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한 선물 숙면, 재생을 위한 쉼, 생명. 김영천 '나무들의 겨울잠'
평생 일상 속에서 지키려고 노력해 온 몇 가지가 있다. 내 몸이 부담스러워할 먹거리는 가급적 피하자는 생각, 아침 쾌변으로 시작하는 하루, 그리고 충분한 숙면을 꾸준하게 확보하려는 노력. 특히 황금 시간대에는 반드시 꿈나라에 있는 것을 삶의 철칙으로 알고 살았다.
지금 나이 들어 이만큼 건강하게, 몸도 마음도 영혼도, 사는 것은 다 그 덕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얼굴 피부 또한 여전히 탄탄하다. 머리숱도 아직은 충분히 많다. 70% 이상 검은 색이다. 덕담의 말임을 감안하더라도 그리 늙었다는 소리는 많이 듣지 않는다. 고마운 일이다. 내가 얻어낸 것이다, 평생의 나의 노력으로!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사당오락'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하루 네 시간 자는 사람은 대학 입학시험에 붙고, 다섯 시간 자는 사람은 떨어진다는 말이었다.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 그때도 나는 늘 하루 일곱 시간 정도는 잔 것 같다. 그래도 원하는 대학 원하던 학과에는 갈 수 있었다. 이 또한 크게 감사할 일이다.
얼마 전 브런치 다른 작가님의 글에서 잠의 중요성과 그 의미에 대해 읽었다. 유용하고 좋은 글이었다. 사실 잠은 그냥 소비되어 없어지는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학습행위'다. 나는 그렇게 본다. 무슨 말인가 하면, 잠을 자는 그 시간 동안 우리의 뇌는 낮시간에 배운 것들, 보고 들은 기억들에 대해 심화 학습을 하고 체계화하고 그렇게 숙성시키는 활동을 한다. 그런 식으로 한 단계 높게 처리된 정보가 비로소 우리들의 머릿속에 깊이 저장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충분한 잠을 통해 그런 되새김과 숙성 발효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깨어있는 시간에 아무리 많은 지식과 정보를 받아들인들 별 의미가 없게 된다. 들어왔다가 그냥 흘러가 버리는 '낭비'가 되어버릴 것이니까.
나는 학교 다닐 때 주위에서 이런 현상들을 실증적으로 목도하고 나 자신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해당 수업 시간이 끝나면 짧은 휴식 시간 동안 조금 전 배운 것들을 1차로 되씹는 과정을 꼭 이행했다. 칠판에 적힌 것들도 나의 머리속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 집에 돌아와 하루를 마감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또 한 번 차근차근 되새김질을 한다. 늘 그렇게 했다. 그러니 시험이 다가와도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그저 한 번 더 보는 것뿐? 이미 1차, 2차 가공은 되어있는 상태니까.
물론 나는 인식을 하지 못했지만, 과학의 연구와 증명에 따르면 그 1차로 초벌 숙성된 정보들은 내가 자는 동안 2차 숙성과 완성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었다. 그런 기억들은 아주 단단하고 조직적으로 저장된 것들이라 후일 언제라도 쉽게 꺼내어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내 머릿속에 찍어놓은 칠판의 사진도 그대로 재생할 수 있다. 그때 오른쪽 맨 아랫쪽에 어떤 것들이 쓰여 있었는지, 나는 쉽게 꺼낼 수 있었다. 내게는 아주 유용하고 실용적인 암기법이었다. 나는 그것을 '필름 해독'이라고 불렀다.
하루가 아무리 힘들고 그래서 아주 피로한 상태에 있어도 나는 그날밤 푹 자고 나면 그다음 날에는 그야말로 멀쩡해졌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숙면이 가져다주는 신체회복 메커니즘이다. 잠은 우리의 뇌와 육체에 휴식을 허용한다. 그 어떤 존재든, 기계조차도 주기적 반복적인 휴식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고장이 나고 몸과 정신에 이상이 발견된다. 이미 과부하의 상태이다. 20년 이상 쓴다는 독일의 밀레 세탁기도 그렇다. 여기서도 '지지불태' (멈추어 설 때를 알면 위험한 상황을 맞지 않는다)의 지혜는 그대로 적용된다.
