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교육의 힘. 김용화 '아버지의 짐 자전거'
소개팅을 할 때는 누구를 데리고 나오느냐가 그날의 일방 당사자인 내게는 제일 중요하고 그러니 당연 초미의 관심사다. 그런데 내 개인적 경험에 의하면 그것은 누가 소개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소개하는 사람은 결코 자기보다 예쁜 사람을 데리고 나오지 않는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내 경우에는 늘 그랬다. 그래서 우선 소개하는 사람의 소양과 외양이 중요했다, 내게는 그랬다.
오늘의 이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충분한 양해를 구한다. 누군가를,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폄하하거나 할 의도는 전혀 없음을. 그럴 이유 자체가 내게는 없다. 그냥 조금은 더 나은 지구를 만들기 위해 오늘 아침 내 머릿속에 들어온 단상 하나를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것 뿐이다. 그렇게 이해해 주시기를.
새벽 아니 여전히 이른 아침 6시.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이 나라 사람들에게도 이른 아침이다. 갑자기 내가 머무르고 있는 층 전체가 소란하다. 아이들의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얼리 체크인이 허용된 어느 가족 (아이 둘 어른 둘, 아마도, 소리로 짐작해 보건대)이 옆방에 들어왔다. 그때부터 내내 지금도 소란하다. 제지하거나 주의를 주는 그 부모의 말소리는 단 한마디도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소음은 계속된다.
나는 이미 일어나 있으니 아쉬운 잠을 서둘러 접어야 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옆방 또는 다른 가까운 방의 누군가는 분명 툴툴 거리며 잠을 깨야했을 것이다. 말을 해줘야 한다, 사랑하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쉿, 아직은 이른 시각이다. 이곳은 여러 사람이 머무는 곳이다. 여전히 그들은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렴. 네가 그들의 상황이었다면 지금 너희들이 만들어내는 이런 소음에 어떤 기분이 들었을지? 너부터 얘기해 봐라. 너는 어땠을 것 같아? 그렇지? 그랬겠지? 그러니 너희들도 지금부터는 어떻게 해야 하겠니?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겠지? 너희는 지금 다른 누군가에게 큰 불편을 끼치고 있는 것이란다. 너희들도 욕을 먹고 엄마 아빠도 함께 욕을 먹고 있을 것이다 지금 바로 이 순간! 부끄러운 일이지?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의 역사적 사건들은 논외로 하고 나는 늘 그들의 아이들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그들의 어린 세대 교육의 핵심은 이것이다 -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라. 아주 어릴 때부터 일상 속에서 그런 교육을 받는다. 나의 이런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를 늘 생각하고 그래서 조심한다. 그들의 언어 자체가, 특히 여성들의 언어 사용에 있어 우리에게 들려오는 그 소리는 참으로 나긋나긋하고 부드럽다. 언어 자체의 특성도 있겠으나 나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그들의 마음가짐에 그 기초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길을 걷다가 대로 건너편 저쪽에서 걸어가는 지인을 우연히 발견한 경우라면 길 건너로 냅다 소리를 지른다, "야, 아무개야? 여기 여기!" 손짓을 하고 몇 번을 더 목청껏 불러댄다. 일본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일본에 오랜 산 어느 한국분이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한 것이니 믿으셔도 좋겠다.
지하철에 자리가 하나 났다. 저 멀리 어딘가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쏜살같이 달려온다. 언제 어디서 보신 걸까 거기에 자리가 난 것을? 굳이 좁은 공간을 엉덩이로 밀치고 들어와 앉는 사람도 많다. 앉고 나서도 계속 양 옆으로 자리 넓히기를 계속한다. 할 수 없이 먼저 앉아있던 사람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제야 만족하는 듯한 눈치다. 굴어온 돌, 결국은 밀어내기에 성공한 그 돌! 뿌듯할까 그래서?
처음부터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러니 배우면 된다. 배우려면 누군가가 가르쳐줘야 한다. 부모의 자식 교육, 그래서 중요하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어미에게서 배운다. 그 배움에 게으르거나 큰 결핍이 생기는 그 새끼는 결국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필사적으로 배운다, 하나도 빼먹지 않고, 젖 먹는 힘을 다해서 그렇게!
가르쳐야 한다. 의무다, 부모로서 꼭 해야할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부모는 자식을 유기하는 것이고 자신의 기본적 소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많은 부모들이 그 사실을 간과한다. 핑계는 있다 그들 나름의. 사랑하는 자식, 뭐 그저 그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지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를 해? 왜 그래?
핑계도 그런 핑계가 없다. 아니, 궤변이다. 우선 아무런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도 자기의 부모에게서 배운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부모의 부모를 탓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여기서. 어쩌면 그 부모의 부모는 차라리 이 부모보다는 비난에서 조금은 더, 아주 살짝 자유로울 수 있다. 전쟁통에, 당장 오늘 하루 먹고 살기도 바쁜 그때에, 뭐 그럴 여유가 있었겠나? 여전히 나는 공감은 하지 않는다. 그러니 더욱 절실한 마음으로 가르쳤어야지?
지금은? 전쟁도 없고 그때보다 훨씬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지금 여름 휴가라고 멀리 이곳까지 큰 마음먹고 가족 여행을 온 것 아닌가? 두 번째는 게으름이다. 자식 교육 자체도 귀찮다. 당장 자신이 들여다보고 있는 유튜브, 한참 신나게 듣고 있는 좋아하는 가수의 최신 유행곡, TV 이런 것이 더 우선 관심사다. 아이들? 그러거나 말거나. 하긴 지금 그들이 무엇을 어찌하고 있는지조차 파악이 안된다. 아니, 관심 자체가 없다. 오불관언!
