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급성 중독? 그저 습관? 정현종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쫓긴다. 무언가가 바짝 내 뒤에 붙어 나를 쫓아온다. 두려움에 쫓기고 나의 여전한 탐욕에 쫓기고, 시기와 질투의 감정에 쫓긴다. 기쁨이 끝없이 내 뒤를 따르고, 돈이 내 뒤에 바짝 붙어 자꾸만 나를 따라오고 그렇게 내가 행복에 쫓기는 일은 왜 없을까? 왜 나쁜 것들만 내 뒤를 그리 졸졸, 아니 무섭게 나를 다그치며 따라오는 것일까?
중독이란? 분명 긍정적인 의미는 거의 없다. 우선 어떤 물질이 내 몸에 들어와서 이상반응이나 질병이 발생하는 신체적 중독 (무엇이 내 의도나 원함에 반하여 내게 문제를 일으키는 것). 약물, 사상, 특정 사물이나 반복되는 행동에 빠져들어 정상적으로 사물과 상황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하는 정신적 혹은 의존적 중독 (내가 적극적으로 원하고 그리 실행한 것이든, 내가 적극 거부하지 못하고 바꾸지 못하고 그렇게 벗어나지 못하는 소극적 의미이든 결국은 내가 무언가에 잡혀있는 상태).
한때 스티븐 커비 (Stephen Richards Covey)라는 사람의 책이 세상을 휩쓸던 시절이 있었다. 커비 리더십 센터의 창립자. 그의 이력은 참으로 화려하다. 하버드 MBA, 브리검영 대학 종교교육학 박사, 그 대학 교수 그리고 부총장까지. 아마 돈도 많이 벌었을 것이다, 아주 많이. 젊은 날 내 삶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먼저 할 것을 먼저 하는 습관' (First Things First)이라는 책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긴급성에 중독된 우리 현대인' (Urgency Addictive)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더 유명한 그의 책은 아마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The 7 Habits of Highly Effective People)일 것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모든 일들은 다음과 같이 단순하게 분류될 수 있다. 중요한 일,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일. 또 다른 기준으로 분류하면 급한 일, 급하지 않은 일. 이것들을 결합하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조합이 나온다. 중요하고도 긴급한 일/중요하지만 아직 그리 급하지는 않은 일/중요하지는 않은데 그저 급하게 내게 다가오는 일/중요하지도 급하지도 않은 일.
자, 요즘 여러분은 위의 네 가지 항목 중 어느 부분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나요? 중요하지 않음에도 늘 내게 빨리 해달라고 다그쳐대는 그런 일? 에이, 적어도 내가 그 정도는 아니지! 당연 중요한 일, 더구나 마감이 코앞인 그런 일들 처리에도 시간이 없는 걸?
그렇군요! 그럼 중요한 일인데 아직 그리 급한 것은 아닌 일들은 언제 하시나요? 혹시 지금도 아무런 중요성이 없는, 그리고 급하지도 않은 그런 일들에 시간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고수들의 실전 바둑에서 '초읽기'에 몰려 쩔쩔매는 장면을 보셨나요? 보통 1회에서 3회 정도의 각 1분쯤의 초읽기 시간을 줍니다. 자칫 시간패로 이어지는 위험한 순간입니다. 학교 다닐 때 수학 시험 시간에는 늘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아, 시간만 조금 더 주면 다 풀 수 있는데! 그때도 지금도 수학 시험에 그렇게 빠듯한 시간의 제약을 두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시간의 게임이 아니잖아요 수학이라는 것이! 몇 년 아니 몇십 년이 걸려 풀어내는 수학의 난제들도 있잖아요? 풀면, 풀어내면 되는 것이지 거기에 왜 시간의 압박을 주나요?
시간에 쫓기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꼭 해야만 하는 것은?
하나, 중요하지 않은 일은 뒤로 미루기. 아니 가급적 하기 않기. 중요한가 중요하지 않은가는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에 속하는 것이니까 달리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중요하지 않은 급한 일을, 그저 급하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일들을 할 시간이 없어진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시간에 쫓기게 된다.
첫 단추가 그렇게 잘못 끼워지면 줄줄이 잘못 끼워진다. 외면할 수가 없어서, 아니 남이 나를 보는 눈이 있지, 아 많고 많은 것이 시간인데 시간이야 또 만들면 되지, 이번만 이것만 하고... 이유나 핑계는 많다. 원래 다 그렇게 시작된다.
둘, 중요한 일은 해야 한다는 것을 거의 누구나 다 안다. 그런데 그것을 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 중요한 일을 그것이 긴급한 일로 돌변하기 전에, 아직 충분한 시간이 있을 때 그때 하는 것이 비법이다. 그러면 그 중요한 일이 긴급한 일까지 되어버리는 '이중의 재앙 (더블 제퍼디, double jeopardy)'을 막을 수있다.
