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 당신도 늙어보소 그때도 과연 그런 말이 나오나!

- 있을 때 잘 해요, 그러니! 예이츠의 시 '당신이 나이 들면'

by 가을에 내리는 눈

58세 때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일랜드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1891년 그의 나이 26세 때 쓴 이 시는 그래서 참으로 흥미롭다. 사람의 일은 모른다는 것, 그것이 아니면 마치 죽을 듯한 그런 태도를 취하다가도 인간은 결국 이렇게 또 저렇게 살아낸다는 것, 그리고 남녀간의 사랑은 남에서 님으로, 또 어느 순간 놈으로 바뀌어 간다는 것!


이 시는 모드 곤 (Maud Gonne)이라는 아일랜드의 혁명가이자 여성주의자, 배우였던 여성에게 쓴 것이다. 젊은 시절 예이츠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녀는 그러나 예이츠를 단 한 번도 마음에 둔 적이 없다고 한다. 남편은 훗날 영국군에 잡혀서 처형되었으며 그녀의 아들은 나중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예이츠는 51세가 되던 해에 이제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갖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마지막으로 모드 곤에게 청혼을 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그저 일종의 의무감 혹은 의례적인 제스츄어로 그렇게, 조건을 붙여서 그 결과에 무관심한 태도로 청혼을 했다. 그리고 내심 그녀가 거절하기를 바랐다고 한다. 물론 그녀는 그의 청혼을 거절했고, 예이츠는 그다음 해에 25세 나이의 여성과 두 사람 모두 첫 결혼을 하게 된다. 27세의 나이 차가 나는 52세의 예이츠와 25세의 조지 하이디리스, 그 둘은 해로하며 아들과 딸을 두었다. 불과 그 결혼 6년 후 예이츠는 아일랜드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되었으니, 어찌 보면 주변의 극심한 반대를 물리치고 기어이 결혼한 젊은 아내의 혜안이 있었다고나 할까? 결혼 생활 내내 그녀가 취한 태도와 행동들을 보면, 참으로 나이 어린 현자였다는 감탄을 하게 된다. 지혜와 성숙은 단지 절대적인 나이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도 나는 그녀의 삶의 철학을 통해 얻었다. 신화와 설화 속의 얘기들에 푹 빠진 신비주의자에다가 까다롭고 날카로운 성격의 소유자인 예이츠에게는 꼭 필요했던 지혜로운 아내였다. 이 또한 그의 복이다.


부디 이번에는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기를 바라는 애절한 마음 속에, 슬쩍 협박 아닌 협박의 어투를 섞어가며기회는 항상 오는 것이 아니라오, 언제까지나 영원히 머무르는 것도 아니구요, 그러니 당신도 나도 기회를 놓치지는 맙시다, 시간은 당신이 인식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빨리 지나가는 것이라오, 한번 가버린 젊음은 다시 돌이킬 수 없으니까요, 고맙게도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는 맙시다, 진실과 진리, 그리고 사랑에 대한 그 주어진 소중한 기회를! 예이츠는 이 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리라.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지만, 남녀간의 사랑에서의 승자는 바로 그 순간 조금이라도 덜 사랑하는 자의 것이라 하지 않던가? 26살의 젊은 예이츠가 아무리 가슴 태우고 마음을 졸여도, 꿈적 않는 모드 곤은 그저 오불관 (나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네요! 사랑의 아픔으로 당신의 그 가슴이 타들어가든 말든!), 이 시조차 단 한 줄이라도 그녀의 눈에 들어왔겠는가? 내 나이 들어 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적어도 젊은 시절 남녀간의 그 사랑의 관계에서는 상대 보다는 조금은 덜 사랑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거의 모든 면에서 자신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그 역설을!


예이츠는 나이 듦을 자신의 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죽음은 그것보다 더 나쁜 것으로 보았다. 74세의 나이까지 살았으니 지금으로부터 160년 전에 태어난 인물로서는 오래 산 셈이다. 그림을 그리는 분들,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장수한다는 개인적 느낌을 받은 때가 많다. 자유로운 사고, 일상 속 지속되는 열정과 창작의 의욕, 늘 꾸준하게 무언가 할 일이 앞에 놓여있다는 그 사실, 자신의 창작물에서 느끼는 반복되는 작은 만족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생하는 여전히 많은 예술인들의 경우를 뒤로 놓고 얘기 한다면,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나름 끝임없는 열정과 도전 속에 사는 멋진 분들이다. 아름다운 삶의 활동들이다.


예이츠 나이 26세 (그때 모드 곤의 나이는 25세) 때 쓴 이 시를, 그가 결혼하던 52세 (모드 곤은 이미 51세) 그때에 다시 읽어본다면, 정확히 26년의 세월이 그 두 사람에게 가져온 그 많은 변화들을 두 사람 모두 실감하며 깊은 생각에 빠졌을 것이다. 애초에는 뭐 그런 시니컬한 의도나 의미로 쓴 글이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시간의 흐름과 함께 훗날 다시 읽어보는 똑같은 그 시는 전혀 다른 느낌과 메시지를 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호소, 간청, 논리적 그리고 감성적 설득, 다가올 미래의 일들에 대한 예시와 경구, 다시 간구, 이런 느낌의 시어들이 어느새 상대방의 오판과 오류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 당사자가 듣기 거북한 실상들의 적시, 은근히 내세우는 시인 자신에 대한 자랑과 그때의 자신의 진심, 그러나 이제는 다 지나가버린 허무한 그 화려함과 열정들, 자칫 고통으로까지 느껴질 수 있는 초라한 현재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 강타 - '그 모든 것을 누가 자초한 것인데?'


우리 삶 속의 어떤 일들은 그저 과거의 그 아름다웠던 추억 속에 그대로 담아두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굳이 지금의 실상을 파헤치고, 실망을 하고, 그렇게 그나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아름다운 추억 하나를 또 묻어버리는 그런 우는 범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런 생각과 다짐을 한다. 좋은 것은, 아니 좋았던 것은 그냥 그대로 좋은 기억으로 품고 가는 것 또한 이 험한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지혜의 하나일 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번역한 시 전문을 소개한다. 부디 여러분 마음에 드셨기를!


당신이 나이 들면 (When You Are Old)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당신이 나이 들고 머리는 희어지고 늘 자는 일에만 몰두할 때, 그리고 그저 난로가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그때는 서재에서 이 책을 빼어드세요, 그리고는 천천히 읽어보세요, 그 옛날 한 때 당신의

두 눈에서 볼 수 있었던 그 부드러운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 두 눈에 가득했던 어두운

그림자도 깊이 떠올려 보세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그 기쁨 넘치는 우아한 순간들을 사랑했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아름다움을 거짓 사랑으로 사랑했는가를, 하지만 한 남자가 당신 안에 있는 그 순례자 같은 영혼을

진정 사랑했고, 그리고 당신의 그 변해가는 얼굴의 슬픔들 또한 사랑했다는 것을.


구부정하게 그 몸을 숙인 채 그때도 여전히 하늘을 가득 수놓은 작렬하는 별들의 줄무늬와 막대들을 보면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려 보세요, 조금은 슬픈 듯이, 어떻게 사랑이 그리 급히 달아나버렸는지를,

또한 저 높은 곳에 있는 이 산 저 산을 초조한 듯 왔다 갔다 했는지를, 그리고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가득했던 그때에 어떻게 그 남자의 얼굴을 덮어서 보이지 않게 했는지를.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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