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누는 마음, 너그러움, 선함. 체 게바라 '행복한 혁명가'
우리들의 젊은 날, 한 번쯤은 뛰는 가슴 속에 들어본 그 이름 체 게바라.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를 도와 쿠바 혁명의 주역이 된 그. 하지만 그는 원래 아르헨티나 사람이다. 그곳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대학을 나왔다. 아버지는 큰 병원의 병원장 의사였다. 그 또한 의사였다. 사실 뭐 하나 부러운 것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정말 한 우연한 사건이 그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 놓는다.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한 남미 대륙 모터사이클 여행이었다. 이것이 이후 그의 모든 것을 바꾼다. 혹시 그의 그 파란만장했던 삶을, 특히 그의 비극적인 죽음을 안타까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그의 부모님 아닐까?), 바로 이 모터바이크를 비난하고 원망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유능한 의사로 그리고 부자 병원장으로 그런 안락한 인생을 즐겼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고품질 소고기를 흔하게 즐기면서. 사실 아르헨티나 레드 와인 또한 아주 좋은 품질을 자랑한다.
친구와의 이 현장 밀착 여행에서 그는 극심한 빈부의 격차로 고통과 좌절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비참한 실상을 목도한다. 사탕수수밭, 커피 농장, 바나나 농장의 노예들과 광산의 광부들, 빈민가의 극빈자들, 이들을 보며 그는 큰 충격에 빠진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 그리고 있는 그런 비참한 삶을 그는 본 것이리라. 가는 곳마다, 흔하게 일상적으로 그렇게.
이때 마침 과테말라에서 미국 CIA의 사주를 받은 군부가, 토지개혁을 시도한 좌파 정권을 무너뜨리는 일이 일어난다. 이것을 보고 그는 미국에 대한 강한 적의를 품게 된다. 이것이 그의 혁명가로서의 움직임의 시작이었다.
1955년 그의 평생의 동지가 된 변호사 출신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를 만난다. 그리고 4년 후인 1959년 그를 도와 쿠바 혁명에 성공한다. 그의 나이 31세 때다. 그는 이후 쿠바 은행 총재, 산업부 장관으로 일한다. 옛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를 쿠바로 불러들여 쿠바의 의료 개혁을 성공적으로 주도한다. 그는 참으로 아까운 나이 39세에 다른 세상으로 간다. 그의 얘기는 여기까지만.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을 위해 앞장서는 자 박노해 (그의 실제 성도 박씨다). 나는 젊은 시절에도 이 양반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강성 운동권의 일원 뭐 그런 편견 때문이었다.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르고 내가 시인으로서의 그와 만나게 된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아름다운 시가 많은 것은 물론이고, 그의 묵상과 사유의 깊이가 참으로 넓고 깊음을 알게 되었다. 시뿐만 아니라 평소 짧은 글을 통한 삶의 지혜도 많이 나누는 분이다. '걸으면서 하는 독서 (Walking Reading)'이라는 파란 하늘색 하드 표지의 예쁘게 작은 책을 한번 읽어 보시라. 한글과 영문으로 가슴 속 깊이 파고 드는 지혜의 명문이 아주 많다.
나는 이 시인을 생각하면 꼭 그의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난다. 언제나 탐욕과 부조리의 일상에 잠겨서 사는 어떤 이를 보면서 시인이 어느 날 어머니에게 이랬단다 - '어머니, 이런 사람은 정말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악의 세력 아닌가요?' 그 어머니의 말씀 - "얘야, 꼭 그렇게 생각할 것만은 아니다. 이 넓은 세상에 '그런' 사람 한둘쯤 있으면 또 뭐 어떠냐? 그리고 그 사람도 자기가 그런 삶을 살고 싶어서 그리 살겠니? 우리가 모르는 나름의 고민과 생각이라는 것이 있겠지."
어머니의 이 말씀이 시인이 그 후 세상을 보는 눈을 다르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날의 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자신의 나이 듦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라고.
