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략과 전술, 가족, 학습의 힘, 고고함. 송찬호 '푸른 늑대'
아들 녀석이 어릴 때 즐겨 보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에 무스 (Moose, 말코손바닥사슴) 두 마리가 주인공인 스토리가 있었다. 자주 나도 옆에 앉아 함께 보았다. 무스 한 마리는 앞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다리는 튼튼하다. 다른 한 마리는 눈은 멀쩡한데 다리가 불편하다. 그래서 그 둘은 늘 함께 움직인다. 먹이활동도 함께 하고 당연 이동도 함께 한다. 거기에 이런 말이 나온다 - '둘은 하나보다 낫다' (Two heads are better than one).
중국에도 이와 비슷한 얘기가 있다. 전설 속에 나오는 이리 두 마리. 앞다리가 짧고 뒷다리가 없는 '낭'이라는 이리와 앞다리는 없고 뒷다리가 짧은 '패'라는 이리의 얘기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의지해야만 걸을 수가 있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이 둘이 서로 다투어 떨어지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아이고 이것 참 낭패로군!', 계획한 일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기대에 어긋나 매우 난처하고 딱하게 된 상황을 가리키는 말, '낭' (狼, 이리 낭) '패' (狽, 이리 패).
'이리'는 늑대의 순우리말입니다. 늑대 또한 순우리말입니다. 승냥이라고도 부르지요. 이리 혹은 승냥이로 불리우던 것이 어느 순간 늑대로 바뀌었답니다. 하나의 순우리말이 다른 순우리말을 대체한 희귀한 경우인데, 늑대의 어원은 언어학자들도 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그야말로 미스테리랍니다. 일본어로는 '오오카미 (大神)'라고 합니다. 옛부터 전해온 그들의 늑대 신앙과 연관된 것이라고 하네요.
저는 늑대라는 동물을 아주 높게 보는 사람입니다. 늑대 혹은 회색늑대 (둘 다 공식적인 종의 이름입니다), 이로부터 분리해 나온 개와는 아예 차원이 다른 대단한 동물이지요. 무조건 힘이 센 개체가 무리의 리더가 되는 다른 일반 동물과는 달리, 늑대의 경우에는 가장 현명하고 경험이 많고 리더십이 뛰어난 개체가 우두머리 자리를 맡는답니다.
무리 사냥을 할 때 전략을 짜고 뒤에서 명령을 내립니다. 그렇게 구체적인 전술을 구사합니다. 최후의 순간 사냥감의 마지막 숨통을 단숨에 끊어버리는 일을 그가 합니다. 사실 이 일은 아주 위험한 일이라네요. 노련하게 단 한 번에 그 숨통을 끊지 못하면 사냥감의 최후 반격으로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네요. 그런 위험한 일을 우두머리가 하는 것이지요. 대장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이라 볼 수 있겠지요. 극한의 날씨 등의 경우에는 무리는 남겨두고 우두머리 혼자 사냥에 나서서 무리 전체를 위한 먹이를 잡아오기도 한답니다.
늑대를 공부하다가 하나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늙고 병든 개체들은 사냥에 나서지 않는 대신에 무리의 새끼들을 지키고 육아를 담당한답니다. 나이 든 늑대는 무엇보다 무리내의 젊은 개체들에게 사냥과 생존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전수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네요. 요즘에는 인간 사회에서도 제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런 것들을, 늑대의 사회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일로 여기고 충실하게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부럽기도 하구요. 로마 제국 귀족들의 자녀들을 교육하는 역할을 맡았던 그리스의 원로 학자들 생각이 납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늑대에 관해 공부하던 중 대단한 책을 한 권 발견했습니다. <늑대의 지혜로 배우는 생존의 비법>, 타이먼 타워라 지음/함규진 옮김, 아이디북. 경영 컨설턴트인 저자가 늑대의 무리생활을 통해 우리에게 설명하는 삶의 지혜 혹은 경쟁력 강화의 비법입니다. 이 책을 통해 배우고 감동한 것 몇 가지를 여기 그대로 소개합니다.
