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중한 삶, 최선을 다해서 살기, 당당하기. 딜런 토마스 '그 밤~'
스탈린 독재정권 시절 그의 옆에서 소련 인민들을 끔찍한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던 인물이 있다. 히틀러 옆의 하인리히 힘러 같은 존재였다. 바로 스탈린과 같은 조지아 출신, 라브렌티 베리야라는 자다. 스탈린 집권 후 대숙청의 시기에 비밀경찰의 총수였다. 자기 나라 조지아 사람들을 유난히 더 많이 괴롭혔다, 그래서 조지아 사람들은 그라면 아주 이를 갈았다고 한다.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 그대로다. 어렸을 때 일부러 친구의 물건을 훔친 뒤 그 친구가 당황 속에 어찌할 줄 모를 때 자기가 물건을 찾아주는 그런 못된 행동을 했단다. 악마의 기질이 이미 그때 있었던 것이다.
스탈린 사후 당연 그에게도 내리막길이 왔다.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사형 집행 장소로 가는 도중 내내 난리를 피우고 울고불고, 결국 할 수 없어서 중간에서 뒤통수에 권총을 쏴서 처형을 해버렸다. 스탈린 시절 바로 그에게서 엄청난 고통을 받았던, 그러나 살아남았던 소련의 전쟁 영웅 유명 장군이 자신의 권총으로. 참으로 구질구질하게, 지저분하게 죽은 자로 기록되고 있다.
토마스 모어 (Sir Thomas More), 잉글랜드 헨리 8세 시대의 너무도 유명한 인물. 헨리 8세 즉위 후 그의 비서로 실권을 장악한다. 그의 총애를 받았다. 그 후 더 높은 자리, 그러니까 국왕 바로 다음 가는 막강한 자리에 올랐다 ('Lord Chancellor of England', 우선 현재보다 막강한 권력을 갖는 국무총리 자리다. 또한 왕이 참석하지 않은 경우 의장으로서 의회 (하원)를 통할 주재한다. 동시에 사법권의 최고 책임자다. 상원의 의장을 맡는다, 그러니 거의 무소불위의 대단한 지위다. 단순히 대법관이라 번역한 곳이 많은데 사실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자리다. '두 번째 순위의 왕'이라고나 할까? ).
헨리 8세의 이혼과 관련, 로마 교황청의 편을 들었다. 끝까지 헨리 8세의 이혼을 위한 왕위계승법에 서명을 거부한다. 런던탑 감옥에 수감되고 그곳에서 15개월을 보낸 뒤 결국 반역죄 참수형으로 세상을 마감한다.
참수형 직전에 그가 한 말은 유명하다. 하나, "나는 왕의 좋은 신하이기 전에 하느님의 착한 종으로 죽는다" 둘, "나의 이 턱수염 (beard)은 결코 왕을 화나게 한 적이 없으니 도끼를 받을 이유가 없다", 이렇게 말하면서 목을 늘어뜨린 자세로 자신의 수염을 옆으로 밀어냈다. 그리고는 사형 집행인에게 이랬단다 -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죽은 지 400년 되던 해 193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카톨릭에서는 성 토마스 모어 (Saint Thomas More)라고 부른다. 1980년에는 성공회 (개신교의 한 형태)의 성인록에도 올랐다. 성공회를 자신의 목숨으로 반대한 사람이 그 성공회의 성인이 된 것, 역사의 아이러니다.
하긴 성경을 영문으로 번역한 죄로 이단으로 몰려 화형을 당한 윌리엄 틴들 (William Tyndale)의 경우도 그렇다. 그때 그의 나이 불과 42세. 그러나 오늘날 영문 성경본의 으뜸의 자리에 있는 킹 제임스 버전 (KJV)의 70%가 그가 죽음을 댓가로 번역한 그의 번역본에 근거한다.
오늘의 글은 아래 소개하는 시를 중심으로 써 나가겠습니다. 영국 웨일즈 출신의 시인 딜런 토머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입니다. 참으로 많은 사유와 묵상을 요구하는 시이기도 합니다. 죽음을 맞는 우리의 자세에 관한 내용입니다.
신중하게 번역했습니다.
죽음을 거부하라는 얘기가 결코 아닙니다. 시인 자신도 죽음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임을 압니다. 하지만 적어도 죽음 앞에서 비굴하거나, 죽음에 쉽게 굴복하지는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죽지 않겠다고 악다구니를 쓰거나, 아등바등 어찌하면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을까 그런 자세를 권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의연한 자세로, 당당하게, 때로는 내게 다가온 죽음에게 호통도 치고 혼도 내고 그러라는 겁니다. 그저 두려움 속에, 마지막 순간까지 벌벌 떨며 그런 추한 모습을 죽음에게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보이지는 말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시 속에서 죽음에게, 왜 나를 찾아왔느냐고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도 시켜서 왔겠지요? 자연이, 신이 혹은 섭리가? 그는 또 무슨 죄입니까? 그저 자기 할 일을 하는 것뿐.