나는 불교신자가 아니다. 불교의 이론에 대해서도 당연 문외한이다. 하지만 늘 그 세계에 관심이 있었다. 어려운 용어와 개념, 애초 신이 존재하지 않는 종교, '너와 나는 결국 같은 존재다' (깨달음을 얻은 부처와 여전히 윤회의 업보를 헤매고 있는 중생, 결국 그 근본과 실질은 같다)라는 그 파격이 늘 내 마음을 끌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보살'이라는 개념이 내게 추가로 등장한다. 부처는 뭐고 그렇다면 보살은 또 무엇인가?
아 참,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를 드려야 할 브런치 작가분이 있다. 루마니아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분이다. 최근 그분이 쓴 어느 글에 보살에 관한 상세하고도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 있었다. 물론 그 댓글에서 이미 고마운 마음을 표했지만 그럼에도 또 한 번 고맙다 말하고 싶다.
'보리살타' 혹은 '보디삿따' (Bodhisatta/Bodhisattva), 줄여서 보살. 보리 (Bodhi)는 '깨달음', 살타 (Sattva)는 '존재'를 뜻한다. 그러니 보살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존재', '깨달음의 의지를 지닌 존재'로 해석하고 있다.
그 교수분의 글과 기존의 다른 여러 글을 통한 나의 이해는 이렇다 - 부처와 보살은 둘 다 가장 높은 단계의 깨달음을 이미 얻은 분들이다. 그런데 부처는 그냥 그 높은 단계의 세계에 머무른다. 어쩌면 기존의 소승 불교 (개인의 깨달음을 중시한다/'혼자 타고 가는 (소승)' 깨달음의 여정이라고나 할까?)가 주로 이쪽에 속할 것이다. 개인의 깨달음, 중요한 일이다. 그런 깨달음을 얻은 개인이 모이면 결국 이 중생들의 사회 전체가 깨달음을 얻는 것이니.
그런데 보살은 조금 생각을 달리한다. 그들도 이미 가장 높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저 자기 혼자 그 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일부러 마음 먹고 다시 이 중생들의 세계로 내려온다. 여러 모습을 하고 등장한다, 그때그때 꼭 필요한 모습과 역할을 가지고, 딱 필요한 장소에 그렇게. 이를테면 함께 가기 ('대승불교 - 여럿이 함께 타고 간다', 내가 먼저 깨달음을 얻었으니 그것을 아직 깨달음의 단계에 이르지 못한 중생들과 적극 나눈다, 그들을 내가 앞에서 뒤에서 인도한다, 깨달음의 세계로)이다. 참으로 대단한 결심이고 크게 존중 받아야 할 실천이다.
부처도 보살도 다 귀한 존재들이지만 나는 왠지 이 보살이라는 존재에서 더 큰 따뜻함을 느낀다.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된다. 당장 우리네 인간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천신만고 끝에 손에 넣은 것, 그저 나 혼자 몰래 가지고 싶지 그 누구와 대놓고 나누고 싶어 하나? 어떤 경우에는 부모형제 가족에게도 꽁치고 숨기고, 그렇게 혼자만 소유하고 싶어 하지 않나?
그런데 일면식도 없는 중생들을 위해, 다시 이 현세로 내려와 그들의 계도와 자신의 비기의 공유에 힘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내가 대단하다 말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자신의 깨달음을 함께 나누고 그렇게 이 세상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가치의 실천에 현장에서 직접 자신의 몸으로 뛰는 존재들에게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나마 범용적 가치와 그 객관성을 인정받는다고 할 수 있는 노벨상조차도, 결국은 그때그때의 특정 국가의 힘과 세계 정치 구도, 이해관계의 상황에 좌우된다. 보살이야 어차피 그 상의 대상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가 노벨상이라는 형식을 빌어, 특정인의 목숨을 건 평생의 애씀을 치하하고 공감하는 일은 의미 있고 필요한 일이리라. 그러나 현실을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결국은 돈이 말한다'는 제목의 글을 이전에 썼다. 결국은 속세적 힘과 권력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좋은 것, 명예로운 것의 할당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오늘의 시를 본다. 오늘 글의 주인공들 중의 한 명의 시라 더욱 그 의미가 크다. 나는 신이 나서 번역했다. '변화, 그리고 함께 가기'에 대한 시인의 굳은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피델에게 보내는 시 (Song to Fidel)
-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라세르나
당신은 내게 말했지요 결국 태양은 떠오른다고.
