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화의 힘, 경쟁우위 요소, 열심. 박노해 '길 잃은 날의 지혜'
대학 다닐 때 신촌에 있는 어느 대학 정문을 나와 그 앞 긴 대로를 지난 뒤 지금의 신촌역 있는 곳 왼쪽 뒷공간에 작은 카페가 하나 있었다. 이름이 미네르바였다. 지금은 커피를 마시지 않지만 그때는 좋아했다. 그 집에는 사이폰 커피라는 것이 있었다. 2층에 있는 아주 작은 공간이었는데, 분위기가 좋고 음악 또한 좋아서 자주 갔다. 내가 다니던 대학 근처에는 그런 공간들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남의 학교 근처에 가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데모의 현장이기도 했다, 그 대학 앞의 넓은 공간은. 어느 날 저녁 무렵 격렬한 데모가 있었고 엉겹결에 나도 잡혀갔다. 나는 그렇게 용감한 사람이 아니다. 유치장이라는 곳을 생전 처음 구경했다. 다행히 밤늦게 검찰에 있는 학교 선배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최루탄에 의한 눈물 콧물, 약간의 두려움과 많은 불편함, 그날은 1,000 씨씨 짜리 큰 맥주잔의 생맥주가 유난히 맛있게 느껴졌다. 안주는 갓튀겨낸 통닭이었다. 그 근방에 있는 웨스팅하우스라는 단골 생맥주집이었는데 그 주인아저씨가 늘 나를 반겨주셨다.
나는 올빼미를 좋아한다. 내가 올빼미족은 아니다. 그 귀여운 생김새가 내 마음을 끈다. 똑똑한 그의 사냥법 또한 마음에 쏙 든다. 부엉이처럼 쓸데없이 시끄럽지도 않다. 외양 자체에서 이미 그 똘똘함과 고고함, 용의주도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올빼미는 야간에 비행하며 사냥을 한다. 그 날개짓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단다. 무음 비행 능력이다. 그래서 사냥감들은 그녀의 접근 자체를 모른다고 한다. 날개 가장자리에 솜털이 많고, 부드럽고 가는 홈이 나 있어서 날개 위의 공기 흐름을 조절해 준다. 뛰어난 야간 시력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아마도 뇌와 시신경에 간상세포가 많이 발달한 듯 하다. 야간에도 사물을 제대로 식별하는 능력. 밤에도 깨어있다, 그 어둠 속에서도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목을 270도까지 돌릴 수 있는 유연성. 인간의 목의 뼈는 7개, 올빼미는 14개의 목뼈. 동맥이 꼬이는 것을 막아주는 특별한 혈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인간과는 달리 동맥이 목 위로 올라갈수록 더 넓어진단다. 목을 비틀 때 혈관이 손상을 받을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는 말이다. 그러니 몸을 뒤로 돌리지 않고도 360도에 가까운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다른 새들과는 달리 귓구멍이 아주 크다. 청각과 관련된 뇌 영역의 신경세포 수도 많다. 비대칭적인 귓구멍의 위치를 통해 소리의 위치를 입체적으로 파악한다. 양쪽 귀의 높이와 방향이 다른 것이다. 사냥할 때 눈을 보호하고 눈을 깨끗하게 하며, 수분을 유지하기 위한 세 번째의 투명한 눈꺼풀인 순막을 가지고 있다. 하나를 더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 육식을 한다. 소화되지 않은 뼈나 털은 '펠릿' (pellet, 물질을 작게 압축하여 만든 조각)의 형태로 뱉어낸다. 이래저래 경쟁력이 대단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혹은 동물의 외양은 그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잘생기면 어느 면에서나 훨씬 더 뛰어나고 빼어날 것 같은 그 주관적 감정적 믿음.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안다. 하지만 믿음은, 인간의 주관적 인식은 그 자체로 우리들의 판단과 결정에 있어서 그야말로 압도적, 절대적 역할을 한다.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그렇다. 이해는 간다, 그러니 인간이지?