그 옛날 홍길주라는 사람이 말했다는 '지지당설'이라는 것이 있다. '위험한 곳을 만나 멈추는 것은 보통 사람도 할 수 있지만 순탄한 곳을 만나고도 멈출 줄 아는 것은 오직 지혜로운 자만이 할 수 있다' 뭐 이런 얘기다. 처음 이 글을 접하고 나는 내 무릎을 치며 쾌재를 불렀다. 그날 하루는 이미 얻을 것을 다 얻은 듯했다. 여기서 '지지'라는 것은 멈추어 설 때와 장소를 아는 것이 아니라 (지지불태에서의) '멈추어서야 할 곳에서 반드시 멈추는 것'을 말한다. 두 번의 멈춤이 나온다. 그만큼 더욱 강렬하다.
제때에 제대로 쉬지 않으면 능률 또한 크게 떨어진다. 처리 속도가 느려지고 에러가 잦아진다. 컴퓨터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몸도 똑같다. 그렇게 되면 쉽게 리셋할 수도 없다. 완전 초기화는 더욱 어렵다. 처음부터 모든 프로그램을 다시 까는 방법도 우리 인간의 육체와 정신에는 통하지 않는 방법이다. 아예 브랜드 뉴 새로운 노트북을 살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어디서 나를 새로 살 것인가?
잠의 중요한 기능 중에 취득한 정보의 숙성과 가공을 통한 체계적 저장을 말했다. 자는 동안 우리 몸에게 허용하는 신체 회복의 기회도 언급했다.
세 번째는 정신건강에 미치는 중대한 영향이다. 수면 시간이 부족해지면 우리 감정의 변화가 심해진다. 지나치게 예민해진다. 쉽게 우울감을 느낀다. 웬만한 일에는 기쁨도 즐거움도, 어떤 만족감도 느끼지 못한다. 거꾸로 지나치게 둔감해지는 것이다, 긍정적인 삶의 여러 요소들에 대해. 매사에 의욕이나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열정 또한 크게 약화된다.
네 번쨰, 우리 몸 안의 노폐물의 관리와 처리다. 뇌에는 곳곳에 물이 들어 있다고 한다. 뇌 안쪽에는 아예 뇌실이라는 물주머니가 달려있다. 이처럼 뇌의 안쪽에 그리고 바깥쪽 사이사이에 있는 물 (뇌척수액)은 수면 중에 뇌를 씻어내어 정화시키는 작업을 한다. 이때 낮 동안 쌓인 뇌의 노폐물도 처리되고, 자연스럽게 뇌와 우리 몸에 휴식을 주는 역할도 한다. 격렬한 운동 뒤 혹은 산행 후 따끈한 물로 하는 샤워와도 같다고 할까? 그 기분 우리는 안다.
다섯 번째, 항상성의 유지다. 수면을 통해 우리 몸의 호르몬 분비가 일정하게 맞춰진다. 면역체계 역시 적절하게 관리된다. 이미 말한 것처럼 우리 몸은 휴식을 필요로 한다. 뇌뿐만이 아니고 각종 장기, 그러니까 눈, 콩팥, 소화기관 모두 일정 기간은 쉬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밤늦게 무언가를 먹는 것 자체를 삼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위와 장, 소화기관들도 이제는 좀 쉬어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항공기가 외국의 어느 도시에 착륙하고 나면 충분한 점검의 시간이 시작된다. 정비사들에게는 정비의 시간이지만 항공기 자체로 보면 이제야 비로소 찾아온 달콤한 휴식의 시간이다. 항공기 내부의 많은 곳들도 다시 준비되어야 한다. 그러니 우리네 몸이야?
한참을 돌아서 오늘의 제목으로 돌아온다. '미인은 잠꾸러기'. 맞는 말이다. 나는 그리 믿고 있다. 물론 잠을 아무리 많이 잔들 애초 미인에 속하지 않을 사람이 미녀가 되겠나? 잠으로 어찌 사람 얼굴의 기본 형태가 바뀌고 이목구비의 '예술적 경지 제자리 잡기'가 실행될 것인가?
그게 아니고, 이미 미인의 구성요건은 다 갖춘 사람이다. 그런데 그녀가 그 미인의 상태를 오늘도 여전히 그렇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소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는 그런 말이다. 짙은 화장으로, 거의 분장에 기까운 수준의, 가려서 그렇지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 배우들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서 보면 우리가 화면으로 보던 그 얼굴은 결코 아니다. 물론 그 기본 윤곽과 미인으로서의 구성요소들이 당장 어디로 간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원하는 미라는 것은, 아니 미인을 만드는 요소는 사실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대단히 섬세하고 민감하고, 참으로 묘한 구석들이 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꺼칠한 피부, 충혈된 눈과 누룩처럼 뜬 듯한 표정, 피로가 가득한 인상, 윤기 없는 혈색, 뭐 그리 미인으로 우리를 선하게 기쁘게 할 것인가? 활기와 열정 없는 모습은 물론일 것이다.
