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을 좀 더 가까이서 만나는 일, 아니면 도피? 허형만 '고해성사'
나의 부모님은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셨다. 내가 태어나기 오래전부터 그랬다. 당연 나를 포함한 나의 형제들은 어려서 유아세례를 받고 영성체를 하고, 그렇게 또 한 사람의 카톨릭 신자가 되었다. 주일에 성당에 잘 나가는 것이 특히 어머니를 기쁘게 하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각오를 해야만 했다. 자연스럽게 외국 신부님과 수녀님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어린 시절의 내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의 서구적 사고방식, 그들의 그 인자한 모습, 그들의 조건없는 사랑, 나는 그런 것들을 그분들에게서 보았던 것 같다.
'복사' (acolyte/altar boy - 미사 직전, 미사 중, 그리고 미사 후 신부님을 돕는 일을 하는 사람. 신부님이 미사 예복을 걸쳐 입는 것을 돕고 촛불을 켜고 그 촛불을 끄고, 미사 중 딸랑딸랑 작은 종을 울리고 영성체 의식에서도 작은 일을 돕고.)로도 오래 활동했다. 집에서는 혼자 모의 미사도 가끔 드렸다. 축성되지 않은 얇은 밀떡 성체가 있었고 그럴싸하게 포도주도 있었다. 물론 다 어머니가 나를 위해 준비해 주신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때인가 어느 여름 '피정' (카톨릭 신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묵상, 성찰, 기도 등을 통해 영적인 수련을 하는 기회)을 갔다. 그 며칠의 기간 내가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후 나는 성당에 나가지 않았다. 어머니의 눈총도, 그 오랜 시간 동안의 나의 믿음의 활동도 내 생각을 바꾸지는 못했다. 나는 소위 '냉담자' (세례를 받았음에도 신앙생활에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 혹은 아예 성당에 나가지 않는 사람, lapsed Catholic)가 된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도 나의 그런 결정을 존중해주셨다. 참으로 고마운 분이다.
그런데 열심히 성당에 다닐 때 늘 나를 괴롭힌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나의 본명 (세례명)은 방지거였다. 지금은 방지거 병원도 있고 그래도 알려진 이름이지만 그때 사람들이 내게 너는 본명이 뭐냐고 물을 때 '방지거요' 그러면 뭐? 두 번 세 번 되물어왔다, 그리고는 살짝 웃는 듯한 표정을 그들의 얼굴에서 나는 보았던 것 같다. 형들처럼 베드로 바오로 뭐 좋은 이름 많은데 나는 왜 하필 방지거일까? 어느 날 신부님께 나의 고민을 얘기했더니 그분이 하나의 해법을 주셨다. 사실은 풀 네임은 '방지거 살레시오'란다. 훨씬 나았다 그나마. 살레시오, 뭔가 멋지지 않은가? 아마도 같은 세례명을 가진 성인 한 사람을 기억하셨던 것 같다.
수십 년의 시간이 흘러 불과 몇 년 전 나는 방지거라는 이름이 '프란치스코'의 중국식 음차라는 것을 알았다. 교황의 세례명 그 프란치스코였던 것이다. 프란치스코, 와우 멋지지 않은가? 프랑스의 성인 프란치스쿠스 살레시우스 (Franciscus Salesius)! 어릴 때 내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나는 냉담자가 되지 않았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둘은 엄연히 크게 다른 사안이었으니까!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보면 원로 사제 조시마 신부가 나온다. 일상 속에서 신자들을 만나고 자신의 담당 교구를 가진 교구 신부 (속세 신부)가 아니었다. 그분은 수도 신부였다. 수도에 전념하는 그런 사제. 소설 속의 그분은 참으로 대단한 분이었다. 장교 출신으로 가진 재산도 꽤 많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 군에 전격적으로 전역 신청을 한다. 모든 재산을 교회에 헌납하고 자신은 동료 한 사람과 고행의 순례를 떠난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사제의 길.
어느 러시아 정교회에 정착하고 그곳의 후미진 작은 방 한 곳에서 수도에 전념한다. 그의 덕과 지혜, 명성을 듣고 각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늘 반갑게,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맞으며 그들에게 삶의 희망과 용기를 심어준다.
어느 날 까라마조프가의 맏이, 문제의 그 첫째 아들 미차 (드미트리)를 처음 보는 장면에서 조시마 신부는 넙죽 그에게 절을 한다. 아마도 그의 힘들고 외로웠던 어린 시절을 본 것이리라. 지금의 그의 고뇌와 번민, 그리고 곧 다가올 그의 불행한 미래를 본 것이리라. 도스토예프스키가 원래 기획하고 의도했던 후편을 쓰지 못해서 그렇지, 어쩌면 속편에서 보여졌을 이 사회와 세상을 위한 그의 고귀한 활동을 본 것일 수도 있다.
조시마 신부는 참으로 꼿꼿하고 깔끔하며 신비스러운 마지막 순간을 맞는다. 내게는 크게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닮고 싶은 삶의 마무리의 모습이었다.
이제 오늘의 주제로 본격적으로 들어간다. '신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가는데 도움을 주는 영적인 아버지', 신부 (라틴어 pater, 영어 father). 왜 신부가 되려고?
