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성함, 강인함, 꼭 필요한 존재, 아니 불멸. 오세영 '나무처럼
국민학교 때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오후 한 시쯤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소리는 언제나 "엄마, 나 밥!"이었다. 일하는 누나의 그 시각 최우선 과제도 내게 서둘러 밥을 차려주는 것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배고픔을 참을 수 없었다. 하늘이 빙빙 돌고 어지럽고, 그야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이 떨어진 상태'였던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당연.
노란 하늘을 본 적이 몇 번 있다. 우선 허기가 진 경우. 또 한 번은 3천 미터 달리기에서 운동장을 여러 바퀴 돌고 난 후의 그때. 입은 바싹 마르고 다리는 후들거리고 숨은 가쁘고, 무엇보다 그 순간 하늘이 정말 노랗게 보였다. 병아리 털의 색깔 그 샛노란 하늘과 내 눈앞. 학교 운동장에서 놀다가 날아온 야구공에 눈을 정통으로 맞았다. 별이 보이고 노란 하늘이 보였다. 한 달 정도 시퍼런 눈으로 다녔다.
이런 것을 최근에 경험한 것은 조지아에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오후 4시쯤 갑자기 가슴이 콩닥거리고 식은땀이 나고, 미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느낌은 정말 처음이었다. 갑자기 공황장애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게 왜? 여기저기 찾아보니 딱 그런 증상이었다. 하지만 역시 나는 선무당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시각 나는 당의 부족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공황장애였다면 그리 간단히 해결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추야자 (데이트 혹은 데이트 팜, date/date palm)는 우리가 흔히 종려나무라고 부르는 종려과에 속하는 나무의 열매를 말한다. 모양이 꼭 큰 대추처럼 생겼다. 우리가 먹는 대추의 서너 배 크기다. 보관과 맛을 위해 주로 말린 열매를 먹는데 대추 맛도 나고 곶감의 맛도 난다. 식감은 말린 대추보다는 곶감쪽의 느낌이 더 강하다. 팥양갱을 먹는 느낌도 있다. 단맛이 아주 강해서 곶감보다 훨씬 더 단맛을 낸다. 애매한 식감과 지나치게 단 맛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랍인들은 이것을 주식처럼 먹는다. 빵과 함께 먹기도 한다. 설탕절임 수준으로 달아서 저장성이 아주 뛰어나고 휴대하기 좋아서 예전에는 여행자, 선원, 전쟁터의 군인들의 필수 비상식량이었다고 한다. 100그램당 에너지는 282kcal, 굳이 흰쌀밥과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다. 탄수화물 75그램 (흰쌀밥의 2.5배), 식이섬유 8그램 (흰쌀밥의 무려 20배).
로마제국의 황제들 중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유난히 소식을 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업무 중 이 대추야자는 조금씩 수시로 먹었다고 한다.
아랍에미레이트 현지에서는 워낙 싸고 흔하다 보니 거의가 공짜로, 원하는 만큼 실컷 먹을 기회가 많다고 한다. 길거리 가로수로도 많이 쓰이기 때문에 거리 어디에서나 그냥 따먹어도 된단다.
5천만 년 전부터 자생해 오다가 기원전 4천 년 무렵부터 작물화되었다. 사막에서만 자라는 나무로 원산지는 이라크, 이집트, 북아프리카 일대다. 연 강수량 120-250밀리미터인 모래땅, 꽃이 피고 성숙할 때까지는 비가 오지 않아야 한다. 온도가 높고 겨울철에도 평균 기온이 섭씨 0도가 되는 지역에서 잘 자란다. 그야말로 사막에 특화된 나무다.
생명력이 엄청 강하다. 사막의 불사조라고도 불린다. 오아시스 하면 생각나는 나무 역시 이 대추야자나무다. 밑둥을 잘라도 금새 다시 자라고 뿌리 윗부분을 불에 태워버려도 그 아래 뿌리에서는 금새 새싹이 돋는다고. 그래서인지 학명이 Phoenix dactylifera, 피닉스 (불사조)가 들어간다. 사막에 살며 500-600년마다 스스로의 몸을 불태워 죽고, 그 재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전설 속의 영험한 새, 영원불멸의 상징.