다만 "허허, 조금 있어봐. 오늘, 지금 당장은 아니야. 내가 정리할 것도 있고. 뭐 하루가 급한 것은 아니잖아? 좀 기다려. 다 끝나면 내 말해줌세." 뭐 이 정도?
시인이 시에서는 분노하라고, 격노하라고, 고함을 치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죽음에 대해 그리 하라는 것은 아니라고 저는 새김니다. 더 열심히 살지 못한 자신의 삶에 대해서, 그래서 아직 할 일이 더 남아있다고 뒤늦게야 깨닫는, 이제야 자각하는 그 아쉬움에 대해서 분노하라는 뜻 아닐까 저는 그리 봅니다.
물론 마지막 연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시의 분위기가 급반전됩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 모두에게 하던 말의 톤이 이제는 자신의 개인사, 가정사인 아버지의 얘기로 옮겨갑니다. 거의 죽음에 임박한 상태에 있는 아버지에게, 죽음에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면서라도 조금은 더 버텨달라고 부탁합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래서 못난 자식을 이전처럼 크게 꾸짖어도 주시고 또 신에게 아들을 위한 기도도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이렇게 자신 곁에 조금 더 있어달라고 그리 간구하는 것이지요. 읽는 저로서는 그저 마음이 시려옵니다.
나이 든 모든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서 현자들, 그리고 선하게 살아온 사람들, 격정적으로 즐기며 이 세상을 살아온 사람들까지,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아버지에게로 옮겨갑니다. 극적인 반전입니다. 그래서 이 시가 더욱 가슴 속 깊이 들어옵니다.
그만큼 우리네 삶은 귀하고 소중한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서, 최대한 팔을 뻗치며 그렇게 열심히,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는 현자도, 선한 삶을 살아온 사람도, 또 이 세상을 참으로 열정적으로 살아온 사람도 아쉬워하고 후회하는 부분이 꼭 있으니. '최선을 다해서 (fully)' 살아야 한다고 돌려서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어쩌면 그래야 내게 온 죽음에게 호통도 치고 허허 웃기도 하고, 죽음의 사자 그 또한 지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그런 여유도 보일 수 있는 것이겠지요?
저는 그냥 이렇게 말할 것 같아요 - "어, 왔어? 이때쯤 올 줄 내 알고는 있었지. 그래, 가자구. 나 또한 이미 오래 전부터 하나씩 준비는 하고 있었으니까. 하긴 이만하면 잘 살았지 이곳에서!"
그 밤 속으로 그저 순순히 들어가지는 마세요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 딜런 토마스 (Dylan Thomas)
그 또한 좋은 밤이니까 하고 그렇게 순순히 그 밤을 받아들이지는 마세요,
무릇 나이 든 자는 생의 끝에 대해 분노하고 고함쳐야 하는 것이니 ;
그러니 끝을 맞는 빛에 항거하고, 분노하라.
죽을 때가 되면 현자들은 어둠이 옳은 것이라고, 결국은 죽어야 함을 안다, 그럼에도,
사실 그들의 그동안의 그 많은 말들은 번갯불 하나 일으키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에게 다가오는 그 밤을 그저 무던하게 수용하지는 않는다.
지금껏 선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 그들도 자신의 마지막 물결이 지나갈 때,
그간의 자신의 그 덧없는 행위들이 아직은 좀 더 밝게 저 푸른 초록빛 만에서
춤을 출 수 있으련만 하고는 아쉬움에 울부짖는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을 맞는 빛에 대항해서 고함을 지르고 격노한다.
하늘을 날고 있는 태양을 붙들어, 그렇게 자신만만 노래를 부르던 격정의 삶을 즐긴 사람들, 그러나
죽음이 가까워서야 그 일들을 후회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그들, 하지만 너무도 늦은 그 깨달음,
그렇기에 그들은 그 밤을 그냥 순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죽음이 임박한, 위독한 사람들, 이제는 거의 볼 수 없는 시력 속에서 그러나 안 보이는 그 두 눈도
별똥별처럼 밝게 빛날 수 있음을 그리고 여전히 생기가 넘칠 수 있음을 아는 그들,
그런 이유로 그들은 죽어가는 삶의 빛에 대해 분노하고 고함친다.
그리니 아버지, 나의 아버지, 그곳 슬픔의 벼랑에서,
이 순간에도 부디 저를 크게 나무라시고, 저에 대한 신의 가호를 빌어주세요
제 가슴을 에는 당신의 그 통렬한 눈물로, 제가 이리 간구합니다.
그 밤 또한 충분히 좋은 것이라 그리 쉽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당신의 꺼져가는 빛에 대해 크게 노여움을 보이시고 고함을 지르세요, 부디.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
#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며칠 전 글에서 이 시를 처음 만났습니다. 다시 한번 그 작가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 시를 만나게 해주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