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다르크 - 잉글랜드, 왜 세 번이나 태웠나?

- 잃은 것 얻은 것, 죽음이 오히려 삶, 신념. 정현종 '간단한 부탁'

by 가을에 내리는 눈

오늘 오후 오랜만에 다시 듣는 음악 하나가 또 나의 무지를 일깨워주었다. 그런데 예전과는 달리 그래서 뭐 부끄럽다거나 살짝 자괴감이 든다거나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쁨의 감정이 느껴진다.


요즘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나이의 내가 조금씩 '성장'하는 듯한 느낌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스페인의 전설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 이런 말을 했다. 97세의 나이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95세의 어느 날 그때도 하루에 몇 시간씩 꼭 연습을 하는 그를 보고는 어느 기자가 이리 묻는다 - 선생님, 80년 넘게 첼로를 하셨는데 지금도 뭐 연습할 것이 있나요? 카잘스의 대답 - "응, 요즘도 내 실력이 조금씩 느는 것을 느껴!"


나이가 들면서 키는 자꾸 줄어만 든다. 몸무게도 준다. 그러니 신체적 성장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정신적으로는 '다시' 조금씩 커가는 것 같다. 일상 속에서 느껴지는 여유가 그렇고, 과거에는 단 한 번도 궁금하지 않았던 것들이 처음으로 궁금해지는 것이 그렇다. 특히 '그 사람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있었겠지' 이렇게 생각할 줄 알게 된 것이 그렇다. 얼굴은 늙어가지만 그 얼굴 속의 여유와 웃음, 평온함은 오히려 살아나는 듯한 것이 그렇다.


캐나다의 음유시인 레너드 코헨을 좋아한다. 그의 보이스 컬러도 좋아하지만 그의 노래에 담긴 가사를 좋아한다. 오랫동안 그의 옆에서 코러스를 넣었던 여성 가수가 있다. 제니퍼 원스 (Jennifer Wannes)다. 정말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살짝 뒤로 넘기는 독특한 허스키 음색은 압권이다. 오늘 내가 들은 음악이 그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함께 부른 노래다. 7분 이상의 긴 곡이다. '존 오브 아크 (Joan of Arc)', 잔 다르크다.


이 노래를 듣고 내가 가진 궁금함은 이것이었다 - 왜 잔 다르크라고 부르나? 다른 나라에서는 뭐라고 부를까? 그녀는 왜 그런 삶을 살다가 그렇게 갔을까? 그녀가 프랑스의 새로운 왕 샤를 7세에게 준 실질적 도움은 무엇일까? 샤를 7세는 왜 그녀를 부르고뉴군 손에서 구해내지 않았을까? 않은 것인가 못한 것인가? 그것이 또 거꾸로 잉글랜드와의 백년전쟁에 끼친 영향은 무엇일까? 독이 되었을까 결과적으로 약이 되었을까? 잉글랜드는 왜 그녀를 무려 세 번이나 불태웠을까? 샤를 7세는 그녀 사후 25년이 지난 시점에 왜 그녀에 대한 재심청구, 과거 판결의 무효화를 관철시킨 것일까? 그녀를 위해서?


마지막 하나, 내가 그녀의 그 모든 개인적인 플러스 그리고 마이너스를 네팅친다면 (한 여성의 인생, 잔혹한 죽음과 그 후의 그녀의 모든 것) 나는 과연 어떤 결론에 도달할 것인가? 그저 한 어린 여성의 불쌍한 죽음? 팽 당한, 버림받은 가여운 인생? 아니면 결국은 그런 죽음으로 얻은 것이 훨씬 많다?

'그게 뭐가 궁금해?' 이리 훅 하고 들어오시면 딱히 드릴 대답은 없다. 하지만 살아보니 알아가는 즐거움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놀고 있는 머리, 뭔가 새로운 것을 알면 좋은 것 아닌가?


우리가 알고 있는 'Jeanne d'Arc' (잔느 다르크)는 현대 프랑스어식 표기이고, 중세 프랑스어로는 'Jeanne Darc'라고 쓴다고 한다. 프랑스어 이름 '잔느'와 그녀의 아버지의 이름으로 알려진 '다르크'가 합쳐진 것으로 보면 된다. '다르크네 딸 잔느' 뭐 이런 의미다.


