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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立春)

이번 겨울을 잘 났는지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by 오공부

글 제목을 '다음 주면 입춘이네'로 해 놓았다가 그냥 '입춘'으로 바꾸었다. 다음 주면 입춘일 시기에 쓰려고 했던 글을 입춘이 지난 오늘에서야 올린다. 쓰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그동안 왜 이리 뜸했나 변명해 보자면, 가장 큰 이유는 핸드폰 요금제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무제한 요금제를 2년 정도 쓰다가 지난달부터 제한 요금제로 바꾸었다. 요금도 아끼고 무의식적으로 스크롤하는 습관도 줄이기 위해서였다. 효과는 정말 좋다. 예전에는 핸드폰이 울리지 않아도 핸드폰을 열고 블로그며, 유튜브며, 카톡을 기웃거렸다면 이제는 어지간해서는 핸드폰을 열지 않는다. 이터이터를 쓰는 활동은 꼭 필요할 때만 한다.


유튜브도 자주 듣는 명상가이드 같은 것은 '오프라인 저장'으로 해 놓고 듣는다. 오토파일럿에서 벗어나면 심심할 줄 알았는데 자유롭다. '진짜' 휴식시간이 늘었다.


가만히 호흡을 알아차리는 시간이 늘어났다.

나는 더 많이 멍 때리고, 더 많이 침묵한다.

더 자주 하늘과 나무와 사람들을 본다.


하지만 블로그 포스팅까지 뜸해진 건 한 가지 아쉬움이다. 와이파이가 있는 환경에서라도 자주 포스팅해야겠다. 아직은 무제한에서 제한으로 적응하는 과도기라서 변화 속에서 다시 균형을 잡을 때까지 나 자신을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다려줄 참이다.


아무튼, 변명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내가 입춘에 의미를 두고 포스팅을 하려고 한 이유는 재작년(2020) 말부터 작년(2021) 내내 찐하게 우울증을 겪고, 1주년과도 같은 이번 겨울을 잘 지낸다면 한층 지혜롭고 강해진 나로 거듭날 거라는 소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울증이 악화된다는 1주년 시기를 잘 견디고 버텨내기를, 이 겨울이 너무 길다고 느끼지 않기를. 그리고 기왕이면 이 기간을 즐기기도 하면서 좋은 쪽으로 변화하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체감상 겨울이 지났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입춘이 지난 시점에서 이번 겨울을 잘 났는지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특별히 해결된 일도 없고, 몸에 여러 가지 이상도 왔고,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왔던 겨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웃었고, 많이 애썼고, 과거나 미래로 도망가지 않으려 했다. 그 어느 때보다 현재에 머물렀던 나날들을 보냈다. 이런 걸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는 성장했다.


햇살이 내리쬐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는 것도 반갑고 감사한 일이다. 계절의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하는 쪽으로 변화한 나 자신이 마음에 든다. 곧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온다. 그럼 더 자주 자연에 가서 현재에 머물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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