충분한 마감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해치우지 않으면 곧, 정말 금새 그 마감 시간이 내 눈앞에 들이닥친다. 한번 그런 긴급함의 사이클이 시작되면 막을 방도가 없다. 중요하고도 급한 일은 이미 많이 쌓여있고, 마감을 놓칠 수는 없으니 일단 급한 대로 그것들부터 한다. 그 사이 시간이 아직은 넉넉히 남아있던 다른 중요한 일들도 급한 일의 부류에 합류한다. 미치고 뛸 일이다. 그 굴레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아들 녀석 어릴 때 내가 늘 강조한 것이 있다. '일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것이 결국은 승패를 좌우한다'. 프라이오러티 셋팅 (priority setting),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할 것인가, 지금 나의 이 상황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 순서를 정하고 거기에 따라 일을 해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네 삶에서 성공적으로 생존하는 길이다.
그냥 되는 대로, 그저 손에 잡히는 것 먼저, 이런 식으로는 곤란하다. 우리의 삶이 하루 이틀 짜리는 아니지 않은가?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하루 내가 할 일을 제일 먼저 생각하고 그 순서를 정하고, 이것이 몸에 배야 한다. 그래서 옛말에도 '일일지계 재어인'이라 한 것이리라. 하루의 계획은, 오늘 하루의 성패는 바로 나의 새벽에 있다 (인시, 새벽 4시, 3시-5시 사이). 일찍 일어나는 것이 유리하다는 말도 될 것이고 맑은 정신에 하루의 일정을 계획하고 일 진행의 순서도를 그리고, 그렇게 하루를 열심히 살라는 뜻이리라.
충분히 풀어낼 수 있는 수학 문제들도 시간이 없어서 못 푼다. 시간에 쫓겨서 더하기 빼기도 틀린다. 그저 대충해서 마감 시간이나 맞추려 시간과 타협한다. 바둑의 시간 제한, 수학 시험의 제한 시간이야 내가 어쩔 수 없는 타인의 영역이라 하지만 다른 많은 것들은 사실 내 손안에 있는 것 아닌가?
미리미리 해치우는 습관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선순환을 가져온다. 중요한 일이 긴급한 일까지 되는 힘든 상황을 막을 수 있다. 그러니 중요한 일을 중심으로, 그것이 아직은 급한 일로 바뀌지 않을 때 그때 해버리자. 중요하고도 급한 일이 나를 뒤쫓고 그렇게 나를 피폐하게 만드는 꼴을 두고 보지 말자.
중요하지 않은 일을 피하자. 아니 거들떠보지 말자. 정색을 하고 외면하자. 그러면 어느 순간 그런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 내 앞에 등장하는 일 자체가 크게 줄어든다. 사람들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정말 중요하지 않은 일은 칼같이 뒷전으로 미루어둔다는 것을. 일에 관해서는 참으로 냉정하다는 것을. 그러니 징징거리며 감정에 호소해 봐야 별 소득 없다는 것을. 그러면 그렇게 또 다른 형태로, 예기치 않게 선순환의 흐름은 시작된다.
이제 시를 본다. 이 시인의 시는 특히나 철학적 사유가 강하다. 그래서 더 좋아한다. 하기는 시인 자신이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분이니.
좀 더 열심히 파고들 것을/더 열심히 말을 걸어볼 걸/더 열심히 사랑을 할 걸, 이런 후회와 미련 속에 지난 일을 아쉬워한다. 귀머거리처럼 반 벙어리처럼 그저 뻔히 보며 그냥 보내버린 것은 아닌지! 우두커니 서서, 그저 그렇게. 왜 그랬을까? 쪽팔림이 두려워서? 수줍어서? 그 나이에? 어쩌면 그저 게으름? 그때는 그리 아쉽지 않았을 수도? 궁핍과 결핍이 들이닥치지 않았을 때니까?
지나고 보니 그 모든 순간들이 다 아름다운 꽃봉오리였는데! 내가 하기에 따라서는 더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었던 그런 소중한 꽃봉오리였던 것을. 내가 조금만 더 열심이었다면,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더 좋았을 순간들이었던 것을. 이제는 많이 늦어버린 그저 아쉬움의 시간들!
'일이 되도록 하는' 습관 (Getting things done)의 중요성, 아직도 꽃봉오리인 그때에 내가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열심히 하는 그런 현실적 지혜! 긴급이 내 뒤를 바짝 쫓아오며 나를 겁박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는 단호함!
살면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은 많지만 적어도 시간에 쫓기는 것만은 즐기지 않기를! 처음의 그 즐거움이 어느 순간 바로, 무서운 쪼들림의 괴물을 몰고 올 것이니까. 그녀에게도 당신에게도,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