그렇다면 어디 그 지도에 없는 길들을 한번 따라가 봅시다
당신이 그리 사랑하는 팔팔한 젊은 악어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우리의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그 모욕과 무례를 제거하러 갑시다
거대하게 밀려오는 그 사악한 모반의 세력들을.
우리는 승리하거나 아니면 총에 맞아 죽어 사라지거나 그 둘 중의 하나가 될 겁니다.
첫 번째 총성이 울리면 기쁨에 깜짝 놀라 정글 전체가 잠에서 깨어날 겁니다
그리고는 바로 그때 그곳에서 많은 동료들이 침작하게 그리고 차분하게
당신의 편에 설 겁니다.
당신의 그 목소리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천지사방에서 불어오는
농지 개혁의 요구, 정의, 빵과 식량, 그리고 자유,
이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제대로 해결해 나갈 때
그때도 우리는 모두 한 목소리로 그곳에 당신과 함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어느 날 압제자들에 대한 완전한 정리가 끝이 날 때,
그때 그곳에서 이 작전의 완수를 위한 마지막 전투가 벌어질 때
우리는 당신을 응원하며 당신과 함께 할 겁니다.
야수가 자신의 상처를 핥고 있을 때
바로 그곳으로 쿠바인들은 맹렬히 돌진해 그를 칠 겁니다
우리 모두는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당신 편에 서 있을 겁니다.
우리들의 이 하나된 통일성과 고결함이
저 가면을 쓴 가식적 세력들에 의해 약화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마세요
혹여 지금 우리가 원하는 그들의 총, 그들의 총알 그리고 바위 하나라도
그들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그런 바람 속에.
또한 설령 무쇠가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저 쿠바인들의 가득한 눈물만을 원합니다
이 아메리카 대륙의 또 다른 역사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 혁명군의 죽은 몸을 덮어줄 그 따뜻한 눈물을
그것 외에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 영어 번역본을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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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발장의 '발장'이 (부알라 장 - 여기 장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렇듯, 우리가 체 게바라라고 부르는 그의 이름 또한 이런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체 (Che)'는 '어이/이봐/저기 말이야' 뭐 이런 뜻을 가지고 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평소 일상 속에서 이 단어를 습관적으로 쓴다고 한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에르네스토 (그의 이름이다, 퍼스트 네임)를 사람들은, 특히 쿠바를 비롯한 그가 혁명 활동을 한 나라의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별명 부르듯 불렀을 것이다. 체 게바라, 그리고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라세르나, 같지만 크게 다른 사람.
# 못내 아쉬운 마음에, 그에 관한 시 하나를 오늘은 특별히 더 소개한다.
행복한 혁명가 (A happy Revolutionary)
- 체 게바라
쿠바를 떠날 때,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씨를 뿌리고도
열매를 따먹을 줄 모르는
바보 같은 혁명가라고.
나는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 열매는 이미 내 것이 아닐뿐더러
난 아직 씨를 뿌려야 할 곳이 많다고.
그래서 나는 행복한 혁명가라고.
<아무리 찾아도 우선 영문 번역본을 찾을 수 없었고, 이 번역 또한 충분히 잘된 번역인 것으로 판단되어 그냥 기존에 나와 있는 우리말 번역을 그대로 썼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은 애초 단독의 시는 아닌 것 같고, 그의 유명한 여러 말들을 모으고 편집해서 소개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