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는 것과 받는 것, 따스함 그리고 마음. 투르게네프 '걸인'
늘 사람이 그립다. 사랑이 그립고 그 따스한 온기와 향취가 그립다. 사람의 냄새, 사랑의 향기가 그립다. 그저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유난히 심약한 사람인가? 궁핍과 결핍이 오래된 탓일까? 나이 들며 더욱 즐겁게 사는 사람도 많고 나 또한 그리 의지 약한 존재도 아니었고, 한 인간의 마음 깊은 곳 사람과 사물은 있다가도 없고 또 없다가도 있는 것인데 왜? 혹시 나만 이런 것은 아닐 수도 있을까? 흔한 일이라고? 그러면 뭐가 달라지나 내게?
외국의 시를 읽다가 보면, 우리말로 번역된 것이 있으면 그것을 보게 되고 그러면 반드시 원문이 궁금하고, 그래서 대조하며 읽어나가면 꼭 살짝 뭔가 빠진 듯한 맛의 그 미묘한 아쉬움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내가 뭐 특별히 번역을 잘한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원문을 통해 그 전후좌후 문맥과 상황을 알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시인이 하려는 말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경우가 많더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에 한두 번은 꼭 짧게, 지나가는 비가 내리는 귀여운 비의 이곳. 쏴아, 익숙한 그 소리와 잠시 살짝 어두워진 바깥의 배경에 잠겨 시 하나를 읽게 되었다. 지금의 상황과 묘하게 어울리는 시였다. 그때 내 머릿속에 이 제목이 떠올랐다. 잊기 전에 서둘러 글을 쓴다. 이 뜬금없는 오늘 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제 잘 풀어나가기만 하면 된다.
워낙 희망을 품고 사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늘 그랬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이라도 나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만 있어도 오늘의 일상은 충분히 견딜만하다. 그렇게 또 하루를 산다. 그래서 아전인수식 해석을 많이 한다. '이 또한 그냥 우연이 아니다. 분명 나를 위한 신과 섭리, 스피노자의 대자연의 배려다. 뭔가 있다, 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한다. 당연 큰 힘이 생긴다. 신도 난다. 다시 글을 쓰고 다시 시를 읽고, 실내 맨손체조를 하고 나를 아껴주는 젊은 동무에게 잘 가라는 짧은 톡의 초안을 적는다, 잊기 전에.
그러니 바라는 것이 많다. 단 다른 사람에게는 바라지 않는다. 무형의 존재인 신에게, 섭리에게 자연에게, 그리고 하늘에 계신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바란다. 그저 달라고만 한다. 가끔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밤 하늘의 둥근 달님을 통해 말한다, '아들, 이 아비에게 힘과 작은 달콤함을 좀 주렴! 오늘은 그것이 좀 필요하구나.'
원래부터 그랬다. 어려서도 어머니 아버지께 뭐 해주세요 말씀 드린 적이 없다. 형제가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고, 나 아니라도 이미 충분히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고 어련히 알아서 때가 되면 해주시겠나 그리 믿었기 때문이다. 나의 그런 판단과 태도는 여러 면에서 유용한 것이었다, 여러 사람에게.
그렇게 외부의 타인에게 무언가를 원하고 바라고 청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일부러라도 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쉽게 호의를 거절하는 사람도 아니고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더욱 아니다. 고마움의 의미와 가치를 나는 안다. 그런 감정은 꼭 밖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항상 그렇게 한다, 잊지 않고 빼먹지 않고. 빌린 돈을 떼먹지 않고 반드시 약속한 날 이전에 갚듯이.
'거지'의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다음의 두 가지가 요구된다. 하나는 거지 본인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달라고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어릴 때 어머니가 그러셨다. '아니 멀쩡한 몸을 두고 어디 가서 땅이라도 파지, 그냥 구걸을 해?' 땅을 파서 돈이 생긴다면 그는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파는 땅 속에는 그가 그토록 찾고 원하는 돈은 없다. 누군가가 그를 고용해서 땅을 파라고 하고 그에게 돈을 준다면 그는 땅을 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고용인이 없다.
