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를 탄 사람들

- 고단한 삶, 그 속의 희망, 미래로 가는 차. 곽재구 '사평역에서'

by 가을에 내리는 눈

한 시간의 시간 차를 두고 출발하는 항공편이 있었다. 동일한 항공사의 비행편이다. 뒷 출발 비행기의 기종이 더 크다. 그것을 택한다. 당연 한 시간 늦게 도착했다. 또 이번에는 다른 방식의 비자를 선택했기에 내가 서있는 이미그레이션 줄도 이전과는 달랐다. 줄이 엄청 길다. '올 패스포트' (현지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모두 동일한 줄),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도입된 간편 기계식 시스템도 없다. 이렇게 해서 까먹은 두 시간. 물론 그 대가가 있다.


공항 밖, 늘 이용하던 교통수단은 이미 끊겼다. 난감하다. 택시나 다른 불법 개인 차량들은 많다. 터무니없는 가격이 문제다. 또 다른 위험성에 대한 우려도 있다. 영어를 하는 현지 젊은 여성에게 도움을 청한다. 평소 천 원이면 가는 거리를 그 열 배 만원 조금 넘는 가격에 개인 차량을 탄다. 그래도 그 여성을 비롯 '목격자' 여럿이 있으니 뭐 달리 어쩌기야 하겠나? 그나마 그것이 위안이다.


언제부터인가 다르게 보려는 습관의 효과도 내게 힘을 보탠다. 돈은 더 들었지만, 또 잠시 불안에 가득했지만 그래도 그 덕에 무거운 짐을 들고 끙끙 거리는 일은 없게 되었다. 어쨌거나 가게 되었다. 그러면 된 것이지. 이제 슬리핑 버스에 몸을 맡기고 대여섯 시간 가면 새벽녘에는 내가 그리던 그곳에 도착해 있을 것이니. 그것이면 되었다.


'막차를 탔다'는 말에 대한 여러분의 느낌이나 해석은 어떤 것인가요? 제 기억에는 우리는 주로 부정적인 의미나 상황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알고있어요. 그런데 꼭 그런가요?


막차면 어때요? 그 루트의 그 차 탔으면 된 것 아닌가요? 요금도 동일하고 이미 익숙한 경험이고. 오히려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놓치지 않고 마지막 수단을 손에 넣었으니? 열 배의 요금을 치를 이유도 없어졌구요. 추운 대합실에서 다섯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할 필요도 없구요. 그렇다면, "야 다행이다. 간발의 차로 마지막 차는 탔네? 역시 내 운은 아직 살아있어!" 이리 좋아해야 하겠지요?


다른 상황에서 보면 이럴 수 있겠지요. 타서 좋기는 한데 이게 막차라고? 이제 한참의 시간이 흘러야 이 흐름은 다시 시작되는 것이네 그러니까? 그렇다면 일단은 '끝물'인 셈이구먼 이 차가? 더 이상의 호황은 한동안은 없다고? 내가 지금, 조금 전 상투를 잡은 것인가? 이런 부정적 의미의 막차를 탄 경우. 장마 뒤 끝물 참외는 거저 줘도 안 먹는다는 말처럼, 내가 덤터기를 쓴 것인가?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기'에 따르면, 하지만 이 경우도 얘기는 또 다를 수 있습니다. 끝물 참외는 어차피 거저 얻다시피 했으니 그냥 장아찌를 담그면 될 것이고. 일본 사람들은 이런 비슷한 염장 음식을 아주 귀하게 취급하고 있지 않은가? 오이장아찌와는 또 다른 묘한 식감, 외장아찌, 맛있지! 한동안 잘 먹겠군! 좋아!


상투? 다행히 빚을 내어 산 것은 아니니 뭐 굳이 급하게 처분할 이유나 필요성도 없고. 또 단기 시세차익이 목적이 아니었으니 그냥 '좋은 주식 잘 샀다' 이리 생각하고 길게 보유하고 있으면 될 일? 세상 일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주식으로 돈을 버는 사람 또 그것으로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니까. 세상이 논리와 이론, 과학의 법칙으로만 굴러가는 것은 결코 아니니까! '바이 앤 호울드' 이번의 나의 전략. 결국은 나의 마음이 나의 거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종국에는 나의 몸까지 통제한다.