빈센트 판 고흐처럼 '고흐라는 지역 출신의 그 빈센트', 이와 비슷하다. 영어로는 '조앤 오브 아크 (Joan of Arc)'라고 쓴다. 사실은 오기라고 한다. '다르크의 딸 잔느' 이런 뜻으로 프랑스어가 적고 있는 Jeanne d'Arc'를 아르크네 잔느 이렇게 이해한 것이다. 아무튼 영어권에서는 이렇게 쓴다, 이리 굳어졌다. 잔느/잔 (Jeanne)은 라틴어 이름 요안나 (Joanna)의 프랑스어식 표기다. 조앤 또는 제인 (Jane)의 변형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잔 다르크의 공적은 무엇일까?


하나, 5년간이나 공석으로 있던 프랑스 국왕의 자리에 샤를 7세가 공식적으로 즉위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전통적으로 프랑스 왕들의 대관식은 파리의 북동쪽에 있는 랭스 (Reims)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때 랭스는 잉글랜드의 손에 있었다.


또한 그 당시 샤를 7세는 공식적으로 왕으로 즉위한 상태도 아니었고 그의 입지 또한 대단히 취약했다. 그 자신도 그런 상황에서 대관식을 치를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때 잔 다르크가 그를 찾아간다. 자신이 신에게서 받았다는 계시 ('잔 다르크, 네가 프랑스를 구하라. 샤를 7세가 프랑스의 정통이다')를 그에게 말한다. 한껏 고무된 샤를 7세. 그녀는 자신의 원대한 꿈과 의지,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왕에게 말한다. 감명받은 샤를 7세. 그녀를 지원한다. 과감한 탈환작전을 통해 잔 다르크가 이끄는 친 샤를 7세의 오를레앙군이 파리 바로 밑에 있는 중요한 도시 오를레앙과 북쪽의 랭스를 차례로 탈환한다. 드디어 샤를 7세는 이곳에서 대관식을 마치고 아버지 샤를 6세의 뒤를 이어 프랑스의 왕의 자리에 올랐다.


둘, 이 일을 기점으로 프랑스는 그동안 백년전쟁 내내 열세를 면치 못하던 전세를 뒤집고 승기를 잡기 시작한다. 결국 그 후 잉글랜드는 프랑스에서 물러나게 되고 프랑스가 백년전쟁의 최종 승자가 된다. 잔 다르크의 수훈 갑 공이다.


그러나 샤를 7세는 연패하던 전황이 유리해지자 보다 현실적인 전쟁 마무리 계획에 집중한다. 잉글랜드 그리고 잉글랜드 편에 서서 싸우던 부르고뉴군과 하루속히 협상을 통해 이 긴 전쟁을 끝내고자 한다. 하지만 강경파 잔 다르크는 이에 반대한다. 왕과 그 측근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래 그동안 좀 공을 세웠다고는 해도 사실 아무 것도 아닌 시골 출신의 이름없는 여자아이가 뭐 나랏일에 그리 말이 많아, 그런 불만을 가지게 된다.


이 틈을 타서 잉글랜드와 부르고뉴군은 다시 치고 들어온다. 프랑스는 그동안 수복했던 땅도 다시 조금씩 잃는다. 그때 잔 다르크가 전투 중 부르고뉴군에게 생포된다. 그 당시에는 적군의 지휘관을 사로잡으면 몸값을 받고 상대방에게 넘겨주는 것이 관례였다. 잉글랜드가 깊은 관심을 보인다. 그녀의 이단성, 신성모독에 대해 불만이 가득했던 로마 카톨릭 측도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정작 잔 다르크 진영의 샤를 7세는 그리 큰 노력을 하지 않는 듯 보인다.


몇 가지 사정이 있었다. 우선 샤를 7세의 왕권이 그다지 강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때까지는 프랑스의 거의 모든 왕들이 그런 취약한 지위 속의 왕이었다. 금전적 여유 또한 그리 충분한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정치적 종교적으로 애매한 입장에 있는 당시의 그녀의 위치다. 협상을 통해 전쟁을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상대방인 부르고뉴군측과 잉글랜드, 그러나 그녀는 이 두 진영을 원수로만 여긴다.


마녀, 이단, 신성모독의 강력한 혐의와 비난을 받고 있는 그녀. 로마 카톨릭도 프랑스내 교회도 그녀에게 이를 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의 국왕 샤를 7세가 그녀를 구해내는 것도 애매하다.


이런 점들을 모두 고려한다고 해도 샤를 7세는 평소 워낙 간교한 인물이었다. 신하들을 토사구팽시키기로 악명이 높은 인물이었다. 그 생긴 외모로도 간교함이 미루어 짐작이 된다. 그래서 여러 이유로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 없는 역대 왕으로 꼽힌다. 역시 사람의 외양은 참으로 중요한 것인가 보다.