하이에나의 실제적 행동양태나 식습관을 떠나 그 동물에게 우리가 어떤 영예로운 위상을 허용해 줄 수 있겠나? 이를테면 오소리와 너구리 중에 나는 차라리 너구리의 외양이 더 낫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학교 다닐 때 어떤 여학생이 난데없이 오소리라는 별칭을 내게 붙여주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것도 싫었다, 기왕이면 좀 멋진 동물로 해주지 그러나!
그리스 로마신화를 제대로 작심하고 읽은 기억이 없다. 그저 여기저기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그러니 시오노 나나미의 대작 '로마인 이야기' 처럼 그렇게 체계잡힌 이해가 여전히 없다. 그래서 신화를 꿰고 있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사실 그 안에 지금 우리 사는 세상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아니면 많이 비슷한 사건들이 그대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신화 속 인물들의 묘사와 그들의 행동 특성은 우리네 인간들과 어쩌면 그리도 똑같은지! 그러니 그리스 로마신화를 보면 지금 우리 사는 세상이 보인다. 지혜가 그 속에 가득하고 구체적인 전략과 전술이 있다. 그런데도 그리 정독하는 사람은 많이 없다.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그래서 더욱 '니치 마켓' (niche market, 틈새시장/블루오션/기회의 땅)인데!
나의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젊은 날 내가 그렇게 열심히 읽었던 이문열의 열 권짜리 삼국지보다 이 신화를 그만큼 열심히 읽었다면! 혹시 아나, 작금의 삶이 크게 많이 달라졌을지?
아무튼 '그래서' 올빼미가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상징이 된 것이리라. 그녀의 품격을 해치는 외양도 아니고, 충분히 우아하고 충분히 격이 있다. 영어 단어의 '아울' (owl)이 올빼미와 부엉이 둘 다를 가리키는 것이기는 하나 아무튼 그 둘은 큰 차이가 있다. 나는 부엉이는 별로다. 그러니 미네르바의 부엉이 혹은 '헤겔의 부엉이'라고 부르는 것을 나는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당연 올빼미가 더 낫다, 그저 나의 주관적인 취향으로는!
원래 미네르바의 상징 새는 까마귀였다. 그런데 미네르바의 비밀을 누설한 죄로 그 자리를 올빼미에게 내주었다고 한다.
자 이제 미네르바로 넘어간다. 그 옛날 혜화동 동숭동과 미네르바는 거의 한 단어였다. 카페 이름의 영향도 있을 것이고 지혜와 예술의 여신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마로니에 (marronnier)도 빠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마로니에는 경성제대 시절에 심어놓은 일본 칠엽수다. 아무튼 노래 가사에도 나오는 - '지금도 마로니에는...' 불어 밤 (먹는 그 밤) (marron)에서 유래되었다는 그 나무.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가로수. 유럽이 원산지인 가시칠엽수 혹은 유럽칠엽수. 그 열매가 밤을 닮았다는 그 나무. 원형으로 정형의 모습을 가진, 밤과 거의 똑같이 생겼는데 독성이 있으니 그냥 먹으면 안 된다. 응급실에 실려가 위세척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 잎은 진짜 일곱 개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유럽 여러 나라에 가로수로 흔하다. 떨어진 밤 같은 열매를 보면 반질반질 윤기가 나고 벌레도 거의 생기지 않고, 그래서 나는 영국에 있을 때에도 두세 개 주워다가 책상 위에 놓고는 했다. 그곳 아이들은 이것으로 재미있는 놀이를 한다. 콘커 (conker)라고 부르는 상대방 열매 깨뜨리기 놀이다. 이 열매는 조지아에서도 흔하게 보았다. 거기서도 두 개 주워다 놓았었다. 세 개와 두 개의 차이만 있었을 뿐. 꽤나 이쁘다.
