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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치료

원래 아는 공포가 더 무서운 법이니.

by 오공부

첫째가 신경치료를 받고 있다.

모든 어금니의 신경치료받고 금니를 씌운 나는 그게 얼마나 무섭고, 기분 나쁘고, 진이 빠지는 일인지 알고 있다. 어른도 받기 어려워하는 신경치료를 이제 갓 여덟 살이 된 아이가 연속 3주째 받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아이는 맨 처음에는 멋모르고 잘 넘겼는데 두 번 째에는 대기실에서부터 울음을 터뜨렸다. 원래 아는 공포가 더 무서운 법이니. 두 번째 치료를 마치고 대기실 소파에 그야말로 '축 늘어져' 있던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어제가 세 번째 신경치료날이었는데, 두 번째에서 세 번째 치료 사이의 일주일 동안 아이는 수시로 불안을 호소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신경치료 걱정 돼~' 하기도 하고, 잘 놀다가도 '아, 근데 마법봉이 있어서 신경치료를 안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수요일(신경치료날)을 건너뛰고 목요일로 가고 싶다' 등등의 말을 자주 했다. 치료 당일에는 아침부터 눈물바람을 하더니, 급기야는 학교에서 바지에 대변을 누는 일이 발생했다. 돌봄 교실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아, 치과 스트레스 때문에 그랬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아이를 집으로 데려오신 시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어머니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세 번의 치료 중 충치가 제일 덜한 곳이어서 치료시간이 가장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가장 힘들어했고 치료가 다 끝났을 땐 등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일주일 동안 쌓아둔 걱정과 두려움이 다 터져 나온 듯했다. 옷을 갈아입긴 했지만 아이가 울며불며 흘린 땀 때문인지 희미하게 대변냄새가 풍겼는데 그게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아이의 충치를 없애고 트라우마를 얻는 건 아닌지... 지켜보는 나도 많이 힘들었다.


지난 일주일간, 아이가 걱정과 불안의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최대한 진지하게 들어주고 정성껏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래, 많이 무섭고 걱정되지. 정말 그럴 것 같아.'

'걱정될 때마다 엄마한테 얘기해. 다른 사람한테 털어놓으면 기분이 좀 나아지거든.'

'지금 마음이 힘든 거 알아. 하지만 신경치료는 분명히 끝이 있고 지나갈 거야.'

'지금은 아프고 힘들겠지만, 치료받지 않으면 더 아프게 돼. 조금만 힘내자.'

'너의 마음근육이 강해지고 있는 중이야. 원래 마음이 힘들 때가 마음근육을 키울 수 좋은 있는 기회거든. 이런 일을 겪으면서 점점 더 강해질 거야.'

와 같은 말들을 하며 아이의 어깨를 감싸 안거나 등을 쓸어주었다. 신기하게도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 역시 이런 말들을 간절히 듣기 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진작부터 스스로에게 해줬어야 할 이야기들을 못하다가, 아이에게 건네면서 비로소 나 자신도 이런 말들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 아이는 나에게 얼마나 많은걸 알려주는 존재인지 모른다.


아무튼, 고생 많았다.

스승이자 친구인, 나의 아들.

(아이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진정시켜 주었던 '여인천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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