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를 따먹은 것, 그리 큰 잘못일까

- 나약한 존재, 유혹과 실수, 그러나 선한 존재. 임길택 '죄'

by 가을에 내리는 눈

프란치스꼬 (프란치스쿠스, Franciscus), 어린 시절 내 카톨릭 본명 (세례명)이었다. 나의 유년시절 나는 어머니 아버지를 따라, 그리고 형제들을 따라 열심히 성당엘 다녔다. 그것이 어머니를 기쁘게 하는 아주 손쉬운 방법이었고, 신부님과 수녀님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었고 친구들과의 만남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중학교 어느 때 나는 '냉담자'가 되었다.


나 자신 복사 (acolyte, 미사 때 옆에서 신부님을 돕는 소년, altar boy) 활동도 오래 했다. 그런데 그 시절 (물론 지금도 여전히) 내가 궁금한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정말 그렇게 큰 잘못인가? 그에 대한 비난 가능성은? 둘, 그놈의 '예정설' - 오직 선택받은 사람들만 구원을 받고 나머지 사람들은 아예 배척받고 단죄받는다는 기독교계의 오래된 교리.


종교 얘기, 정치 얘기는 다른 사람과 하지 말아라, 특히 네게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과는. 나 어릴 때 아버지가 늘 내게 강조하신 말이다. 그 가르침을 지금껏 잘 따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의 이 글은?


결코 종교적 얘기/그 어떤 형태나 의도의 논쟁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린다. 그저 나이 든 어느 한 개인의 조심스러운 문학적, 픽션적 접근일 뿐이다. 나는 종교에 대해 잘 모른다. 그 세계에 깊이 발을 들여놓은 상태도 물론 아니다. 그러니 충분히 객관적인 스탠스를 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느 쪽으로 경도될 이유나 동기는 없다. 그럴 의욕이나 능력 또한 없다.


그저 그 오랜 세월 궁금했던 사항 하나에 대해 이제야 한번 지극히 개인적인 '썰'을 늘어놓는 것일 뿐. 여기는 우리네 브런치 구독자님들과 함께 하는 너그러운 사유와 대화의 장이니까! 바로 들어간다.


하나, 과연 신은 아담과 이브가 결국에는 그 선악과를 따먹을 것임을 몰랐을까?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전지전능 올 마이티의 그 위대한 존재가? 그렇다면 그것 자체가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아니 그렇다고? 몰랐다고 그 뻔한 결과를? 그래? 아 이거 큰일인걸?"


그분은 이미 아셨다. 어쩌면 그 미리 앎을 토대로 그 후의 모든 단계를 이미 구상하셨고 세세한 부분까지 완성하셨을 것이다. 나는 그리 본다, 그리 믿는다.


둘, 그런데 그 선악과는 왜 따먹으면 안 되는 것일까? 그들이 '드디어' 선과 악을 알게 되면 어떤 큰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러면 신은 그들이 영영 그렇게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 같은 존재'로 당신 옆에 있기를 바라신 것일까? 그렇다고? 에이!


당신이 그리 사랑하시고 좋아하셨다면서? 왜, 조금 두려운 면이 있었을까? 살짝 밀려오는 미래 경쟁의 가능성에 대한 의식? 그렇다고 바보스러운 자식을 옆에 두고 싶은 부모가 과연 있을까? 속세 이 세상에도 없을 것인데 그 천상의 세계에는 그런 존재가 있을 수도 있다고? 그 또한 그분에 대한 모독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분은 이미 아셨다. 어쩌면 그분 자신이 그렇게 몰고 갔을 수도 있다. 그것이 당신의 구상이고 그것이 순리임을 이미 아셨으니까. 당연 그런 위대한 분이니까!


그분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이 언제까지나 그저 그렇게 바보같은 '무지'의 존재로 남게 버려둘 분이 결코 아니다. 내가 이해하는 그분은 그렇다.


