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략의 문제. 박노해 '우선순위 - 어떻게 살 것인가 막막할 땐'
아침에 세 개를 받고 저녁에 네 개를 받는 것과 아침에 네 개를 받고 저녁에 세 개를 받는 것 중에서 여러분은 평소 어느 것을 선호하나요? 네, 하루에 받는 총량은 일곱 개로 같아요. 언제 받느냐에 있어서 조금 차이가 나는 것이지요. 우선은 그야말로 개인적 취향의 문제이지요. 그런데 좀 더 깊게 들여다 보면 중요한 전략의 문제이기도 하고 내 삶 속의 습관의 문제이기도 해요. 물론 상황의 문제이기도 하지요. 그러니 일률적으로 답할 수 있는 그리 단순한 이슈는 아닌 것이지요.
지금 제가 있는 이곳은 우기에요. 매일 비가 내려요. 그래도 이곳의 비는 많이 귀여운 편이라 호우 뭐 그렇지는 않아요. 하루 중에도 수시로, 잠깐씩 조금씩 와요. 조금 전에도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갔다가 갑자기 내리는 비와 만났어요. 조금 있으려니까 빗줄기가 굵어지고 세차게 내려서 급히 제가 애용하는 바나나 나무 밑으로 갔지요. 우산은 여전히 쓰고 있지만 우산을 때리는 빗방울은 아주 약하고 적어요. 넓은 바나나 나뭇잎들이 걸러주기 때문이지요. 그때 이 주제가 제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그래서 집에 돌아와 잊기 전에 서둘러 글을 씁니다. 금새 잊어버리거든요.
그냥 저를 기준으로 얘기드려 볼게요. 우선 그것이 먹는 것이라면 저는 저녁에 많이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차라리 아침에 조금 더 먹는 방식을 택할 겁니다. 그런데 어떤 일을 하는 양에 관한 것이라면 저는 당연히 아침에 네 개를 받을 거에요. 저는 미리미리 해놓는 것을 편안하게 생각하거든요. 뒤로 미루는 것을 아주 싫어해요. 젊어서부터 아니 어려서부터 그랬어요. 일단 해야할 일들을 해놓으면 마음이 편안하잖아요?
제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는 아주 일찍 자는 평생의 습관도 이런 면에 기초한 것이지요. 그것이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의 조합이라면 어떨까요? 저는 맛없는 것들을 먼저 먹고 맛있는 것은 나중에 먹는 것을 선호해요. 끝이 좋아야 좋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그와는 정반대의 취향을 가진 사람들도 많지요 물론. 그거야 정말 취향, 선호의 문제니까요.
힘든 일과 조금 더 쉬운 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어차피 맞을 매는 미리 맞자는 편에 속해요. 먼저 맞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픈 지 아프지 않은 지를 묻고 그들의 맞는 모습을 마치 내가 맞는 것처럼 지켜보고, 저는 그런 것 좋아하지 않아요. 그냥 먼저 맞아요. 그러면 그것으로 끝난 것이잖아요? 속 편하게 다른 것들을 할 수가 있지요. 무엇보다 두려움의 지속 시간이 짧아지잖아요?
지금부터는 좀 더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자, 내가 받을 것이 돈이나 기타의 재산적 가치가 있는 금원이라면? 당연 저는 미리, 먼저 받는 쪽을 택합니다. 단지 내일 혹은 내년에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그 불확실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자원의 '시간가치' 때문입니다. 오늘의 백만 원은 10년 뒤의 백만 원과는 크게 다른 가치를 지니잖아요?
