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하나의 신비, 함께 극복하기, 원군 되기. 제니 조셉 '예고'
몇 년의 그 긴 시간 동안 내내 치아 교정기를 끼고 그 불편함/실질적 고통/일상 생활 속의 여러 제약과 함께 요구되는 추가적인 조치들을 감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인간 의지의 무서움과 시간이 가져오는 그 대단한 성과물에 놀라고 감탄한다.
망고를 먹다가 그 섬유소가 이빨에 낀다. 당장 치실을 사용해서 빼낸다. 그 잠깐이 그저 갑갑하고 불편하다. 신 사과나 자두를 먹고 나면 이가 시큰시큰하다. 다른 음식을 씹을 때마다 영 불편하다. 그래서 나는 생과 블루베리는 잘 먹지 않는다. 그 즉시 치과엘 가야 하기 때문이다. 갈아먹거나 (그러면 치아로 씹을 필요가 없으니까) 아니면 아예 먹지 않는 쪽을 택한다. 아마도 내 건강에도 그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여성의 신비 - 신체 구조상의 아름다움의 신비/임신과 출산의 신비/그 심리와 정신 세계의 불가해성과 불규칙성, 그 다양성의 신비. 이런 신비의 영역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미 많이 알고, 또 평소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우리들의 전반적 이해의 수준과 꾸준한 사전 대비 또한 어느 정도의 단계에는 도달한 상태라 그리 말할 수 있다. 적어도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임신과 출산의 신비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신비로운 여성들만의 삶의 단계가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들의 관심 그리고 그에 대한 '공동의 준비'는 턱없이 부족한 영역, 그것이 바로 여성들의 50대, 소위 폐경이라는 '사건'이다.
사람의 나이 50세 '지천명', 하늘의 뜻을 안다고? 서양에서 말하는 'I knew my fate',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되었다고? 그보다 먼저, 당장 발등에 떨어지는 불은 꺼야지? 그 무서운 놈들이 그녀들에게 근접해 오고 있는데?
나는 최근에 이 사건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면서, 자연이 참으로 무섭다는 인식을 다시 한번 하는 계기가 되었다. 직설적으로 나만의 표현법으로 말한다면 이렇다 - 이제 더 이상 그 용처가 없음을 안 자연이, 그리고 우리의 몸이 그동안 제공해 오던 모든 설비를 일순간 다 걷어가 버린다. 그동안 제공하던 각종 서비스도 즉각 중단한다. 물자의 공급은 더 이상 없다.
여성 신체와 정신의 곳곳에서는 일대 난리가 일어난다. 수십 년간 제공되던 것들이 갑자기 뚝 끊겨버리니 그렇지 않겠나? 가장 큰 변화는 각종 호르몬의 감소에서 시작된다. 그 호르몬에 의존해서 작동하던 기관들은 당장 그 즉각적 직접적 반응을 보인다.
이유 없이 몸에 열이 난다, 얼굴이 붉어진다, 시도 때도 없이 가슴이 뛴다, 기분의 업앤다운은 이제 일상화가 되었다, 성적인 관계에도 직접적인 악영향을 가져온다, 그것이 심리적으로 주는 부정적 영향 또한 만만치 않다, 뼈가 쉽게 부러진다, 장난이 아니다.
60대 70대 나이 든 사람이 욕실이나 얼음길에서 삐끗 넘어진 사고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일상 속에서 흔하게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얼마 전까지도 늘 멀쩡하게 하던 일상 속 행동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툭 하면 뼈가 부러진다.
자연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 일이 잦아진다, 그 수위 또한 아주 높아진다, 거의 일상화의 단계에 있는 경우도 있다, 가정내 관계 그리고 사회적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 외에도 아주 많다, 여성의 폐경이라는 단일 사건이 몰고 오는 엄청난 충격의 '증상들'은.
오늘 이 글의 목적은 수십 년을 한 여자의 남편으로 살아오는 동안 전혀, 정말 전혀 이런 중대한 여성의 인생 전환기의 사건에 대해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 그에 대한 자괴적 반성이 그 첫 번째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던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난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으니 당연 나는 적어도 이 부분에 관한 한 높고 두꺼운 담벼락을 눈앞에 마주하고 면벽 고행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내가 좀 더 자세히, 제대로 알았다면 그 단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꽤나 많았을 것이다. "오늘은 또 왜 이러는 거야? 또 시작이군!" 이런 자조 섞인 마음 속 힐난 대신에, "아 맞아. 그때 어디서 보니까 지금 이 나이에는 바로 이런 증상이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그랬어. 드디어 오는구나, 왔구나 이 사람에게도!"
아와 어는 크게 다르다. 그랬더라면 내가 건네는 말 한마디부터 우선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어쩌면 이래서 그런 것일지도 몰라, 그러니 조만간 유명 전문의를 찾아가 보자. 물론 나와 함께. 내가 의사 친구 녀석에게도 물어볼게. 이런 경우 어느 병원 누구를 찾아가면 좋을지. 너희 병원에 이 분야 잘 하는 분 있는지, 있으면 내 얘기 좀 넣어달라고 부탁도 할게."
