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의 논리, 합의, 연민과 아낌의 영역. 최영철 '노부부'
아들 녀석이 세컨더리 스쿨 다닐 때 9학년과 10학년 2년 연속으로 푸드 수업을 들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하는 그 요리시간을 늘 기다리고 그렇게 좋아했다. 사회에 나와 혼자 살면서 그때의 그 배움은 그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자기 집에서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서 먹는 것을 좋아한다. 당연 건강에도 좋은 섭생의 습관이다.
지난해 내가 방문했을 때에도 이것저것 많이 만들어 주었다. 김치도 직접 담궈서 먹는다. 양파와 배를 곱게 갈아 넣은 것을 보고는 제대로 한다 싶었다. 붉은 생고추도 갈아서 넣었다. 정말 맛이 좋았다. 서울에 있을 때는 한동안 시판되는 조선호텔 포기김치를 사 먹었는데 그것보다 맛이 좋았다. 아버지는 익은 김치를 좋아하신다고, 내가 가기 전 이미 한 달 훨씬 전에 김치를 담궈 놓았다.
치킨 스톡을 베이스로 해서 자극적이지 않은 맛있는 부대찌개를 만들어 주었다. 명동의 유명한 부대찌개집 것 보다 순하고 맛있었다. 쌩스기빙데이라고, 코스트코에서 무려 1킬로짜리 통갈비살을 사 와서는 갖은 양념을 바르고 오븐에 10시간 이상을 저온으로 구워서 주었다. 충분히 촉촉한 그 맛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이 레드 조셉펠프 카쇼도 함께. 짜장면도 만들어 주었다, 중국 마트에서 사온 춘장을 볶고 한인마트에서 사온 풀무원 면을 가지고. 돼지고기도 적당한 크기로 썰어 넣었다, 물론 양파도 다른 재료들도. 중국집보다 훨씬 담백한 맛이었다.
까르보나라는 지금껏 내가 먹어본 것 중에 최고였다. 봉골레도 아주 맛있었다. 평소 나는 봉골레를 그리 즐겨 사 먹지 않았다. 잘한다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도 영 그 참맛을 느낄 수 없었다. 조개의 문제, 면의 삶기의 문제, 면에 배어들어간 양념의 깊이 등. 아들 녀석표 봉골레는 달랐다. 우선 조개가 많이 들어갔다. 싱싱한 가리비도 추가로 넣었다, 아버지는 뭐 많이 씹히는 것을 좋아하신다고. 외국에서는 살아있는 해산물이 많이 비싸다, 가리비 하나의 값도 무서울 정도였다.
3주 머무는 동안 몸무게가 많이 늘었다. 나도 기분 좋았고 그것을 보는 아들 녀석은 정말 좋아했다. 평소 워낙 맛있는 것 먹는 것을 즐기는 나,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자식 사랑하지 않는 부모 없지만 이런 아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나? 어찌 조금이라도 덜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겠나? 아, 오야꼬동 (아버지와 아들 <오야붕/꼬붕>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일본 덮밥 (돈부리)이었다. 닭 <부모>과 계란 <그 자식>이 모두 이 요리에 사용된다. 닭의 넙적다리 부드러운 살을 가지고 만드는 것인데 아주 맛있었다)도 만들어 주었다.
오늘 글의 서두가 길다. 아들 자랑에 여념이 없어서 그만. 부디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를, 나이 든 사람의 여전한 그 자식 자랑을!
모계사회라는 말은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가정과 사회 속의 권력이 어머니에게 쏠려 있다는 말이 그 대표적 의미일 것이다. 경제활동을 여성이 하니까. 그 자연스러운 결과로 남자는 집안 살림을 한다. 결혼 초기부터 그렇다, 아니 아예 서로 그리 알고 있고 그렇게 자리잡는다. 아이들 또한 이미 그것에 익숙하다.
지금 새롭게 옮겨온 이 집에서, 이 나라에 머무르면서 호텔 아닌 곳은 이번이 처음인데 신선한 경험을 많이 한다. 나이 지긋한 아버지가 집안 살림 하는 것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점심 때는 그 양반과 나 이리 남자 둘이 이 집 부엌을 점유한다. 놀랍다, 그의 요리 실력이! 하긴 평생 해온 요리일 것이니!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늘 따뜻한 밥에 따뜻한 반찬을 준비한다. 그 정성 또한 놀랍다. 강한 책임감으로도 느껴졌다.
정작 우리네 어머니와 아내가 요리하는 것은 그리 놀랍고 신기하게 보지 않으면서. 이 또한 오랜 세월이 가져다 준 편견이고 내 익숙함의 산물이다. 이 나라가 결국은 중국에서 갈라져 나온 나라이기는 하지만 유독 이 집 사람들은 중국의 색채가 강하다. 말하는 것을 들어봐도 이곳 현지인들의 강한 악센트 보다는 중국어의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외양도 그렇다.