또 하나는 '돈이 나를 위해 일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돈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지요. 돈은 제가 자는 밤에도, 멀리 외국에 출장을 갔을 때에도 그리고 저의 휴가 중에도 나를 위해 일을 합니다. 그 양이 불어나는 것이지요. 소위 종잣돈의 효과입니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된 형태가 제일 무서운 상승의 효과를 가져옵니다. 미리 받은 돈으로 무언가를 구입합니다. 이제 구입에 쓰인 처음의 돈도 일을 하는 것이고 그렇게 구입한 새로운 무언가 또한 처음의 그 돈처럼 저를 위해 일을 합니다. 우리 한국의 부동산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구입하려고 하면 항상 얼마만큼의 자금이 부족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 부족분을 어딘가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메꿀 수 있는 사람은 무언가를 구입해서 자기의 것으로 만듭니다. 이제 자기의 것이 된 그 물건은 전적으로 나를 위해 일합니다. 매월 월세를 내면서 10년을 사는 젊은이가 있습니다. 결코 적지 않은 돈을 매월 월세에 쏟아붓지요. 그 10년이 다 지나가도 그의 손에 남는 것은 없어요. 다 집주인 (임대인)의 손에 들어갔기 때문이지요. 외국의 경우처럼 그 젊은이는 모기지론을 받아 집을 삽니다. 매월 월세로 내던 돈을 가지고 모기지 원리금을 갚아나갑니다. 10년이 지났습니다. 아직 대출 원금은 남아있지만 그동안 그래도 많이 갚았습니다. 거의 반 정도는 갚았지요? 그 10년 사이 다행스럽게도 자기가 산 집의 값도 올랐습니다. 지금은 10년 전의 그 가격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주택 가격의 40%, 50%를 대출금으로 받을 수 있는 외국의 경우에나 가능한 얘기지요. 거기다가 여전히 부족한 40% - 50%의 목돈을 어디서 마련하느냐의 결정적인 문제가 남아있고요. 다행스럽게 그 갭을 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은 젊은이라면 지금껏 임대인의 배를 불리던 그 지출 흐름에서 이제는 자신의 배를 부르게 하는 선순환의 자금 흐름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지요. 나의 돈이 집주인의 이익을 위해 일하게 하는 대신, 그 돈의 주인인 나를 위해 일하게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일이지요?
결국은 나의 필요와 나의 선호와 취향, 무엇보다 나의 상황과 환경이 큰 영향을 미치는 문제입니다, 조삼모사 혹은 조사모삼. 더욱 중요한 것은 전략의 문제, 깊은 사고와 정교한 시뮬레이션과 결단력의 문제. 부족한 그 갭을 메꿀 수 있는 수단을 찾고 손에 넣는 것. 네트워크의 문제일 수도 있구요. 배경과 연줄의 도움이 크게 작용할 수도 있는 영역이구요.
짙은 안갯속에 비 내리는 날 저녁 산책 중에 훅 하고 머릿속에 들어온 단상 (작은 생각의 파편 한 조각)을 눈덩이 굴리듯 이리저리 굴려서 여기까지 왔네요. 뭐 그리 나쁜 전개는 아니었다는 생각을 해요. 모든 글이 언제나 다 좋을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오늘 살짝 실망하며 그 반동으로 내일은 조금 더 만족할 수 있지 않겠어요? 둥글둥글 그리 살면 좋겠다 (그럴 수만 있다면!) 요즘은 그런 꿈과 바람을 가지고 살고 있지요.
이제 오늘의 시를 봅니다. 전략적 사고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시를 통해 읽으니 그 느낌이 새롭네요. 박노해 시인이 이런 시를 쓰시다니? 아니요, 이분의 삶에 대한 지혜의 깊이는 참으로 깊습니다. '걸으면서 하는 독서'라는 이분의 짤막짤막한 지혜의 말들을 모아놓은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놀라웠습니다. 그 통찰력과 따뜻한 조언을 이 시에서 다시 보았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그저 막막할 때는 우선 '어떻게 살 지 말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고 하시네요. 하나하나 걸러내기, 우리 삶 속의 아주 유용한 방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작부터 급관심. 집을 짓는 건축가는 먼저 집터를 평평하게 밀어내고 그 위에 집을 짓습니다, 결코 다시 나무를 심지는 않지요. 애초 집을 짓기 위해 힘들여 닦은 터니까요.
그러나 그 전에 어디는 그냥 오롯이 그 빈 공간 자체로 두어야 하는지를 고민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에 비로소 '겸손하게' 집을 올립니다. 결코 과하지 않게, 나의 가슴 속 오만함의 작은 씨앗조차도 나오지 못하게 그렇게!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변화할까를 먼저 생각하지 말랍니다. 그 전에 절대 변해서는 안될 것과 해서는 안될 것을 먼저 생각하라네요? 그렇게 방향이 서면 그때부터는 최대한 유연하게, 탄력적인 자세로 조금씩 꾸준히 밀고 나가라고. 그러면 결국에는 나의 때가 올 것이라고, 꼭 온다고!
이 아침 불끈 힘이 나게 하는 응원의 시이지요? 조삼모사 조사모삼, 어쩌면 그게 문제가 아닐지도 몰라요. 우선순위의 문제, 원칙의 문제, 내 삶 속의 핵심과 근본의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