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도 백 개, 삶은 계란 천 개

- 약식동원, 삶의 큰 즐거움, 미식. 나희덕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by 가을에 내리는 눈

한국의 무른 털복숭아 황도나 백도를 좋아한다. 특정 지역 감곡 복숭아로 알려진 것으로 기억한다. 결코 싸지는 않은 가격이고 더구나 여름 한철 잠깐 나오고 마는 것이라 늘 실컷 먹은 기억은 없다. 그런데 그 맛있는 황도를 정말 마음껏 먹은 때가 있다. 이곳에 오기 전 내가 머무르던 러시아에 인접한 작은 나라인데 여름 한철의 황도가 우리나라의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가격은 거의 1/10 수준? 매일 세 개씩 그러니까 한철 100개 이상을 먹었다. 그래도 신선은 되지 못했다.


설화에 나오는, 우리가 천도 복숭아라고 부르는 ('역전 앞' 처럼 중복되는 말이다, 천도 자체가 이미 천상의 복숭아란 뜻이니까) 털 없는 복숭아는 사실은 중국에서 말하는 그 천도가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천도는 납작 복숭아다. 털이 약간은 있고 정말 그 모양이 위에서 눌러놓은, 옆으로 늘여놓은 곶감 같은 납작한 모양이다. 아주 맛있다. 이것이 설화에서는 '반도'라고 해서 신선들의 복숭아로 등장한다. 여신들의 왕 서왕모가 가진 과수원에서 재배되는 이 신비의 복숭아는 불로장생을 가져다주는 과일이었다. 서왕모는 매년 이곳에서 생산된 반도를 가지고 신선들을 모아놓고 복숭아 파티를 한다.


이 영생의 복숭아를 훔쳐먹은 것이 손오공이고 동방삭이다. 동방삭은 그 덕으로 3천 갑자를 살았다 하니, 3,000 x 60년 =180,000년을 산 셈이다. 오늘 이 제목으로 글을 쓰는 이유는 이를 핑계로 맛있는 과일, 내가 좋아하는 과일에 대해 얘기해 보려는 의도다. 눈치 채셨을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사과다. 거의 평생 사과를 부지런히 먹어왔다. 한동안 사과를 먹지 않으면 사과가 머릿속에 떠오르고 심하게 그리워진다. 중독이라는 것을 경험한 적은 없지만 아마도 이런 것이 중독의 단계 아닌가 싶을 정도다. 단연 한국의 후지 (부사)가 최고다. 11월 하순은 되어야 나오고 그다음 해 3월이 지나면 끝이다. 물론 요즘은 냉장 저장의 기술이 좋아서 그 이후에도 길게 더 먹을 수는 있지만 문제는 가격이다. 제철에도 비싼 유명 산지의 후지, 철이 지나면 거의 무서운 가격으로 변한다.


지금 있는 이곳에도 부사가 있다. 여기서는 '후지'라고 부른다. 물론 맛은 비슷하고 가격은 아주 싸다. 한국과는 다르게 이곳에서는, 그리고 이전에 있던 나라에서는 거의 1년 내내 사과를 먹을 수 있었다. 그 나라에는 열 가지 가까운 현지 사과 품종이 있었다. 그곳 사람들은 푸석푸석한 사과를 좋아했다. 당연 내가 좋아하는 단단한 사과들은 오로지 내 차지. 사과 한 개가 300원에서 비싸야 500원 수준이니 가히 사과의 천국이었다. 맛도 한국의 신맛 강한 후지보다는 덜 시고 달콤한 다양한 사과들이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는 망고를 열심히 먹고 있다. 한때 한국에서 망고 한 개가 만 원했던 것을 기억한다. 여기서는 칠백 원이면 산다 큼지막한 것, 아주 잘 익은 것으로. 어릴 때부터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당의 여력에 관한 공간이 아직은 내게 많이 있지 않을까, 그런 비과학적 억지를 쓴다. 그래도 망고는 당의 함량이 많이 높다고 하니 많이 먹지는 않으려 조심한다. 섬유소가 많아서 급격한 당의 상승 위험은 그만큼 적다는 말도 들었다.