왜 그들은 막차를 타야 했을까? 이제는 나의 궁금함이 이렇게 흐른다. 늦게까지 일을 해야 했으니까. 집에는 가야 하니까. 집 만한 곳은 없으니까. 그래야 또 내일을 시작하니까. 중간에 가벼운 교통사고가 있어서. 그래서 이전의 교통 수단이 길에서 내 시간을 좀 까먹었지. 아니, 한번은 꼭 막차라는 것을 타고 싶었거든, 말로만 듣던 그 막차. 그 시각 그 안의 사람들의 풍경, 그 속에서 내가 느껴보는 낯설고 신기한 감정들. 이번에 드디어 그 경험을 하게 되는구먼! 작금의 내 삶의 상황이 그래. 늘 절박하고 궁핍과 결핍이 가득하고, 그러다 보니 언제나 마지막의 것들에게 몰리고 의존하게 되지. 뭐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야. 막차 또한 일상의 루틴이니까! 첫차가 있으니 막차도 있는 것 아닌가? 있어야 하고. 굳이 그렇게 멜랑콜리 (melancholy), 일부러 우울하거나 슬프고 침울한 감정의 상태를 연출할 필요는 없어. '멜랑 (melan 검은 색)'과 '콜레 (chole 담즙)'의 합성어인 그 멜랑콜리. 검은 담즙? 담즙 (쓸개즙)은 원래 황록색이라야 정상이라네요? 그러니 검은 색의 쓸개즙은 뭔가 이상이 있을 수 있다는 신호이기는 하겠지요?


이제 시를 봅니다. 설을 맞아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막차, 그 대합실 풍경. 눈은 내리고 자정이 가까운 시각, 저마다 고단한 현재의 삶에서 잠시 떠나 그리던 고향으로 가는 길. 그래서 추운 겨울날이, 쏟아지는 졸음이, 끊이지 않는 감기 기침 소리가, 담배연기까지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희망의 시간, 그리고 따뜻한 공간.


오지 않는 막차. 그러면 어떤가? 오지 않았으니 결국은 온다는 얘기 아닌가? 밖에는 함박눈이 쌓이고 추운 날 탓에 대합실 유리창에는 수수꽃 같은 성에가 끼고. 조는 사람, 감기에 걸려 콜록 거리는 사람, 시인은 행여나 꺼질까 서둘러 난로 속으로 톱밥을 한 줌 던져 넣는다. 모두들 할 말은 많겠으나 그 누구도 그 속을 밖으로 꺼내지는 않는다. 그저 낯선 사람들일 뿐이니, 지금 그런 정도의 마음의 여유는 없으니. 겨울날의 추위 속에 새파래진 두 손을 난로 불빛으로 녹이며 달랜다. 기분 좋게 술에 취한 때처럼, 큰 마음먹고 산 굴비 한 두름 혹은 사과 한 광주리 들고 의기양양 고향 가는 지금의 기분. 그저 말없이 있는 것이 더 어울리는 상황이고 족한 공간임을 이미 아는 사람들. 기침 소리와 담배연기 속에 눈은 쌓이고 사람들 모두 그 눈꽃이 내는 조용한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제 조금 더 시간이 흘러 자정이 넘으면 기다리는 막차는 올 것이고 떠날 것이고 그때면 이 어정쩡한 낯설음도 불현듯 느껴지는 아픔도 저 밖의 하얀 눈밭처럼 그리 덮히고 묻힐 것을. 여전히 내 안에 있는 추억과 그리운 순간들을 하나씩 끄집어낸다. 갑자기 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눈물 한 줌이 솟아 나온다. 조금 전 내가 던진 톱밥처럼 얼른 그 눈물도 타오르는 난로의 불빛 속으로 던져 넣는다.


시인의 지금의 그 마음, 애뜻하고 조금은 가슴 시리고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더 나은 내일을 향한 꿈은 버리지 않는다. 분명 시인도 그럴 것이다. 이 작은 기차역에서 막차를 타는 그들 또한 모두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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