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적의 자연, 끝이 있는 우리네 삶. 빅토르 위고 '지는 해'
발레가 원래 남자를 위한 춤인 것 아시지요? 발레는 15세기 이탈리아에서 탄생되었지요. 귀족들 앞에서 남자 무용수들이 추던 춤이에요. 1553년 이태리에서 프랑스로 전파되지요. 루이 14세는 7살 때부터 27세 때까지 20년 가까이 매일 두 시간씩 발레를 연습했다고 합니다. 그 자신 직접 무대에서 공연하기도 했지요.
우리가 그를 '태양왕'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발레와 관련이 있습니다. 1653년 그가 직접 '밤의 발레'라는 발레 공연에 배우로 등장해서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지극히 의도적이고 상징적인 역할을 맡은 후부터입니다. '프롱드의 난' 이후 실추된 왕실의 권위와 왕권을 강화시킬 목적에서지요. 귀족들과 시민들에게 위대한 왕의 승리자로서의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이 발레극은 기획되었던 겁니다.
실제로 대단한 인물이기는 했던가 봐요. 프랑스 역대 왕들 중에 '대왕' (le Grand)의 칭호를 받은 왕은 그와 그의 할아버지 앙리 4세 단 둘 뿐이었다고 하니까요. 이런 기록이 있어요 - '루이 14세는 영웅 같은 자태에 늘 위엄이 배어있어서, 그의 작은 몸짓도 오만함이 아닌 장중함으로 보였다. 그 완벽한 표정과 위엄 가득한 분위기는 유명 조각가가 모델로 삼고 싶을 정도였고,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우아함과 매력을 지녔다' (루이 14세, 루이 15세 때의 인물, 방대한 양의 회고록으로 유명한 생시몽 공작의 기록. 나무위키에서 옮겨옴)
우리가 발레하면 러시아를 먼저 떠올리지만 이처럼 발레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고 프랑스를 거쳐 러시아로 옮겨갑니다. 독일의 한 발레단이 러시아 황궁에서 처음 공연한 이후, 발레의 매력에 빠진 러시아 황제들은 유럽의 발레단을 끊임없이 초청했습니다. 심지어 군사 교육 과정의 하나로도 발레를 활용했습니다. 이후 그 유명한 볼쇼이 극장 (1776년, 모스크바), 마린스키 극장 (1783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이 세워지면서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됩니다. 그 뒤 유럽에서 발레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유럽의 무용수와 안무가들이 대거 러시아로 건너와 활동했습니다. 오늘날의 발레 강국 러시아의 원동력이 된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몇 년 전부터 제가 뒤늦게 깊은 관심을 갖게 된 발레 얘기를 슬쩍 여기에 집어넣었습니다. 루이 14세 태양왕 얘기를 빌미로 해서요. '빌미'를 타이핑 하다 보니 문득 아주 오래 전 영국에서 재미있게 보았던 발레 관련 영화 '빌리 엘리엇'이 생각납니다.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했던 말 '발레는 남자들이 하는 것이 아니야!'가 기억납니다. 아마 그 아버지는 그때, 역사적으로 발레는 원래 남자들만을 위한 춤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겠지요? 뭐 남자가 그런 춤을, 이런 정도의 말과 의도였을 겁니다, 아마도. 그러던 분이 아들의 공연에 처음 초대받았을 때의 그 모습이란! 설레고 그저 자랑스럽고, 가슴 벅차하던 시골 광부 아버지의 그 얼굴을 지금도 저는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어느 분야에서든 최고는, 완벽함의 성취는 아름답고 경이롭습니다!
저는 우크라이나 태생의 러시아 발레리나 율리아나 로파트키나를 특히나 좋아합니다. 그녀가 추는 짧은 발레 '죽음을 맞는 백조' (The Dying Swan)를 처음 본 그때를 잊지 못합니다. 발레는 발로만 추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 오랜 시간 그 이름을 날렸지요. 지금은 어느덧 52세 중년의 나이네요. 예쁜 딸을 하나 두었지요.
대학 시절 어느 날 친구 녀석이 저녁에 학교에서 유명한 발레공연이 있다고, 함께 보러 가자고 했어요. 그때 제가 그에게 '그걸 무슨 재미로 보냐? 너나 봐라.' 이렇게 핀잔을 준 기억이 납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선하고 여린 마음의 친구였지요. 저와는 아주 친했구요. 대학교수를 하다가 아까운 나이에 먼저 다른 세상으로 갔어요. 그때 생각을 하면 늘 아쉽고 안타까워요. 함께 그 공연을 보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래서 요즘 더 열심히, 열정적으로 발레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지난 시간들에 대한 후회, 허탈한 보상의 심리, 아련한 옛 기억의 잔상, 나이 들어감의 실증적 사례...
제 일상 속에서의 태양의 의미요? 거의 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요소 아닐까요? 해가 뜨고 해가 지고 그렇게 밤이 오고 낮이 오고 (물론 지구의 자전도 그 과정에서 한 역할을 하지만), 사계절의 변화가 일어나고 (지구의 공전 조연) 무더운 여름이 오고 추운 겨울이 닥치고. 내가 입는 옷이 달라지고 주거의 형태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지금처럼 무더위를 피해 다른 나라에 와있는 경우도 생기고.