셋, 정말 그들이 그 선악과 따먹는 것을 막고 싶었으면 열 가지도 넘는 방법이 있었다. 그분은 왜 그중 하나도 쓰지 않은 것일까? 우선 선악과 나무를 그들이 보지 못하는 곳으로 멀찍이 떨어뜨려 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들이 뻔히 볼 수 있는 코앞에 두셨다. 왜?


당분간, 아니 어쩌면 영원히 그 열매를 맺지 않게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건 왜? 내 사랑하는 아이들을 보호하고 싶으니까. 본시 선하고 선한 존재인 그들에게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위험성이 있으니까. 몸은 커도 여전히 아이들이니까. 이 사랑스러운 놈들과 비교할 때 그까짓 선악과 나무? 그야말로 낫씽!


우주 만물은 모두 신이 만드신 것이니 사탄 또한 신의 창조물이다. 물론 애초 착한 천사로 만드셨다고 한다. 신은 언제나 어디서나 그의 머리 저 위에 있다. 그는 여전히 신의 뜻과 의도 속에서 움직이는 철저히 종속적인 존재다. 결국은 인간이 신의 뜻을 따르게 하는 그 과제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신 그분의 큰 뜻 안에서, 그분의 명시적 묵시적 지시에 의해.


유혹, 충동질, 비난과 고자질, 툴툴거리고 슬쩍 우회적인 방식으로 압력을 가하고.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사탄 그는 인간을 최종적으로 정죄/단죄하지는 못 한다. 그럴 능력도 그런 발언권도 그에 대한 결정권도 없다. 물론 강제로 인간이 죄를 짖게 만들 수도 없다. 힘으로 밀어붙여서 죄를 범하게 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결국은 인간이 한다.


신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해서 사탄이 인간에게 위해를 가할 수는 없다. 그는 그저 인간을 유혹해서 인간 스스로의 의사와 행동으로 죄를 짓게 하는 것밖에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아담과 이브 그들이 절대 선악과를 먹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분의 절대적 뜻이었다면 사탄은 감히 그들을 유혹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머리가 아주 좋은 존재다. 어쩌면 착한 천사들보다 힘이나 머리에서 훨씬 더 뛰어난 존재일 것이다. 그런데 그는 감히 이브를 유혹한다, 끈질기게, 그 과일을 따먹어 보도록.


81억 (2024년 기준) 인류 중의 하나를 집적거리는 것도 아니고 그 귀하고 귀한 최초의 인간 달랑 두 명을 두고 감히 그런 짓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고? 사탄은 그 정도의 바보가 아니다.


이미 그의 그런 객기나 위험성을 인식한 신은 그에게 주의를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야 너, 하지마! 알지 나의 뜻? 그러나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이 대목에서 성경의 욥기 첫 머리 부분이 기억난다. 어느 날 신과 천사들, 사탄이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그후 욥에게 일어나는 48년간의 그 악몽과도 같은 비극적 사건들과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모두 이 자리에서 '결정'된 것이었다. 물론 그 뒤 한 번 더 비슷한 미팅에서.


신의 내락이 없었다면 욥에게도, 아담과 이브에게도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신이시여, "그때 나는 정말 아무 것도 몰랐느니라" 그리 말씀 하시지는 마시라! 물론 결코 그러지 않으시겠지만.


넷,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지 않고 그래서 그렇게 선과 악도 모르는 상태로, 지금까지처럼 신을 기쁘게 만족시키면서 그렇게 그 옆에서 영원토록 살았다면? 그 다음은 어쩔 것인데? 그 늘어나는 인류, 그들이 사는 공간, 그들의 먹거리, 뭐 전지전능의 창조주이시니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 그들의 자손 또 그네들의 자손이 그리 내내 놀면서 그리 살기를 원했다고, 신께서? 신 그분이? 정말?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영원한 무위도식이 신의 의도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 한 번 그저 평범한 우리 인간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당신은 당신의 자식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나? 분명 아닐 것이다. 나보다 더 잘 되기를, 나를 능가하고 그렇게 나를 기쁘게 하는 존재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이 세상 모든 부모가 그럴 것이다. 하물며 신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분에게는 그분의 계획이 있었다. 그리고 늘 그러셨듯이 당신의 계획과 구상을 그대로 실현하신 것이다. 그분의 뜻을, 그 실행의 의지를 감히 누가 막을 수 있겠나? 노우바디!