그래서 그런가? 음식 하나하나가 다 나의 입맛에 맞는다. 자극적이지 않고 순하다. 국도 그렇다. 작은 새우를 넣어 밑국물을 내고 기름기 없는 돼지고기도 잘게 갈아서 함께 넣는다. 당연 국물의 맛이 깊고 은은하다.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아욱 혹은 근대와 똑같은 맛의 채소를 넣었다. 내가 늘 그리워하는 바로 그 어머니표 아욱국 또는 근대국이다. 가볍게 된장을 넣은 것이 아닌 그저 맑은 국물의 그 국.
한 그릇 뚝닥 비웠다. 마침 길옆 음식점에서 사온 '껌 땀/껌 승' (반토막난 부서진 쌀로 지은 밥 위에 숯불에 직화로 구운 갈비양념의 두툼한 돼지갈비를 얹은 이곳 현지인들의 일상식)과는 찰떡 궁합이었다. 맛있는 망고, 그리고 이곳 현지에서만 볼 수 있는 (이 집 마당에서 딴 것이라는) 특이한 바나나로 거한 점심을 마무리했다.
자세히 보면 알게 된다, 충분히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다. 이곳 남자들이 거의 대부분 담배를 피우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집안 살림하는 많은 남자들이 새를 기르고 난을 기르는 이유도. 그래도 시간이 나면 길가 작은 카페에서 진한 커피와 차를 마시는 이유도. 이들도 살아야 하니까!
그동안 나는 왜 이 나라 남자들은 여자들을 생활의 일선에 내보내고 자기들은 빈둥빈둥 저리 놀고만 있나? 그러니 배만 볼록 나오지? 왜 저리 살까 그렇게 속으로 힐난했다.
그들만의 거래였다. 오랜 세월 그렇게 자리잡은 이 나라 이 사회의 그들만의 계약이었다. 지난 세월 그들은 그렇게 평온하게 잘 살아왔다. 프랑스 지배 속에서도, 그 이전의 오랜 중국의 지배하에서도. 그럼에도 여전히 조금은 안타까운 혹은 안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 그 역시 나의 여전한 편견이고 나 중심적 사고의 연장이다. 그들은 그런 '선택'을 한 것이다. 상호 그런 합의를 한 것이다.
여자는 거의 말이 없다. 늘 조용하다. 웬만하면 나서지 않는다. 남자들이 말이 많다. '참으로 수다스러운 이곳의 남자들'이라는 인식을 이번에 이곳에 와서 했다. 다 그 이유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언제나 그렇지만 아이들은 누가 집안의 실세 권력자인 줄을 안다. 본능적으로, 그리고 자라면서 그들은 목전에서 늘 보고 듣고 경험했을 것이다. 누가 힘이 있는 존재인가를! 이들은 결혼을 해서도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을 당연시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 어려서부터 늘 집안 살림을 하며 나와 가까이 있던 아버지, 굳이 그가 그리고 내가 나이 들었다고 함께 있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나? 아내의 입장에서도 정확히 동일하다. 자기가 자기집에서 늘상 보고 살아온 그 익숙함인걸?
또 하나 있다. 낮시간 집에 나이든 부모와 늘 함께 있는 것은 며느리가 아니라 아들이다. 아내는 돈 벌러 밖에 나갔으니까. 그만큼 상호 접점의 시간이 적다, 며느리로서는.
우리와는 다르다. 지금까지 아버지는 보통 집에는, 특히 낮시간에는 없는 존재였다. 그것에 익숙한 우리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24시간 집에? 내 가까이? 건넌방에? 아니지, 그건 아니지. 숨이 막힐거야! 내 아내는 더하겠지? 자기 아버지도 아니고 남편의 아버지 아닌가?
이곳 사람들은 장수한다. 80세 후반은 넘어야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부분 건강하다. 물론 이들의 섭생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소식을 한다, 채소를 매끼 챙겨 먹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노후에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보내야 하나 그런 걱정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장수의 요인일 것이다.
그렇게 정리되고 그리 자연스럽게 뿌리내린 이들의 남녀 역할의 분배, 각자 자신의 역할에 만족하는 듯하다. 여성들도 자신의 경제활동에 대한 눈에 거슬리는 위세나 내세움도 없는 것 같다. 그들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로 이미 거래를 마친 것이라는 것을! 자기는 밖에서 돈을 벌고 남편은 집에서 살림을 하고 - 밥을 짓고 아이들을 챙기고 학교에 보내고 집으로 데려오고, 돈 버는 아내를 존중하고.
이곳 아내들은 그저 단 하나만 바란다고 한다. 남자로서, 배우자로서 '오직' 아내 자신에게만 충실할 것! 그것이 어긋나면 이곳 여성들은 무서운 모습으로 바뀐다, 아주 무섭다. 부부싸움 없는 곳이 어디 있겠나? 이 나라에서도 몇 번 목격했다. 무섭다, 우리네 사회의 그것만큼 무섭다. 당연한 일이다, 오직 그것 하나 바라는 것이니까!