조지아에서 정말 맛있게 먹었던 또 다른 과일은 플럼 (자두)이었다. 여러 종류의 플럼이 있었지만 아주 작은 럭비공 같이 생긴 거의 검정에 가까운 짙은 보랏빛 플럼의 맛은 그야말로 천상의 맛이었다. 그곳에서 처음 먹어 보았다. 아쉬운 것은 복숭아보다 더 짧은 기간만 생산된다. 뜨거운 여름 한철 겨우 3주 정도? 그래서 먹기가 쉽지는 않다.


땅위의 사과 (애플)만큼 조지아의 감자 ('땅 속의 사과')는 맛이 좋았다. 삶은 감자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의 주식 중 하나이기도 했다. 감자만으로 그 오랜 세월 삶을 이어온 나라 아일랜드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대단한 땅위의 사과다. 아일랜드 출신의 미국 대통령만 해도 여섯 명은 되는 것 아닌가?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바나나가 귀했던 것처럼 그 나라도 여전히 바나나는 귀하고 비싸다. 같은 무게 사과의 두 배 이상의 가격이다. 내가 처음 나간 해외가 일본이었다. 그때 일본은 이미 바나나는 흔한 수입 농산물이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비쌌던 시절이다. 일주일 이상의 기간 동안 내내 바나나를 열심히 먹었다. 결국 혀가 얼얼해지는 단계까지 경험했다. 식비가 굳었으니 그 돈으로 돌아올 때 그때 한창 핫하던 니콘 최신 카메라를 사들고 왔다. 지금도 멋지게 귀하게 남아있는 아들 녀석 어린 시절 추억 기록의 일등공신이다.


한국의 배도 좋아한다. 외국에서는 그 맛의 배를 만날 수 없다. 하긴 한국에서도 배의 품종별 상품별 조직에 따른 식감의 차이가 너무도 커서, 사실 낭패보는 경우가 많았다. 너무 거칠고 억센 조직을 가진 배, 아니면 밀가루처럼 지나치게 부드러운 조직의 배, 이래저래 위험도가 높은 과일이었다 내게는. 거봉 포도를 좋아했다. 수입산 옅은 자줏빛 단단한 조직의 큰 알 포도 역시 맛있다. 품질의 차이가 별로 없어 늘 믿고 먹을 수 있었다.


포도 하면 사실 생과보다는 내게는 와인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 내가 소물리에로 일하는 사람도 아니고 와인 이론 전문가는 더욱 아니지만 그래도 30년 이상 와인을 꾸준히 마셔왔으니 와인에 대해서는 나름 조금은 안다고 생각한다. 뭐 특별한 것 있나? 내가 좋아하는 맛의 와인이 명확하게 내게 자리하고 있는 것, 그리고 그 맛을 즐길 수 있는 특정한 카테고리의 와인들을 아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로버트 파커처럼 세계를 돌며 전문적으로 테이스팅을 할 것도 아니고 내가 와이너리를 가지고 있어서 재배와 블렌딩에 고수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딱 이 정도면 충분하다. 많은 사람들이 톡 쏘는 탄산 맛 강한 브랜드의 막걸리를 좋아하고 그냥 훅 바로 들어오는 소주를 좋아하듯, 나는 와인을 좋아한다. 그거면 되었다. 단맛 전혀 없는 레드 와인 (dry red wine). 화이트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 단맛의 와인 혹은 살짝 단맛이 있는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 그저 다 그만의 취향이자 선호다. 음식이라는 것이 뭐 그런 것 아닌가? '취향의 차이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어느 프랑스 철학자가 그랬다. 맞는 말이다. 내가 좋아하면 된 것이니까!


조지아에서 와인은 아주 싸다. 3천원 4천원으로 살 수 있는 와인도 많다. 그런데 그 맛이 문제다. 좋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게는 맛이 너무 천편일률적이라 그저 심심하다. '사퍼라비 (Saperavi)'라는 품종이 주종이다. 춥고 비가 많이 내리는 조지아에서도 살아남는 특이한 포도나무다. 그 맛도 그래서 직선적이고 그냥 내리 강하고 그렇다. 버터리하고 실키하고 뭐 그런 부드럽고 혀에 감기는 맛은 없다.