'미네르바' (Minerva)는 지혜와 군사 전술을 관장하는 로마의 여신이다. 시, 의학, 지혜, 상업, 직조, 공예를 관장하는 신이기도 했다. 그리스신화의 여신 아테나에 해당한다. 주피터 (Jupiter,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와 메티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들의 무남독녀다. 그녀의 지혜를 상징하는 올빼미, 뱀 그리고 올리브 나무와 함께 자주 등장한다. 상징하는 꽃은 제비꽃, 상징하는 무기는 어머니 메티스가 만든 황금빛의 투구와 갑옷, 방패와 창이다.
그녀의 출생에 임박해서 (그때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 제우스의 몸 속에 있었다. 제우스가 그녀를 잉태한 아내 메티스를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엄청난 두통에 시달리던 제우스의 머리를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도끼로 내리쳤다. 그 갈라진 머리 사이로 완전 무장한 아테나가 세상으로 뛰쳐나왔다.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땅과 바다는 엄청난 떨림 속에 요동치고 태양마저도 기가 눌린 상태였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영원히 순결을 지키기로 '스틱스' (Styx,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5개의 저승의 강 중 마지막 강, 그리고 그 강의 여신. 5개의 저승의 강 중 가장 크고 그래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로 여겨진다. 어원은 '증오')에 맹세한 처녀신이다.
미네르바라는 이름 자체가 '생각, 지혜'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혜가 필요한 거의 모든 분야의 신으로 통할 만큼 대단한 존재다. 아테네의 수호신이다.
오늘의 시를 본다.
이 시인의 세례명이 '가스발' (가스파르, Gaspar, 동방박사 중 한 분의 이름)이라는 것을 오늘 우연히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어려운' 본명으로 인해 겪은 일 또한 많으셨을 듯? 경험해본 사람은 안다!
작은 것 속에 큰 길로 나가는 빛이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 시인. 평생을 실천하는 자세로 산 분의 말이니 충분히 믿음이 간다. 큰 것은 작은 것들을 비추는 방편이라고, 그리 되어야 한다고 하는 말이 왠지 내게는 힘이 된다.
좋은 세상은 이미 현실 속에, 생활 속에 와 있다고도 말한다. 그런가? 내가 눈을 감고만 있어서 보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다른 빛깔 가득한 색안경을 쓰고 있어서 그런가? 맨눈으로 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을?
작은 일/작은 옳음/작은 차이/작은 진보를 소중히 여기라 당부한다. 문득 '작은 진보 혹은 진전도 여전히 진보요 발전이다'라고 말한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의 평생의 신조가 기억난다. 깨달음의 사람들은 역시 핵심을 꿰뜷는 눈을 가지고 있나 보다.
지금 잠시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코 빠뜨리고 그저 손 놓고 그렇게 흘러가지 말라 한다. 내 가슴이 뜨끔하다. 그건 또 언제 보신 것인가?
시인의 지혜를 통해, 길 잃은 나 같은 범인의 삶도 부디 다시 제 길을 찾아갈 수 있게 되기를! 내가 좋아하는 올빼미가, 그리고 그녀가 상징하는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가 나를 인도하고 나의 남은 앞날의 길을 밝혀주기를! 왜 그들이? 그래도 여지껏 선하고 의로운 마음으로 살아왔으니까!
# '헤겔의 올빼미' -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이 그의 책 서문에서 "미네르바의 올빼미 (Owl of Minerva/Athena)는 땅거미가 져야 그 날개를 편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The owl of Minerva spreads its wings Only with the falling of the dusk).
올빼미는 낮이 지나고 밤이 되어야 그 날개를 펴는 것처럼, 지혜 혹은 철학은 앞날을 미리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역사적 조건이 지나간 후에야 비로소 그 뜻과 의미가 분명해진다는 의미라고 한다 <위키백과에서 그대로 옮겨옴>.
'지혜와 철학이 본격적으로 필요할 때는 세상이 어둠에 휩싸이고 인간성이 사라져갈 때 바로 그때다'라는 또 다른 해석도 있다 <나무위키에서 가져옴>. 나는 개인적으로 이 해석이 더 마음에 든다. 철학의 현실적 의미, 지혜의 실제적 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