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유와 기회의 날, 덤의 날, 행복의 날. 임강빈 '공일'
제가 어릴 때는 반공일이라는 것이 있었어요. 바로 토요일이 그때는 반공일이었지요, 반은 일하고 반은 쉬고. 그러니까 학생들은 토요일은 오전에만 수업을 하고 오후는 쉬는 날. 물론 일요일은 지금처럼 하루 종일 노는 날, 공일이었지요. 토요일 반공일이 되면 어머니는 아버지와 자식들을 위해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주시고는 했지요.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음식은 영계 (막 병아리의 단계를 벗어난 정말 어린 닭)를 무쇠솥에 튀겨주신 통닭이었어요. 물론 그때도 동네 이곳저곳에 통닭 집이 있었지만, 글쎄요 왜일까요? 어머니의 그 무쇠솥 통닭이 저는 지금껏 제가 먹어본 통닭 중에 제일 맛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물론 추억의 맛이 많은 자리를 차지하겠지요?
또 다른 특식은 고등어로 끓여주신 육개장이었어요. 요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요. 비리지 않냐구요? 아니요, 어머니의 비법의 영향인가 전혀 비리지 않았어요. 손이 아주 많이 가는 음식이었던 것은 지금도 기억해요. 고등어를 깨끗하게, 정말 말끔히 손질하고 (그렇게 하면 비린내 혹은 잡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하신 어머니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것을 푹 삶은 뒤에 뜨거운 상태에서 손을 데어가며 하나하나 가시를 발라내셨지요. 가급적 고등어의 살코기 덩어리를 크게 떼어내는 것도 기술과 비법 중의 하나라는 얘기도 하셨어요. 그 뒤는 일반적인 육개장 끓이는 방법과 절차를 따릅니다. 고사리를 특히 많이 넣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야 고기를 씹는 것 같은 식감이 살아난다고 하시면서.
어린 저의 두 팔을 쫙 펼친 것보다 긴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고, 대여섯 명은 충분히 둘러앉을 둥근 밥상에 가득 찰 만큼 동그란 원이 되면 그것을 적당한 크기로 말아서 부엌칼로 썰어냅니다. 반죽의 두께와 썰어내는 칼국수 면의 크기에 따라 칼국수 식감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어머니는 말씀 하셨지요. 썰어낸 밀가루 반죽의 양쪽 끝은 저의 차지였습니다. 그것을 직화의 연탄불 위에 노릇노릇 구우면 담백한 토르띠아 혹은 참크랙커 같은 맛이 납니다. 김밥의 양 꼬다리와 함께 이 칼국수 반죽 양 끝은 제가 결코 포기할 수없는 제게는 참으로 중요한 것이었지요.
이제야 시를 봅니다. 얼마전 제가 번역한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줄스 라포르그의 시 중에 '슬픈, 참으로 슬픈'이라는 제목의 아름다운 시가 있습니다. 그 시에도 황금빛 민들레가 나옵니다. 임강빈 시인의 이 시에도 민들레 얘기가 나오구요. 재미있지요, 비슷한 시기에 제가 접한 외국의 시와 우리나라 시인의 시 양쪽에 모두 노란 민들레 얘기가 등장한다는 것이? 아마도 민들레의 외유내강형 생존력, 부담을 주지 않는 수수한 외양, 호박꽃과는 또 다른 옅은 노란색의 꽃, 이런 것들 때문 아닐까요? 재미있는 사실은 특히 싱가포르에서 이 민들레는 인기가 많다고 하네요? 그래서 씨앗의 가격도 발아 성장한 식물도 그 가격이 많이 비싸답니다.
임강빈 시인은 이 시에서 민들레를 살짝 홀대하는 듯한 뉘앙스도 주고 있어요. 아마 저의 주관적인 느낌일 겁니다. 마치 자기 좀 알아 달라고, 쳐다봐 달라고 보채는 듯한 인상을 받았을까요? 너무나 무료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그 공일에 조금은 짜증이 나 있던 때였을까요? 아무튼 제 눈에는 반갑게 달려들어 좋아하는 그런 모습은 아니었어요. 제가 그 시인 집 마당 한 구석의 민들레였다면 저는 바로 눈치를 챘을 겁니다. 그리고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을 겁니다.
