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욕과 욕심, 돈/영혼의 부자. 이반 투르게네프 '두 부자 남자'
제가 유튜브에 올린 영상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내 기준으로 볼 때에 내 돈 만 원과 상대방의 돈 백만 원은 어떤 것이 더 중한가?' 제가 제 돈 만 원을 택하면 상대방이 가질 수 있었던 백만 원의 선택지는 그냥 사라집니다. 내가 내 돈 만 원을 포기하면 그 대신 상대방이 백만 원을 손에 넣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실 것 같은가요?
내 돈 백만 원과 상대방 돈 백만 원이라면? 저는 당연 제가 갖게 될 돈 백만 원을 선택합니다. 내 돈이 더 중요하니까요. 그럼 내 돈 백만 원과 상대방이 가질 수 있는 돈 천만 원은? 그래도 저는 제 돈 백만 원을 택합니다. 상대방에게 자신이 갖게 될 천만 원은 아주 큰 돈이지만 제게도 백만 원은 여전히 큰 돈이거든요?
맨 위 질문에 대한 저의 선택은요? 저는 제 돈 만 원 대신 상대방이 갖게 될 백만 원의 선택지에 손을 들겠어요. 제게 만 원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거 없어도 괜찮거든요? 그런데 상대방이 갖게 될 백만 원은 큰 돈이잖아요?
사회적 총효익의 측면에서도 그렇고, 무엇보다 내게 없으면 안 되는 그런 금액의 돈도 아니고! 혹시 알아요? 언젠가 상황이 바뀌어서 상대방이 지금 제가 손에 쥔 그 선택지를 갖게 되었을 때 (그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힘을 가진) 제가 그저 그의 선택만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는 그런 처지가 될지? 사람일 모르는 것이거든요? 뭐 꼭 그것 때문은 아니구요. 우리 사는 이 현세에서 이런 '합리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오늘 글의 제목은 두 가지 서로 다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결국 그 둘은 한 지점에서 만나는 것일지도 몰라요. 선한 동기의 의욕/희망/기대/욕심/과욕/허망의 결론, 그리고 너그러움이란 과연 무엇일까? 어떤 것이 진정한 관대함일까? 나의 관대한 마음에 의해 내가 내어놓는 무언가의 그 절대적 크기와 양일까, 아니면 그래서 내가 잃은 것 혹은 포기한 것 또는 내가 감내해야 하는 현실적 고통의 크기와 정도일까?
둘 다 결국은 오유지족 (만족할 줄 아는 마음)과 지지불태 (멈추어서야 할 곳에서 멈추면 위험할 일이 없다)를 말하는 것이지요? 돈의 부자 만큼이나 선한 마음, 의로운 마음, 따뜻한 마음의 영혼의 부자의 의미와 가치, 그 고귀함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요. '둘 다 부자'라고, 정말 부자였던 (돈으로도 그 영혼의 따스함과 선함으로도) 오늘 시의 시인이 그리 말하고 있네요. 그러니 둘 다 부자라는 그의 말 믿어도 좋겠지요?
얼마 전부터 저는 이반 투르게네프라는 러시아의 대문호의 문학세계에 푹 빠져있습니다. 도스토예프,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3대 거장으로 알려진 인물이지요. 하지만 앞의 두 사람에 비해서는 그 유명세나 인지도가 조금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지요.
워낙 집안이 부자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엄청 미남이었는데 그것이 여러 사람, 아니 많은 사람 구하는 뜻밖의 결과로 이어졌지요.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빚을 많이 져서 결국 감옥에 갈 처지에 놓였어요. 그래서 할아버지는 어느 날 아들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합니다. 너의 그 잘 생긴 외모를 활용해서 부잣집 여자에게 장가를 가거라. 그래서 이 아버지를 빚에서 구해다오, 제발. 자신의 아버지의 계속되는 간청에 결국 아들은 엄청 부자인 여자와 결혼을 합니다. 그렇게 투르게네프의 할아버지는 감옥에 갈 위기를 모면합니다.
아버지의 외모를 닮아서인지 투르게네프도 참 잘 생긴 얼굴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모든 유산을 다 물려받은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천 명 (어디서는 오천 명이라고도 합니다)의 집안 농노들을 아무 조건없이 해방시킨 일입니다. 그것도 얼마간의 돈을 손에 쥐어주면서 말이지요. 러시아에서 공식적인 농노해방이 이루어진 것은 그로부터 무려 11년이나 지난 뒤이니, 그의 이 행동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지요. 실제로 그를 러시아 농노해방의 아버지라고 보는 이들도 많습니다. 빚에 고생했던 도스토예프스키도 그의 금전적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일전에 다른 글에서 제가 번역, 소개한 그의 시 '걸인 (The Begger)'도 그렇고 오늘의 이 시도 그렇고, 참으로 따스한 그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는 정말 일상 속에서 따뜻하고 관대하고 너그러운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많은 러시아인들이 진심으로 그를 존경했다고 하네요.
