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콤달콤 망고 하나, 아니면 할머니의 슬픈 웃음

- 아끼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 박노해 '선한 영향력이 있으니'

by 가을에 내리는 눈

'슬픈 웃음' 그저 흔한 언어의 유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껏. '슬픔은 슬픔이고 웃음은 웃음인 것이지 그 둘을 왜 엮어놓나? 참 그 심보 하고는!'


그런데 지금 있는 이 나라에서, 그리고 이전에 있던 조지아에서 나는 몇 번 이 슬픔 섞인 웃음을 보았다. 하지만 내게는 그냥 슬픔이었다, 그들의 얼굴에서 그들의 웃음 속에서 본 것도 그것을 보고 내가 느낀 것도.


분명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럴 마음이 아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웃어야 한다는 생각에 웃는다. 거짓은 아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그 순간 자신의 마음 한쪽에서 스며나온 자연의 감정이다. 그러니 리얼이다, 그래서 나는 더 슬펐다.


그것이 AI와는 다른 우리네 인간의 마음일까? 강점일까 약점일까? 전혀 다른 두 가지 감정의 동시 존재, 동시 표현...


'가난은 나라님도 어찌할 수 없다'라는 말을 나 어릴 때 아버지 어머니는 자주 하셨다. 그때만 해도 밥을 얻으러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시절이었다. 어머니가 그들을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내 기억으로는 그렇다.


그들은 대개 큰 바가지를 하나 들고 왔다. 어머니는 차곡차곡, 가급적 섞이지 않게 그때 집에 있는 음식들을 수북하게 담아 주었다. 또 오라는 말은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여러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그 말은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이곳은 과일이 다양하고 흔하고, 그러니 싸다. 먹음직스러운 큰 망고 하나가 700원 정도 한다. 나는 점심때에는 후식으로 꼭 망고를 먹는다. 맛있는 망고 고르는 법에도 이제는 정통하다. 너무 노란색을 띠지 않은 것, 살짝 푸른 기운이 조금은 남아있는 것, 지나치게 단맛의 향이 풍겨나지 않는 것.


요 며칠 아침 산책 때 늘 길 한편에 앉아있는 할머니가 있다. 처음에는 그냥 가볍게 지나쳤다. 자꾸 마주치다 보니 나도 슬쩍, 그러나 자세히 보게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원추형 모자 '농' (혹은 농라)을 쓰고 있다. 나중에 알았다, 무언가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줍고 있다는 것을.


어느 날 약간의 돈을 할머니 손에 쥐어 주었다. 놀라움 속에 받으신다. 그 순간 나는 그분의 얼굴에서 슬픈 웃음을 보았다. 안도감이 포함된 웃음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슬픔이 배어 나오는 웃음이다. 오늘 아침은 해결되었다는 안도감. 손바닥 보다 큰 바게트 속에 이것저것 넣어서 만든 이들의 아침 주식 '반미' 맛있다고 하는 집의 것이 하나에 칠백 원이다. 그것은 사 먹을 수 있다.


왜 그리 적게 주느냐고 뭐라 하실 분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여기 기준으로는 그리 적은 돈은 아니다. 나는 부자가 아니고, 또 딱 한 번만 주고 말 것도 아님을 나는 알기 때문이다. 한국 기준 한 5천 원쯤 되는 가치의 돈이다.


지난해 겨울 조지아에서 보게 된 아제르바이잔 할머니 생각이 난다. 그 매서운 바람 속에 길 한쪽에 비닐을 깔고 그 위에 자신이 뜬, 털실로 만든 아기용 부츠 모양의 신발들을 팔고 있었다. 다양한 색깔, 참으로 예뻤다. 한 켤레에 5라리 (2,500원)다. 나는 네 켤레를 샀다. 좋아하신다. 어색한 웃음, 경계의 웃음, 슬픔이 비치는 웃음이었다.


