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생각을 그리 - 로댕, '생각하는 사람'

- 생각의 힘, 가능성, 창조, 애정. 사라 브라이트만 '환상 속에서'

by 가을에 내리는 눈

생각을 하는 사람/상상하는 사람/무언가를 꿈꾸는 사람/머리와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그려내는 사람/불가능함을 알기에 더욱 편한 마음으로 그저 즐기는 사람/사실이 아닌 것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믿음에 빠져 고통받는 사람...


로댕의 그 유명한 조각상 '생각하는 사람' (Le Penseur / The Thinker)은 과연 무슨 생각에 그리 평생, 그 오랜 시간 골몰하고 있는 것일까? 갑자기 이런 썰렁한 궁금함이 생긴 것 또한 나의 나이 듦의 증거다. 턱을 괴고 있는 오른팔, 그 오른팔이 얹혀져 있는 그의 왼쪽 무릎. 그의 대작 '지옥의 문' 중앙 상단에 위치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생각이라는 것을 하면서.


그때는 '시인' (The Poet)이라고 불렸다. 크기도 80센티 남짓했다. 그러다가 그것이 유명해지면서 2미터 가까이 되는 대형 단독 조각상으로 독립한다. 그때부터는 이름도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 현재 진품만 전 세계적으로 30개 조금 못 될 것이다.


그는 이 지옥의 문을 제작하기 위해 거의 30년 넘게 구상했다고 한다. 단테의 시 '신곡' (The Divine Comedy, 신의 세계에 관한 얘기)을 그 주제로 한다. 생각하는 사람 (시인)은 바로 단테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무려 190여 명의 인물상이 등장한다. '세 망령' '웅크린 여인' '아담' '이브', '키스', 이들을 포함하는 수많은 군상을 통해 인간의 동물적 본성, 그 잔인함을 비롯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려 하였다.


"다닥다닥 붙어서 동물처럼 그 이빨을 드러내고 서로의 몸을 깨물면서 뒤엉켜 그렇게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육체들. 지옥의 문 육체의 사슬이 꽃다발 혹은 그저 덩굴손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무언가에 귀 기울이는 얼굴, 무엇인가를 집어 던지려는 팔들과 군상들은 악의 즙에서 솟아나는 고통의 뿌리를 보여준다" 시인 라이너 마리너 릴케가 묘사한 로댕의 지옥의 문이다. <나무위키에서 옮겨옴>


오늘의 주제에서 살짝 벗어나는 느낌을 주지만 이 역시 내가 의도한 것임을 이해하시기를. 상상/몽상/공상/환상/망상, 도대체 뭐가 어떻게 다른가를 반백 년을 훌쩍 넘겨 살아온 내가, 한국말 달인의 내가 제대로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늘 그게 그것 같다. 항상 헛갈린다. 지난 세월 내내 그랬다. 그래서 많이 아쉬웠다.


독일어는 어느 한구석이라도 달아날 구멍이 없다. 어느 단어가 어떤 단어에 걸리고 (수식하고) 어디에 연결되고 어떤 단어, 구와 절이 주인인가를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과학 또는 의학의 세계에서 (물론 문학에서도) 독일어가 특히 강세를 보이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영어만 해도 그렇다. 위에 나열한 우리말은 그저 서로 단 한 자 차이다, 환상과 몽상, 망상. 그런데 영어에는 각기 다 전혀 다른 단어가 존재한다. 비슷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단어 자체로는. 환상 fantasy, 몽상 reverie, 망상 delusion. 그 각각에 대한 설명 물론 충분히 명쾌하다. 영어를 잘 못하는 나도 한글 설명보다는 영어 설명을 읽으면 훨씬 이해가 쉽다. 그러니 내가 영어를 잘했으면 나의 지식의 영역이, 이해의 수준이 얼마나 넓어졌겠나? 역시 아쉬운 대목이다.