다섯, 그래서? 선악과를 따먹은 그들, 화가 나신 신, 그들을 쫓아내고 그들 각각에게 벌을 주신다. 그런데 그게 과연 아담과 이브 그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징벌적 결과일까?


심하게 더해진 출산의 고통이 없이 자식을 낳는 것이 이브에게, 그리고 그 이후의 여성들에게 과연 좋은 것이었을까? 나는 감히 그것이야말로 (극심한 출산의 고통) 신이 주신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고통 (물론 나는 경험해 볼 기회가 원천적으로 없었으니 정확한 고통의 크기는 모른다, 그러나 엄청난 고통일 것임은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나 또한 바보는 아니니까!) 없이 얻어진 자식들이었다면 아마도 오늘날 인류의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 것이다, 부정적인 방향으로.


땅을 갈고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도록, 아담에게 그런 '가혹한' 벌을 주셨다고? 아니! 그렇지 않았다면 아담은 그가 가정 안에서 그리고 사회 속에서 누리게 되었던 많은 것들을 손에 넣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머무르고 있는 이 나라의 살림하는 남자들/전업주부로서의 아버지들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재확인했다. 자신이 흘린 땀과 고통이 결국은 그에게 힘과 권력을 가져다 준다. 만고의 진리다. 자신이 이룬 만큼 주장한다, 그것이 인간이다.


여섯, 정말 아담과 이브에게 화가 심하게 난 것이었다면 부끄러움이라는것을 알게 된 그들에게 직접 옷을 만들어 입히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쫓아낸 에덴의 동산 입구에 불의 천사를 세워 그들이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 일부러 억지 역정을 내시며 너는 당장 공부하러 가야한다고, 엄마 옆에 있으면 안 된다고 내 등을 떠미시던 학창시절 내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도 나의 어머니도, 왜 그러는 것인지 왜 그래야만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신은? 굳이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가, 그들이 성경 학자들이든 원시 혹은 초기 기독교 사회의 사제들이든, 분명 지극히 이기적 동기를 가진 그 어떤 세력들의 의도적 또는 미필적 고의에 따른 왜곡과 편집, 오해 가득한 해석이 있었다고 나는 그리 생각한다. 분명 위대한 조물주 그분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나는 그런 강한 회의와 의심의 단초를 가지고 있다.


일곱, 소위 지겹게 읊어대는 '원죄'에 관한 부분이다. 그래, 그렇다고 하자.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담과 이브의 문제일 뿐이다. 연좌제도 이런 연좌제가 없다. 그때가 도대체 언제적 얘기인데 아직도 그들의 죄를 우리가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그래서 우리도 중죄인이라고? 그래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라고?


아니다, 그건 아니다. 그건 그들의 죄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의 죄는 아니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따로 있다. 그분이 짊어지고 간 인류의 죄는 그 죄가 아니다.


실제로 이슬람교에서는 이런 '원죄'는 없다고 단언한다. 나의 이해가 맞다면 이런 논지였다. 우선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창조주와 아담/이브 그들 사이의. 그리고 신은 이미 그들을 너그럽게 용서했다. 그래서 오늘날 인류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들의 이런 해석이 마음에 든다. 논리적이고 상식에도 부합한다. 동방 정교나 유대교측에서도 더 이상 원죄에 대해서는 그리 크게 부각시키지 않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여덟, 비난 가능성에 관하여. 아담과 이브 그들은 신이 하지 말라고 하는 행동을 하고 있음은 알았을 것이다. 적어도 그런 정도의 지적 능력 혹은 판단력은 그들에게도 주어졌을 것이니까. 하지만 그런 식으로 신의 그 명령을 어긴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관한 판단이나 이해는 없었을 것이다. 신은 그들에게 '아직' 그런 능력을 주지는 않은 상태니까.


