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으로 보기, 웃는 얼굴. 용혜원 '비 내리는 창 밖을 보며'
국민학교 때 아버지와 둘이서 계곡으로 캠핑을 갔다. 아버지는 일단 텐트부터 치셨다. 베이스 캠프다. 그때는 초록색 두툼한 미군용 텐트가 최고의 텐트였다. 고기도 잡고 닭죽도 끓여서 먹고, 그렇게 즐거운 낮시간을 보냈다. 새벽에 급히 아버지가 나를 깨운다. 지금 비가 심하게 내리고 계곡물이 불어나는 중이라고, 그러니 높은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하신다. 자다말고 일어나 정신없이 아버지의 뒤를 따른다. 비와 나와의 심각한 일대일 만남 그 첫 번째 기억이다.
아버지의 나이 43세 때 나는 태어났다. 아버지는 나를 많이, 아주 많이 예뻐하셨다. 형들도 누나도 별다른 저항은 없었다. 명실상부 최고 대장 아버지에게 감히 맞설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나도 눈치 없이 밉게는 보이지 않으려 본능적으로 애썼다. 프로들은 다 안다. 그들도 나의 싹수를 보았고 그렇게 인정해 준 것이었다. 다만 어머니는 조금 달랐다. 나와 형들과의 갈등이 생기면 무조건 형들의 승리였다. 깊은 뜻이 있음을 후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어머니의 살아있는 훈육에 크게 감사했다.
중학교 3학년의 어느 날, 여름철 장맛비가 세차게 내렸다. 수업을 마치고 그냥 걸었다. 우산도 펼치지 않고 그 험한 비를 다 맞고 그냥 집에까지 걸어서 왔다. 그 먼 길을. 그 무렵 그저 마음이 꿀꿀했다. 무언가가 허전하고 허망한 느낌이었다. 나는 사춘기라는 것이 없었다. 아니 있을 틈이 없었다. 정말 물에 빠진 생쥐처럼 홀딱 다 젖었다. 결국 심한 감기로 몇 주를 고생했다. 비와 나와의 뼈 있는 만남 그 두 번째였다.
대학 초년생 때 비가 내리는 날에는 무조건 학교에서, 그 외딴 산골 동네에서 벗어났다. 어느새 그것이 나의 루틴이 되었다. 화려한 동네, 번잡한 거리, 이 학교 저 학교가 가까이 있는 신촌 혹은 종로로 나간다. 마침 그 근처 학교에 다니는 친구 녀석도 합류한다. 그렇게 우리 둘은 거리를 싸돌아 다닌다. 옷이 젖고 신발이 젖고 마음이 젖으면 신촌역 뒷쪽 허름한 선술집으로 들어간다. 파전과 막걸리, 그러나 음악은 신식, 그렇게 비 오는 날의 나의 하루는 지나갔다. 낭만의 비와 철없는 나와의 만남이었다.
아들 녀석이 방학을 맞아 처음 서울에 왔다. 나는 아들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지쳐서 집으로 돌아온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들려오는 소리가 심상치 않다. 무서운 기세로 갑자기 비가 내린다. 조금 전까지 멀쩡했던 하늘이다. 당연 우리에게는 우산도 없었다. 뭐 비야 맞으면 그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런 비는 좀 곤란하다. 더구나 귀한 자식이 정말 오랜만에 방문한 고국, 스위트홈인데.
둘 다 웃으며 비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내가 이리 말한다 - "응, 비는 내 친구야. 나의 고마운 동무지, 아들!" 나와 고마운 비와의 따뜻한 만남이었다.
그 뒤에도 내가 마주한 비는 늘 내게 다정했다. 우연이 겹치면 그 또한 필연이라 했던가? 그런 일이 참 많았다. 당장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지금 이곳은 길었던 우기의 마지막 달이다. 그런데 그 마지막을 시샘하는 무리가 있는 듯, 요 몇 주는 한국의 장마처럼 험악한 비가 내린다. 원래 이곳의 비는 순하다. 아침과 저녁에 살짝, 10분에서 길어야 30분 정도 그렇게 내리고 만다. 오히려 더 좋다, 거리 청소도 되고 낭만도 있고.
먼 대형 마트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조금씩 내리는 빗속에 집을 나선다. 나는 사과가 필요하다. 비는 여전히 아주 조금씩 내린다. 장을 다 보고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밖으로 나온다. 조금씩 내리는 비에 우산을 펼쳐든다. 힘이 든다. 한참을 오다가 보니 비가 그친다. 우산을 접고 무거운 두 손의 짐에만 집중한다. 고마운 비다.
그에게 아니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다시 비가 내린다. 우비를 차려입고 모터바이크를 타고 나가는 호스트집 아들 내외에게 내가 자랑하듯 말한다. 비는 내게 친절하다고, 늘 그렇다고. 대뜸 자기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응수한다. 나는 그냥 피식 웃는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어쩌면 이것일 수도 있다. 자기 좋다고 하는 사람, 그래도 나는 싫소 하고 냉대하기는 쉽지 않다. 동물도 자기 좋아하는 사람은 금새 알아본다. 비의 경우에도 그랬을지 모르겠다. 뭐 그리 이상하지는 않은 한 사람이 자기를 좋아한다. 그냥 혼자 달떠서 그리 좋아한다. 하늘의 비에게도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니었다. 못 이기는 척 받아준다.
아니면 내가 비를 보는 눈이 남들과 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똑같은 비인데 나만 그녀를 예쁘게 본다. 그래서 예쁘게 보이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예쁘게 보이고 오래 보면 사랑스럽게 보인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이러면 어떻고 또 저러면 어떤가? 요즘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의 긍정적 측면을 확대경을 들고 자주 들여다 본다. 굳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아니라면, 꼭 정해진 그 길로 가야만 한다고 고집할 것은 아니다. 여유가 있다면 살짝 다른 길로 가보는 것도 좋은 시도다.
이것 아니면 안 된다고 그리 내 고집을 피울 것이 아니다. 60 넘은 나이의 '이순', 귀가 순해지는 것일 수도 있고 그래서 이 말 저 말 다 긍정적으로 들으려 노력하는 나의 애씀의 흔적일 수도 있다. 그만큼 오래 살았으니 이제는 척 하면 척,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서 그 참과 거짓을 찾아낼 수 있는 그런 귀를 가진 존재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듣는 모든 것에서 그게 진짜인지 거짓인지를 이제는 비로소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I knew truth in all I heard), 내가 좋아하는 이순의 서구적 해석이다.
오늘의 시를 본다. 오늘도 예외적으로, 여러분 읽으시라 옮겨 적는다. 읽고 그 감동을 느껴보시라.
비 내리는 창 밖을 보며
- 용혜원
내 마음을 통째로
그리움에 빠뜨려 버리는
궂은비가 하루 종일 내리고 있습니다.
굵은 빗방울이
창을 두드리고 부딪치니
외로워지는 내 마음이 흔들립니다.
비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면
그리움마저 애잔하게
빗물과 함께 흘러내려
나만 홀로 외롭게 남아 있습니다
쏟아지는 빗줄기로
모든 것들이 젖고 있는데
내 마음의 샛길은 메말라 젖어들지 못합니다
그리움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눈물이 흐르는 걸 보면
내가 그대를 무척 사랑하는가 봅니다
우리 함께 즐거웠던 순간들이
더 생각이 납니다
그대가 불쑥 찾아올 것만 같다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창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대가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