'백목련 자리가 너무 허전하다'는 표현을 처름 읽었을 때 저는 누가, 아끼던 백목련을 밤사이 몰래 파갔나 그리 생각했어요. 그건 아닌 것 같고, 아마도 꽃이 진지 얼마 되지는 않지만 벌써 그 화려했던 목련꽃이 눈에 아른거리는 모양입니다. 여기서 시인은 하얀색 꽃이 피는 목련을 그저 백목련이라고 쓰신 것 같은데, 사실 백목련은 우리나라 고유 품종 목련과는 많이 다릅니다. 우선 꽃의 모양이 그리 예쁘지 않고 향기도 다르고, 무엇보다 꽃의 질감이 마치 밀랍으로 만들어놓은 것 같은 굉장히 인위적인 느낌이 납니다. 백목련과 자목련은 중국이 원산지입니다.
시인이 그리 심하게 답답한 느낌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참 신나게 일할 젊은 청춘의 나이도 아닌 것 같고, 일을 통한 자기 실현 혹은 존재감의 실증적 인식은 더욱 아닌 것 같고, 왜일까요? 혹시 자신에게는 언젠가부터 매일같이 반복되는 공일이라서, 남들에게는 귀하고 귀한 그 공일이 아니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또 공일이야? 오늘도?' 나이 들어가는 분들에게 있서의 일상적 무료함, 수입의 창출을 동반하는 의무적 노동의 부재,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접촉의 절대적 부족, 아마도 이런 것들이 영향을 준 것 아닐까요?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공일이 되는 오늘 토요일 또는 일요일, 혹은 공휴일은 그래서 평소의 자신만의 공일과 결합되어 더 큰 무료함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전화벨까지 기다려지는 시인의 모습에 저는 조금 슬퍼집니다. 아, 사람의 외로움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사람이 그리운 것이구나 지금 시인은! 그러니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꾸 밖을 내다보고, 올 편지도 없으면서 굳이 우편함을 들여다 보네요.
감히 제가 드리고 싶은 얘기는 시각을 바꾸는 수 밖에는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젊은 시절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늘 일에만 매달려야 했던 기억, 조금만 더 잤으면 했던 겨울날 그 추운 새벽 기상 때의 기억, 절에라도 들어가 단 며칠 만이라도 좀 혼자 있었으면 했던 그때의 그 간절했던 바람, 그러나 그때는 가질 수 없었던 그림의 떡들. 이제야 비로소 마음껏 내 손에 쥐는 것이라고, 그때 그렇게 살았기에 지금 내게 허여되는 것이라고 그리 기쁘게,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공짜로, 누구에게나 흔하게 주어지는 공일이 아니고 나니까, 내게만 예외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사실은 내가 내 손으로 따낸 것이라고 그리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무료했던 공일들이 갑자기 달리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원효대사가 그랬지요? '마음에서 생겨나면 모든 것이 생겨나고, 마음에서 없어지면 집안 가장 귀한 곳의 감실이나 바깥 허름한 봉분이나 그저 똑같다'고 (심생즉 종종법생, 심멸즉 감분불이).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 이 모든 것은 우리들 마음에 있고, 모든 것들은 우리들의 인식 속에 있다'고 (삼계유심 만법유식). 그러니 '자신의 마음 밖에서 그 무엇을 찾아본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심외무법 호용별구).
한때는 저 자신도 '삶은 결국은 유물론'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니 당장 내 눈에 보이는 것, 내 손에 확실하게 쥐고 있는 것이 진짜이고 최고인 것이지, 그깟 마음 혹은 우리네 인식 속의 관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그러나 그후 좀더 세상을 살다보니 결국은 다시 '유심론'으로 돌아오고 있는 저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시지요, 여러분은 유물론과 유심론 사이를 적절히, 자신의 상황에 맞게 왔다갔다 하시는 걸로! 그것이 융통성이고 변형이고 맞춤인 것이니까요!
아무쪼록 공일이 내 마음까지 텅 빈 그런 '아무런 의미 없는 빈 날'로 되게 그냥 두지는 마세요. 내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그 귀한 자유가 내게 주어진 것이라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내 마음 가는 대로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적 심리적 환경적 자유가 지금 내게는 있는 것이라고. 이렇게 인식하는 순간 여러분은 아무런 할 일이 없는, '무료함만 가득한 공일'을 손에 쥔 것이 아니라, 많은 것들을 내 마음에 따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그런 '의무와 강제없는 공일'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런 공일은 좋은 겁니다, 제 추억 속 어머니와의 반공일 처럼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