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포도를 입에서 뱉기까지

- 발상의 전환, 실행력, 진보. 에이다 리몬 '내가 전에는 몰랐던 것'

by 가을에 내리는 눈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성질이 나서 칼로 끊어내 버린 고르디우스의 매듭. 콜럼버스의 달걀. 결국 '일이 되도록 하는' (getting things done) 일의 중요성과 그 가치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 매듭을 조금 뒤 그대로 다시 써야 하는 경우라든가, 풀어내라고 했지 끊어버려도 된다고는 하지 않았다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는 물론 예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는 그런 '예외 조차도 또 다시 예외가 되는' 상황이 우리 사는 세상에는 실제로 참 많다. '서울로 가는 것'이 일단은 모두에게 급한 일이니까.


'크리스토퍼 컬럼버스 워즈 앤 이탤리언 세일러' 중학교 때 영어 시간의 교과서 한 문장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영어는, 언어는 그저 외는 것이 답이다를 늘 강조하신 영어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늘 외웠다. 아무튼 콜럼버스의 달걀의 경우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경우와는 많이 다르다.


무조건 그가 옳다, 나는 그리 본다.


"그래 맞아, 아마도 어쩌면 당신들도 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결과적으로 못했잖아?). 그런데 어쩌지? 나는 했거든? 그게 당신들과 나와의 유일한 차이지." (Certainly, yes ; the difference, gentlemen, is that you could have done it, but I did it!")


에이, '그렇게 하면' 누가 못해? 꼭 이리 초를 치는 사람들이 있다. 참으로 못나고 못난 존재들이다. 그런데 너는 못했잖아 지금껏, 그렇게든 이렇게든 저렇게든?


아침과 저녁식사로는 여러가지 음식들로 구성된 '코스밀'을 먹는다 (이렇게라도 말씀드려야 그 궁상스러움이 덜해질 것 같아서요, 이해하시지요?). 우선 세 종류의 뮤즐리와 그래놀라로 시작한다. 그런데 '퀘이커'에서 나온 그래놀라에 들어있는 건포도가 지나치게 딱딱하다. 씹어먹기가 아주 불편할 만큼. 그래도 한동안 꾸역꾸역 이빨 걱정을 하며 씹어서 넘겼다. 먹는 즐거움은 당연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 "아니 그냥 뱉어버리면 되는 것을 왜 그렇게 미련하게 먹고 있지?" 이런 깨달음이 왔다. 당장 입안에 감지되는 족족 뱉어버린다. 그리 편할 수가 없다.


그렇게 간단하고 단순하고 쉬운 일을, 왜 그동안에는 생각하지 못한 것일까? 우선 내 성격의 탓이 클 것이다. 사람이 여전히 고지식하다. 그거 안 먹는다고 뭐 어찌 되나? 뻔하고 흔한 건포도, 그 뭐 대단한 것이라고? 예전에는 너무 달다고 아예 먹지도 않던 것을?


그런데 결국 이 또한 두려움의 영향이다. 뭐 크게 어찌 될 줄 알고! 익숙함에, 현재에 고착화된 관성과 타성의 부작용이다. 생각 없음의 명확한 증거인 것은 물론이고. 여전히 남아있는 욕심과 미련, 아쉬움이 작용하는 것이리라.


'일단 지금 있는 상자 밖으로 나와서 한번 다시 생각해 보기' (thinking out of the box), 이게 잘 안 된다 언제나. 그래도 이렇게 또 한 걸음 내디뎠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늘 이렇게 타협하고 산다.


오늘의 시를 본다.


신선한 발상의 시다. 미국의 계관시인 (Poet Laureate)이 된 최초의 라틴계 여성이다.


이제야 뒤늦게 또 하나를 깨닫는다. 그 깨달음에서 또 다른 깨달음이 내게 왔다. 새끼말의 탄생, 당신과 나의 사랑의 시작. 왠지 아직은 사랑에 서툴어 보이는 당신과 나, 갓난아기와 같은 그런 약한 존재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좀 더 다듬고 가꾸어가야 할 당신과 나의 사랑.