몸집 큰 아이, 어린아이라고 보면 크게 틀림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사고와 판단의 영역에 있어서는.그들에게는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더욱 없었다. 나는 이런 점을 근거로 그때 그들 또한 '피해자'였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법에서는 형사 미성년자라는 개념이 있다. 14세 미만의 자는 어떤 법률에 위반되는 행위를 한 경우에도 형법상 아예 범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당연 처벌할 수 없다. 물론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경우에는 그럼에도 별도의 법률에 따른 보호처분에 의해 최대 2년간 소년원에 있게 할 수는 있다. 결국 10세 미만의 자는 그 어떤 법률적 처벌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성경에 나오는, 선악과를 먹기 이전의 아담과 이브는 오늘날의 10세 미만의 자와 같거나 오히려 그보다 더 낮은 단계의 선과 악에 대한 개념과 이해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창조주가 아예 그런 능력 자체를 주지 않았으니까.


아홉, 이와 연결지어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이유 혹은 동기도 함께 보아야 한다. 아담이 이브가 권하는 선악과를 먹은 이유까지 포함해서. 사탄이 말한 '선과 악을 알게 된다, 하느님처럼'. 이 말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들이 알았을까? 그때의 그들로서는 결코 알 수가 없다, 그게 구체적으로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그들에게 하느님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앉고 싶은 욕망이나 의도가 있었겠나? 명확히 가시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불순종의 고의나 중과실이 있었겠나? 아마도 미필적 고의 수준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한 것이다, 해 본 것이다.


그 당시의 그들은 그들에게, 그리고 이 우주에 있어 하느님이 어떤 의미를 갖는 존재인가에 대한 인식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늘 그들과 함께 하는 든든한 존재, 고마운 존재, 자신들의 보호자, 모든 것을 주는 존재. 그것이 다였을 것이다.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그들은 알 수 없었다.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드디어 그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게 되고 구분할 수 있게 된다는 사탄의 말은 얼마나 어려운 개념인가?


그들은 그저 어린아이의 본능적, 충동적 호기심을 가졌을 뿐이다. 벽의 콘센트에 절대 젓가락이나 그런 것을 넣지 말라고, 넣으면 찌릿 전기가 통한다고, 그러면 위험하다고, 부모의 이런 얘기를 어린아이가 단 한 마디라도 제대로 이해하겠나? 결국은 호기심에 쇠젓가락을 넣어 본다. 그러고는 이내 울음을 터뜨린다. 다시는 하지 않는다.


요즘의 생각 있는 부모 같으면 미리 다른 보호장치를 해둔다. 어린아이가 자신들의 말을 기억하고 그 위험성을 판단한 후 자유의지로, 결국 그런 위험한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그렇게 '나이브하게' 방관하지 않는다.


신의 말을 어기면서도 자신들의 그 행동이 신의 명령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동이라는 것 자체도 크게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신과 전문의/심리학자/범죄 심리학자들이 마주 앉아 이런 부분을 두고 의견을 교환하고 연구를 했으면 좋겠다. 아마도 이미 분명 어딘가에 그런 연구와 분석의 결과가 있을 것이다.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사건에 대한 정신과적 그리고 범죄 심리학적 고찰'이라는 제목으로. 나는 아직 보지는 못했다.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따로 있다. 성경에 관한, 종교에 관한 나의 문외한으로서의 개똥철학을 늘어놓자는 것이 결코 아님은 이미 말씀드렸다.


