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배려해야 하는 이유 - 내 안에 '나' 있다

- 나는 충분히 잘난 존재, 영원한 내 편. 최가슬 '나를 배려하는 일'

by 가을에 내리는 눈

일주일에 두세 번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간다. 이 나라 이 도시는 하루를 아주 일찍 시작한다. 아침 여덟 시 전인데 이미 문은 열려 있다. 돌아오는 길에는 꼭 길가 좌판에서 삶은 옥수수 하나를 산다. 300원, 참 맛있다. 가는 길에 아주머니에게 눈 인사를 한다. 반갑게 받는다.


편도 30분 정도의 꽤 먼 거리, 보통 때는 세 번 정도 중간에 잠깐 쉬는데, 오늘은 좋은 후지 사과가 보여서 좀 많이 샀더니 많이 무겁다. 여섯 번 정도 쉰 것 같다. 숙소에 거의 다 왔을 무렵 누군가 뒤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보니 그 옥수수 아주머니다. 검지 손가락을 들며 하나라는 표시를 한다. 나도 반갑게 '못' (하나, 일이라는 베트남 말)이라고 대꾸한다. 함께 좌판 장소에 도착하니 아주머니의 오늘 옥수수는 이미 다 팔린 상태였다.


보따리를 뒤적이더니 따로 남겨두었던 따끈한 옥수수 한 개를 내게 준다. 나를 기억하고, 나를 생각해서 하나를 남겨둔 것이다. 집에도 가지 않고 내내 나를 기다린 것이다. 이런 고마운 일이! 외국인인 나를 기억하는 것이기도 하고, 얼마 전 내가 준 작은 한국 과자 한 봉지를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고마운 배려다. 오늘 아침이 즐겁다!


그런데 이런? 집에 와서 아까 산 옥수수를 꺼내보니 겉껍질을 벗기지 않은 상태다. 보통 때는 보는 자리에서 그 껍질을 벗겨내고 준다. 식을까 봐, 조금이라도 덜 식으라는 삶은 옥수수 달인 아주머니의 또 다른 배려다. 이런 사려 깊음이라니!


그런데 정작 나는 나 자신을 이렇게 따뜻하게 배려하지 못하는 것 같다. 늘 뭔가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신호를 나 자신에게 보낸다. 궁핍이라고, 결핍이라고, 아직도 채워지지 않은 그 무엇이 있다고, 많다고! 그래서 아쉽다고, 안타깝다고, 미련이 남는다고, 그러니 좀 더 채워달라고 신에게, 섭리에게 대자연에게 간구한다.


이런 소리를 듣는,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또 다른 나는 어떨까? 그의 기분, 그의 마음 저 깊은 곳에서의 씁쓸함을 생각은 해 보았나? 그러고도 자꾸 그리 달라고 하는가? 그를 좀 편안하게 만들어줄 수는 없는 것일까? 적어도 나는, 오늘 아침의 그 옥수수 아주머니보다는 나를 더 오래 알아왔고, 더 잘 알고 그러니 어떤 면에서 한참 더 오랜, 가까운 친구요 동무 아닌가? 그런데 그 동무가 이곳에서 새롭게 만난 어느 아주머니보다 나를 배려하지 않는다면?


어젯밤 어느 브런치 작가 한 분이 쓴 요가에 관한 글을 읽었다. 좋았다. '요가는 단순히 몸의 움직임을 멈추는 것만은 아니다. 몸을 멈추고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 그것이 요가의 시작이다' 이런 취지의 말을 그 글에서 했다. 나도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내 마음의 흐름을 읽는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 마음은? 그 속도는? 혹 지나치게 빠른 움직임은 아닐까? 아니면 오히려 너무 느린 속도인가?


'이제는 내려놓아야지!/이만큼이면 충분히 많이 내려놓은 것 아니야?'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오만의 결론을 가끔 내린다. 아니? 아직도 멀었어! 충분히 내려놓았다면 여전히 그렇게 많이 원하고 바라고 청하지는 않겠지? 조금 더 마음의 흐름의 속도를 줄여봐. 조금 더 느리게 가면서 전후좌우를 살펴봐. 필요하면, 여건이 되면 실제로 요가를 하면서 몸에서부터 그 깨달음의 여정을 다시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100% 관념 속의 여행과는 또 다를 걸? 몸이 느끼는 것을 마음 또한 느끼는 부분이 많을 거야 분명! 그러니 사람들이 요가를 하지. 몸과 마음의, 영혼의 수행을 위해서!


나를 예전보다는 따뜻한 눈으로 보는 지금의 자세, 그건 아주 좋아! '너그러움과 선함, 세상을 보는 창. 따뜻함과 긍지, 내가 나를 바라보는 창' - 조지아에 있을 때 어느 날 산책길에 근처에 있는 400년 넘은 조지아 정교회 건물에서 리노베이션 중에 길에 내다 버린 오래된 유리 있는 작은 창틀을 주워왔다. 몇 날을 씻고 닦고 깨끗하게 만들어 거실 한편에 두었다. 그 창틀을 보며 내가 나 자신에게 준 내 일상 속의 경구였다. 동시에 나의 설치 미술, 그 창틀에게 붙여준 작품의 이름이기도 하고! 참으로 아쉽게도 '그 작품'은 조지아를 떠나며 들고 오지 못했다. 못내 아쉽고 늘 생각이 난다.


