 씁쓸한 마음 가득합니다. 자식네 집에서 자식과 함께 사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손녀는 더하겠지요. 애초 손녀들 집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사정이 있었겠지요? 두 손녀 시집 보내느라 그나마 시골 작은 집과 전답도 팔아야 했다든지, 그래서 어디 갈 곳이 없었다든지. 팔고 나면, 주고나면 그것으로 끝인 것을 할머니는 몰랐을까요? 알면서도 해야 했겠지요?
이런 사연의 할미꽃의 꽃말이 '충성'이라니 좀 아이러니지요? 아마 신라시대 설총이 지은 '화왕계'에서 유래되었을 겁니다. 꽃을 의인화하여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꽃의 나라를 다스리는 왕 (화왕 - 모란꽃) 앞에 장미꽃이 미인으로 분장하고 나타납니다. 할미꽃은 장부로 등장하며 신하되기를 청합니다. 이에 화왕이 장미를 취할지 할미꽃을 취할지 고민을 하자 할미꽃이 충언을 하고 이에 화왕이 크게 깨달은 바가 있다는 우화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신라 신문왕은 큰 교훈을 얻고 설총에게 높은 벼슬을 내렸다고 합니다. 한국 풍자소설 혹은 우화소설의 효시라고도 불리우는 작품이지요.
젊을 때는 장미꽃을 그리 좋아했지요. 예쁘게 새빨간 장미, 고고하고 우아한 기품의 노란 장미, 아찔하게 매혹적인 분홍빛 장미, 왠지 쉽게 접근하지 못할 느낌의 하얀 장미.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장미꽃이 별로 가슴에 와닿지가 않더라구요? 그대신 이름 모를 들풀, 야생화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저 작고 힘없어 보이는, 그러나 신비함과 함께 기특함이 느껴지는 그런 묘한 빛깔의 들꽃들. 이곳에 오기 전 제가 한동안 살았던 그 나라에는 예쁜 야생화가 많았어요.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그냥 한 움큼 꺾어다가 노끈으로 대충 묶어서 파는데 풍성한 한 단에 3천 원을 하지 않았어요. 아주 가끔, 정말 가끔 누군가에게 꽃을 줄 일이 있을 때는 꼭 그런 야생화를 사러 나갔지요. 포장은 제가 집에 와서 하고요.
장미는 이제는 꽃보다는 그 꽃에서 생산되는 장미수 (rosewater)의 향을 저는 좋아해요. 그것으로 만든 영국제 세안용 비누는 그 은은한 향이 늘 저를 즐겁게 하지요. 실제로 마음의 안정도 가져다주고요. 영국 왕실에서 아주 오랫동안 쓰고 있는 비누랍니다. 영국이 원래 이런 비누 제품, 천연 방향 제품으로 유명하잖아요? 향수도 아주 유명한 프라이빗 브랜드가 있지요? 제가 좋아합니다.
아마도 프랑스나 영국 유럽의 무덤가에는 할미꽃보다는 가시 달린 장미가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결국은 문화잖아요 우리 사는 일상 속의 모습이라는 것이? 음식이 그렇고 사람들의 의복이 그렇고 헤어스타일도 그렇고. 좋아하는 꽃, 즐기는 술, 일상에서의 취미, 세상을 보는 눈, 다 그렇지요?
이제 오늘의 시를 봅니다. 거목 빅토르 위고의 멋진 시입니다.
그는 팡떼옹에 안장되어 있지요. 프랑스의 국가원수 그 누구도 묻히지 못한 그 대단한 곳에.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큰 딸은 파리의 유명한 묘역 페르 라세즈에 묻혀있어요. 위고가 그의 시 '내일, 동 틀 무렵에'서 그렇게도 애절하게 그리워하고 보랏빛 가득한 헤더꽃을 들고 찾아간 그곳. 그 두 사람은 누가 더 편안하게 쉬고 있을까요? 아마도 두 사람 다 이제는 기쁨과 평온 속에 그렇게 쉬고 있을 겁니다. 우선 서로 만날 수 있으니까요? 공간이 문제가 되겠어요 아니면 시간이 장애가 되겠어요? 이제 그들 두 부녀의 만남과 애뜻한 사랑을 막을 것은 그 무엇도 없으니까요! 수년 동안 글도 쓸 수 없을만큼 그에게 큰 아픔과 상처를 주었던 19살 예쁜 딸의 죽음!
무덤과 장미 (The Grave And The Rose)
- 빅토르 위고
무덤이 장미에게 말했다,
"새벽의 이슬들,
사랑의 꽃들, 그들의 끝은 무엇일까?"
"이미 날아가버린 영혼,
우리네 정신은 과연 어디에서
무덤의 입을 닫아버릴까 그도 눈치채지 못하게 그렇게?"
장미가 무덤에게 말했다.
장미가 말했다, "눈에 띄지않는 곳에서
그 이슬의 눈물들은
아주 옅은 그래서 조금은 기묘한 향수가 된다네,
보석 호박색의 그리고 꿀처럼 달콤한."
"그리고 모든 영혼은 날아가서
또 다른 하늘의 세계를 이겨내고는,
이슬보다 훨씬 더 묘하게,
새로이 신의 천사들에게로 간다네,"
무덤이 장미에게 말했다.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 영어 번역본을 바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