왜곡의 치명적 위험성에 대해 언급하고 싶었다. 침소봉대가 가져오는 해악을 말하고 싶었다. 그것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든, 감정적 판단의 관성적 위험성이든 우리는 분리해서 판단하고 명확히 그 사안별로 구분해서 정죄하는 습관을 기를 필요가 있다. 그저 도매금으로 덩달아 넘겨지는 억울함은 면하게 해 주어야 한다.


가족 사이의 일에서 특히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난다. 나의 아버지는 당신 나이 들어 갖게 된 나를 (당신의 나이 43세 때) 유난히 예뻐하셨다. 나도 알고 형들도 알고 어머니도 아신다. 그러나 그들 모두 이해했다. 고맙게 생각한다. 물론 눈치껏 행동한 나의 처신 또한 그런 용인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일부러 나를 혼내는 일이 많았다. 당연 어머니는 언제나 형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어린 나도 그때의 정치적 역학 구도를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에 대한 불만도 형들에 대한 불만도 없었다. 어떤 때는 집 대문 밖에서 몇 시간을 서성거리며 퇴근할 아버지를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나는 나의 작은 불만과 아쉬움, 서운한 마음을 달랬다. 아버지는 정말 신처럼 그 모든 것을 다 꿰뚫어 보셨다.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셨다. 고마운 분이다.


선악과 얘기는 그만 하련다. 바쁘고 바쁜 세상, 모든 분들이 이 글의 모든 부분을 상세히 읽을 여유는 없을 것이다. 이해한다. 하지만 혹시 어느 고마운 독자가 행간을 통해 나의 선한 의도와 글을 쓴 취지를 알아보신다면, 그리고 살짝 공감까지 하신다면 내게는 더없는 기쁨이 될 것이다.


건방진 얘기로 들릴까 두렵지만 나는 누군가 다른 이를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그것이 제일 중요한 일차적 목적은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나를 위해 브런치에 글을 쓴다. 내 묵상과 사유의 흔적을 글로 남기기 위해 그리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아들이 언젠가 아비가 생각날 때, 이 사이트를 통해 저장되어 있는 글을 꺼내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오랜 세월 내 마음에 품고 있었던 의문과 궁금증, 그 답답함을 오늘 많이 풀었다. 고마운 일이다.


시를 본다. 무엇이 죄인지를 아주 간단하게, 단순하게 설명한다.


조물주가 창조한 자연의 이치와 섭리에 따라 그저 그리 사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시인은 그렇게 이시를 시작한다. 새들이 살기 위해 벌레를 잡아먹는 것,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 그건 결코 죄가 아니라고.


그러나 어린 내가 단지 재미로 거미를 잡고 잠자리를 잡는 것, 그건 죄라고 시인의 할아버지는 말한다. 거미가 잠자리를 잡아먹는 것, 물 위의 긴 다리 곤충 소금쟁이가 거미를 잡아먹는 것은 아무런 죄도 안 된다고.


그들은 그냥 자기 살만치만 잡아먹을 뿐, 몰래 어디다가 쌓아두고 또 쌓아두고 결국에는 그렇게 썩히는 일은 없기 때문이라고.


아담과 이브, '그래서' 그들은 신이 아니고 인간이다. 유혹에 넘어가고 크고 작은 실수를 하고, 그렇게 과오를 범하고. 신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 오늘날의 그 잘 나가는 AI도 결코 하지 못하는 일. 인간은 한다. 향후 AI와의 한판 승부에서도 결국은 인간이 승리할 수 있다는 낙관과 희망의 유일한 근거다.


어쩌면 그래서 신이 그 많은 당신의 피조물들 중에 인간을 그리 사랑하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많이 사랑하셨으니 포기하지 않으시고 이 땅으로까지 직접 내려오신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실망과 노여움 속에서도 그렇기에 여전히 사람이라는 존재를 손에서 놓지 않으시고, 사랑하시고 아끼시고 보살펴 주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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