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이유? 고통의 근원? 늙어감의 증거? 김창재 '밥'
아들 녀석이 어렸을 때의 일이다. 저녁 식사를 위해 삼겹살을 구웠다. 노릇노릇 잘 구워졌다. 갓 지은 밥도 충분히 뜸이 들었다. 서둘러 퍼서 아이 엄마에게 주고 곧이어 아들에게도 준다. 그런데 갑자기 이 녀석이 밥상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당황한 내가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 밥이 흰쌀밥이 아니란다. 삼겹살 구이에 잡곡밥은 아니라고! 생각해보면 그것도 맞는 말이다. 잘 구워진 삼겹살에는 사실 갓 지은 흰밥이지!
한 삼 년쯤 밥을 지어먹지 않은 때가 있다. 물론 외국에서도 쌀은 구할 수 있지만 밥과 함께 먹을 반찬의 재료들을 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쉽고 편한 길을 택한다. 빵에 삶은 달걀에 삶은 감자, 과일과 호두, 다크 초콜릿, 뭐 그런 것들로 일일 최소 칼로리와 기본적 영양소를 맞춘다. 가끔, 아주 가끔 밥을 짓는다. 운 좋게 찹쌀을 구할 수 있으면 찹쌀을 섞어서. 그냥 그 밥을 먹는다, 갓 지은 뜨거운 상태의 밥, 그리고 나중에는 상온에서 식은 밥. 식은 밥의 경우 마치 새로운 떡을 먹는 느낌도 난다. 나름 맛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아욱국이 자주 그립다. 근대국도 좋다. 그런데 아욱국은 따끈한 것 보다는 살짝 식은 듯한 상태가 나는 더 좋다. 갓 지은 흰쌀밥에 아욱국, 그리고 그리 크지 않은 부드러운 굴비 (보리 굴비는 나는 별로다, 자칫 기름기가 많이 돌 수 있고 식감도 너무 딱딱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형수님의 도라지 고추장 무침, 아 참으로 그리운 맛이다.
살기 위해 먹는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그건 너무 나를 무시하는 태도다. 차라리 먹기 위해 산다는 쪽을 택하리라.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지 않는가? 사실 나는 원색의 옷들을 좋아한다. 색에는 용감하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예쁜 빨강색 옷들이 많다. 겨자색의 짙고 짙은 노란색도 좋아하고, 붉은 색 계통의 체크 무늬도 좋아한다. 살짝 짙은 핑크빛 거친 조직의 진 바지를 즐겨 입는다. 물론 예쁘게 물이 빠진 청바지를 제일 즐겨 입는다. 10년째 입는 나의 사이즈가 있다. 이미 사놓은 청바지를 입기 위해서라도 내 허리 사이즈를 유지하려 애쓴다. 내가 입는 옷의 화려한 색이 점점 작아만지는 나의 마음과 내 꿈을 그래도 밝게 되살려준다.
밥은 내게 기쁨이고 즐거움이고, 아들과의 아름다운 추억이다. 그런데 그 밥은 그냥 내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 엄연한 현실이 이내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시인 김창재의 '밥', 시인은 이 시에서 띄어쓰기 전혀 없이, 행과 연의 구분도 없이 그렇게 다닥다닥 모든 단어들을 붙여서 쓰고 있다. 제일 마지막 행의 '징그러운' 그 말을 빼고는. 떡밥처럼 되어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서로 각자의 모양을 마음껏 뽐내며 찰싹 붙어있는 밥그릇에 담긴 밥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우리 일상 속에서의 밥과 우리들의 그 밀접하고 친밀한 관계를 말하는 것일까? 아무튼 재미있다. 멋진 시도다.
아쉽게도 지금의 이 시인의 삶도, 그의 일상도 그리 즐겁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밥만 먹고 있는 자신을 불쌍한 눈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느리게만 가는 시간 또한 원망스러운 눈으로 본다. '꾸역꾸역'이라는 말이 특히 내 마음을 아리게 한다. 무슨 서러움이 그리 크길래 밥을 먹으면서까지 그리 꾸역꾸역, 억지로 그냥 넘기는 수준의 상태에 있는 것일까? 어린 시절 아버지 어머니에게 혼이 나고 이내 마주한 밥상에서의 내 모습 처럼! 그때는 일부러 한껏 내가 받고 있는 서러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 울먹울먹 꾸역꾸역 밥을 넘겼다. 그 헐리우드 액션의 효과는 늘 좋았다. 그저 고맙고 고마운 나의 부모님!
이 시는 내게는 슬프다. 내가 시를 읽으며 최종적으로 슬픔을 느끼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사실 그런 끝까지 슬픈 시는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예 중간 지점에서 배제한다) 이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슬프다.
치사하게 밥이 주인공이라 씁쓸하게 슬프고, '어제도 먹고 그제도 먹었던 그리고 아침에도 먹고 늦은 저녁에도 먹는', 물론 지금도 먹고 있는 그 밥과 그런 자신의 모습을 조금은 한심한 듯 보고 있는 시인이 슬프고, 그럼에도 죽음과 마주하기 전까지는 어쨌거나 먹어야만 한다고 자조하는 시인의 그 현실이 슬프고, 살기 위해 꾸역꾸역 억지로 넘겨버리는 그 먹는 행위가 슬프고, '징그러운'이라고 대못을 박는 시인의 그 절박함이 참으로 슬프다. 부디 이 시인도 이렇게 살기 위해 먹는 '음식 행위'가 아니라 먹기 위해, 음식들의 참맛을 상미하기 위해 늘 즐겁게 먹는 그런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아마도 시인이 이 시에서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리라!
밥
- 김창재
밥을먹는다
어제도먹고그제도먹었던
밥을먹는다
아침에도먹고늦은저녁에도먹고
밥을먹는다
아무리더디먹어도
느림보시간은빨리지나가지않고
밥을먹는다우리는
거대한죽음이당도할때까지
그리하여밥없는명징한날들에이를때까지꾸역꾸역
내일도먹고모레도먹어야할
밥
징그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