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듬직한 비밀 서재 브런치 - 판도라 상자 속 희망

- 나만을 위한 비밀의 화원, 내 동무들이 있는 곳. 김현승 '책'

by 가을에 내리는 눈

'남아수독오거서', 사람은 무릇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은 읽어야 하는 법, 어릴 때 아버지가 늘 내게 하신 말씀이다. 장자가 한 말이란다. 그때는 아버지께 이런 물음을 했다 - "그럼 몇 권이나 되는 걸까요?"


굳이 오늘날의 책으로 따진다면 한 1,500권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지만 아마도 장자가 이 말을 꺼냈던 그 시절에는 그 당시 세상에 나와있던 거의 모든 책을 말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나의 중년의 시절, 마음이 무겁고 근심거리가 있을 때는 그냥 내 서재로 들어갔다. 짐 탐슨 3인용 천 소파가 하나 있고 4단짜리 튼튼하고 옆으로 긴 책꽂이가 있다. 빼곡하게 꽃혀 있는 책들, 바닥에 추가로 가지런히 쌓인 책들. 벽에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 몇 점이 걸려 있다. 아마도 천 권 남짓한 책. 중요한 것은 거의 모두 내가 몇 번씩 읽은 책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이미 다 읽었어도 여전히 관심이 가고 오래오래 애착이 남는다. 각각의 책 한 권에 얽힌 추억이 고스란히 내 머릿속에 있으니까.


전공 서적을 한 권 쓴 적이 있다. 그 인연으로 꽤나 유명했던 그 출판사에서 발행한 책 중에서 내가 관심있는 책 100권을 나에게 그냥 주는 일이 있었다. 참으로 신나는 순간이었다. 몇 번에 걸쳐 이루어진 100권의 책 나의 서재에 들이기 프로젝트, 그냥 배가 부르고 기분이 좋았다. 덕분에 정말 다양한 분야의 좋은 책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한 권 한 권 내 돈을 주고 그리 사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돈 들이지 않고 '마구, 무려 100권을' 한 시기에 내 소유로 만드는 일은 그리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렇게 서재에서 한 시간 정도 가만히 책들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내가 여기 들어온 동기와 그 이유를 잊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 방을 좋아했다, 많이 사랑했다. 벽에 걸린 그림들뿐만 아니라 벽 구석 바닥의 두 곳에 '전략적으로' 겹쳐 포개놓은 다른 그림들까지, 하나하나 다 기억에 남는다. 소중한 책들이었고 사랑스러운 그림들이었다. 물론 그 공간에서의 아름다운 추억들이었다.


유튜브의 출현과 함께 음반사들의 매출은 격감했을 것이다. 요즘 누가 LP/CD를 돈 주고 사서 듣나? 그냥 손가락만 잠깐 움직이면 내가 있는 곳에서 바로 내가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을? 기적 같은 편리함이고 고마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추억의 사라짐을 내가 아쉬워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원하던 음반을 손에 거머쥐었을 때의 그 기쁨, 턴테이블에 올리고 CD 플레이어에 넣고, 조마조마 그 첫 소리를 기다리던 그 순간의 설렘. 이제는 더 이상 없다, 그 첫 만남의 순간도 귀한 것을 얻었을 때의 기쁨도 그 희소성도. 모든 것이 흔하기만 하다, 지금은, 언제나 어디서나 그저 흔하게.


아, 돈과 사랑과 귀한 사람과의 아름다운 인연은 여전히 귀하다. 아쉽다!


출판사가 비슷한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이미 그 초기 단계에는 진입했을 것이다. 우선 사람들이 뭐 하드카피로 된 것을 즐겨 읽지 않는다. 책이라는 두껍고 긴 얘기는 더욱 질색을 한다. 짧게, 더욱 짧게, 그냥 숏이 대세다. 글쎄, 짧은 것이 다 좋은 것은 결코 아니건만?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내심 바라고 원하는 것이 많았다, 아주 많았다. 시간이 흐르고 그 기대와 바람이 하나씩 사라지면서 잠시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다른 큰 것을 얻는다, 그리고 놀란다.


서울 한복판의 교보문고가 외국의 이 좁은 나의 방으로 들어온 것이다. 돈을 낼 필요도 없다, 굳이 사람 붐비는 그 공간까지 찾아갈 이유도 없다. 낮이고 밤이고 내가 무언가 글을 읽고 싶으면 바로 그때 내 앞에 이미 존재한다.


더욱 큰 고마움은 바로 이것이다 - 그저 생경한 원재료 그대로의 하드카피 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우리 브런치 고수 작가들이 다양한 하드북을 읽고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충분히 소화한 것을, 나 같은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자신의 언어로 재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 길지도 않다, 주제는 그야말로 다양하다. 내 취향에 맞는 작가의 발견, 초기에는 조금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 그저 그 양반 글이 나올 때를 기다려 10분 남짓 즐기며 읽으면 되는 일이다. 내 편한 시간에 내가 먹고 싶은 주제의 글을, 내가 원하는 시간만큼만.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는 외국 작가의 글이나 정말 유명한 기성 작가나 시인들의 작품은 예전처럼 사서 읽으면 된다. 물론 그 또한 온라인에서 금전의 지불 없이 쉽게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나 같은 구세대 사람에게는 하드카피를 손에 만지고 느끼고, 그 종이의 향을 맡는 즐거움은 크다. 하드카피 그 외양이 주는 만족감도 아주 크다, 내게는.