내가 머무르던 에어비엔비 발코니 (7층)에서 내려다보면 저 앞에 오늘 그 할머니가 장사 나왔나를 볼 수 있다. 날이 저물 시각 하나도 팔지 못한 것 같은 날에는 내가 서둘러 내려간다. 그러고는 또 몇 켤레 산다. 아니, 정말 예쁘다. 한국의 백화점에서 포장 잘해서 팔면 만 원은 거뜬히 받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7천 원 이상을 주어야 할 커다란 식빵 한 봉지가 그곳에서는 칠백 원 정도 한다. 그러니 한 켤레 팔면 그날 두 사람 먹을 빵은 확보가 되는 셈이다.


유난히 추운 어느 날, 그러니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다. 당연 하나도 팔지 못했을 것이다. 급한 마음에 그나마 알고 있던 그곳의 한국 사람들에게 급히 장문의 톡을 보낸다. 샘플 사진과 함께. 고맙게도 36켤레의 주문을 받았다. 나는 그들에게 한 켤레 6라리씩이라고 했다. 모두 216 라리의 '거금'을 할머니에게 미리 드린다. 정말 좋아하신다.


그때 그 할머니의 얼굴에서 본 웃음은 슬픔의 기색은 거의 없었다. 하나, 그곳에서는 큰 돈이다. 물론 하루에 36켤레를 팔아본 기억도 없을 것이다. 재고가 없어서 하루 이틀 뒤에 물건을 공급한 기억도 없을 것이다. 밤에 집에서, 선주문 받은 상품을 뜨고 있는 할머니에게는 신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둘, 내 마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동안 안면도 익혔다. 1라리씩 더 받아준 그 마음 또한 읽었을 것이다. 적어도 잠깐은 슬픔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리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작은, 아주 작은 도움을 준다는 것은 그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사실 내게 더 좋은 일이다. 그 적은 돈으로 그 순간의 기쁨, 내 마음의 평화 그리고 영혼의 평온을 사기는 힘든 일이니까. 그런 것을 파는 곳이 있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사려 할 것이다.


그런 날의 산책길은 한결 힘이 나고 발걸음 또한 가볍다. 내게 거래적 동기는 전혀 없다. 그 적은 돈으로 무슨 거래를 하겠나?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마음은 살짝 있다. 오늘 아침의 이 적은 돈이 그 할머니에게 작은 달콤함이 되었듯이, 혹시 아나? 언젠가 그 누군가가 내게 작은 달콤함이 될 그 무엇을 내게 가져다줄지? 그 할머니가 기뻐했듯이 당연 나도 그렇게 기뻐할 것이다. 이런 마음과 이런 은근한 기대는 있다.


이것 또한 굳이 마음 나쁜 기대나 바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정도의 꿈도 가지고 살지 못하나? 그렇다면 그건 정말 사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시를 본다.


실천하는 철학자, 체험을 토대로 살아있는 시를 쓰는 시인 박노해님의 작품이다. 그의 시 속에 어려운 시어는 없다. 다만 그 뜻을 현세에서 실천하는 것이 힘들 뿐이다.


'자신 안에 커오는 선의 능력을 쉬임 없이 고무시키라'고 시인은 말한다. 선은 악에 맞서야만 커갈 수 있다고 말하면서. 당신이 선한 자라면 결코 악에게 자신을 내어주지 말라고 용기를 준다. 악은 선을 삼켜야만 연명할 수 있는 그런 존재라면서.


진실로 선한 사람은 설령 나쁜 사회에서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좋은 삶을 사는 사람이란다. 시인은 힘주어 그리 말한다. 읽는 내가 힘이 난다. 아무리 무력한 듯해도 선한 사람은 선한 존재 그 자체로 내뿜는 영향력이 있다고.


'착한 끝은 있다'고 어릴 때 어머니가 늘 말하셨다. "하루 착한 일 했다고 복이 금방 오지는 않겠지만 화는 저절로 멀어진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말이다. 왠지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왠지 나도 선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아니 되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 사실 그리 되고 싶은 생각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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