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그는 천상의 천을 원한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내가 줄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더구나 그 상대가 내게는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존재라면? 차라리 남녀간의 애정에 관한 상황이라거나 혹은 아예 비즈니스적인 거래관계에서라면, 오히려 내가 줄 수 없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깔끔하게 다른 선택지의 존재 가능성을 모색할 것이다. 내가 줄 수 없는 것을 그저 일시적 호기로 혹은 상대방을 잠시 속이는 그야말로 거래적 동기에서 마치 줄 수 있는 듯한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 상대가 이를테면 내게는 참으로 귀하고도 소중한 그런 존재라면? 자식이라면? 줄 수 없는 그 안타까움은 얼마나 크겠나? 이미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사려 깊은 자식은 그래서 자신의 부모가 지금 자신에게 해줄 수 없는 것들을 해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미루어 알고 있는 부모는 더 큰 슬픔과 무력감을 느낀다. 우리네 삶이 이렇다. 냉정한 현실이 바로 이와 같다.
이 시에서 예이츠가 말하고 있는 그는 과연 누구일까? 아마도 그녀일 가능성이 높다. 하늘의 별을 따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의 그의 요구, 하늘에서 그것도 구체적으로 이러이러하게 짠 직물을 자신에게 달라고? 왜? 자신은 그런 불가능의 보물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 것인가? 어떤 근거와 어떤 허황된 자신감에서?
아무래도 시인이 크게 '호구' 잡혔구먼? 쉽게 공격당할 수 있는 아주 취약한 상태! 다시 한번 왜? 호구 그 당사자가 그렇게 절실하게 상대방을 좋아하니까? 그 상대 또한 이미 그 사실을 간파한 상태?
논리적으로만 본다면, 아니 웬만큼 이성적인 판단력의 차원에서 본다면, 이런 상황에서 시인은 '아, 이 사람과는 여기까지구나. 어찌 이런 과하고도 과한 요구를 내게? 자신을 그리도 사랑한다고 바보처럼 달려드는 내게 감히?', 이런 판단에 도달해야 맞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랑은, 남녀간의 애정의 세계에서는 논리도 이성도 별다른 힘과 의미가 없는 법. 그저 뜨거운 감정과 충동만이 상황을 지배하는 법. 오호통재라!
'여기까지!', 하고는 뒤로 물러나는 대신 시인은 다른 것을 그녀에게 내어놓는다. 자신에게는 그 천상의 직물보다도 몇 배는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을. 바로 자신의 꿈을! 왜 이렇게까지? 글쎄, 그녀는 그의 그 소중한 꿈들을 자신의 발 아래 밟고 이제는 만족이라는 것을 할까? 결코 아닐 것 같은데? '이게 뭔데?', 그럴 것 같은데?
역시 부서지기 쉬운 감정의 지배를 받고 있는 시인은 못내 아쉬워하며 이리 말한다, '그러니 부디 부드럽게, 살살 걸으세요, 당신이 밟고 있는 것은 바로 나의 꿈들이거든요!' 그런다고 살살 밟아줄까? 그것이라도 밟고 가면 조금은 나을까? 자신이 조르고 탐내던 천상의 직조물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시인의 정성은 알아줄까?
예이츠의 아버지는 화가였다. 형도 예술가였다. 그 자신 또한 화가 지망생이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가 그린 예이츠의 초상화를 나는 좋아한다. 예이츠 특유의 그 동그란 안경과는 살짝 다른 모양의 독특한 안경, 자유분방하게 흐트러진 그의 검은 빛깔의 직모에 가까운 머리카락. 늘 뭔가 딴생각에 사로잡힌 듯한 독특한 그의 시선.
그의 얼굴에서 언제나 우수와 먼 곳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보이는 것은 왜일까? 그가 평생 신비주의나 심령론, 점성술에 관심을 가진 것과 어떤 연관성이 있으려나? 그는 일생동안 이런 분야에 관한 광범위한 주제의 글들에 심취했고 초자연현상 연구단체인 '고스트 클럽 (The Ghost Club)'의 회원이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신비로운 인생이야말로 나의 모든 행동과 나의 모든 생각과 나의 모든 글의 중심이다."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줄 수 없는 것들을 내게 달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이츠 자신도 이 시에서 그러지 않나? '그런 것이 내 손에 있다면 당장이라도 당신의 발 밑에 깔아주겠다고!' 그런데 문제는 내게는 그런 것이 없다고, 그것이 문제라고! 그저 사랑을 달라고 원하는 것 뿐인데 그 사랑을 줄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문제다. 어쩌나, 어떻게 나오나 한번 살펴볼 요량에서 한 일시적 단순 행동이라면 그 또한 좋다.
그런데 뻔히 줄 수 없음을 알면서, 아니 알기에 달라고 조르는 것은? 상대방 힘들게 하기, 혼내기, 혹은 길들이기에 다름 아니다. 그러지는 말자, 그러면 안 된다. 그럴 거면 그냥 '나는 이제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요' 하고 쿨하게, 냉정한 자세로 돌아서서 가는 것이 맞다. 그것이 사람의 자세다! 자, 도대체 어떤 시인지 한번 보시라!
그는 천상의 천을 원한다 (He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내가 황금색의 빛과 은백색의 빛으로 만들어진 천상의 수놓은 천을 가지고만 있다면
밤과 낮 그리고 어슴푸레한 박명의
푸르고 어두침침하고 검은 색깔의 천이 있다면,
나는 당장이라도 당신의 발 밑에 그 천들을 깔아줄 것이오
하지만 나는 가난하고, 그저 나의 꿈만을 가지고 있기에,
그래서 당신의 발 아래로 나의 그 꿈들을 펼쳐놓은 것이지요
부디 부드럽게 조심해서 걸으세요 당신은 지금 나의 꿈들을 밟고 있는 것이니까요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
# '당신의 발 아래로 나의 그 꿈들을 펼쳐놓은 것'이란 무슨 뜻일까?
갑자기 글을 다 쓰고 나니 궁금해졌다. 나의 꿈마저 그냥 포기하고만 상태라는 것인가? 그저 당신의 그 사랑 하나 얻자고? 그렇게 오랜 세월 소중하게 키워온 내 꿈은 이제는 뒷전으로?
아니면 당신이 그리도 원하는 천상의 천은 없고, 그대신 나의 꿈이 이런 것인데 그것이면 혹 어찌 안 될까? 이리 읍소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으로 딜을 시도하고 있는 것인가? 그런가? 글쎄, 천상의 천과는 애초 비교가 되지 않을걸?
아무튼 둘 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랑한다면, 사랑하니까 그 소중한 꿈을 이룰 수 있게 힘껏 나서서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 턱도 없는 소리라고? 꿈 깨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