하나, 상상 (imagination) - 지금 당장 내 눈앞에는 존재하지 않는 (하지만 물론 충분히 실현 가능한) 혹은 현실의 세계에서는 지금껏 한 번도 실존한 적이 없는 그 무엇에 대한 그림이나 개념, 아이디어를 형성하는 능력. 창조적인 능력 또는 인지 능력의 가장 근본적이고 광범위한 바탕이 되는 재능이다.


반드시 의식의 영역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소음이 들리는 듯 하다거나 누가 나를 괴롭히는 것 같은 형태로 그렇게 무의식 속에서도 그 상상력은 작동한다.


둘, 몽상 (reverie) - 마치 꿈속에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그런 상태. 현실과는 동떨어진, 비현실적이고 기발한 백일몽. 뭔가 즐겁고 유쾌하고 마음에 드는 그런 일에 주로 촛점을 맞춘다. 대개는 의식의 상태다, 유쾌한 심적 상태. 때로는 꿈속에서 번쩍 어떤 현실적인 깨달음을 얻는 등, 마음이 아주 편안한 상태 혹은 반쯤은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창조적인 사고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 정상적인 사고의 패턴 속에서 잠시 쉬어가는 또는 고통이나 근심을 잠시 잊게 하는 긍정적인 역할도 한다. 그런 식으로 일상의 격무나 부담감에서 일시적으로 해방될 수도 있다. 심리적인 이완을 허용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셋, 공상 (fancy) - 일시적인 선호나 기호, 문득 떠오른 생각. 종잡을 수 없는 그저 일시적인 생각의 흐름. 의학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 심적 상태는 물론 아니다. 그저 상상과 연결 지어지는,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다. 굳이 꼭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나 턱도 없는 욕망 등과 연관 지을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어느 날 뜬금없이 새로운 차가 가지고 싶어졌다거나 복권에 당첨되는 생각에 잠기는 것 등이 그 예이다. 이것들이 영 불가능의 영역은 아니니까.


넷, 환상 (fantasy) - 가능 혹은 불가능한 것에 대한 자기만의 어떤 시나리오에 대한 상상적인 생각. 의식 속의 사고 과정의 하나이다. 환상에 잠긴 본인도 지금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꼭 현실 속의 일 혹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은 이미 인식하고 있다. 자기 생각의 뜻과 의미를 분명히 알고 있다는 얘기다. 이 점에서 뒤에서 설명하는 망상과 명확히 구별된다.


보다 바람직하고 매력적인 심적 상태를 창조함으로써 스트레스나 부담감, 또는 불만족의 상태에 대처하고 이겨내는 방어기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물론 어떤 정신건강 장애는 이런 습관적인 환상 속 세계로의 도피를 그 특징으로 하기도 한다. 그러나 환상 그 자체는 분명 그 어떠한 정신 장애도 아니다.


다섯, 망상 (delusion) - 분명히 증명된 사실에 반하는 확고한, 고착된, 잘못된 믿음. 종교 등과 같은 특정 부류 사람들의 신념이나 문화, 혹은 그와 관련된 하부 문화의 한 형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 개인의 정신적인 상태의 문제이다.


이런 사람은 이렇게 사실이 아닌, 허위의 관념을 실재하는 것으로 그리고 당연 사실인 것으로 깊이 믿고 있다. 그래서 실제 혹은 현실과 유리되고 단절되고 도피하고, 그것들을 거부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인다.


모든 경험적 실험적 증거가 자신의 믿음과 배치된다. 망상장애, 정신 분열증, 때로는 편집증이나 불안 의심 장애, 위험스러운 행동 장애를 유발하기도 한다고 한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저 지금 자신이 누군가에게 미행, 감시당하고 있다고 믿는 다거나 사실은 무명의 한 개인임에도 자신이 엄청 유명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것 등이 그 예이다.


그래서 오늘 하려는 얘기의 핵심이 뭐요?


망상을 제외하고는 오늘 설명한 거의 모든 형태의 자유로운 사고의 영역은 우리 인간의 삶에 직접 간접으로 도움을 준다는 것.


