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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은 너에게

"내가 죽으면 큰 토끼도 같이 묻어 줘."

by 오공부

너는 나에게 여러 번 죽고 싶다고 말했다. 자려고 불 끄고 나란히 누운 밤에, 한낮에 놀고 있는 너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 밥을 먹다가, 내 품에 안겨 있다가, 너는 문득 메마른 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죽고 싶어.'



그 말을 들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숨을 한 번 참았다가 정말로 죽기라도 할까 봐 겁이 나서 너를 뚫어지게 볼 뿐. 너는 태어나서 고작 다섯 해를 산 내 딸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양심'이라는 단어를 배웠는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엄마, 내 양심은 망가졌어."

"그게 무슨 소리야? 양심은 다시 고칠 수 있어서 괜찮아."

"아니야, 못 고쳐."

이제 겨우 유치원생인 네가 양심이 망가져봤자 얼마나 망가졌을까. 그리고 왜 고칠 수 없다고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는 걸까. 나는 너와 관련된 기억들을 들춰 보다가 그럴듯한 사건을 찾아내는 데 실패한다.



어느 날은 내가 견디지 못하고 어린 너에게 따졌다.

"너 엄마 아빠인 사람들한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이 뭔 줄 알아? 자식이 먼저 죽는 거야. 자식이 죽어버린다고 해서 자식이 없던 때로 절대로 돌아갈 수 없어. 평생 죽은 자식을 기억하며 살아간다고."

그때 너는 조금 놀란 것 같았다. 그건 부모가 자기를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걸 깨달아서가 아니라, 자기만 죽으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남아있는 문제(나와 남편)를 발견한 데서 오는 당황스러움에 가까워 보였다.



그날 이후, 너는 같은 메시지를 조금은 다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마치 장난감을 사달라고 애교를 부리듯,

"엄마, 내가 죽으면 큰 토끼도 같이 묻어 줘."

이렇게 유언하는 것이었다. 큰 토끼는 네가 가장 좋아하는 분홍색 토끼 인형이다. 나는 웃으며 이렇게 대꾸했다.

"큰 토끼도 죽고 싶대? 물어봤어?"



그렇게 나의 반응도 조금씩 바뀌었다. 돌처럼 굳어버리기보단 능글맞게 삶을 유도하는 쪽으로.

"너 지금 죽으면 학교도 못 다녀. 학교 어떤 곳인지 궁금하지 않아? 우리 앞으로 다른 나라 여행도 많이 다닐 건데 넌 빠져도 괜찮아? 너 어른 되면 얼마나 좋은지 모르지? 간식도 먹고 싶을 때 실컷 먹고 밤에 마음대로 외출도 하고..."



하지만 나는 네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왜 죽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나 역시 '스무 살까지만 살고 죽겠다.'라며 꽤나 진지하게 다짐하던 어린이였기 때문이다. 어떤 실수를 영영 바로잡지 못할 거라고, 나는 단단히 잘못된 존재라고 굳게 믿어서 죽는 것 외엔 다른 길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 어린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 살아서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셋이나 낳았기 때문에 네가 죽고 싶다고 해서 정말로 죽어버리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알려주고 싶다. 세상에 바로잡지 못할 잘못은 없다고. 네가 큰 잘못이라고 생각한 그 일이, 사실은 인간으로 살면서 누구나 저지르는 실수일 수도 있다고. 밖에서 다쳤는데 부모에게 혼이 날까 봐 아프지 않은 척 숨기는 일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어릴 적 기억이다. 부모가 다친 자식에게 화를 내는 건 사실 걱정을 서툴게 표현하는 것일 뿐 자식의 잘못을 탓하는 게 아니지만, 당장 겁먹은 아이가 거기까지 상상하기란 불가능하니까. 어린아이일수록 자신에게 벌어진 나쁜 일이나, 부당한 대우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지만 그건 사실과 다를 때가 아주 많다. 그리고 이 모든 건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알아진다. 그러니까 조금 더 살아봐도 좋다.



너는 여자가 어른이 되면 무조건 아이를 낳아야 하고 출산의 고통을 느껴야 하는 줄 알고 무척 겁을 냈었지. 또 어른들이 갑자기 큰 소리로 부르면 어깨를 떨며 '내가 뭘 잘못했구나'하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스무 살의 네가 지금의 너를 본다면 어이가 없어서 웃을지도 모른다. 마흔 살의 너라면 그런 모습이 애처로워서 꼭 안아 줄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처럼.



스무 살에 죽기로 결심했던 어린 나는 치과에 가는 걸 유독 무서워했다. 치과에서 아픈 치료를 몇 번 받고 난 뒤 충치가 있는 사실을 부모에게 숨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비밀을 들키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라고. 지금 생각하면 무척 어이없고 안타깝지만(제때 치료했다면 지금 덜 고생할 텐데!) 그 당시에는 죽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너도 그런 엉뚱한 비밀을 나 몰래 가지고 있을 테지.



그러니까 살아보는 거다. 때로는 두려움에 떨었다가, 돌아보니 별 거 아니었다며 안심했다가.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거다.

나랑 같이.



운동화 벨크로를 X자로 붙여 멋을 낸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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