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끼고 어여삐 여기는 마음, 배려와 존중. 안도현 '사랑'
화성은 지구에서 오갈 수 있는 태양계 중에서 제한적이나마 대기가 있고 물의 존재 가능성도 가장 높은 행성이다. 지구와 같은 암석 환경으로 태양계에서 지구와 가장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일 수 있다고 보는 이유다.
그런데 때마침 분명 화성에서 왔음에 틀임없어 보이는 남자가 여기 이 지구에 있다. 아무리 뜯어봐도 이곳 지구 출신은 아니다. 우리가 지금껏 보아온 이 지구의 남자들과는 전혀 다른 행동 양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의 방식도 그렇다. 특히 남녀 사이의 관계의 설정과 유지에 있어 탁월한 '기술과 실력'을 보인다. 이제까지 원조 지구인 남자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외양은 그저 영락없는 지구인이다.
여성들은 그의 존재를 금새 알아본다. 마치 그의 가슴에 '나는 화성에서 온 사람이오'하고 써붙이고 있는 것처럼 그리 쉽게 알아본다. 가슴에 '주홍글자'를 달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닌데? 반면 남자들은 그가 지구 밖에서 온 존재라는 점을 전혀 알지 못한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그저 여자의 그 동물적인 '촉'에 의한 것이라 하기에는 왠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분명 뭔가가 있다, 그에게는. 여자들이 보는 그의 말과 행동과 사고의 방식에는. 수많은 지구 출신 남자들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아주 많이. 여자들은 그것을 안다, 그 다름을. 그런데 과연 뭐가 다른 것일까? 왜 다른 것일까? 그저 단순한 기술과 지식일까 아니면 근본적 성정의 문제일까?
예전에 언젠가 아내가 내게 읽어보라고 준 책이 하나 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다. 물론 열심히, 여러 번 읽었다. 책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구의 명이라고! 흥미로운 책이라는 느낌이 지금도 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그 책에서 말하는 조언과 팁들에 의한 사고와 행동) 해결될 남녀 사이의 문제 같았으면 그 책 이전에라도 진즉에 해결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냥 열심히 애쓴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사실 금성에서 온 여자는 없다. 금성은 섭씨 464도에 달하는 표면 온도, 대기의 약 96%가 이산화탄소로 구성되어 있고 황산 구름이 뒤덮고 있는 유독성 환경, 대기압이 지구의 92배에 달하는 (마치 사람이 수심 800 미터 깊이에서 받는 압력과 비슷) 극한의 상황으로, 사람은 절대로 살 수가 없다. 지옥과 같은 곳이라고 하면 적절하려나? 그러니 누가 주위에서, 자기는 금성에서 온 여자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자기는 서울의 어디 이름 많이 알려진 여자대학 출신이라고 말하는 것처럼)라고 한다면 그건 믿지 마시기를. 과학적으로 100% 거짓의 주장이니까.
화성에서 온 그 남자의 많은 것들이 지구 여성들의 마음과 눈길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그를 그리 만든 것일까?
하나, 우선 그 남자가 살던 화성에는 지구 여성들과 같은 그런 존재들이 없었다. 그러니 지구에서 만나게 되는 거의 모든 여자들이 그에게는 신기하고 신비로운 이성의 존재들이다. 당연 잘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겠나? 그리고 실제로 그는 그런 존재들과의 그 귀한 만남을 늘 감사한다. 자기를 이 지구로 보낸 그 절대자에게도.
마음이 다르면 행동이 다르다. '심생즉 종종법생', 마음에서 생겨나면 모든 것이 생겨난다. 뭐가 아깝고 무엇인들 귀찮을까? 이 미인들이 그저 자신을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그야말로 황송한 마음이다.
둘, 사실 어려서 화성에 있을 때 그는 그리 배웠다. 자신이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의 자연스러운 실천이다. 그런데 그런 그의 마음과 행동이, 우리 지구 여성들에게는 신선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늘 자신들을 존중하는 태도. 바로 눈에 그대로 보인다 매번. 그는 지구의 여성들, 그들의 존재 자체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만남의 모든 과정에서 계산적인 생각이나 행동은 전혀 없다. 그 순수함이 그대로 보이고 느껴진다. 그녀들이 지금까지 이 지구에서 익숙하게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과는 전혀 다르다.
셋, 예의가 바르다, 왠지 우아하고 고상한 기품이 엿보인다. 사람이 가볍지가 않다 언행 모두가. 그냥 믿음이 간다. 옛말에 '대인호변 미점유부'라고 했다. 진정으로 큰 인물, 대인이 한번 마음 먹고 하는 변화는 가을철 호랑이가 그 털을 바꾸는 것과 같아서 굳이 그 결과를 점을 치지 않더라도 미쁨이 있다 <그저 믿음이 가고 이뻐 보여서 보는 사람이 기쁨이 느껴진다>, 뭐 그런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귀한 아들에게서 늘 느끼는 감정이다. '미쁨이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지구 여성들의 그 촉, 그 눈썰미, 그 본능적 눈치, 아마도 우리 태양계 전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 아닌가? 이미 다 알려진 하나의 '공리' 아닌가? 그런데 그녀들의 눈에 그리 보인다면 틀림이 없는 것이지?
