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부, 엄선, 충분한 기회, 고마운 자연의 배려. 정연복 '아가'
나는 형제가 아주 많은 집에서 자랐다. 6남 1녀, 내가 밑에서 두 번째다. 내가 만나보지 못한 제일 큰형까지 포함하면 어머니 아버지 아래 모두 여덟 명의 자식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도 좋았지만 이제 나이 들어 그 시절을 생각하면 참으로 좋은 시간들이었다.
집안에 늘 사람이 붐볐고 동무가 많았고, 사랑이 가득했다. 커다란 밥상 두 개에 앉아서 먹는 식사 시간은 언제나 즐거움이 가득했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위해 수시로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많이 내셨다. 낚시를 가고 캠핑을 가고, 산에를 가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그런 시간들을 보냈다. 그저 고맙고 아름다운 추억이다.
어머니는 그 여덟 자식을 낳느라 최소 8-9년, 최대 20년이 넘는 긴 시간을 아이를 갖고 아이를 낳는데 보내셨다. 물론 그들을 제대로 된 사람으로 기르느라 보낸 시간은 당신의 평생이다.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그 어떤 이유로도 위대하고 또 위대하다. 이 또한 그저 상투적인 말로 들릴 만큼 어머니들은 그처럼 대단한 존재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있게 한 존재이고 우리가 사람이게 한 바로 그분들이다.
오늘 나의 이 글은 이런 옛 추억 속에서 출발되었다. 여성/임신과 출산/어머니/자식들의 모든 것인 존재/그 모든 신비와 오묘한 섭리/과학/감사하는 마음/여성의 위대함...
태아 시기의 여아의 난소에는 엄마의 임신 5개월까지는 무려 700만 개의 난모세포가 있다. 그러나 출생 때에는 100만 - 200만 개 정도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 수는 이때부터 지속적으로 줄어든다. 당연 더 이상 생성되지 않는다. 사춘기에 이르면 30 - 40만 개만 남게 된다. 여성의 나이 30세 이후부터는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든다. 난모세포의 질 또한 나이가 들면서 저하된다. 임신 가능성 자체가 감소하고 태아의 염색체 이상 위험이 높아진다. 통상 35세 이후를 결정적 위험군의 나이로 보는 견해가 많다. 배란하는 난자 중 정상적인 난자의 비율이 크게 줄어든다고 한다.
여성은 평생 300 - 500개의 난자를 배란한다. 이론적으로는 25년 - 41년의 기간 동안 임신이 가능한 셈이다. 초경 나이를 12세로 본다면 37세 - 53세까지. 물론 이것은 일반적인 평균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니 특정 여성의 초경의 나이 그리고 개인차에 따라 53세 이후에 임신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뜬금없이 이 주제에 관심이 간 이유는 이것이다 - 그 많은 난모세포 중에 왜 이렇게 제한된 숫자의 난자만 출현하는 것일까 우선 그것이 궁금했다. 여성의 몸에 애초 난모세포가 그리 많은 이유는?
난모세포는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아 정자와 수정할 준비가 안 된 상태. 난포 안에 보호되어 있다. 난자의 어머니라고 하면 맞을까? 난자는 그 난모세포가 두 번의 감수분열을 거친, 그렇게 최종적으로 정자와 수정될 수 있는 완전한 상태의 여성 생식세포를 말한다. 배란은 바로 이런 완성된 난자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팔관에서 12 - 24시간 생존한다. 그 이후에는 생존 능력을 잃고 퇴화하여 소멸된다.
또 다른 이유는 이것이었다. 평생 300 - 500개면 충분히 많은 숫자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의 의미와 이렇게 하는 신 또는 우리 몸의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그런데 왜 그 시작이 있고 끝이 있을까? 마지막 궁금증은 '그래서 이런 여성의 몸의 신비를 보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깨달음은 무엇일까?'였다.
하나, 많고도 많은 난모세포의 존재의 이유? '품절 제로' 정책 아닐까? 적어도 원초적 존재의 부재로 인해 임신을 하지 못 하는 일은 없게 하려는 자연의 배려다. 평생 500개의 난자를 완성해서 임신의 가능성에 대비한다고 할 때, 통상 그 서너 배의 난모세포가 매번 출격의 준비를 한단다. 물론 최종적으로 단 하나의 난자가 배란되고 나팔관에서 짝을 기다린다. 사용되는 난모세포의 수는 500 x 4 = 2,000, 여전히 여성의 몸 안에는 몇 십만 개의 난모세포가 있으니 필요한 숫자의 100배 정도는 되는 셈이다.
둘, 엄선 또 엄선이다. 매달 단 하나의 난자의 배란을 위해 여러 개의 난모세포가 준비를 한다. 최종적으로 하나의 난자가 결정되고 나머지는 사라진다. 배란이 시작되는 나이가 있고 그것이 끝나는 나이가 있는 것도 이와 동일한 이유라고 나는 본다. 최상의 질을 가진 난자 생성을 위한 최소한의 연령대, 그리고 이제 더 이상은 예전의 그 품질 기준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라고 판단되면 냉정하게 그만 생산하게 하는 그 끝의 존재. 초경과 폐경.
우리 몸이 생각하고 있는 '품질 유지 방책' (퀄러티 컨트롤, QC - Quality Control)인 것이다. 다른 개체와의 충분한 경쟁력 유지를 위한 건강한 난자의 확보 전략이다. 대단하다, 여성의 몸!