말들은 다른 말들에게 물을 먹으라고, 그리고 신선한 풀을 뜯으라고 선뜻 길을 내어 준답니다 (give way to). 특히 짝에게는 더욱 더. 다른 동물들의 일반적 행태와는 많이 다르지요? 길을 내어 주고 자신을 내어주고, 그렇게 사랑이 싹트고 새끼가 생기고, 그 과정을 시인은 신기한 듯 그리 그려내고 있습니다.


인간과는 다르게 이미 거의 완전한 성체로 태어나는 새끼말, 그러나 사실은 여전히 어미의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시인은 은연중에 드러냅니다. 막 시작된 사랑도 그렇다고. 처음은 그 새끼말도 남녀 사이의 사랑도 언제나 그저 서투른 것이라고. 그래서 어미의 젖이 필요하고 돌봄이 필요하다고. 남녀간의 사랑 또한 그런 것이라고. 서로의 보살핌과 기다림, 어여삐 여기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완전한 성체로 자라나고 발전하는 것이라고.


새끼말도 갓 시작된 사랑도, 지금 당장 마구 내달려도 되는 그런 상태는 아직 아니라고. 때로는 보기 흉하고 자주 이리저리 흔들리고, 양손 가득 조금은 버거워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그래서 새끼말에게는 여전히 곁에서 어미가 지켜보고 있는 것이라고. 사랑하는 두 사람도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어미가 되어야 한다고, 그게 사랑의 온전한 완성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들이 서로에게 길을 내어주듯이 그렇게.


전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것 (What I Didn't Know Before)

- 에이다 리몬 (Ada Limon)

말들이 어떻게 다른 말들을 낳는지를 나는 전에는 알지 못했다. 갓난아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전히 형성 중에 있는 조금은 무서운 그런 미지의 생명체도 아니고,

네 개의 다리를 가진, 태어나자마자 그저 마구 뛰어다니는, 어미 말에게 기를 쓰고 다가가는 그런 동물.


말 한 마리가 다른 말에게 길을 내어주고 온전히 자신을 내어준다

그렇게 해서 한 마리의 말이 어느 순간 갑자기 말 두 마리가 된다, 그저 그런 식으로.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된 것도 그와 똑같다.

당신은, 레드 뱅크로부터 오랜 시간 기차를 타고 왔지, 두 팔 가득 커다란 커피 봉투를 들고,

한쪽 옆구리에는 컴퓨터 두 대가 들어있는 가방이 보기 흉하게 흔들거리는 그런 모습으로

기차에서 내리며.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던 그 순간 우리 둘은 큰 웃음을 터뜨린 것을 나는 기억한다.

그때 우리 둘 사이에 놓여있던 것은 응석받이처럼 한없이 약하거나

끊임없이 어르고 달래주어야 하는그런 깨지기 쉬운 허약한 그 무엇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완전하게 형성된 어떤 것이었고 그래서 힘껏 달릴 준비가 끝난 것이었다.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


# '시 (poem)'라는 말은 그리스어 ('Poesis')로 '내가 만든다 (I make)'라는 뜻이랍니다. 그러니까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그 무엇을 생겨나게 하는 그 모든 과정을 말하는 것이라네요.


이전에는 아직 세상에 없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 기쁨과 슬픔의 얘기를 내가 써냈듯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성숙된 관계도 그리고 조금씩 성장 발전하는 나의 모습도 그렇게 조금씩 써내려가고 만들어가면 좋겠지요? 우리 모두 멋진 시인이 되어갑니다 그렇게! 예전에는 내가 미처 몰랐던 그 소중한 것들, 이제부터라도 알아가면 되겠지요.


내 입에서, 내 몸에서 그리고 나의 마음에서 뱉어낼 수 있는 것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그저 뱉어내면 됩니다. 그것 별 일 아닙니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미 나이 든 저는 오늘도 이렇게 조금 더 성장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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