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죽는 것,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

- 그걸 그대로 믿나? 내 존재의 뿌리. 임길택 '아버지 자랑'

by 가을에 내리는 눈

아버지 나이 43세 어머니 나이 37세 때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 제 자식 이뻐하지 않는 부모야 없겠지만 두분은 나를 아주 많이 사랑해 주셨다. 나는 어릴 때 늘 아버지와 함께 잤다. 여름철 모기장 속으로 들어온 모기를 잡고 아버지 머리맡으로 모기향을 몇 번이고 휘이휘이 흔들어서 모기의 접근을 봉쇄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잠이 드시고 나면 비로소 나는 잠을 잤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두 분에게 단 한 번도 매를 맞은 적이 없다. 크게 꾸중을 들은 기억도 없다. 두 분은 나를 우선은 자식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존중해 주셨던 것 같다. 참으로 고맙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나 국민학교 때 학교에서는 이런저런 가정 생활조사라는 것을 했다. 아마도 지금 같으면 아동 인권침해라고 당장 못하게 했을 것이다. 아무튼 그중에 존경하는 인물을 말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순신장군, 우리나라의 무슨 무슨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 헬렌 켈러 이런 이름들이 많이 나왔다. 나는 나의 아버지라고 답했다. 그 뒤에도 늘 내가 존경하는 인물은 나의 아버지였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일찍 죽는 것이다', 실존주의의 교황이라 불리우는 장 폴 사르트르, 그가 어떤 배경과 생각에서 이런 '무서운' 말을 한 것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태어난 지 불과 15개월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뭐 아버지와의 나쁜 관계 혹은 그 기억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니리라. 이후 어린 사르트르는 그 유명한 외할아버지 샤를 슈바이처 밑에서 자라게 된다. 어머니는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와 사촌 사이다. 슈바이처 박사의 생명에의 외경 사상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다시 오늘의 주제로 돌아가면, 어쩌면 사르트르는 참으로 일찍 잃게 된 아버지와의 관계의 아쉬움을 그리 표현한 것 아닐까요? 아버지가 일찍 사망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재혼할 수 있었다느니, 그래서 자신이 외할아버의 그 모든 학문적 소양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느니, 그렇기에 자신은 어려서부터 독립적이고 자아 확립적인 길을 걸을 수 있었다느니 그리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이 결국은 너무도 일찍 잃어버린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 약간의 푸념 등이 섞여있는 일갈이라 저는 그리 봅니다. 평생 그를 지배하고 괴롭힌 지독한 선천적 근시와 사시, 어린 시절 엄하기만 했던 외갓집에서의 아픈 기억들, 이것이 사르트르의 어린 시절 그를 괴롭힌 심리적 부담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상황과 배경 하에서 이 말은 튀어나왔을 것이다. 원망? 아니다, 결코. 그저 아쉬움, 일찍 간 분에 대한 안타까움, 아버지와의 추억이 없는 자신에 대한 연민.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나는 아버지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 라디오에서 나오는 모 유명 대학 철학과 교수님의 철학 이야기를 즐겨 들었다. 하지만 이 주제를 가지고 아버지와 얘기를 나눈 기억은 없다. 그랬다면 아버지도 나도 참으로 난감했을 것이다. 사물과 사상에 대한 나의 이해 수준 또한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때였으니 더욱 그렇다. 그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자주 이 주제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무슨 뜻일까, 사르트르는 어쩌자고 불쑥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일까?


내가 아주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역사 속 혹은 소설 속의 아버지 상이 두 명 있다. 하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이고 또 다른 한 명은 베토벤의 아버지다. 나쁜 아버지상의 전형을 나는 그 두 사람에게서 본다. 그들은 결국 세 자식에게, 그리고 17세의 아니 그 이전부터, 어린 베토벤에게 모든 짐을 다 얹어버렸다. 두 사람 다 경제적 궁핍에 시달린 것도 아니었다. 표도르 카라마조프는 오늘날의 가치로 20억원이 넘는 재산을 가지고 있었고, 베토벤의 아버지 또한 궁정 악장으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술, 자기 중심의 이기적 사고, 자신의 어린 시절 사랑받지 못했던 아픔의 기억들... 그러나 결국은 그들의 인간성이다. 그것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어떤 아내나 어떤 자식들의 경우에는, 그들이 일상 속에서 처한 상황이 늘 아버지의 존재로 인한 고통과 공포라면, 분명 이 비슷한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지분 만을 주장하는 가장, 실상은 불편과 두려움 양산의 존재, 뭐 그리 좋은 기억과 좋은 감정이 있겠나? '존재의 사라짐'이 때로는 차라리 그 존재의 그나마 찾을 수 있는 의미와 가치, 긍정적인 면을 떠올리게 한다. 물리적 존재의 없음이 역설적으로 가져오는 가치와 의미의 생성이다.


사르트르가 본 것도 아마 이런 것일 것이다. 물론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나 그의 어머니에게 고통만을 주는 부정적 이미지의 존재는 전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아쉬움과 결핍의 감정은 더했을 것이다. 사르트르는 이런 식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과 어머니에게 남긴 긍정적 요소들을 평가하고, 자신을 세계 철학계의 거두로 우뚝 서게 한 아버지의 공을 표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분의 그리 일찍 가심이 결국은 오늘날의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라고.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의 길을 갈 수 있게 한 분이라고. 나는 그리 생각한다.


지금 소개하는 시는 참으로 오늘의 주제와 잘 어울린다. 사르트르의 말을 듣고 이 시인이 자신의 방식으로 그 말의 진의를 풀어놓은 듯하다. 조금 무거운 오늘의 주제를 단박에 웃음으로 몰아내버린다.


너희들 각자의 아버지 자랑을 해보자고 새로 오신 선생님이 뜬금없이 말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떠오르는 것이 없다. 탄 캐는 일이 자랑은 아닐 것이고, 누가 좀 그럴듯 한 것 하나 먼저 얘기해 주면 좋으련만. 서로 눈치만 본다. 그때 용감하게 손을 든 한 학생. '아버지 술 잡수신 다음날 일 안 가려 떼쓰시다 어머니께 혼나는 일입니다' 일순간 비로소 해소된 그 어색함, 그 미묘한 긴장의 흐름.


그렇지, 그렇게 열심히 사시는 우리 아버지, 당연 자랑할 일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의 그런 사랑의 실랑이, 자랑할 일이다. 오시자마자 아이들 기 살려 주시려 대뜸 아버지 자랑을 해보자고 하신 선생님, 크게 자랑할 일이다. 아이들의 여전한 순수함과 순진함, 살짝 수줍음까지, 아름답고 그래서 자랑할 일이다. 탄 캐는 일? 내 육체의 힘으로, 위험도 감내하며 나를 위해 그리고 내 가족을 위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속할 정직한 일이다. 자랑할 일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선물은 많고도 많다. 그 오랜 세월 아버지에게 받은 선물, 한 번 손에 꼽아보시라 지금 당장! 열 손가락이 모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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