그런 그가 한 것은 구걸하는 행위 말고 뭔가가 있었을까? 나는 있다고 본다. 그는 많은 것을 '무릅썼다' 나는 그리 본다. 무릅쓰다는 '어렵고 고된 일을 그대로 참고 견디어 내다'의 뜻이다. 남에게 걸인으로 인식되는 그 부끄러움과 자신의 자존감과, 자신을 불쌍한 존재로 여기는 그 시선을 용납한 것이다. 무언가 그에게서 받는 것을 위해. 그러니 그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지아의 겨울은 춥다. 기온 자체는 그리 낮은 것이 아닌데 (아주 추운 날도 영하 3도 정도?) 매섭게 부는 바람과 해가 없는 흐린 그곳의 겨울 날씨는 사람을 정말 뼈가 시리게 만든다. 영하 9도 10도의 한국의 추운 겨울날보다 나는 더 춥게 느꼈다. 늘 그랬다. 이른 아침 꽁꽁 싸매고 산책을 하다 보면 조지아 정교회 입구 앞에 허름한 옷차림의 나이 든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아 구걸을 한다. 나는 그렇게 추운 날에는 꼭 조금의 돈이라도 드린다. 5라리 (2,500원 정도) 지폐 한 장. 나는 그 추위 속에 그 할머니가 하고 있는 행동은 충분히 그 정도의 돈은 받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쪽 방향의 산책길, 메트로 입구의 사람들 많이 다니는 길목에도 할머니 한 분이 있다. 가끔 5라리 지폐를 드린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자리에 정말 멀쩡하게 생긴, 요조숙녀 같은 젊은 여성이 다소곳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함께 모아 마치 물을 받듯 구걸을 하고 있다. 할머니는 없었다. 많은 생각을 하며 일단 그 자리를 지나쳐 다시 돌아오는 길, 나는 20라리 (1만원) 지폐를 그 여성에게 주었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한다.
충분히 그 정도의 돈은 받을 자격이 있다고 나는 그리 생각했다. 필시 무슨 사연, 사정이 있을 것이다. 할머니가 많이 아프던지 그보다 더 나쁜 사정이. 그 얼굴에 왜 나와서 구걸을 하느냐고? 오죽하면 그래야만 했겠나? 그 여성이라고 생각이 없었겠나?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그 자리에 그리 앉기까지? 슬펐다, 우리네 이 개떡같은 삶이. 그 다음 날 그 여성은 보이지 앉았다, 할머니도 그 자리에 없었다.
그냥 돈 주는 사람에게 아무 것도 주는 것 없이 돈만 받는다고? 나는 이것도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많은 것을 우리에게 준다. 돈 주는 사람이 그리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우선 만족감을 준다. 돈 몇 푼이 가져다주는 선한 존재로서의 자기 인식이다. 큰 것이다. 나는 그렇게 조금의 돈을 주고 나면 돌아오는 길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잘했다는 생각을 늘 했다. 또 하나, 내가 인식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구걸하는 상대방을 보면서 나는 그보다는 나은 존재로서의 내 모습을 볼 것이다. 그는 돈을 위해 자신의 그 귀한 자존감과 나의 그것을 맞바꾼 것이다. 그러니 내가 아무 것도 받은 것 없이 (종교에서는 이것을 '값없이'/공짜로/아무 댓가 없이 이런 표현을 쓴다는 것을 알았다) 그에게 돈 5라리를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나의 의식 저 밑에서도 이미 그것을 알 것이다. 내가 정말 값없이, 공짜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신에게, 섭리에게 자연에게 그저 뭔가 달라고만 하는 나의 행동을 합리화하려고 이런 긴 얘기를 늘어놓고 있는 것은 아님을 알아주시기를! 나? 그 성스러운 존재들에게 바라고 간구하기 전에 나 나름 많은 것들을 한다, 해본다. 그러고도 도무지 채워지지 않을 때 그때 비로소 그들에게 청한다. 그들도 그것을 잘 안다. 그래서 한 번도 나무라시지는 않은 것 같다. 나도 먼저 뭔가를 해보려고 노력을 하니까 내 딴에는!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궁핍과 결핍, 아쉬움과 미련이 크기에 신비의 존재들에게 기대보는 것이다. 그저 아주 작은 희망 속에 그렇게!
이렇게 보면 이미 이것만으로도 나는 거지는 아니다.
이제 오늘의 시를 본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걸인'이라는 시다. 그의 대표작으로 자주 거론되는 참으로 좋은 시다. 그의 여러 산문시 중의 하나다.