결국 잉글랜드는 그 당시 1만 파운드 (현재 가치 미화 백만 불 조금 못 미치는 거액)의 몸값을 부르고뉴측에 주고 그녀의 신병을 인수한다. 그리고 프랑스 내 자기 점령 지역의 프랑스 종교재판소에 넘긴다. 물론 잉글랜드에 의한 프랑스인 고위 성직자들에 대한 각종 회의와 협박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일 년 정도의 종교재판의 결과 마녀/이단/신성모독/남성 복장을 한 죄로 화형에 처해지는 판결를 받는다. 화형이 집행된다. 잉글랜드는 자칫 그녀가 사후 신성시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녀 신체의 그 어떤 것도 남기지 않도록 무려 세 번의 화형을 행한다. 그리고 그 재와 남은 뼈들은 세느강에 버린다. 그녀는 지금 프랑스 파리의 팡테옹에 모셔져 있다. 그러나 시신은 없다.


셋, 프랑스 교회 종교재판소의 프랑스인 주교에 의한 화형의 판결/화형의 집행/세 번의 화형, 이것이 오히려 프랑스인들을 자극한다. 결집하게 한다. 잉글랜드편에 섰던 부르고뉴측도 그 무렵 자기 나름의 이해득실을 따진 후 다시 프랑스측에 선다. 백년전쟁의 말기, 전세는 프랑스쪽의 승리로 완전히 기운다. 잉글랜드측으로서는 거금을 들인 잔 다르크의 신병 인수/무리한 종교 재판/세 번의 화형/세느강에 버려진 그녀, 이런 나름의 전략적 판단이 오히려 크게 화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샤를 7세는 백년전쟁이 프랑스의 최종 승리로 종식된 후 3년이 지난 시점에 그녀에 대한 과거 종교재판의 재심을 로마 교황청에 요구한다. 그녀를 위해서? 당연 아니다. 그럴 인물은 아니니까. 이 역시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잔 다르크가 그렇게 마녀/이단/신성모독의 중죄인으로 남아있는 한, 그녀의 지지 속에 대관식을 끝내고 그녀가 앞장 선 여러 전투에서 기존의 열세를 뒤집고 승리하고, 그렇게 얻어낸 자신의 '승리왕'으로서의 명성은 크게 흠집이 가는 것이었다. 그는 다만 이것을 바꾸어 싶었을 뿐이다.


아무튼 1456년, 그녀 사후 25년 만에 그녀는 최종 무죄의 판결을 받는다. 그리고 죽은 지 거의 500년이 지난 시점에서 1920년 교황 베네딕토 15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된다. 카톨릭에서는 잔 다르크를 라틴어식 명칭인 '아르크의 요안나' (Joanna de Arc) 혹은 '요안나 아르크' (Joanna Arcensis)라고 부른다.


그녀가 잃은 것과 얻은 것은? 글쎄, 지난 100년 넘는 그 기간 동안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은 많고도 많을 것이다. 물론 잔 다르크는 유독 잔혹한 죽음을 당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그저 전쟁에서 죽은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시골 이름 없는 어린 여성에서 귀족의 작위를 받았고 그것을 넘어 지금까지 프랑스의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존재가 되었다. 프랑스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안타까운 죽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죽음으로 나라를 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그 전쟁을 계속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었다. 결코 의미 없는, 가치 없는 죽음이 아니었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아도 이만큼의 존경과 영광을 누리는 사람 또한 별로 없다. 본인도 그리 생각할 것이다,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죽음이었다고!


오늘의 시를 본다. 철학하시는 시인의, 우리의 깊은 묵상을 요구하는 시다. 짧고 단순한 듯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쉬운 시어들로 가득해서 금새, 그저 쉽게 읽기를 마친 나를 부담스럽게 한다. 아닌데, 뭔가 있는데? 뭐지? 이게 맞나, 나의 이런 생각들이?


저 멀리 지구의 다른 쪽에서는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모든 것이 파괴되고 모든 것이 그저 참혹하게 정지의 상태에 있는 그때에, 지구의 또 다른 어느 곳에서는 느긋한 저녁을 먹고 두 남녀가 여유롭게 동네 상가의 꽃집에 들러 꽃을 보고 있다.


시인이 부탁한다, 어이 거기 전쟁하고 있는 사람들, 저 젊은 두 남녀의 저녁 산보는 방해하지 말아 주시오. 뭐 거창한 부탁 아니니 그것쯤은 쉽게 들어줄 수 있겠지요? 내 딴 것은 아예 해달라고 하지도 않아요. 그저 내일도 모레도 저 남녀의 저녁 산보만 계속될 수 있게 그렇게. 아, 그 꽃집의 유리창도 깨지 마시고. 그 정도는 해 주겠지요? 어려운 것 없잖아요,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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