스페인의 첼로 거장 파블로 카잘스를 나는 좋아한다. 바흐의 '6개의 첼로 모음 춤곡' (우리에게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을 어린 시절 우연히 헌책방에서 찾아내고 그것을 무려 10년 동안 연구해서 비로소 이 세상에 드러나게 한 인물.


누군가가 그가 연주하는 그 곡을 듣고 이리 말했다. 내가 무릎을 치며 좋아했던 코멘트였다. "하느님과 바흐가 나누는 대화를 엿들으며 카잘스는 그 둘의 대화를 그대로 우리들에게 현장중계 하는 듯하다" 참으로 멋진 말 아닌가? 하느님, 그리고 감히 그분과 대화를 하는 바흐, 그런데 용감하게 그 둘의 대화를 엿들으며 우리가 알아듣게 리얼타임 현장중계를 하고 있는 파블로 카잘스! 이보다 더 큰 찬사가 어디 있겠나? 바흐에게도 카잘스에게도!


바흐도 인간이고 카잘스 또한 인간이고, 나나 여러분 모두 역시 인간이고. 설령 모두가 내게 등을 돌리고 나를 떠나간다 해도 나만은, 그렇기에 더욱 더 나는 나를 칭찬하고 응원해야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내 옆에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나를 배려하는 일, 진정으로 나를 아끼는 일이고 나를 사랑하는 일이 된다.


최소한의 '바닥' (영어에서는 이럴 때 'flooring'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야말로 마루의 바닥이다)이 내 손에 있으니 든든하지 않겠나? '광에서 인심난다' 어릴 때 어머니가 늘 내게 하신 말씀이다. 뭐 가진 것이 있어야 남에게도 베푼다는 그런 뜻이리라. 재미로 하는 고스톱 게임에서도 밑천이 좀 든든해야 재미도 있고 딸 가능성도 커진다. 가진 돈이 없으면 늘 불안하다. 좋은 패가 들어왔음에도 쉽게 그 판에 참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냥 먼저 접고 포기한다. 게임에 참가하지 않으면 잃지는 않겠지만 딸 일도 없다. 패가 나쁘면 또 나빠서 빠진다. 이래저래 딸 가능성은 없어진다.


내가 나를 지키는 나의 편이 되자. '남다른 내 편'이 남편이라는 소리를 이전의 어느 글에서 나는 말했다. 아내의 편도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나의 편이 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그래야 듬직한 아내의 편도 되어줄 수 있다. 적어도 구독자 한 명은 이미 확보한 것이다. 그게 내가 내 편이 된다는 것의 의미다.


이제 오늘의 시를 본다.


우연히 만나게 된 시다. 이런 시가 내게로 왔다는 것 자체가 나는 많이 기쁘다. 오늘 아침의 내 생각을 읽은 듯하다, 시인이. 어쩌면 이리도 내 마음을 그대로 읽어내신 것일까? 그래서 시인은 위대하다!


내 눈에는 모든 것이 나보다는 나은 듯한 그대 - 매력적이고 향기가 있고,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색감을 가진 사람. 내 안 가득한 질투의 감정.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그를 배려하는 일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고 그의 향기에 미소 지으려 힘쓰고, 그의 향기에 대해 좋은 말 한마디 건네줄 수 있어야 한다.


그가 가치 있어서 내가 초라한 것은 아님을 나는 이제는 안다. 그렇게 비로소 타인에게 미소지을 수 있게 되었다면 그 다음에는 바로 내게도 웃어 주어야 한다. 물론 마음 어느 한 구석에는 쓰린 마음 조각이 남아있을 수도 있다. 그때는 그렇게 웅크리고 숨어있는 내 마음의 생채기를 조용히 찾아내야 한다. 그러면 된다. 그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그 누군가가 이 순간에도 우주를 떠도는 나의 흐느낌을 듣는다면, 그래서 그의 마음이 지금 내가 흘리는 이 눈물로 가득 차고 있다면? 아주 작은 내 마음속 중얼거림조차 놓치지 않으려 말을 삼키고 집중하고 있는 그 누군가가 이 우주 어딘가에 있다면? 당당하게 내가 그리 믿는다면?


조만간 나는 그와 포옹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 같아요. 어색한 악수를 내가 먼저 청하게 될지도 몰라요, 또 그 다음에는 불쑥 사랑한다고 제가 말하는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지요.


모르는 일이거든요 언제 어떻게 그런 일들이 일어날지는? 그러니 불가능한 것이라 쉽게 단정하지 마세요. 내가 나를 배려하는 일, 그리고 나보다 잘난 그 누군가의 그 잘남을 예쁜 마음으로 칭찬하고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그런 일이! 한마디 한마디 놓칠 수 없는 시인의 금쪽같은 말들이다.


내가 듬직한 내 편이 되는 일, 그것이 바로 진짜로 늘 듬직한 내가 되는 시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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