그들을 어엿한 한 사람의 존재로 인정하지 않아서 그렇다. 그들을 존중하지 않아서 그렇고 그들의 명예를 생각하지 않아서 그렇다. '애들이 뭘 알겠어? 말을 한들 알아는 듣겠나? 애들이 다 그렇지!' 아니, 그들은 말을 하면 다 알아듣는다. 그들 또한 당당한 한 인간이고 그저 '어린 어른'일 뿐이다. 적시의 적절한 가르침을 통해 그들의 명예를 지켜주어야 한다. 괜히 욕먹게 해서는 안된다. '너 지금 누군가에게 욕을 먹고 있는 것 아니?' 그들에게 물어본 적 있나? 그들이 자기들은 그래도 괜찮다고 한 적이 있나?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결국 자식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관심이 없기 때문이고 배려가 없기 때문이고 자식의 앞날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끼고 어여삐 여기는 금쪽같은 자식이라면 가르쳐야 한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무슨 특별한 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다 아는, 알아야만 하는 그 상식과 기본을 작심하고 가르쳐야 한다.
밭에 심어놓은 콩 한 줄기도 때가 되면 거름을 주고 주위의 풀을 뽑아주고 바람에 넘어갈까 지탱할 버팀대를 세워주어야 한다. 그래야 가을에 제대로 된 콩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하물며 사람이야!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인정하고 발탁하고, 그렇게 그의 재능을 적극 사용하는 상사나 리더는 그리 많지 않다. 자기보다 잘났다는 그 자체가 기분 나쁘다, 싫다. 그래서 그들은 늘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눈을 돌린다. 그들만을 자기 옆에 둔다. C급의 리더가 B급이나 A급 사람을 자기 옆에 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조직은 결국 C급 D급으로 가득 찬다.
그러나 뛰어난 리더는 그 심리적 한계를 극복한다. 자기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알고 인정한다. 그래서 그 부족한 부분을 메꿀 방법을 찾는다. 자기보다 나은 재주를 가진 사람을 찾아서 그를 자기 옆에 두는 것이다. 역사 속의 거의 모든 성공한 리더나 영웅들은 그렇게 해서 영웅이 되었다. 나는 애초 그 리더가 C급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부분이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누구나 모든 것을 다 갖출 수는 없지 않겠나? 제갈량이나 장자방, 방통이 뛰어난 모사요 책략가였지만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주군을 위해 일한 것 아닌가? 책략에는 그들보다 못할 지는 몰라도 결국 그들을 알아보고, 그들을 자기의 신하로 쓰고 그들의 의견에 귀 기울인 것은 그 영웅들 아닌가? 그들이 자신의 모사들보다 못했다 할 수 있겠는가? 부족하면 다른 방식으로 메꾸면 되는 것이다. 넓은 마음으로 그렇게 하는 사람과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 그것이 차이를 만든다. 다른 것은 없다.
아쉽다, 좋은 점이 참 많은 이 나라 사람들이다. 그런데 유독 자식에게 살아가는 기본적 예의나 규범을 가르치는 면에서는 아주 약하다. 왜일까? 역사는 이런 면을 가지고도 이미 크게 발전한 나라와 아직은 그렇지 않은 나라들 사이의 그 간극을 유지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그들에게는 '아니,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그냥 그대로 아쉬운 대로, 부족한 상태로 둬. 그게 맞아, 그게 내 의도야!' 이런 것일까?
오늘의 시를 본다. 아버지 좋아하고 존경하지 않는 자식 없겠지만 나는 유난히 아버지와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새록새록 그립다. 아버지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고 흥분이 된다. 오늘 읽은 시도 그렇다. 나의 아버지의 생전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아버지의 그 오래된 자전거, 짐 자전거 (뒤에 짐을 실을 수 있도록 튼튼하고 비교적 큰 부분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그런 자전거. 당연 볼품은 없고 그냥 우직하고 촌스럽다). 이제는 다 낡아빠진, 그래서 헛간 한 켠에 놓여있는 그 자전거. 그 자전거로 아버지는 일을 나가고 돈을 벌고, 때로는 우리들을 태우고 다녔다. 감꽃 떨어지는 소리가 또 한 해의 지나감을 알리지만 나는 그저 '아, 아버지와의 그 아름다운 추억들이 또 한 해 나이를 먹는구나, 아버지의 저 오래된 자전거는 그만큼 더 낡고 더 두꺼운 먼지를 뒤집어쓰겠구나' 그런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든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이다. 브런치에 내가 열심히, 진심을 다해 이리 글을 쓰는 것도 아들에게 나의 흔적을 하나라도 더 남기고 싶어서이다. 내가 아는 거의 모든 것은 그에게 다 가르쳤다, 나는 그리 믿는다. 내가 가진 아주 작은 유형적인 그 무엇이 있었다면 그것들 또한 이미 다 넘겨주었다. 그와의 아름다운 추억은 그와 내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사실 이제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가치 있는 것들은 거의 없다. 그래서 이런 내 삶의 자취라도 조금은 더 남기고 싶다. 유튜브 채널에 사람들 거의 보지 않는 철학 프로그램을 내 목소리로 꾸역꾸역 녹음하고 그것들을 끈기 있게 올리는 이유도 그것이다. 혹시 아나, 언젠가 아버지의 목소리가 듣고 싶을지. 또 언젠가는 아버지가 남긴 글을 읽고 싶을지, 자기와의 에피소드가 곳곳에 들어있는 그런 글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