열매는 나뭇가지가 휘어지고 꺾일 정도로 많이 열린다. 옛부터 다산의 상징으로 알려진 이유다. 사막 사람들의 훌륭한 탄수화물 공급원이었기에 '생명의 나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종려나무도 동아시아에서 자생하는 종려나무가 아니고 이 대추야자나무를 말한다. 말린 열매를 설탕으로 쓰기도 하고, 수액을 가지고 설탕을 만들기도 한다.
무슬림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들은 라마단 기간 동안은 해가 뜨고부터 해가 지기까지는 금식을 한다. 금식 시간이 아닌 경우 주로 이 대추야자를 먹는다고 한다. 그 옛날 무함마드와 그 추종자들이 힘든 시절 하루 다섯 알의 대추야자로 연명하며 어려움을 이겨냈다는 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달고 영양가 높고 소화가 잘되는 점도 그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라마단 무렵에는 서로 선물로 대추야자를 주고받고 집에 충분히 비축해 둔다. 하루에 두 알 정도 먹는다고 한다. 그저 최소한의 에너지 소스로.
오늘 뜬금없이 대추야자 얘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내가 머물로 있는 이곳에는 통곡물빵도 없고 현미도 보리쌀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곡물 뮤즐리를 상식한다. 이곳 큰 마트에는 켈로그의 두 가지 뮤즐리가 있다. 그 중 하나에는 호박씨와 이 대추야자 잘게 썰은 것이 들어있다. 그 자연의 단맛이 좋아서 나는 꼭 이것을 산다. 현지인들이 그 뮤즐리를 즐겨 사 먹을 일은 없으니, 결국 그 마트의 뮤즐리는 거의 내가 사는 것이다. 그런데 엊그제 가보니 그것이 없다. 다른 것만 있다. 오늘 아침 대추야자 들어있지 않은 뮤즐리를 먹으면서 그 아쉬움에 내 머릿속에 이 제목이 불쑥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서둘러 이 글을 쓴다.
나는 젊을 때부터 '영원히 사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흥미도 아무런 바람도 없었다. 나는 '지나치게 오래 사는 것' 또한 극도로 경계하고 염려했다. 반면 아들 녀석은 아주 어린 시절 영원히 사는 것, 충분히 오래 사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흥미롭고 신기하다는 생각을 그를 보며 가지고 있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지, 궁금하다. 물론 물어보지는 않을 것이다 굳이.
예이츠는 늙어가는 것에 대해 평소 깊은 우려와 혐오감을 드러냈다. 그의 시 이곳저곳에서 그 명백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늙어감도 아주 싫어했다. 두려움인지, 추하게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낭만적인 우려와 기피의 바람인지,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나이 들어가는 것, 그렇게 늙어가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데 뭐, 달리 방법이 있나? 자연이 그리 몰고 가는 것을?
그래서 오늘의 주인공 대추야자 열매가 더욱 나의 관심을 끈 것이었다.
'사막의 붉은 보석 - 황금빛 모래바람 속의 당당한 존재/굳건히 솟아오른 대추야자나무 그리고 가지마다 무서울 만큼 많이 달린 붉은 보석들/사막의 목마름을 달래주는 달콤한 선물*' (*사실 대추야자를 먹으면 입이 마르고 갈증이 난다. 그래서 마른 빵을 먹을 때 처럼 꼭 물과 함께 먹어야 한다. 현지인들은 경험을 통해 그런 지혜를 배운 듯 하다. 그러니 수분 부족 갈증의 목마름을 달래주는 것은 아님을 사족으로 써놓는다.)