셋, 충분한 시간적 기회의 제공이다. 평생 300 - 500번, 25년 - 41년의 충분히 긴 시간, 매달 거의 규칙적으로 돌아오는 기회는 이와 같은 자연의, 우리 몸의 사려 깊은 배려의 결과다. 아차 기회를 놓쳐서 아이를 가지지 못 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천명이기도 하다.
넷, 시간적 충분성의 측면 외에 다양한 시도를 권장하는 면도 있다고 본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젊을 때 나은 첫째 아이, 그 뒤에 나은 둘째 아이, 그리고 좀 더 나이 들어 갖게 된 셋째 아이, 그 각각의 경우의 수의 결과를 누구나 직접 경험하고 실제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 있게 하려는 너그러운 의도인 것이다.
다각화를 통한 집중의 위험의 분산, 이렇게 이해하면 되겠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다 담지 않는 전략. 어머니와 아버지의 나이에 따른/아이를 가질 때의 두 사람의 상황의 상이함에 따른/유전자 결합 과정에서의 최적 조합의 우연성에 의한/후천적으로 다수의 자식들의 존재에 의한 작은 사회 안에서의 1차적 훈련 등, 자연은 그리고 우리의 몸은 이런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무조건 젊은 여성의 임신이 더 나이 든 여성의 경우보다 유리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23세의 젊은 여성이 31세의 여성보다 여러 면에서, 그러니까 산모에게나 자식에게나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그리 생각했다.
그런데 국내 유명 대학병원의 15년 간에 걸친 임상 연구 결과는 이와 크게 달랐다. 오히려 30대 초반, 그러니까 위의 예에서의 31세의 여성의 경우가 24세 이하의 경우보다 여러 면에서 좋은 결과를 담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4세 이하, 그리고 35세 이상의 임신과 출산에서 출생아에게 일부 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큰 것으로 발표되었다.
이 연구 결과를 언급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 여성의 몸의 신비를 다시 한번 말하기 위해서. 여성의 나이는 여성의 '첫 번째 출산'의 위험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두 번째 이상의 임신일 경우에는 고령 산모라도 저위험군이 되기도 한다는 언급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 여성의 신체적 상태가 최적의 조건에 있을 때 일단은 스타트를 해라. 그렇게 우리 몸이 우선은 적응을 하게 하고 그 길을 만들어 놓게 해라. 그렇게 되면 그 다음은 훨씬 수월한 상태가 된다.
내가 어릴 때 들은 속설에 이런 얘기가 있었다. 거의 모든 첫째들은 그 험한 첫 길을 뚫어야 하기에 많은 난관을 거치게 된다. 그래서 오히려 그 뒤를 따르는 둘째와 세째가 여러 면에서 유리한 조건에 있는 것이 경험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이다, 뭐 이런 얘기. 당연 확인되지 않은 얘기다. 하지만 일리는 있다는 생각은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뭐? 오늘 글에서 말하려는 것이 뭡니까?
이런 어머니로서의 여성의 몸의 신비, 임신과 출산의 신비, 다시 한번 알고 생각하는 기회를 가집시다 남성분들, 이것 하나.
아, 산모의 나이뿐 아니라 출생아 아버지의 연령에 따른 영향도 분명 있을 수 있다고 한 위 연구의 언급도 기억하실 것.
자식의 탄생에 대한 아내에 대한 크레딧은 아무리 강조해도, 아무리 감사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조금은 상투적인 언급.
그렇게 귀하게 얻은 자식, 이제는 아내에게서 그 바통을 넘겨받아 후천적인 경쟁력 배양에 아버지가 나설 차례라는 것. 옛말에 '엄부자모' (아버지는 엄격하고 어머니는 자애롭고)라 했지만 아마 요즘은 이 말도 당연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네 일상 속 사회 현상은 이미 많이 달라졌으니까.
내가 보고 듣고 하는 것이 그리 틀린 것이 아니라면, '자부엄모'라 하는 것이 더 맞을 듯? '자애로운 아버지, 엄하고 철저한 어머니'. 엄부자모든 엄모자부든, 결국은 '어머니 날 나으시고,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 늘 합심하여 나를 기르시니'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니 하는 그런 감사의 노래를 들을 수 있기를!
이제 서둘러 오늘의 시를 본다. 일견 쉽고 평범한 듯해도 사실 내게는 좀 어려운 주제였다. 하긴 내가 원해서 택한 주제인 것을?
현세 속세 속의 우리 눈에 보이는 우리들의 천사, 아기들. 세상의 모든 아기는 예쁘다, 그 무엇보다 예쁘다. 아무리 예쁜 꽃도 이 존재와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여기에도 편견은 여전히 작용해서 서양의 아이들은 그 외양도 참으로 천사같다. 아주 조금 더 천사같다 뭐 그런 말이다. 오해 없으시기를.
어떤 말로도 글로도 그림으로도, 그 천사적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직접 느낄 수는 있다, 충분히 아주 충분히!
아가
- 정연복
엄마 뱃속에
이렇게 예쁜 아가 있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엄마 아빠의
진실한 사랑을 아시는
크신 그분이
온 정성으로 빚어 주셨을까.
하늘 별빛 담은 너의 눈동자
가만히 들여다보면
엄마 아빠는
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 없네.
사랑의 행복을 전하는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온
아가야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아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