사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집안 장식을 하지만 나는 늘, 그림과 그릇, 책으로 하는 장식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지금도 그렇다, 그림 한 점 손에 넣고 집안 가까이 두고 늘상 보면 그만한 위안과 기쁨이 없다. 작은 나라 조지아에서 우연히 발견한 아마츄어 수채화 작가, 그녀의 작품을 열 점 넘게 구입했다. 그곳의 내 방 곳곳에 놓아둔다. 그 즐거움, 그 든든함, 그 우아함!


얼마 전 이곳 현지 식당에서 구해온 주먹 크기의 작은 그릇 하나도 그렇다. 일본의 분청사기 느낌이다. 내게는 이곳에서 만난 좋은 친구다. 지금 내 침대 왼편 손닿는 창 모서리에서 늘 나를 지켜본다. 물론 나도 그녀를 본다. 동무다.


하나, 브런치 글에서는 사람의 향기가 난다. 출판사/잉크 냄새/기계의 작업 소리, 그런 인위적인 느낌이 덜하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이 아닌, 가내수공업의 매뉴얼 작업의 결실이다. 그러니 그만큼 귀하다. 작가들도 정말 자신의 최선을 다한다. 자기의 분신이라고 생각하니까!


둘, 막 나온 두부처럼 늘 따끈따끈하다. 조금 전 나온 글을 내가 읽을 수 있다, 어쩌면 내가 그 첫 번째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런 설렘과 뿌듯함이 있다. 언제나 현재성이 느껴진다. 항상 지금이고 늘 누군가 어떤 실존의 존재에 관한 얘기다. 그만큼 리얼하고 또한 다이내믹하다.


셋, 놀라울 만큼 솔직한 글들이다. 아니 이런 얘기까지? 아무나 쉽게 그리 자신의 깊은 얘기를 꺼내놓을 수는 없다.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브런치라는 공간의 특별함,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편안함과 신뢰감.


이곳에서는 충분히 자유로워도 된다, 다 나와 같은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미 동무다, 마주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춤을 추는 사람! 이런 공감대가 이미 충분히 형성되어 있는 것 같다.


넷, 솔직함이 주는 신비함과 함께 그 전문성 또한 뛰어나다. 다양한 지식과 경험, 오랜 사유와 묵상을 바탕으로 한 글들이 이곳에는 많다. 그저 내가 읽고 그렇게 나의 것으로 취하면 된다. 내게 뭐 특별한 형태의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프리'다.


다섯, 작가와의 거의 실시간 대화가 가능하다. 공감도 표하고 궁금한 것은 적절한 선에서 물어도 보고, 그렇게 읽은 글을 놓고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난다. 하드북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대화와 소통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소통의 장이다.


여섯, 그럼에도 읽는 사람으로서의 우리들의 '애정'은 조금은 더 적극적인 형태로 쏟아내면 좋겠다. 그 글에 대한 애정, 그 글을 쓴 작가에 대한 관심과 고마움, 그 상황으로 한번 들어가 보려는 노력, 시간과 열정과 에너지의 투입...


나는 예의의 문제라고 본다. 동무가 자신의 소중한 동무를 대하는 방식이라고 본다. 그래야 길게 간다, 그러면 앞으로 긴 시간 서로에게 소중한 만남의 장이 된다.


그런 식으로 조금은 다른 비상업적, 가내수공업적, 그리고 아날로그적인 만남의 장이 되면 좋겠다.


여전히 브런치 에인절도 브런치 앰배서더도, 또 브런치 쉐리프도 아직은 없지만 그건 우리가 그런 역할을 하면 된다. 다른 이들을 위한 천사가 되고 그들을 위해 뛰는 든든한 대사가 되고, 그녀를 보호하는 보안관이 내가 되면 된다. 당연 내게도 그런 든든하고 고마운 존재들이 생기는 것이다.


'모든 선물을 받은 여인' 판도라 (Pandora), 하지만 역시 제일 막강한 힘과 권력의 제우스, 당연 제대로 먹혀들어간 그의 저주와 벌,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여성 판도라의 호기심, 그렇게 상자 밖으로 일시에 뛰쳐나와버린 세상의 모든 악, 그러나 여전히 그 상자 맨 밑바닥에 남아있는 희망, 그저 놀람과 두려움에 황급히 그 상자를 닫아버린 판도라, 그렇기에 아직도 우리 모두에게 남아있는 그 희망에 대한 불씨...


오늘의 시를 본다.


시인은 위대하다. 내가 오늘 이런 글을 쓸 것을 어찌 알고 미리 이런 아름다운 시를 내어놓으셨나? 고마운 시인! 딱 지금의 내 마음을, 내 마음속에 살짝 들어왔다 가서는 이 시를 쓰신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가장 고요할 때 가장 외로울 때, 그리고 내 영혼이 그 누군가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그때 시인은 책을 여신단다. 아쉽게도 지금 이곳 내 방에는 책이 별로 없다, 그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나의 서재는 여기 없다.


밤 하늘에서 별을 찾듯 보석상자의 뚜껑을 열듯 조심스럽게,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연다. 그랬다, 나도 그랬다. 퇴근 후 집에 와서 몇 시간이고 책을 읽을 때의 그 즐거움이라니! 그때만 해도 여전히 젊어서 목 디스크 걱정하지 않은 것만 해도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책과 동무를 했다.


영혼의 친구들이라고 시인도 지금 말하고 있다.


내 슬픔과 나의 괴로움과 나의 희망을 소리 높여 노래해 주는 그들, 바로 그 소중한 내 동무들의 아름다운 영혼과 나는 책 속에서 만난다. 힘껏 그들의 그 손을 잡는다, 오 나의 친구여 나의 영혼의 동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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