오늘 글의 첫 제목은 톨스토이의 단편에 나오는 겁니다. 늘 더 많은 땅을 갖고 싶어 하던 어느 농부에게 이런 제안이 들어옵니다. 1,000 루불만 내면 오늘 당신이 밟는 땅 그 모두를 당신의 것으로 주겠오. 다만, 오늘 해가 뜨면 출발해서 오늘 해가 지기 전까지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이미 지불한 돈도 당신이 이미 밟은 그 땅들도.
결과는 뻔하지요? 너무 멀리 가버린 농부는 뒤늦게 사력을 다해 달려서 출발점으로 돌아오지만 결국 그 자리에서 죽습니다. 그 많은 땅을 갖게 된 듯해도 결국 그가 손에 쥔 것은 얼마 안 되는 작은 그의 무덤을 위한 땅! 겨우 3 아르신 (가로 세로 2미터). 영어로 번역된 원제는 '이 남자에게는 (자신의 무덤으로 쓰기 위해) 얼마 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How much land does a man require?)' 혹은 '남자는 도대체 얼마 만큼의 땅을 필요로 하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의역해 볼 수 있겠어요. 저는 전자를 선호합니다.
아이고, 어리석은 자! 이렇게 말하실 건가요? 그렇다면 여러분이나 저는 다를 것 같은가요? 아니요, 저는 감히 쉽게 섣불리 그리 답하지 못할 것 같아요. 정말 제게 '그런 대단한' 제안이 온다면? 뭐 가릴 것이 있겠어요? 아니 이런 기적같은 기회가 드디어 내게? 신이 나를 도우시는구나!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이 그것을 말해주거든요. 무슨 얘기냐고요? 저는 이제 충분히 나이 들고, 지난 그 긴 세월 참으로 잘 먹고 잘 살았지요. 그런데도 지금 저는 작금의 저의 궁핍과 결핍을 원망해요. 아쉬워하고 미련을 갖고, 또 후회도 해요.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아이쿠 그때 저렇게 했어야 했는데!'
옆에서 보는 저도 답답해서 이런 저를 이렇게 바로 찌르지요. "그럼 그때 그렇게 먹고 즐기고 누린 것 다 없던 것으로 하고, 지금 조금 더 손에 가진 상태로 그렇게 해줄까? 그럴래? 선택해!" 그건 또 아니라는 것을 저는 알지요. 그건 싫은 것이지요. 제가 원하는 것은 '그때의 것은 이미 그때의 것이고 지금은 또 그때와는 다른 추가적인 그 무엇을 말하는 것이잖아요?' 이런 제가 죽기 살기로 돌아오다가, 결국은 도착해서 죽은 그 농부를 뭐라고 할 수 있겠어요? 저는 '늘' 꿩도 먹고 동시에 알도 먹고 그렇게 하고 싶은 거잖아요? 여러분이 봐도 말 안돠는 소리지요? '왜 너만?'
제가 번역한 오늘의 시를 봅니다. 투르게네프의 산문 시는 시어 자체가 그리 어렵지는 않아요. 그래서 번역하는 사람으로서는 좋지요. 하지만 그의 시가 주는 감동은 아주 크고 깊습니다.
실제로 돈을 손에 쥔 세계 최고의 부자, 그리고 돈은 하나도 없는 가난한 소작인이지만 그 누구보다 따뜻하고 너그럽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또 다른 부류의 부자 (마음의 부자, 영혼의 부자).
부자 두 남자 (Two Rich Men)
- 이반 투르게네프
내가 그 유명한 부자 로스차일드에 대한 수많은 칭송을 들을 때면, 많은 돈을
수천 명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데, 그리고 나이 든 사람들을 부양하는
일에 기부한 그, 나는 감탄하고 감동을 받는다.
그러나 내가 그의 그런 일을 높이 평가하고 감동하는 그 순간에도, 나는 자신들의
쓰러져가는 오두막으로 조카를 데려온 어느 가난한 소작인 농부 가족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그 아이 카차를 이리로 데려오면,' 아내가 말했다, '우리에게 마지막 남은 돈 1/4 페니조차 그 아이에게 쓰게 될 거에요, 결국 우리는 얼마 안 되는 빵에 넣을 소금마저 살 수 없게 되지요.'
'그렇겠지,... 그럼 소금 없이 지내지 뭐', 그녀의 남편 농부가 대답했다.
로스차일드는 그 농부에 비하면 한참이나 뒤에 있다!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 영어 번역본을 바탕으로>
# 로스차일드 가문 (Roschild Family) - 독일 유대계 국제적인 금융 재정 전문가 가문.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가 세웠다. 5명의 아들들에게 사업을 전략적으로 분배해서 최초의 국제적 금융 은행을 설립했다. 19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으로 올라선다.
# 뜬금없는 궁금함 하나. 이 아이는 누구의 조카일까? 아내의? 아니면 남편의? 여러분 생각은 어때요? 저는 아내의 조카였으면 좋겠어요, 여러 가지 이유에서요. 훨씬 더 아름다운 스토리 전개가 될 것 같아요! 아내의 말이 더욱 이해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