넷, 우연히 알게 된 지구 밖 출신이라는 낯섦과 호기심이 가져오는 의외의 긍정적인 결과. 원래 지구 여자들이 새로운 것 ('신상'을 포함해서), 남과 다른 그 무엇, 나만의 그것을 유난히 찾고 좋아하지 않던가? 그런 지구 여성들에게 화성에서 온 멋진 존재로서의 그들은 선호 1순위일 수 밖에. 결혼 정보회사든 온라인 데이팅 앱이든, 무조건 선호도 1위! 몇 달 대기는 기본이고, 사람을 통한 연결의 경우에는 웃돈의 거마비 (원래의 뜻은 수레와 말을 타는 데 들어가는 비용, 요즘의 정상적인 교통비다)는 보통이고. 아무튼 인기 짱의 존재들이다.
다섯, 어쩌면 그녀들의 무의식 속에서도 여전히 발현하는 '미지의 도피처'에 대한 동경? 지구인 남자와 지구인 여자, 서로 뻔히 다 안다. 서로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버려서 그것이 오히려 탈이다. 무릇 부부 사이에도 어느 정도의 미공개의 영역은 존재하는 것이 그 관계의 영속성과 상호 신비감, 호기심의 잔존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을!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 그와는 다시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흥분과 희망의 기쁨?
나를 아는 사람도 없고 내가 아는 사람도 없는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느끼는 묘한 안정감? 예이츠가 이래서 평생 신비주의에 빠져서 살았나?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라에서 '상대적 우위성'을 가지고 영어를 쓸 때의 그 통쾌함과 마음의 평화? 이 나라 그들보다는 내 영어가 훨씬 나으니까! '혹시 영어 하시나요? (Do you speak English?)'를 말할 때의 그 은근한 자부심과 쾌감?
지구인 여성의 홈 그라운드, 외계 행성에서 온 어웨이 경기의 남자. 서로가 각기 느끼는 자기만의 만족과 우위성? 아무튼!
오늘의 시를 본다.
내게는 죄다 궁금함 투성이였다. 한번 시인을 만나 터놓고 얘기 나누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그런 난해한 시였다, 내게는 그랬다. 그래서 그냥 내 마음대로 해석한다. 그것이 시가 주는 자유다. 내가 시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결정적 이유다 - 그저 내 마음 가는 대로, 그리 새기고 느끼고 받아들이면 되는 고마운 존재.
과연 어떻게 되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죄짓는 일이 되는 걸까? 사랑한 것이 죄라? 그녀를 힘들게 해서? 그녀에게 괜히 부담만을 주어서? 겨우 나 같은 존재가 감히 그녀를 사랑해서? 그래서 그것밖에 주지 못해서?
아니면 애초 넘보지 못할 사랑으로 내가 나 자신을 힘들게 한 죄? 그것이 죄?
사랑으로 인한 못 견딜 두려움은 또 무엇일까? 그녀가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을까 그것이 두려운 것일까? 일단 어찌어찌 시작된 사랑, 중간에 또 어찌어찌 깨져버릴까 그것이 두려운 것일까? 버거움에 결국은 언젠가 놓게 될 그 손, 그 상황이 벌써부터 두려운 것인가?
사랑으로, 그 사랑 때문에 내가 쓰러져 죽으면서도 끝내 그대를 진정 사랑했었노라고 말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치사한 상투어의 남발 같아서? 그렇게 나의 이 힘들었던 사랑을 격하시키고 싶지는 않아서? 그나마 내가 지킬 수 있는 자존심? 그녀에게 마음의 상처를 줄까 봐?
그저 그녀에 대한 그리움? 그렇게 소금처럼, 밤새 내려 쌓인 함박눈처럼 그리 그리움만 나의 무덤에는 남아있게? 그녀는 그 소금꽃을 보고 그것이 그녀에 대한 나의 그리움임을 알까? 그래도 내가 조금의 힌트는 주고 가야 하지 않았을까? 아니, 그 모든 것 또한 그저 무덤 속 나의 몫이라고?
그런 사랑을 왜? 나는 하지 않으련다, 내내 죄짓는 일이 될까 노심초사, 사랑으로 인한 두려움, 가슴을 쥐어뜯을 만큼 그렇게 아프고 고통스러운, 마지막 순간에조차 진정 사랑했었다는 말도 하지 못할 그런 사랑이라면, 그리움이 염전의 하얀 소금처럼 간밤에 내려쌓인 흰눈처럼 그리 무덤을 뚫고 나와 허옇게 쌓이는 그런 사랑이라면!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 '아름다운 달 오월에'서 처럼 그래도 내 가슴 깊은 곳의 그리움과 소망을 고백이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나는 하련다, 모든 새들이 지저귀는 아름다운 달 오월에! 이 시인의 이처럼 아픈 사랑은 나는 결코 하지 않으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