그런데 레드 와인의 색깔은 기가 막히게 이쁘다. 사퍼라비라는 말이 '물을 들이다/색을 주다/염색하다' 그런 뜻이다. 워낙 그 색깔이 곱고 예뻐서 프랑스 와인 사전에는 '땐 뚜리에'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다. 같은 뜻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고운 색을 내기 위해 일부러 그 목적으로 이 품종을 재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혹시 조지아에 가셔서 조지아 레드 와인을 마실 기회가 있다면 제 말을 기억해 보시라. 그 직선적인 내지르는 맛과, 조금은 신비스럽고 매혹적으로 예쁜 와인의 색깔을. 드라이 레드보다는 세마이 스위트 혹은 스위트 레드의 색이 훨씬 이쁘다. 한국에 있는 누군가에게 조지아 갔다온 기념으로 와인을 한 병 선물 한다면 세마이 레드 와인이 전략적으로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우선 할 얘기가 많으니까!


그곳에 있을 때는 예전에 유행했던 버터 사탕 같은 맛이 강한 미국 오리건주 피노누아가 많이 그리웠다. 물론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카쇼 (카버네 소비뇽)도 먹고 싶었다. 정통 부르고뉴 피노누아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칠레산 피노누아나 카쇼도 그때의 내게는 대단히 훌륭한 것이었다. 호주산 레드도 많이 생각났다. 특히 '쉬라즈' (프랑스의 '시라'와는 다르다)의 그 진하고 농도 짙은 맛이 그리웠다.


이태리산 바롤로나 바르바레스코는 지금은 꿈꿀 수 없다. 너무 비싼 가격이다. 그저 제대로 된 키안티 글라시코만 해도 감지덕지다. 브르넬로 디 몬탈치도라도 좋다. 정통 보르도 카쇼는 그 맛의 위험도가 너무 크다. 낭패볼 가능성이 높다. 가격 대비 그 허탈함의 위험성! 그런데 조지아에서는 이 중 그 어떤 와인도 쉽게 맛볼 수 없었다. 굳이 그곳까지 이런 와인을 수입할 이유도 또한 시장도 없으니까. 지금 내가 있는 나라에서도 이런 와인은 쉽게 접할 수 없다. 물론 이곳에도 현지 브랜드의 레드 와인이 있기는 하다. 그 맛이 문제지.


한철에 백 개 넘게 먹은 복숭아, 환상적인 맛의 플럼, 자연 숙성의 망고, 1년 내내 끊이지 않고 싼 가격에 즐긴 다양한 맛의 사과, 그리고 땅속의 사과 감자, 비록 아직은 신선이 되지 못했지만 분명 내 몸과 정신에 대단히 좋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삶은 달걀도 하루에 세 개, 일년 내내 꾸준히 먹었으니 그 또한 한해 천 개에 육박한다. 이러다가 결국 언젠가는 신선이 되지 않을까 살짝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다. 그저 '오늘 내가 먹는 것이 내일의 나다'라는 말을 기억하며 내 육체와 정신에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먹거리들을 즐기려 노력한다. 돈이 많이 드는 식재료들은 결코 아니다. 더욱 고마운 일이다.


지금 신선이 되어 무엇하겠나? 그 또한 부질없는 욕심일 뿐이다. '재앙은, 화는 많이 탐내는데서 생기고...' 늘 이 말을 삶의 경구로 삼고 있다. 노자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 '만족을 알면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고 (지족불욕), 멈추어 설 때를 알면 위험에 처하지 않는다 (지지불태 )'.


이제 오늘의 시를 봅니다.


짙고 옅은 붉은 빛 가득한 아름다운 꽃 가득한 복숭아나무. 편견의 위험을 얘기합니다. 아예 처음부터 한번 자세히 살펴볼 마음조차 없었던 시인은 그랬던 자신을 살짝 탓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너무 늦지는 않게 그 복숭아나무의 참모습을 시인은 보게 됩니다. 그러면 된 것이지요.


그의 진심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새로운 친구를 만납니다.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린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그래도 친구의 본모습을 본 자신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 화려하던 꽃잎들 다 사라진 그때에,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친구 가까이 슬쩍 다가갑니다. 그의 그늘 아래에서 저녁이 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동무된 그와 함께 그렇게.


너무 늦은 것은 없다는 생각을 저는 합니다. 어쩌면 좀 늦었기에 더욱 소중하고 그만큼 더 오래갈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이 아까워서라도요. 하긴 저는 무릇 '잃어버린 시간'이란 없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 또한 다 필요해서, 소용과 이유가 있었기에 우리네 삶에서 그리 흘러간 것이니까요. 마르셀 프루스트처럼 굳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나설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지요. 결국은 다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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