나는 이런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무지는 용서받지 못한다고 했다. 여성의 갱년기, 폐경기가 마치 그 여성 개인의 잘못인 듯, 아니면 별 일 아닌 것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건 큰 잘못이다.
모든 여성들이 반드시, 예외 없이 겪게 되는 인생의 그 중차대한 사건, 당연 관심 가져주어야 하고 함께 헤쳐나가야 한다. 그것이 인생을 함께 하는 사람의 최소한의 예의이자 의무이다.
우리나라 역대급 최악의 태풍은 2002년의 태풍 루사 (Rusa, 사슴이라는 뜻이란다)와 2003년의 매미 (북한이 제출한 이름이다, 시끄러운 그 매미)다. 루사의 경우에는 재산 피해액만 무려 5조원이 넘는다. 하루에 870 밀리의 비가 내린 곳도 있고 초속 50 미터가 넘는 강풍을 동반했다. 조지아에 있을 때 초속 14 미터의 바람을 일상적으로 경험한 적이 있다. 정말 밖에 나가 서있을 수 없는 그런 바람의 세기였다. 그런데 그것의 세 배가 넘는다. 200명 이상의 사망 실종자가 있었다.
매미는 기상 관측 이래 가장 강력한 바람 초속 60 미터가 넘는 강풍을 동반했다. 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나는 여성의 인생에 있어서 그들의 50대, 폐경기는 바로 이런 태풍 루사와 매미에 맞먹는 사건이라고 본다. 이제야 뒤늦게 그리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늦었어도 그렇다고 끝까지 모르는 것보다는 낫다. 알면 결국은 면장을 한다, 면벽 수도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하나, 우선 여성의 50대, 갱년기 그리고 그 안에 포함되는 현상인 폐경에 대해 좀 알자. 공부를 좀 하자. 브런치에 글 쓰는 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분들이 읽을까 고민하는 것의 최소 열 배는 더 많은 시간을 들이자. 조만간 시험이 있을 듯이 그렇게 머리 싸매고 공부를 하자.
나는 이 글을 쓰기 전 지난 몇 주일 동안 이미 그렇게 했다. 그래서 좀 안다. 특히 배우자가 이제 곧 50에 접어들거나 아니면 이미 50대의 나이에 있는 경우라면 당장 시작하자. 알면 수가 보인다. 아내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라도 크게 달라진다.
둘, 그녀들의 잘못으로 겪는 일이 아님을 다시 한번 명확히 인식하자. 자연이, 신이 아니면 섭리가 그리 만드는 것이다. 그 누구도 피해갈 방법은 없다는 것 또한 잊지 말자.
그녀에게서 전과 다르게 나타나는 거의 모든 일들은 이 사건 때문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러면 '이유 없이' 그녀를 탓하는 일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물론 이 사건과 관계가 없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니 구분을 하자, 객관적으로.
셋, 나도 그 게임 혹은 전투에 적극 참가하자. 원군으로든 용병으로든, 아니면 또 다른 직접적 당사자로든. 나는 이 마지막 것을 권한다. 당사자로 참가하게 되면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그녀를 공격하는 적군들도 생각이 달라진다.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의 직접 당사자를 상대해야 하는 그들의 현실을 직시한다면.
전투는 대개의 경우 사기의 문제이다. 쪽수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제 아내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간다. 전투에 참가하는 인력 또한 두 배로 늘었다. 전략의 수립은 물론 병참과 그 하위 개념인 구체적 보급의 문제도 이제는 그 차원을 달리한다. 모든 점에서 든든하다, 그녀도 또한 나도.
넷, "내 아내 잘한다!"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자. 아들 녀석 유치원 다닐 때 툭하면 제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 '우리 엄마 잘한다!' 제 엄마가 달리기 경주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팔씨름 결승전에 올라간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어린 녀석은 본능적으로, 그리고 그 뛰어난 100단의 눈치로 수시로 이렇게 제 엄마의 기를 살려주었다. 당연 자기에게도 좋고 제 엄마에게도 좋은 분위기와 결과를 가져왔다. 이렇게 하자.
다섯, 설혹 원조 지구 출신이라도 마치 저기 화성에서 온 듯한 남자로 그리 행동하자. 남은 시간 그리 살아보자. 금성에서 온 아내는 아닐지라도 분명 화장실에 가서든 이불 속에서든 즐거움에, 흐뭇함에 웃을 것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에 관해서는 나의 다른 글에서 정보를 좀 얻게 될 것이다. 어느 글이 먼저 나갈지 모르니 어쩌면 이미 읽으셨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여섯, 아내는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을 기르고 나와 함께 오랜 세월 이 험한 세상을 살아낸 사람이다. 그러니 그 많은 것들을 이룬 소중한 사람에게 그에 걸맞는 합당한, 그리고 충분히 명예로운 대우를 하자. 그게 공평한 처사다. 그것이 바로 도리이고 의리라는 것이다. 아내가 혼자 감당해 내는 이 큰 사건이 바로 절호의 기회다. 남편 당신의 능력과 선함을, 그 의로움을 멋지게 보여줄 수 있는 무대다.