나이 들어보니 이 세상의 단순한 진리에 쉽게 가까이 가게 된다. '뭐니뭐니 해고 젊음 그것만한 미인은 현세에 없다.' 건강한 아름다움 그것이 내 눈에는 최고 가는 덕목이다. 당연 젊음의 힘 있는 아름다움도 좋지만 곱게 나이 든 사람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보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한다.
'그래? 이런 미인의 조건이라면 나도 한번' 해볼 만하겠는데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그만큼 이 사회에는 좋은 일이다. 조금은 더 공평한 일이기도 하다. 애초 미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아니더라도 평소 꾸준한 자기관리를 통해 건강을 손에 쥐면, 그렇게 미인의 대열에 속할 수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건강을 가진 사람이 정말 미인이다. 우선은 신체가, 그리고 마음과 정신과 영혼까지 그럴 수 있다면 그야말로 완전 미인!
숙면이 건강한 몸을 가져온다. 충분하게 확보한 달콤한 잠은 내 정신을 건강하게 한다. 나의 영혼도 그렇게 건강해진다. 어느새 나는 잠꾸러기가 가져오는 뜻밖의 (아니 사실은 이미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그 단순한 진리!) 과실들을 내 손에 단단히 쥐게 되는 것이다.
위에서 굳이 멈추어 서는 것을 언급한 이유가 있다. 이런 귀한 숙면은 우리에게 그냥 오는 것은 아니다. 포기해야 할 것이 많다. 결연히 멈추어 서고 바로 눈앞에서 쿨하게 돌아서야 하는 결단을 요구한다. 클럽에서의 그 황홀한 시간들, 친구들과 함께 하는 늦은 술자리, 밤늦은 시각까지 컴퓨터 게임을 하고 비디오를 보는 그 짜릿한 경험, 그렇게 출출해진 나의 위와 입맛을 만족시키는 기름지고 푸짐한 야식들, 이 모든 것들을 단칼에 거부해야 한다. 그래야 달콤한 잠은, 충분한 시간의 수면은 비로소 내게로 온다.
"아 인생 뭐 있어? 그거 한 방이야. 그렇게 몸 아껴서 뭐에 쓸라고? 사람 하고는! 아직도 그렇게 살아? 참 재미없는 인생이군!" 당신의 삶에서 정작 그들이 책임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안다. 그들과 당신의 그 다른 삶의 전략이 지금 무엇을 가져다주었는지를!
크다, 아주 큰 차이다. 더구나 그것은 몇 달 아니 몇 년이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가치 있고 그만큼 무서운 차이다, 하늘과 땅의 차이보다 더 큰 차이!
조각 같은, 스테레오 타입의 전형적 미인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내게는 그렇다. 금세 식상하는 경우가 많다. 건강 미인은 참으로 오래간다. 그녀의 혹은 그의 많은 부분들이 새록새록 아름답게 내게로 다가온다. 어제 보지 못한 새로운 매력 요소 하나가 오늘 툭 하고 내 눈에 들어온다, 내일도 모레도 그렇게. 건강한 미인의 생명력은 신기할 만큼 길고도 강하다.
그러려면 우선 잠을 사랑할지니! 잠이 나의 소중한 동무가 되는 그런 단순하고 밍밍한 일상을 살아갈지니!
오늘의 시를 본다. 좋은 시다.
나무들의 겨울잠을 잠시 숨을 멈추고 죽는 연습을 하는 것이라 조금은 무섭게 말한다, 이 시에서 시인은. 올해도 멀쩡하게 새롭게, 그 푸르름을 뽐내고 그렇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던 그다. 그런데 때가 오니 바로 달라지네? 다음을 위해 바로 멈추어서네? 어, 인물이군!
그러고 보면 연습만은 아니군. 겨울 그 몇 달 동안은 사실상 죽은 것이구먼. 성장점을 멈추고, 자신 안의 모든 이동의 통로도 차단하고. 사실 그렇게 잠시 죽는다는 것은, 숨을 멈추고 나를 죽인 후 내 밖의 세상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거든. 나는 그걸 알지, 오래 살았잖아? 그런 '잠시 나를 죽이는 과정'은 기실 참으로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야.
그럼에도 저 나무들은 그렇게 하지, 매년 그렇게. 잠시 죽어야 다시 살아난다는 그 겸손의 마음으로. 그래서 그들의 정지, 멈춤이 그만큼 찬란한 것이지. 대단한 것이지 그 용기가, 그 결단이, 그런 그들의 삶의 지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