과일이 익어가고 벼가 자라고 그렇게 풍년과 기근이 생기고, 지구 온난화와 탄소 배출량의 강제적 통제 이런 전 세계적 과제도 생겨나고. 일조량에 따른 한 나라의 문화와 섭생의 형태, 사람들의 성격도 결정짓고 변화시키는 그런 막강한 존재. 'Sol Invictus' (무적의 태양)라는 말이 그냥 생긴 것은 아니지요? 태양신의 그 강력한 존재의 힘이라니! '당신은 나의 태양, 나의 빛나는 햇빛' 이런 유행가 가사도 여전히 흔하고 흔하잖아요?
젊은 시절에는 비를 그렇게 좋아했습니다. 비 내리는 날에는 누구와 무엇을 해도 마냥 좋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가도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그냥 그 다음 수업은 빼먹고 종로로 향했습니다. 근처 다른 학교에서 공부하는 친구 녀석도 그리로 나옵니다. 한참을 걷다가 발이 다 젖고 옷이 다 젖으면, 옷을 말린다는 핑계로 작은 선술집에 들어가 파전과 막걸리를 시킵니다. 그날은 그것으로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했지요. 그랬던 시절도 있습니다.
나이 드니 다 달라지네요. 우선 비가 오면 일상이 불편해요. 산책도 잘 못하게 되고 마트에 갈 때도 젖어야 하고. 무엇보다 햇볕이 없어지니 사람이 괜히 우울해져요. 외로움의 크기는 더욱 증폭되지요. 센 바람이라도 불고 날이라도 좀 추운 늦가을이면 코카서스 산맥에서 밀려오는 살을 파고드는 매서운 냉기가 뼈를 시리게 합니다. 추억의 그 비가 어느새 나를 불편하게 하고 민폐를 끼치는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어요. 더 이상 낭만은 없지요. 현실과 편리함에 대한 익숙함만 남았지요. 늙는다는 의미의 또 다른 형태인 것 같기도 해요. 그저 씁쓸하지요?
태양보다는 왠지 달님이 더 매력적인 존재로 다가오는 경우도 많지요? 태양은 지구도 그 주위를 도는 여러 개의 행성을 거느린 존재이고 달은 지구를 도는 지구의 위성. 달은 태양의 존재로 인해 비로소 그 빛이 있는 것이고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지요?
우리는 늘 약한 자의 편일까요? 아니면 맨눈으로 직접 바라볼 수 있어서일까요? 근본적으로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태양과는 달리, 어쩌면 언젠가는 우리가 가서 살 수도 있을 것 같은 그 희망 때문일까요? 참, 그래서 옥토끼는 이미 그곳에 살고 있나요?
벌써 아주 오랜 시간 서로 지구 다른 편에 살고 있는 저와 아들, 저는 그래서 달을 보면서 아들과 대화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금 시차를 두고 저 달을 보기는 하겠지만 아무튼 아들 녀석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달을 볼 것이니 그 순간을 제가 낚아채는 것이지요. 그래서 보름달이 환하게 제 침대방을 비추는 새벽 시간을 늘 기다리고 좋아합니다. 달님도 그것을 아는지 언제나 잊지 않고 자는 저를 깨우지요, 일어나라고 내가 왔다고, 아들과 대화하라고!
이제 오늘의 시를 봅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아름다운 시입니다. 늘 참으로 깊은 시의 세계를 보여준다, 많이 감탄합니다. 시어 하나하나가 보석처럼 빛나고 아름답습니다. 아마 불어로 읽었으면 더욱 그랬을 겁니다. 제가 불어를 못하는 것이 그저 아쉽기만 합니다.
지는 태양들 (Setting Suns)
- 빅토르 위고
오늘 저녁 구름 속으로 해는 졌다.
내일, 분명 폭풍우가 올 것이다, 저녁에도, 그리고
또 밤에도 ;
그러고 나서 새벽은 검은 구름들을 몰아낼 것이다 ;
그 다음의 여러 밤, 그리고 또 다시 여러 낮,
소멸의 시간의 여러 발자취들!
이 모든 날들은 지나가리라 ; 그들은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무리 지어
바다의 얼굴 위로, 산들의 얼굴 넘어,
은빛 강물을 지나, 계절이 순환하는 숲 너머로
우리가 사랑했던 죽은 이들을 위한 멀리서 들려오는 성가처럼 그렇게.
그리고 주름진 그러나 늙지는 않은 물의 얼굴과,
산들의 이마와,
숲의 상록수는
그들에게 그들의 젊음을 다시 돌려줄 것이다 :
전원의 강물은
여러 언덕에서 여러 바다까지 영원히 쉬지 않고 그 흐름을 이어간다.
그러나 나는, 매일매일 나의 머리를 더욱더 낮추고,
나는 간다, 그리고, 마냥 유쾌한 태양 아래서 여전히 냉정을 잃지 않은 채,
나는 곧 떠날 것이다, 가득한 찬사 속에서,
이 거대한 그리고 눈을 흐리게 하는 세상은 나의 떠남을 결코 섭섭해하지도
아니 알아채지도 못하겠지만.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 영어 번역본을 바탕으로>
# 프롱드의 난 -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에 반항하는 귀족 세력이 일으킨 최후의 내란. 프롱드 (La Fronde)는 당시 파리의 군중이 근처 창문의 유리를 깨기 위해 사용한 '새총'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 당시 점점 강화되고 있는 왕권을 견제하려는 시도의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