자기에게 '지금' 있는 것을 무언가는 주고 싶은 길을 걷던 부유한 신사,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의 수중에는 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산책 중이었으니. 당황스러움과 약간의 부끄러움 속에 그저 걸인의 차가운 두 손을 따뜻하게 꼭 잡아준다, 온 마음을 담아 그렇게. 나는 그렇게 못 했을 것 같다. 돈을 주는 것은 오히려 내게는 쉬웠을 것이다. 그의 진심을 알아본 그 걸인, 이번에는 자신이 그 신사의 그 두 손을, 살짝 부끄러워하는 그 마음을 꽉 잡아준다,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지금 당신이 제게 주고 있는 것은 그럼 무언가요? 이것이야말로 제게는 큰 선물입니다, 나의 고마운 형제여!'
이쯤되면 누가 거지이고 누가 신사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다. 내게는 이 장면에서 거지는 이미 없었다. 따뜻한 마음, 선한 영혼, 사람을 그저 사람으로 보는 그 의로운 시선을 가진 두 마음 부유한 사람이 있었을 뿐!
걸인 (The Beggar)
- 이반 투르게네프
혼자 길을 걷고 있었다... 노쇠한 한 걸인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눈은 충혈되고, 눈물이 가득한 두 눈, 입술은 추위에 시퍼렇게 변해있고, 올이 성긴 누더기 옷을
입은 채, 여기저기 곪은 상처들.... 오, 소름끼치게 무서운 가난은 이 불쌍한 인간을
이리 삼켜버렸구나!
그는 빨개진, 부은, 더러운 손을 내게 내밀었다. 그는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중얼거리듯 도와달라는 말을 했다.
나는 모든 주머니를 뒤져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갑도 없었고, 시계도 없었고,
손수건조차 없었다.... 나는 아무 것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걸인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내민 손은 힘없이 흔들거리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부끄러움과 당혹감 속에, 나는 그의 더러운, 떨리는 그 손을 따뜻하게
꼭 잡았다... '화내지 마세요, 형제여; 제게는 지금 아무 것도 없네요, 형제여.'
걸인은 핏발이 선 두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순간 그의 새파래진 입술은 생긋
웃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가 나의 차가워진 손가락들을 꽉 잡았다.
'아니요, 그럼 조금 전 제게 주신 그것은 무엇인가요?' 그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 또한 고맙습니다. 그것 역시 제게는 큰 선물입니다, 형제여.'
나는 그때 알았다 나 또한 큰 선물을 나의 형제로부터 받았다는 것을.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 영어 번역본을 바탕으로>
# 미라보 다리에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어느 신사가 늘 지나는 다리 한 끝에 거지 한 사람이 앉아있다. 종이에 서투르게 이렇게 쓰여있다. '저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약간의 돈을 건네며 그 신사가 물었다. '하루에 얼마나 모이나요?' 거지가 대답한다, '아주 적은 금액이요. 겨우 빵 한 덩어리 살 수 있는 정도?' 신사가 떠나가고 몇 날의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그 신사가 다시 그 거지에게 왔다. '그래 요즘은 얼마나 모이나요 하루에 돈이?' 거지가 기쁜 마음으로 신이 나서 말한다. '신기하게도 선생님이 다녀가신 그날 이후 돈이 열 배가 되었어요. 이제는 빵도 넉넉하게 살 수 있어요.'
사실 그 거지를 처음 만난 그날 그 신사는 그 종이 뒷면에 이렇게 써놓고 그것을 사람들이 보는 쪽으로 두고 간 것이었다. "오늘은 눈이 내리는 것 같아요. 내리는 눈을 반기는 사람들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요. 그런데 저는 그 아름다운 눈을 볼 수가 없답니다." '저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에서 이렇게 바뀌었을 뿐인데!
사람의 일이니까 그렇다. 동물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나 감흥이 없는 문구의 변화였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이다, 인간이다. 울고 웃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는 인간이다. 외로움을 알고 그리움을 알고 눈물의 의미를 아는 그런 고급 동물이다! 그래서 신도 섭리도 자연도 다른 동물들보다는 크게 차별적으로 우리를 대하는 것이리라. 귀한 존재로 귀하게 대접하는 것이리라. 우리와 상대하는 것 자체를 즐기고 기뻐하는 것이리라.
나는 그 빽을 믿고 오늘도 나의 신과 섭리와 자연에게 이것저것 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