첫째, 그들의 사냥 성공률이다. 늑대의 무리가 자연계에서 가장 유능한 사냥의 조직임에도 그 실패율은 대략 90%. 그러니까 열 번 사냥에 나서면 '겨우' 한 번 상공한다는 얘기다. 이 10%를 겨우라고 봐야 할지 아니면 '무려'라고 놀라야 할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열 번 타석에서 세 번 안타를 치면 3할대 타자, 엄청 잘 치는 선수다.
혹시 우리는 겨우 단 한 번, 이번 한 번 실패한 것,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을 두고 그냥 바로 치명적 낭패로 규정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풀이 죽어 세상 다 끝난 것처럼 그리 넋 놓고 망연자실 앉아있는 내 모습을 떠올린다. 무리 사냥의 귀재 늑대조차도 열 번을 시도해야 한 번 성공한다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그 10%의 성공율을 가지고, 이 지구상에 출현한 지 백만 년 이상의 세월 동안 그렇게 꿋꿋하게 생존해 오고 있는 것 아닌가? 90%의 실패율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그들.
둘째, 인간보다 낫다고 감히 나는 생각하는 그들의 삶의 지혜.
(1)그들은 새끼 늑대나 나이 든 늑대를 모두가 함께 돌본다/(2)가족에 헌신하고 다른 구성원의 욕구에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3)그들의 충성심과 동료애는 우리네 인간의 상상을 넘어선다/(4)그들은 오랜 세월을 통해 전략의 성공적 변화를 이루어냈다 - 카리부, 엘크, 큰 사슴 사냥에 의존하던 그들은 그 사냥감의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하자 사냥 대상을 변경한다. 흰꼬리사슴을 찾아낸 것이다/(5)그들의 무리 안에서의 뛰어난 사교성은 팀워크 뿐만 아니라 사냥의 연습행위이며 심신 단련의 수단이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서의 생기를 찾는다/(6)즐겁게, 무리가 함께 잡은 먹이를 함께 먹는 그들의 모습을 보라. 아버지 월급날 오랜만에 소고기 사다가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맛있게 구워먹는 인간의 그 모습 그대로다, 아니 그보다 더 즐겁게, 감사하며 먹는다/(7)전략과 전술의 달인이다. 일사불란한 조직적 실행의 끝판왕이다/(8)호기심을 잃지 않는다. 늘 끈기를 가지고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억한다/(9)너그럽다, 무리내 다른 구성원들에게도 그리고 다른 동물들에게도. 그들의 사냥감에게도 그들은 그냥 쓸데없이 괴롭히거나 하지 않는다.
그러니 혹시 낭패라는 생각이 들면 늑대가 말하는 다음의 두 가지를 생각하세요.
하나, 과연 낭패가 맞나? 그들의 90% 사냥 실패율을 기억하세요. 메이저리그 최고 타자의 타율이 3할대임을 잊지 마세요.
둘, 정말 낭패가 맞다면 그렇다면 그들의 삶의 전략을 떠올려 보세요. 그들의 지혜를 생각하세요. 그러면 이번에 겪은 낭패가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이번 낭패로부터의 충격과 좌절을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늑대로부터 배우는 우리 삶의 지혜입니다. 늑대가 최근 저에게 말해준 생존의 비기입니다.
오늘의 시를 봅니다.
어느 순간 바다를 본 늑대의 얘기입니다. 그래서 있던 곳을 떠나 더 깊고 더 광활한 산속으로 들어간 어느 늑대의 관찰기입니다. 깨달음, 보는 방식의 중요성, 그것이 가져오는 큰 변화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늑대는 아름다움, 존엄, 영리함의 상징이다'라고 말하는 타이먼 타워라의 말이 저를 기쁘게 합니다. 저는 늑대를 참으로 대단한 존재로 봅니다.
푸른 늑대
- 송찬호
푸른 바다를 보고 온 날부터 늑대는 말이 없었다
늑대는 자신의 영역을 폐쇄하고 더 깊은 산속을 찾아들어갔다
그때부터 먼 산골짜기에서 파도 소리가 들렸다
가끔씩 이 산 저 산 꼭대기에 그 늑대가 출몰하는 것이 보였다
멀리서 보면, 높다란 파도 끝에 늑대가 우뚝 서 있는 것 같았다
# 지금까지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가득 담아 보냅니다. 브런치의 제 글은 여기까지입니다. 고맙습니다.
이천이십오년십이월이십칠일 '가을에 내리는 눈'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