'신이 내린 한 줌의 단맛 - 뜨거운 태양 아래 깊고 강인한 뿌리/건조한 바람 속에서도 피어나는 생명의 열매'
'시간을 담은 과일 - 갈색빛 껍질 속에 사막의 뜨거운 시간이 응축되어 입안에 퍼지는 깊은 향과 달콤함, 수분을 빼앗아가는 신비로운 맛'
'강인함의 상징 - 척박한 땅에서도 굽히지 않는 굳건함/자연의 거친 숨결을 머금고 묵묵히 빛나는 대추야자/생존의 지혜, 달콤한 훈장'
AI의 힘이 이리도 대단하고 그래서 무섭다. 시인들의 시만큼 아름다운 위의 표현들은, 내가 검색하고 찾은 AI의 글이다. 사실성과 시적인 감성 그 두 가지를 모두 담은 멋진 시, 나는 그렇게 보았다.
본시 성경을 잘 읽지 않는다. 그에 대한 지식도 별로 없다. 그러나 필요한 경우에는 영문 성경본을 읽는다. 한글성경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가나안땅으로 진입하며 처음 정복한 곳이 여리고성 (Jericho)이다. 이 성에는 대추야자나무가 아주 많았다고 한다. 물도 풍부했다. 물이 풍부하고 대추야자도 많으니 사람들에게는 살기 좋은 곳이었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간의 서식지/도시로 나는 알고 있다.
또 내가 기억하는 여리고성은 한 어리석은 왕과 관련된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진 이후 결국 남유다의 마지막 왕이 되어버린 시드키야 (Zedekiah)라는 왕이다. 백성과 신하들을 버리고 도망가다가 여리고성 근처에서 붙잡힌다. 그 당시 강성했던 신바빌론 제국에 정말 터무니없는 판단과 근거로 반기를 들었다가 결국 아들들은 자신이 보는 앞에서 모두 죽임을 당하고 본인도 바빌론으로 끌려가서 그곳 감옥에서 여생을 보내다 죽었다.
대추야자, 그 풍성함이 그 강인함이, 그리고 그 다양한 효익이 내게도 그대로 옮겨왔으면 좋겠다. 아니, 피닉스 불사조 같은 생명력과 함께 사람들에게 여러 긍정적인 가치와 도움을 주는 그 덕목을 배우고 익힐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각오와 다짐만으로도 오늘 내가 이 글을 쓴 보람은 이미 충분히 있다.
오늘의 시를 본다. 나무를 칭송하는 아름다운 시다.
워낙 나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살아있는 나무든 그 나무로 만든 물건이든, 나무에 관한 그림이든, 다 좋아한다. 아주 오래 전 그 누군가가 내게 그랬다 - '당신은 나무로 태어났기에 그렇다고. 그래서 주변에 흙이 꼭 필요하다고.' 믿거나 말거나, 오불관언 (지금 그게 뭐 그리 중요한 일이겠나? 그렇거나 말거나! 나는 아무런 상관없네 더 이상은!)!
나무가 서로 어울려 살듯 그렇게 어울려 살자고 시인은 말한다. 좋은 말이다, 다툼과 증오만 없다면.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함께 추위를 이겨내는 나무의 그 자세를 배우자고 말한다. 힘이 될 것이다, 당연 서로에게.
맑은 하늘 우러러보며 열린 마음으로, 고운 햇살 받으며 그리 앞으로 나아가자 권한다. 비바람 속에서도 커가는 나무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커 가자고 희망 속에 힘주어 말하고 있다. 뿌리를 깊숙이 내리고 든든하게 버티며 사나운 태풍에도 늘 당당하자고.
옳고 그름, 가고 또 오는 그 계절의 변화와 삶의 이치를 분별하며 그리 '순천자' (그저 하늘의 뜻을 존중하고 묵묵히 따르는) 하며 살자고. 피고 질 때 그리고 물러설 때를 알며 그렇게 여유 속에 지혜 속에 이 세상 살아가자고, 분명 그럴 수 있다고 우리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