사실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은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다. 아니, 거부한다. 그런데 만약 불교의 세계에서 말하는 윤회라는 업보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 것이라면, 그러면 너 지옥도 (지옥의 세계)/아귀도/축생도에 태어날래 아니면 그나마 아수라도/인간도/천상도 중 인간도에 태어날래 하면 어쩌겠나, 그냥 인간세계에 다시 태어나야지?
하나, 결혼을 할 수 없으니까. 결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누구와 언제 어떻게 해야 하나 뭐 이런 고민이 원초적으로 근본적으로 사라지는 것이니까. 시작이 없으니 당연 그 끝도 없을 것이고 후일 파생될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도 없게 된다. 다툼이 없게 될 것이고 갈등으로 가득한 일상이 없게 될 것이다. 가장으로서의 의무감, 책임과 과중한 부담 또한 없을 것이다. 물론 많은 기쁨과 즐거움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것이 낫겠다 나는 그리 믿는다.
둘, 나 자신 신의 세계에 대해 좀 더 깊게 알고 싶다. 공부 하나는 그래도 좀 하는 편이었으니 이룰 수 있는 것도 많을 것이다. 바티칸에 가서 깊은 학문적 탐구도 하면 좋겠다. 혹시 한국 사람의 위상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기회를 갖는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왜 평생 신의 문제, 믿음의 문제에 대해 그리 깊이 고민하고 번뇌했는가도 살짝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거의 비슷한 길을 걷는 사람으로서. 그의 아버지가 그가 성직자기 되었으면 하고 그리 바랐던 이유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세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셋, 성경을 좀 더 쉽게, 그 본래적 의도와 의미에 가깝게 번역하고 싶다. 나를 위해 그리고 수많은 깊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아주 간혹 궁금한 마음에 한글 성경본을 읽다가 보면 믿음의 구력이 얕은 나로서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분명 한글인데 그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브런치에 이렇게 가볍게 쓰는 글의 형식으로라도 분명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 일을 하고 싶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우선 내가 많이 알아야 한다, 경험해야 한다, 신의 세계와 믿음의 영역을.
넷, 번뇌와 삶의 고통이 훨씬 덜할 것 같다. 신의 세계에서 신을 바라보며 사는 삶은 달라도 많이 다를 것 같다. 그때는 내가 가급적 피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고통과 번뇌가 아니라 내가 적극 마주하고 결국에는 이겨내야 할 과제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삶의 고뇌가 바로 내 일상의 하나라는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 일상이 그리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라는 눈으로 그것들을 바라보지 않겠나? 누군가의 영적인 아버지가 되기 이전에 나를 위한 아버지가 되어 줄 수 있지 않겠나?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우선 나부터 그 다음에야 비로소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다섯, 나이 들어 누구와 어찌 살까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슈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만큼 더 철학적인 얘기일 수도 있다. 하긴 진정한 철학은 바로 현실 속에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굳이 호구지책의 한 방편이라 생각하지는 말아 달라. 적어도 그것보다는 더 깊고 본질적인 우리네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때는, 사제로서의 그 삶은 굳이 나이 듦이 그 이전과 큰 차이를 내게 강요하고 선택하게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저 자연이, 신이 나를 데려가는 날 그때까지, 그냥 나의 소임 혹은 소명을 다하는 것. 지극히 나의 마음이 편할 것 같다. 나이 듦을 걱정하거나 두려워하거나, 그래서 급기야는 무리하게 그 탈출의 방법을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이다.
아, 또 하나. 외로움이 나를 덜 괴롭힐 것 같다. 우선은 그때는 이미 오랜 세월 혼자 사는 일에 익숙한 때문일 것이고, 외로움을 대하는 나의 일상 속 삶의 자세 또한 지금과는 많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다루는 기술 혹은 이겨내는 노우하우도 많이 생겼을 것이다. 무엇보다 외로움 자체에 평소 익숙한 상태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외로움과 동무하자고 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굳이 함께 가는 것을 진저리 치며 싫어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낮에도 또 밤에도 혼자라는 사실이 나를 놀리듯 신이 나서 겁박하고 나를 몰아가는 작금의 상황이 너무도 싫다 나는.
오늘의 시를 본다. 내가 지레 나를 가둔 죄/내가 나를 우습게 보며 나를 욕한 죄/나를 배신한 죄,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내 안의 또 다른 나에게 등을 돌린 그 죄/이제는 희망이 없다고 서둘러 나의 가슴을 닫아버린 죄/술에 취한 것도 아니면서 나의 그 초롱초롱하던 맑은 눈빛을 흐릿하게 만들어버린 죄/내 입술에 피 묻혀가며 나를 비난하고 생각 없이 근거 없이 타인을 비난한 죄, 내가 신부님 앞에 신 앞에 고해성사를 하고 죄를 청해야 할 이유는 이렇게 많고도 많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신이 필요한 것이리라. 나를 살펴보고 나의 정죄를 청하고 그렇게 조금은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존재의 존재를!
아, 내가 무엇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고 위로의 변명을 하더라도 내게는 여전히 남아있을 큰 아쉬움 하나 - 사랑하는 나의 아들과, 그를 아버지와 아들의 인연으로 그렇게 만나지는 못하는 것! 허나 이미 이 세상에서 한 번 그렇게 귀한 존재를 만났으니 그것으로 그나마의 위안을 삼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