이제 곧 당신의 퇴장 무대가 등장할 것임을 안다면 더욱 그렇게 하자. 지금 여전히 힘이 있을 때, 권위가 있을 때 그리고 경제적 능력이 있을 때. 뭐 꼭 보상을 바라고 하는 일은 결코 아닐 것이나 결국은 우리네 삶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원하든 원한 것이 아니든 거래다. 비즈니스 관계에서의 속성을 거의 그대로 따른다. 잊지 말자. 기회는 있을 때 잡자.
오늘의 이 글은 이 세상 모든 여성분들에 대한 남자로서의 나의 개인적 고마움을 마음 속에 품고 쓴 것이다. 특히 곧 50대의 그 태풍을 맞을 분들, 이미 태풍이 근접해 오는 50대를 치열하게 살고 있는 분들, 다행스럽게도 무사히 잘 그 태풍의 시대를 겪어낸 분들을 위한 것이다.
이 글이 그분들에게 뭐 별 의미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그렇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제 나름의 '오마주' (hommage, 존경 혹은 존중)라고 봐주시면 내게는 더없는 기쁨이 될 것이다.
오늘의 시도 고심 끝에 특별히 골랐다. 내가 많이 좋아하는 시다. 작년에 이미 번역을 해두었다. 영국의 유명한 여류시인 제니 조셉의 시, 그녀의 나이 29세 때 썼다. 1996년 BBC가 조사한 설문에서 전후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로 선정되었다.
1961년 그 당시 영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위치가 어떠했을지를 생각하면서 읽으면 이 시의 거의 모든 부분이 쉽게 마음에 와닿을 것이다. 이 시는 그후 영국 사회에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지위 향상에 많은 역할을 한다. 50대 이상의 여성들을 위한 '붉은 모자의 모임' (RHS - Red Hat Society)의 탄생에 영향을 준 것도 이 시다. 1998년 미국에서 설립되었다.
예고 (Warning)
- 제니 조셉 (Jenny Joseph)
내가 나이 들면 나는 보랏빛 옷을 입고 그 옷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리고 사실 내게도 그리 잘 어울리지는 않는 빨간 모자를 쓰리라.
그리고 매달 받는 연금을 브랜디를 사고 여름 장갑을 사고 공단으로 만든 샌달을 사는 데 쓸 것이다,
그리고는 우리는 지금 버터 살 돈이 없어요라고 말할 것이다.
지치면 그냥 길바닥에 풀썩 주저앉을 것이고
상점마다 들러 무료 시식품들을 걸신들린 듯 마구 먹고
또 그저 장난 삼아 알람벨을 누를 것이다.
내가 들고 다니는 지팡이로 괜히 동네 공공 울타리 윗부분을 탁탁 소리나게 두드리고
또르륵 휙 스치고 미끄러지게 하는 짓도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나는 내 젊은 날의 지나칠 정도의 엄격함과 취하지 않는 맑은 정신과
절제와 냉정을 조금이라도 보상받고 그 아쉬움의 틈을 채우리라.
나는 비 내리는 날 슬리퍼를 신고 밖에 나갈 것이다,
남의 집 정원에서 꽃을 꺾는 일도 감히 하리라,
그리고 아무 곳에서나 침을 뱉는 일도 익힐 것이다.
그때 당신은 당신의 뜻대로 남이 보기에는 흉한 셔츠를 입을 수도 있고
원하면 남의 눈치 볼 필요 없이 좀 더 살이 쪄도 되고
3 파운드가 넘는 양의 소세지를 단번에 먹어치워도 된다.
아니면 빵과 피클만으로 일주일을 버텨도 된다,
그리고 집안 곳곳 상자마다 펜과 연필과 맥주잔 받침을 가득 모아 둘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지금 당장은 우리는 여전히 입을 옷이 필요하고 월세를 내고,
결코 거리에서 욕지거리를 하지는 않는다,
또한 자녀들에게는 좋은 모범을 보인다.
우리에게는 저녁을 함께 하고 신문을 같이 읽을 친구들이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어쩌면 바로 지금, 나는 조금씩 내가 꿈꾸는 그런 행동들의 연습을 하고
그것들을 실행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나이 들고, 보랏빛 옷을 입기 시작할 그때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나의 새로운 행동에 너무도 큰 충격을 받고
너무 놀라지는 않도록.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
# 워-닝 (warning), 통상 경고라고 번역하지만 나는 예고/경보라고 옮기기로 했다. '앞으로 나 이런 행동을 하더라도 그리 깜짝 놀라지는 마세요 여러분? 그래서 그 충격을 줄여드리려고 지금 미리, 조금씩 하나씩 낯선 행동들을 하는 겁니다. 아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