잠시 쉴 틈과 공간을 주고, 회복할 힘의 원천이 된다. 창조적인 결과물의 생성에 크게 도움을 준다. 과학과 예술의 많은 위대한 업적은 이런 사고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들이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일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미 인식하고 있다. 그러니 그저 꿈 속에 빠져서 헤매는 그런 만성적 위험성은 적다. 서로 다른 방식과 의미 속에서, 자신의 사고의 영역 속에서 그 무한한 팔을 길게 뻗치고 있다는 점은 공통의 특징이다. 그 뻗치는 정도의 차이가 조금씩 있을 뿐.


현실적으로 일어난 엄청 대단한 사건 혹은 상황, 함께 크게 기뻐할 그런 일에서는 '아, 대단해. 그야말로 환상적이야! (Fantastic! 거의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의 세계 속에서나 가능한 그런 일이 지금 일어난 거야!)' 이리 말하는 것이 옳다. 그게 함께 기뻐하는 자의 예의다. 사람을 신나게 하는, 힘이 나게 하는 '에너자이저' (energizer)의 자세다.


그냥 썰렁하게 '거의 상상적이군! (Imaginative! 지금 소설 쓰냐? 이것도 그저 너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거지?)', 이리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 나도 자주 본다 일상 속에서! 이 말은 별로 기뻐하는 것도 아니고 공감도 하지 않고, 오히려 조금은 시기나 질투의 감정을 실어서 내보내는 물타기의 발언에 다름 아니다. 썰렁함의 극치다.


상상의 영역이 있고, 또 그와는 다른 환상의 힘이 꼭 필요한 그런 상황과 영역이 있다. 소 잡는데 쓰는 칼, 닭 잡는데 쓰는 칼이 따로 있듯이.


오늘의 시다.


영국의 여가수 사라 브라이트만이 세계적인 영화음악의 거장 엔리오 모리코네의 음악을, 몇 년을 끈질기게 조른 끝에 마지못한 승낙을 얻어 가사를 넣고 노래로 부른 버젼이다. 영화 '미션'에 나오는 '가브엘의 오보에' (Gabriel's Oboe). '넬라 판타지아' (환상 속에서, In the Fantasy).


환상 속에서 (Nella Fantasia)

- 사라 브라이트만

환상 속에서 나는 편견 없는 세상을 본다.

그곳에서는 그 누구나 평화 속에 그리고 정직함 속에 산다.

언제나 자유로운 사람들을 나는 꿈꾼다,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들처럼,

영혼 속에 다정함이 가득한 그런 사람들.


내 환상 속에서 나는 투명한 세상을 본다.

그곳에서는 밤조차도 덜 어둡다.

나는 언제까지나 자유로운 사람들을 꿈꾼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처럼,

상냥함 가득한 그런 사람들.


내 환상 속에는 따뜻한 바람이 있다.

그 바람은 도시 이곳저곳에 불어온다,

마치 친구처럼,

늘 자유로운 사람들을 나는 꿈꾼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구름처럼,

그 영혼 안에 애정이 가득한 그런 사람들을.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 영어 번역본을 바탕으로>


# 그나저나 로댕의 조각상은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 것일까? '시인'으로서의 고뇌일까? 그저 이 세상을 사는 한 사람으로서의 고민일까? 상상을 할까 몽상을 할까, 아니면 환상 속에 있는 것일까?


"이 세상의 끝은 도대체 어찌될 것인가? 조금은 더 나은 현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하긴 오지랖 넓게 내가 굳이 그런 고민을 할 이유나 필요가 있을까? 나 하나 먹고살 일도 그저 걱정이구먼?" 이런 생각?


그 위대한 인물도 세월 앞에는 어찌할 수 없었나 보다. 나이 들어 노인성 정신 질환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죽을 때의 그의 마지막 말 - "나는 신이다".


또렷한 정신에 그 말을 했으면 참 좋았을 것을,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마도, 어쩌면 그는 진즉 자신의 삶의 '이런 마감'의 순간을 안타까워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팔을 괴고 그 고뇌에 찬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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