그것만큼은 결코 용서가 없단다. 그래서 이곳도 갈라서는 비율은 높다. 여성이 경제적 능력을 가진 나라들의 공통점이다. 러시아가 그렇고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여러 국가들이 그렇다. 반면 나라 전체가 여전히 경제적으로 거의 빈곤의 수준에 있고, 여성들의 경제적 지위는 더욱 낮은 인디아 같은 나라들의 갈라섬의 비율은 아주 낮다. 사실 이것 또한 '정상적인' 현상은 아니다. 그저 달리 방법이 없으니, 살기 위한 호구지책의 하나일 뿐. 슬픈 일이다.
내가 늘 고맙게 느끼고 있는 나의 젊은 동무 한 사람이 있다. 그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아내가 외교공무원으로 일하고, 그래서 해외에 파견되면 자신의 일을 그만두고 따라와서 살림을 하는 남편들이 있다고. 자기는 그런 남자가 참으로 부러웠다고. 이 양반의 아내가 그 소리를 듣고는 이리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 - 당신의 그런 생각, 남자들의 바로 그런 생각,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이 사람도 본인이 잘 나가는 중년의 외교관이다. 나는 살짝 그 마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안에서 살림하는 일이 결코 쉽고 만만하지 않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가끔은 남의 손에 있는 떡이 더 커보이는 때가 있다. 특히 현재가 많이 힘들고 일상에 치일 때에는, 그런 생각 충분히 할 수도 있다. 단지 우리 사회는 옛날부터 그런 상호 합의와 계약을 남녀 부부가 하지 않았을 뿐.
얼마 전 마스터즈 골프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그린 자켓을 걸치고 우승자가 했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지금까지 집에서 살림을 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챙겨준 아버지에게 감사한다고. 자기 부모는 어머니가 밖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아버지가 집안 살림을 한다고. 자기는 늘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러웠고 한없이 고마웠다고. 자신의 어머니도 아버지의 그런 희생과 가족을 위한 활동에 항상 감사하고 있음을 자기는 안다고. 훈훈하고 참으로 가슴 따뜻해지는 인터뷰였다.
이 집에 옮겨온 지 이제 며칠밖에 되지 않았다. 이 나라에 대해서, 이 나라 사람들의 삶에 대해 좀 더 가까이에서 자세히 볼 수 있어 좋다. 새롭게 알아가는 것이 많다. 이들의 일상이 좀 더 친근하게 내게 다가온다. 뜻밖의 소득이다.
그러니 무릇 변화란, 새로움의 세계로 뛰어들어가는 그 용기란 언제나 의미 있고 꼭 필요한 일이다. 두려움을 떨쳐버리려는 노력, 익숙함의 유혹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수 있는 용기, 새로운 것들과 그 새로움의 세계를 향한 호기심, 그리고 분연히 일어나 그 길을 향해 나아가는 것, 분명 우리네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길이 될 것이다.
예이츠가 그의 시에서 말한, 그리고 성경 이곳저곳에서 자주 등장하는 그 문구 - '일어나서 가는 것 (Arise and go)'. 우리도 이렇게 하려고 애쓰고 과감하게 실행하는 것, 어떠신가요 여러분은?
오늘의 시를 본다. 슬픈 시다. 하지만 정말 이런 부부가 있다면, 이런 삶이 있다면 강남의 압구정동 넓은 아파트에 살아도 늘상 지지고 볶고 싸워대는 그런 부부의 시간보다는 나을 것 같다. 과연 이런 현실이 가능할지 그것이 심히 회의적이라 그렇지!
그래도 그 추위 속에, 그 치욕스러운 상황 속에, 화려했던 자신들의 한 시절 ('화양년화' - 꽃같이 아름답고 화려했던 그들의 시간)을 나누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한 존재들이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어이 거기, 현실 모르는 소리 그만 하시오' 이런 힐난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그래서 우리는 시가 필요한 것이리라. 아름다운 꿈의 세계가 필요한 것이다. 시 속에서는, 우리들의 꿈 속에서는 많은 것들이 가능하니까. 그런 꿈 속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이라도 있어야 우리는 살아가니까, 살아내니까!
'거짓말 같은지' (지금의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모든 것이 그저 거짓말 같게만 느껴진다, 차라리 이 모든 것이 죄다 거짓말이었으면!)/'빙그레' (허탈함에? 그래도 그나마 나의 귀한 짝이 있어서? 부디 오늘밤 꿈 속의 달콤함을 기대하며?)/'두 개의 둥근 알' (두 개라서 다행이고, 이런 상황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둥글어서 고맙고, 알은 무언가를 여전히 그 안에 품고 있는 것이고 언젠가는 또 다른 존재로 태어날 것이니까. 그 희망과 기대감에 나 또한 괜히 조금은 마음이 놓이고!), 이 싯구들이 오늘도 오래오래 내 마음을 붙들고 있다. 슬프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아니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구절이다.
노부부
- 최영철
늦은 밤 지하도 모서리 자리 펴고
얻어온 것 서로 입에 넣어주며
화려했던 한 시절 나누고 있는 부부
집도 절도 사랑도 명예도 가고
어디 소풍이라도 나온 듯
부끄러움도 기다림도 남은 게 없는
풍비박산의 시간을 베개 삼아
조금 추운지 거짓말 같은지
빙그레 껴안고 잠든
두 개의 둥근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